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네카의 『인생론』에서
우리는 여유로워질 수 있을까.
하루는 일로 채워지고, 마음은 불안으로 쫓긴다. 타인의 기대와 사회의 요구에 따라 바쁘게 움직이지만, 정작 내가 바라는 삶은 그 어디에도 없다. 가까워지려 애쓸수록 더 멀어진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저당 잡힌 채 살아가지만, 이상하게도 삶은 늘 부족하고 불안하다.
분주히 살아가는 우리에게 세네카는 조용히 말한다.
“우리가 가진 욕망을 저 멀리 떠돌게 하지 말고, 되도록 가까운 곳에 두어라.”
가까운 곳이란 ‘이성의 통제 안’을 뜻한다. 그 말은 곧, 내가 다스릴 수 있는 삶의 범위 안에서만 원하는 법을 배우라는 말이다.
세네카는 욕망과 불안을 거리의 함수로 보았다. 욕망이 멀수록, 마음은 외부에 의존하게 된다.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마음을 걸면, 평정은 무너진다. 시간의 흐름을 견뎌야 하고, 결과를 확신할 수도 없다. 결국 인간은 외부 조건에 묶인 채, 스스로 만든 욕망의 포로가 된다.
그는 말했다.
“욕망의 포로가 되면 인생은 한없이 짧아진다.”
욕망이 인생을 짧게 만드는 이유는, 우리가 늘 다음 순간에 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미래의 부와 명예, 사회적 지위를 위해 현재를 갈아 넣으며 산다. 오늘의 결핍이 내일을 채워줄 거라 믿으며.
세네카는 그런 사람들을 “늘 살아야 할 준비만 하다가 죽는 자들”이라 불렀다.
다가올 미래는 그 누구도 모른다. 내일은 선물이지, 필수가 아니다. 이미 우리 손에 있는 현재를 놓치는 것은 인생 전체를 놓치는 일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인생은 짧을 수밖에 없다. 그들의 현재는 자기 삶의 일부가 아니라, 외부에 휘둘리며 흘러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현재는 가장 짧고, 가장 불안정하며, 가장 쉽게 사라지는 시간이다. 그러나 하루를 온전히 ‘자기 것으로’ 사는 사람에게 인생은 결코 짧지 않다. 인생이란 단지 주어진 시간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살아낸 순간들의 총합이다.
세네카에게 ‘진짜로 산다’는 것은 시간 속에서 자신을 의식하며 존재하는 일이다. 그는 인간이 ‘시간을 통과하는 존재’가 아니라, ‘시간을 경험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순간을 인식할 때, 우리는 단순히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그 자각은 곧 자유이자 행복의 기초다. 왜냐하면 진정한 행복은 무엇을 얻는 감정이 아니라, 지금 존재함을 아는 의식이기 때문이다.
순간을 의식한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르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욕망은 언제나 ‘다음’을 향하지만, 의식은 언제나 ‘지금’을 향한다. 그래서 순간을 사는 사람은, 욕망을 다스리는 사람이다.
세네카는 말한다.
“부유하게 살려면, 욕망을 줄여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소유가 아니라 욕망의 절제다. 행복은 더 많이 갖는 데 있지 않고,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상태에 있다.
진정한 부는 충분하게 가졌다고 느낄 줄 아는 능력에 달려 있다. 지금 내가 충만하다고 느낄 때, 그때 외부에 의존하지 않는 내적 자유가 생긴다.
무엇을 더 얻느냐가 아니라, 이미 가진 것으로 충분하다고 느낄 때, 인간은 완전해진다.
완전한 삶은 멀리 있지 않다.
주어진 시간에 감사하고, 어제를 돌아보며, 오늘을 온전히 살아내고, 자기 자신과 화해해 머무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나를 의식하는, 진정한 나로 온전히 살아가는 일이다.
나는 묻는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면, 후회가 없을 것인가.
내일의 나에게 미뤄둔 삶이 있다면, 그 삶은 오늘의 내가 살아야 할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