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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와이 Jan 24. 2019

중독자의 최후

'알코올 중독증 환자'라는 고상한 호칭은 없다. 그저 '술꾼'일 뿐이다.

술 싫어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가?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모르는 사람과 친구가 되게 해 주고, 소심한 자의 매력을 캐내 주는 마법의 물약이 왜 싫다는 것인가?

나는 학생 때 너무 술을 좋아해서 '회식자리 술 강요'라든가 '주폭 문제' 등을 신문 등에서 접하면 ‘또 이슈 하나 잡아 보려고 하는구먼’ 내심 이런 생각을 가졌다.

하늘은 그런 현실 모르던 나를 벌주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내과의사가 되어 술 때문에 망가지는 수많은 환자를 만나, 낮은 치료 순응도에, 그러니까 엄청 말 안 듣는 환자들 때문에 힘들어하게 된다.

한 번 알코올 중독자는 높은 확률로 영원한 중독자가 된다. 한 번 병원에 입원한 사람은 반드시 다시 입원한다.

때문에 처음에 오면 긴 시간을 할애해 금주를 권하는 편이 좋다. 하지만 아무리 "술 끊으세요" 말해도 실제로 끊는 사람은 적다.

올 때는 죽을 것 같았는데 입원하고 이제는 살 것 같으니 못 끊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답은 또 잘한다. "넵, 줄이겠습니다."

"끊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 환자는 한 명도 없다.

그리고 집에 가서 또 술을 마신다. 또다시 병원에 실려온다. 그러면 또 어떻게든 몸 만들어 준다. 퇴원 때 술 끊으라고 권유한다. "넵, 이제 진짜로 줄여보겠습니다" 그럴 리가 없다.


알콜성간경화 환자들은 숨쉬기도 힘들 정도의 엄청난 양의복수를 안고 있는 경우가 많다. 유효혈장량 감소의 위험요소때문에 복수천자를 무턱대로 해 줄 수도 없다.
photo by: mariusz-prusaczyk
on: unsplash


만성 알코올 중독자가 되면 치료도 쉽지 않다. 아니, 쉽지 않다는 말로는 한 없이 부족하다. 복수로 찬 배는 하늘 높이 솟아 있고, 정신줄을 놓고 노란 황달 낀 눈으로 간호사에게 욕을 해 댄다.

주폭으로 몇십 년 사는 동안 가족들은 다 떨어져 나가 보호자도 하나 없다. 간성혼수를 해결하려면 이 힘센 누런 야수를 묶어두고 관장을 해야 한다. 양 팔 양다리를 서넛이 달려들어 잡고 관장한다. 동물적인 반응만 남은 사람의 관장은 결코 쉽지 않다. 똥물이 튀고 욕설을 듣고 가끔 휘두르는 주먹에 맞아도 할 일은 해야 한다. 한 번만 할 게 아니라 여러 번 해야 한다.

고생 끝에 회복시켜서 퇴원해도 끝이 아니다. 술을 참지 못한 그는 한 달 후 또 온다. 악순환은 계속된다. 다수 술꾼의 마지막 모습이다.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쯤 되면 정신병 아닌가 싶다. 실제로 알코올 중독은 정신과적인 영역이다. 알코올 전문병원에 입원하는 사람은 운 좋은 케이스고, 조현병이나 우울장애 같은 심각한 마음의 병을 가진 환자들과 폐쇄병동에 입원하기도 한다. 폐쇄병동에서 이들에게 '알코올 중독증 환자'라는 고상한 별명은 없다. 그저 '술꾼'일뿐이다.

이 술꾼들은 폐쇄병동에 입원해서 같이 입원한 조현병 환자 같은 정신질환자를 무시하곤 한다. 생각에 자기는 정상인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의사 입장에서는 술꾼이 더 심각한 사람들이다. 적어도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은 그로 인해 고통받는 자아를 너무 잘 알고 있다. 이들과 이야기하고 있노라면, 사회에서 주변 사람에게 큰 피해를 끼치긴 하지만 한편 이렇게 태어난 그들에게 딱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술꾼들은 술 마실 때 취하고, 깨서는 다 잊는다. 이들에게 다른 정신병을 갖고 있는 환자 정도의 연민은 들지 않는다. 적어도 술꾼들은 한 때는 정상인이었다. 알코올 중독이 되지 않을 기회가 있었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당신은 그때 술에서 벗어났어야 합니다!” 일갈할 수는 없다. 참아야 한다. 누구에게나 자기 인생 나름의 사연이 있다. 같은 삶을 살지 않았다면 주제넘은 말이다.

한 번 '물질남용'에 빠진 이상 헤어 나오지 쉽지 않은 상태도 이해해 줘야 한다. 실제로 물질남용은 이겨내기 매우 어렵다. 웬만한 의지로는 힘들다. 오랜 기간 술 마시다 보면 자기 몸이 술을 마신 상태를 정상으로 인지해, 끊게 되면 컨디션이 급격히 떨어지게 된다. 이를 금단증상이라 한다. 의대 시절 한 교수님은 '아무리 부처님이라도 물질남용에서 벗어나기는 힘들 것이다'라는 쓴 농담을 던지더라. 의료진은 이들 술꾼이 입원한 이상, 그래도 술꾼에서 탈출시킬 약간의 가능성을 놓치지 않으려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치료자는 이들에게 치료에 있어 정보를 주는 조력자보다는 온정주의적(Paternalism) 태세를 취하는데, 아버지 같은 모습으로 금주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윽박지르고) 압박한다. 기존 나쁜 상태로 돌아갈 가능성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어느 평범한 날, 그가 또 입원했다. 벌써 열 번쯤은 되는 입원인 것 같았다.

