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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mi Lee Oct 19. 2018

어떤 부모도 흙수저를 물려주지 않았다

  나는 금수저, 은수저도 아니지만 결코 흙수저는 아니다. 일 억만금 재산보다 더 귀한 것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아빠의 피 끓는 유전자이다. 어른들이 배우자를 볼 때, 그의 집안과 부모님이 화목한지 어쩐 지를 알아볼 때, 어릴 땐 고리타분하다고만 생각했으나 커보니 알겠다. 주위 친구들도 어쩜 그리 하나같이 그들의 부모를 닮아가는지. 정말이지 피는 속일 수 없다.     


  사람은 저마다의 특징이 있듯이 나도 유별난 점이 하나 있는데, 지치지 않는 체력과 실행력이 그것이다. 친구들이 네 일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몸살이 날 것 같다고 할 정도이니 말이다. 무술용품으로 시작한 사업은, 손을 안 대어본 분야가 없을 정도로 다양한 제품을 유통하고 제작했고, 내가 손을 댈 수 있는 거의 모든 온라인 마켓에다 상품을 홍보했으며, 그로 인해 온라인 창업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상품을 판매해 본 사이트가 워낙 많다 보니 도맡아 하는 과목도 여러 가지가 되었다. 취미가 돈 벌기라 할 만큼 20대 중반 이후로는 일하는 데만 매진했는데 취미로 했던 에어비앤비 운영, 스톡 사진작가, 블로그 운영 등으로 쏠쏠한 수익을 얻었으며 이 이야기를 책으로 묶어 <서른 살, 나에게도 1억이 모였다>를 펴내어 또 다른 수익구조를 만들었다. 오늘도 토요일 종일 강의를 마치고 아빠 인생에 관한 책을 쓰겠다고 카페에서 자판을 붙잡고 있다. 내가 봐도 숨차다. 그런데 이런 습관은 어릴 때부터 배어 있었고 이런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내 눈에 비친 아빠는 지금의 나보다 더욱 열심히 사셨기 때문이다.     


  아빠의 월급이 적지도 않았고, 이름 대면 알만한 대기업에 다니면서도 아빠는 주말이면 늘 새로운 일을 찾아다니셨다. 아직도 잊을 수가 없는 생생한 기억의 한 장면. 내가 다섯 살 겨울, 졸업 시즌이었는데 아빠는 꽃시장에서 꽃을 도매로 해다가 졸업장에서 판매를 하셨다. 아빠와 친구 부부가 꽃을 판매하는 틈을 타 다섯 살 내가 고사리 손으로 장미꽃 한 다발을 들고 “오천 원, 오천 원”을 부르자 안경 낀 아저씨 한 명이 나에게 꽃을 사는 것이 아닌가. 쌍쌍바가 100원 하던 시절이었다. 어린 나는 오천 원이라는 거금을 손에 쥔 적이 없었기 때문에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내가 아빠를 도왔다는 기쁨과 내 손으로 무언가를 팔았다는 기쁨에 오천 원을 부르짖는 내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엄마의 저지에 두 번째 꽃다발을 판매하지는 못했지만 이때 이후로 나는 친구들 서넛이 모이면 온갖 집안의 잡동사니를 모아놓고 시장놀이를 하는데 푹 빠졌다. 내가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아빠는 친구와 동업으로 일본식 꼬치집을 여셨다. 그리고 친구와 격주로 토요일, 일요일을 번갈아가며 쉬었는데, 그 쉬는 날마저 가만있질 못하고 쓰리잡을 뛰는 사람이 우리 아빠였다.

 또 하나의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학교 갔다 돌아왔는데 집에 웬 스티커가 제작이 되어 온 것 아닌가. 전봇대 광고용으로 붙이는 그 네모반듯한 스티커. 거기에 우리 집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내가 아직 그 옛집의 전화번호를 잊지 못하는 것은 분명 그 스티커의 잔상 때문일 것이다.       

       

열쇠 시공      

0551-87-3686        

  


  네모난 칸에 가지런히 우리 집 전화번호가 적힌 스티커 1000장이 인쇄되어 왔다니, 지금도 스티커를 사다 모으는 스티커 마니아인 내가 안방 바닥에 늘어져있던 이 스티커를 보고 여덟 살 인생, 얼마나 흥분을 했던지 모른다. 새로운 아파트들이 들어서며 안전고리, 보조 열쇠가 갓 유행을 하던 시절이었다. 우리 가족은 새로 짓는 아파트 주변의 전봇대를 찾아 광고 스티커를 붙였고, 평일에 엄마가 전화를 받아 예약을 해 놓으면, 아빠는 쉬는 주말을 이용해 드릴을 들고 가 열쇠를 시공했다. 서른 살 중반의 부모님이 함께 일하는 곁에서, 아기였던 동생과 나는 매주 만나는 새 아파트의 새 놀이터를 접수하느라 마냥 신이 났다.     

