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 통제할 수 없는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일

에픽테토스의 『엥케리디온』에서

by 박웅

우리는 매일 흔들린다.

친구는 내 마음을 몰라주고, 노력의 대가는 다른 이에게 돌아가며, 마주치는 이들은 불친절하다. 우리의 시선은 언제나 내 안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있다.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확실함을 찾으려 하지만, 세상은 예측할 수 없고, 사람은 결코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때마다 마음은 요동치고, 평정은 멀어진다.


에픽테토스는 그런 우리에게 조용히 일러준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에는 조금이라도 현혹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는 인생을 단순하게 나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

자기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 것에 인생을 거는 순간, 인간은 불행해진다고 말한다.


세상은 끊임없이 말한다.

“성공해라, 더 가져라, 남에게 인정받아라.”

그래서 사람들은 건강과 부, 명예와 권력을 행복의 조건처럼 여기고, 타인의 평가를 자신의 가치처럼 여긴다.


그러나 그것들은 우리의 손에 있지 않다.

모두 외부의 일이다. 그것들에 집착하면 외적 질서에 종속되어, 우리는 이성적 주체로서의 자율성을 잃는다.


에픽테토스는 단호히 말한다.

“자유와 행복에 이르고자 하면서 부와 권력도 얻고자 하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

삶의 기준을 외부에 둘 때, 행복은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다.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것들―언제든 변화하고 흔들릴 수 있는 것들―에 매여, 인간은 꼭두각시가 된다. 그때 우리는 내면의 자유를 잃고, 타인의 판단에 휘둘리며 산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괴로움은 어떤 일 자체가 아니라 그 일을 대하는 우리의 생각 때문에 발생한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나의 판단은 내 것이다. 그것만은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판단의 주권을 지키는 사람은 세상에 맞서 싸우지 않는다. 다만 세상에 휘둘리지 않는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지닐 수 있는 가장 깊은 존엄이다.


통제할 수 없는 일을 ‘나쁘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타인과 상황을 탓하게 되고, ‘좋다’고 여기면 그 순간 그것에 매인다. 세상이 변하면 그 ‘좋음’도 함께 무너진다. 그렇게 우리는 실망과 좌절 속에 머물게 된다.


타인의 태도나 어떤 사건은 내게 달린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판단은 내게 달려 있다. 감정은 사건이 아니라, 판단의 결과다.


머릿속의 생각, 마음의 충동, 욕망, 혐오―이것들은 모두 나에게 속한다. 이성적 존재로서 인간은 자신의 판단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내 삶의 주권이며, 진정한 나의 것이다.


진짜 좋은 것은 자신의 힘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들 안에 있다. 그것은 그 누구도, 어떤 일도 빼앗을 수 없다. 인간의 존엄은 판단의 자유에 있다. 자신의 판단이 세계에 휘둘리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롭고 평정해질 수 있다.


행복이란 세상을 바꾸는 힘이 아니라, 세상 앞에서 자신을 다스리는 힘이다. 통제할 수 없는 일에 기대지 않고, 통제할 수 있는 나에게 집중할 때, 우리는 세상의 노예가 아니라 인생의 주인이 된다.


오늘 나는 내 판단의 자유를 지켰는가,

아니면 세상의 좋고 나쁨에 휘둘렸는가.

오늘 나는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았는가,

아니면 세상의 노예로 살았는가.


너는 어떤 삶을 원하는가.

자유로운 삶인가, 종속된 삶인가.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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