45세 남자, 젊은 그는 이번에도 식사하기를 그만두고 며칠 술만 마셨다 했다.

나는 보호자를 찾았다. 그러다 곧 홀아비임을 기억했다. 당연하게도 그의 아내는 계속되는 폭력에 지쳐 이혼을 선언했던 것이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그래도 피붙이라고 챙기는 어미뿐이다.

이번에도 끼고 온 그의 죄 없는 어머니는 몇 년 전만 해도 매사에 불만이 많고 의료진에게 사사건건 시비를 걸던 성격 강한 할머니였다.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이 남자, 찬찬히 뜯어보면 상당한 미남이다. 알코올 중독자들은 수려한 외모의 소유자인 경우가 적지 않다. 잘난 외모가 술과 쾌락을 부르는 것일까. 부리부리한 눈에 커다란 콧날, 작은 얼굴에 키도 크고 정말 탤런트 같은 외형이다. 준수했던 그는 젊은 시절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마셨다고 했다. 하늘이 준 그의 보물은, 이제는 거대한 복수에 담겨 황달 냄새를 풍기며 썩어가고 있었다.  

처음 그를 만났던 것은 레지던트 1년 차 때였다. 그때도 이미 여러 차례 입퇴원을 반복하던 차였는데, 지금 상태와 비교해보면 병은 나름 초기였다. 복수가 약간 있기는 했지만 미소도 지을 수 있었고, 화도 낼 수 있었다. (적어도 지금 같은 반 시체는 아니었다.) 나는 그가 퇴원할 때 그래도 남은 유일한 치료법을 제안했다. "술 끊으세요."

"줄이겠습니다." 그는 이미 여러 번 들어 안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그는 고통 때문인지 하루 종일 신음했다. 진통제로도 잘 조절되지 않았다. 하늘 높이 둥그렇게 솟은 배를 스치기만 하면 아야 아야 하며 소리 질렀다. 초점은 없지만 크게 뜬 노란 눈은 파충류 같았다. 지난번 입원 때만 해도 '이제 그만 죽고 싶다'는 말을 하고는 했지만, 지금은 고통으로 괴성을 지르기만 할 뿐이었다.

급성악화의 원인은 일단 감염이었다. 전신을 커버하는 주사 항생제를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정맥혈의 염증 지표는 정상으로 떨어질 생각이 없어 보였다.

가장 큰 문제는 신장이었다. 간질환 환자의 무서운 합병증 중 하나인 간신증후군. 빠른 속도로 신장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45세라는 젊은 나이에 며칠간 소변이 안 나오는 괴이한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을까? 보통의 사람이라면 당황해 응급실이라도 찾을 일이었겠지만, 그는 당황함 같은 사소한 감정을 느낄 몸상태가 아니었다.

핍뇨는 무뇨가 되어 수일 째 지속되었다. 간신증후군에 준해 주사제를 사용했지만 반응은 없었다. 이쯤 되자 그는 통증조차도 호소하지 않았다. 동물적인 반응은 사라지고, 정신을 완전히 잃은 채 얕게 숨 쉬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이구나·····.’

결국 병원에서 끝을 맞이할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항상 드는 마음은 '이번만큼은 아니길·····.'이었다. 치료자로서 비겁할 수 있겠지만 때때로 약한 마음이 드는 것은 피할 수가 없다. 가장 힘든 일은 말할 것도 없이, 보호자를 준비시키는 일이었다.

나는 그의 어머니에게 앞으로 벌어질 일을 설명했다. 지금 죽어가고 있으며, 곧 끝이 온다고.


photo by: ivan-bandura
on: unsplash


하지만 그의 모친은 슬프거나 놀란 표정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충격을 받은 것은 그런 반응을 본 나였다.

"이그, 이 웬수 덩어리. 잘 됐어. 아프지나 않게 해 줘요."

"네, 어머니. 당연하죠. 그런데 마지막이 언제쯤 올 지, 정확히 언제라고 말씀은 못 드리겠네요."

"저렇게 살아 뭐해. 저게 사는 거야?"

그녀는 화가 난 듯 소리치더니, 환자 병실 안으로 걸어 들어가 누운 아들 위로 거친 감정 덩어리들을 서슴없이 툭툭 떨어뜨렸다. 그녀가 던지는 말들은 지나치게 날것이어서 진심인지 아닌지 구분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그래. 이제 놓아. 놓고 가라. 다시 오지 마라. 거기는 술 없잖아. 너 괴롭히는 사람도 없어. 나도 없어. 오지 마라. 다 놓고 가. 여기가 뭐가 좋니. 가 버려. 그리고 오지 마라. 다시 오지 마라."

그녀는 앞뒤 별 다르지 않은 말을 도돌이처럼 반복했다. 같은 말, 그것도 미움의 언어를 중얼거리는 그 모습은, 진짜로 그런 생각을 하는 건지, 자식을 잃는 극심한 고통을 이겨내려 오히려 그러는지 알기 쉽지 않았다.


너 힘들었지. 나도 힘들었어.
엄마와 자식으로 만났지만, 우리는 참 힘든 인연이었지.
자연스럽지는 않지만, 아들인 네가 나보다도 먼저, 이렇게 갈 때가 되었구나.
나는 너를 만나 좋았지만, 너무 힘들었단다. 매일이 고통이었단다.


술꾼 환자는 신음하다가도 누런 눈을 곧게 뜨고 제 어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둘은 마지막까지 서로의 얼굴을 담아두겠다는 눈을 하고 긴 시간 시선을 떼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끝내 손은 잡지 않았다. 천천히 사그라드는 육친의 끈을 보고 있으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본 글은 '월간 시사문단' 2019.3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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