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성을 넘어 결단으로 존재를 세우다

키르케고르의 『두려움과 떨림』에서

by 박웅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유를 찾는 존재다.

‘왜’라는 질문은 인간 의식의 가장 근원적인 본능이다. 우리는 이유 없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견디기 어렵기에, 삶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끊임없이 스스로 만들어내려 한다.


그래서 인간은 이 질문 앞에서 종교, 철학, 과학을 세워왔다. 종교는 ‘신의 뜻’을 통해 세계에 의미를 부여했고, 철학은 존재를 설명하는 ‘이성의 질서’를 세우려 했으며, 과학은 ‘원인과 결과’의 연쇄 속에서 존재를 해석했다. 그러나 이 모든 사유의 전통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여전히 묻는다.


“왜 태어났는가. 왜 죽어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키르케고르는 말한다.

“인간에게 영원한 의식이 없다면, 삶이란 절망이다.”


그가 말하는 ‘영원한 의식’이란, 자신의 존재를 일시적 생명으로서가 아니라 영원한 의미의 맥락 속에서 자기 삶을 이해하려는 능력이다. 이 능력을 잃으면 삶은 단순한 생존으로 축소되고 인간은 허무의 심연 속에 머물게 된다. 먹고, 일하고, 반복하는 삶은 이어질 수 있지만, 그 삶은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를 갖지 못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영원한 의식이 언제나 개인의 내면에서 깨어난다는 점이다. 영원의 요구는 사회가 부여하는 규범이나 제도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한 인간의 내면에서,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자신을 요구한다.


하지만 인간은 단지 내면의 욕망과 감정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반드시 공동체 속에서 살아야 하는 사회적 존재이기도 하다. 개인 내부에서 깨어난 영원의 요구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인간은 스스로 보편적 윤리를 만들었다. 도덕, 법, 사회적 규범은 개인의 욕망과 선택이 서로를 파괴하지 않도록 조정하는 장치다. 그 속에서 우리는 ‘모두에게 옳은 것’, ‘설명 가능한 것’,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을 따라 살도록 요구받는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보편적 윤리 속에만 머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각자의 내면에는 오직 자기 자신만이 감당해야 하는, 단 한 번뿐인 절대적 요구가 있다(누구에게도 완전히 설명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외면할 수 없는 어떤 선택, 어떤 부름). 그것은 누구와도 완전히 나눌 수 없고, 어떤 논리로도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


이 지점에서 충돌이 생긴다. 보편적 질서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이 동시에 자신만의 고유한 의미를 좇을 때, 인간은 실존적 불안 속으로 떨어진다. 이성도, 윤리도, 사회도 그 불안을 대신 해결해주지 못한다.


키르케고르는 이 흔들리는 자리야말로 믿음이 태어나는 자리라고 말한다.


믿음은 확신이 아니다. 믿음은 두려움과 떨림 속에서도 자기 내면의 절대적 요구를 끝까지 책임지려는 결단이다. 이 결단은 어떤 윤리도, 어떤 이성의 질서도 대신해 줄 수 없다. 그 순간 인간은 ‘단독자’로 선다. 그 자리에서만 인간은 비로소 자기 자신이 된다.


아브라함이 그랬다. 그는 이성도, 윤리도, 설명도 없이 오직 자기 내면의 절대적 명령 앞에 섰다.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이 옳아서가 아니었다. 그는 이해할 수 없었고, 설명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도망치지 않았다. 그 무게를 끝까지 짊어졌다.


키르케고르는 말한다.

“나를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나에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일이다.”


사건은 나를 규정하지 않는다. 사건은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기회, 역경, 상처, 기쁨, 실패―이 모든 것은 조건일 뿐 그것이 곧 ‘나’는 아니다.


나를 만드는 것은 그 사건 앞에서 어떤 결단을 내렸는가, 어떤 행동을 선택했는가이다. 위대함은 운명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도 끝까지 책임지는 행위에서 생겨난다.


믿음의 본질은 초월적 존재에 대한 복종이 아니다. 그것은 나에게 주어진 실존의 무게를 끝까지 지려는 결단이다. 두려움과 떨림 앞에서의 그 결단이 삶의 깊이를 만든다.


삶의 의미는 타인이 알려줄 수 없다. 그 의미는 단독자로 서려는 결단 속에서만 열린다. 그래서 삶을 묻는 모든 물음은 결국 이 하나로 모인다.


나는 나 자신으로 서고 있는가.


이 질문이야말로 두려움과 떨림의 자리에서 인간을 존재로 세우는 물음이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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