  그 후로도 아빠는 끊임없이 엄마와 함께 이런저런 사업을 벌이셨고 부모님의 땀과 노동을 먹고 동생과 나는  커갔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우리 집은 또 막 유행을 타던 노래방을 시작했다. 밤늦게까지 영업을 해야 했던지라 늘 피곤에 절어 있던 아빠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얼른 커서 나도 한몫하고 싶어 하던 마음이 간절했는데, 내가 중학교 3학년이 되던 시절, 아빠는 또 한 번 슈퍼를 운영하여 다들 픽픽 쓰러져가던 IMF를 극복했고, 이미 키가 성인만큼 자랐던 나는 이때 슈퍼 계산대를 꿰차고 앉아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오래도록 동네에서 슈퍼집 아가씨였다. 그래서 지금도 비흡연자이긴 하나 담배의 종류와 가격, 타르 함량 정도는 줄줄 외고 있다. 동네 슈퍼를 어떻게든 키워 보려고 나는 과자를 묶음 할인해서 팔기도 하고, 화이트데이가 아직 어른들에게 생소하던 시절, 사탕을 여러 박스 포장해놓아 담배 사가던 아저씨 고객들을 사로잡았으며 부모님이 시키지도 않은 음료수 가격표를 프린터로 뽑아서 정리하기 등의 일을 도맡아 했다. 슈퍼가 그리 힘든 장사인 줄 처음 알았다. 동네의 모든 좋은 사람 나쁜 사람들이 다 한 번씩 거쳐 가는 곳이 동네슈퍼였던 것이다. 나는 때로는 친절하다가도 때로는 손님들과 맞짱 뜨고 싸우면서 장사를 배워갔다. 사실 슈퍼 계산대에 앉아 있으며 거의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고객 유형을 경험했기 때문에, 내 장사를 할 때는 평정심을 갖고 아무리 고객님이 이상 현상(!)을 보여도 꾹 참고 친절할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큰 내가 장사를 안 하면 이상할 것이다. 이 시절 아빠는 아침 7시에 출근하고 저녁 7시에 퇴근해서 슈퍼를 보다 저녁 11시에 집에 들어가 잠을 자고 다음 날 다시 출근하는 철인의 생활을 해 나가셨다. 그러며 딸 둘을 유학에 대학원까지 보내며, 알바 한 번 시키지 않고 공부에만 집중하라 할 수 있었고, 그래서 지금은 연금 외에도 월세를 받으며 노후 걱정을 더셨으니 부모님의 인생을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아빠의 인생을 모두 봐 온 딸이 어찌 아빠에게 효도하고 싶은 마음이 깊이 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피곤하다고 축 처져있거나 티브이나 보며 시간을 죽이는 아빠를 거의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원래 사람이란 주말에도 안 쉬는 것이 정상인 줄 알았다. 그리고 지금 마음 편히 몸 편히 큰 걱정 없이 사는 아빠를 보며 나도 열심히 일 해 놓은 다음은 편하게 사는 날이 올 줄을 믿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젊은 날 그리 불같이 일한 아빠의 모습이 멋져 보여서 자꾸만 따라 하고 싶은 것 아닌가!     


  아빠가 나에게 준 최고의 선물은 이 열심히 사는 유전자. 몸소 보여준 성실함이다. 아무리 아빠가 스트레스받은 날  술 한잔 마시고 도깨비 흉내를 낸 적 있었다 해도 그 모든 것이 다 이유가 있었음을 딸은 보고 느낀다. 아빠는 긴가민가 하며 이루셨던 것을, 나는 아빠를 보며 강한 확신을 가지고 노력한다. 아빠가 내 삶의 본보기요, 내 모습의 근본이라는 사실은 어떤 것과 바꿀 수 없는 금송아지였다. 금수저를 쥐어주는 대신 내 몸뚱이를 황금알을 낳는 오리로 만들어 주셨으니 어찌 귀하지 않겠는가.     

  맞다. 성공은 운이 붙어 주어야 한다. 번번이 쉬지 않고 아빠는 세상에 부딪혔지만 세상은 아빠에게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아빠의 노력만 보면 준 재벌쯤은 되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엄마는 늘 아빠, 엄마가 배운 게 많이 없어서 항상 힘든 일로 돈을 버니, 너희들은 많이 배워서 조금 더 세상을 편히 살라고 하셨다.      

내가 지금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것은 학교를 많이 다녀서가 아니다. 순전히 열심히 살았던 부모님의 모습을 보아서 그런 것이다. 사람들이 나에게 일을 왜 그리 많이 하냐고, 힘들지 않냐고, 쉬었다 하라고 말한다. 늘 말하지만 힘든 걸 꾹 참고 한 것이 아니라 힘든 줄 몰랐기 때문에 그랬다. 어릴 적부터 이렇게 열심히 사는 아빠, 엄마를 보아서, 부모님의 그 유전자를 물려받아서 힘든 줄을 모르고 일 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게 없다고 가끔 친구들과 비교하던 아빠는, 여전히 나에게 물려준 게 없다고 말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나야말로 금수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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