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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mi Lee Nov 09. 2018

나는 언제 어른을 결심했나

 이제 한 달 후면 아빠가 30년 넘게 다녔던 회사에서 정년퇴직을 한다. 가을이면 가을을 타서, 괜스레 힘이 빠지고 우울감까지 오는 아빠는, 올해 유독 싱숭생숭하셨을 거다. 몇 년 다닌 학교를 졸업하는 것도 아쉬운데. 10년만 같은 일을 하다 그만둬도 섭섭할 텐데. 평생 몸 담았던 회사의 사원증을 반납하고 나오는 그 마지막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울까 상상도 되지 않는다. 내 나이만큼, 내 인생 전체만큼 한 회사에 몸담았던 아빠의 회사원 인생이 이제 막을 내리려 한다. 나는 아빠가 행여나 힘 빠져할까 봐 중간중간 추임새를 넣는 것을 잊지 않는다.     


 “와, 아빠는 좋겠다. 은퇴하면 맨날 놀아서.”

 “아빠, 이제 그동안 못 했던 것, 하고 싶은 것 원 없이 다 해보세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한 마디도 잊지 않는다.     


 “엄마 몰래 용돈 필요하면 전화하세요.”     


 그리고 아빠의 은퇴 날이 점점 다가오자 나도 은근히 압박을 받는 모양이다. 요즘 들어 아빠가 은퇴를 한 후에 국민연금이 나올 때까지 몇 년이 남았으니, 그동안은 내가 집에다 한 달에 얼마라도 용돈을 주기적으로 드리는 게 나을까, 아니면 경조사 때, 명절, 생신 때 목돈을 드리는 게 나을까 종종 고민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젊은 우리도 직장을 그만두면 얼마 지나지 않아 허리띠를 졸라매게 되는데. 젊은 아이들보다 연봉도 많이 받던 아빠가 일순간 급여가 끊기면 얼마나 허전할 것인가. 아무리 노후 대비를 했다고 하지만, 젊은 애들이야 재취업 문이라도 두드려 보기라도 하겠지... 요즘 같은 사상 최악의 취업률에 청년 취업도 그리 문제가 많다는데, 아빠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이란 또한 얼마나 제한적인 것인가. 용돈벌이 하러 어디 나가신다고 하기 전에 내가 선수를 쳐야겠다. 아빠가 일을 그만뒀다고 해서 아빠, 엄마가 어디 나가서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꾹 참아가며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한다면 그건 정말 싫다. 괜히 어디서 일 해보겠다고 나갔다가 부모님보다 더 젊은 사람에게 무시받거나 무례한 일을 당하는 것은 생각만 해도 살 떨린다. 내가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 내가 더 잘해야겠다.     


 아빠가 일선에서 은퇴를 하게 되면, 이제 우리 집안의 가장은 나다. 집안에 무슨 일이 생기면 집안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 바로 내가 된다. 장남 같은 말이지만, 아들이 없는 우리 집에서는 내가 장남이다.

 철이 들고 내가 어른이 되었구나 하고 느끼는 때가 있을 것이다. 경제적 여유가 생겨서 나를 책임질 때 어른이 되는 걸 느낀다는 사람도 있고, 어떤 이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보니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나에게 어른은 올해인가 보다. 이제 집안의 기둥이었던 아빠의 바통이 오롯이 나에게 넘어오는 것이다. 아빠는 장남으로 여태껏 할머니를 부양하며 또한 우리 식구도 먹여 살렸다. 정작 부모님은 나에게 의지를 하거나 바라는 것 하나도 없는데 나는 혼자서 상상의 기와집을 몇 채나 지었다 부쉈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어린 우리를 키우면서, 밖에 나가서 기죽지 말라고 아빠 엄마는 얼마나 애쓰며 부족한 것 없이 메워주셨던가. 이제 우리 차례다. 남과 비교해서 스스로 불행하지 말자고 하지만, 그래도 친구 만나러 나갔던 부모님이 친구 아들이 효도하는 게 조금이라도 부럽다고 느낀다면 나는 속상해서 발 뻗고 못 잘 것 같다. 효도는 경쟁적으로 해야 한다. 이에 비하면 뭐 하나 갖고 싶어 하는 나의 작은 욕망은 얼마나 하찮은가.     


 휴일 없고 휴가 없던 아빠의 페이스에 맞추느라 우리 가족은 휴가를 제대로 가 본 적이 거의 없다. 아빠가 은퇴를 하면 모처럼 온 가족이 함께 해외여행을 한 번 하자고 기획했다. 그것도 내가! 아빠 은퇴 선물로 여행 경비를 모두 내가 내겠다고 마음까지 통 크게 먹었다. 어느 나라가 좋겠냐며 우리가 언제 다시 한번 이렇게 네 가족이 놀러 갈지 모르니 하와이든 뉴질랜드든 가장 가고 싶었던 곳에 가자고 했다. 여행 일정에 신이 난 것은 엄마와 동생 그리고 나. 집안의 세 여자들 뿐. 아빠는 잠자코 들으시더니 농담처럼 ‘여행은 너희 셋이 가고 나는 용돈으로 주면 안 되겠냐’ 하셨다. 나는 아빠가 우스갯소리를 하는 줄 알고 한바탕 웃었다. 후에 남자 선배들과 모인 자리에서 웃긴 이야기라며 아빠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런데 남자들이 정색을 하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 아빠 말씀 들어드려. 평생 가족을 위해서 일했는데 또 가족여행을 가자고 하다니. 남자들한테 가족여행은 즐겁지만 힘든 일이다. 딸 둘밖에 없는데 친구들처럼 술을 한 잔 할 수 있냐, 재밌는 이야깃거리나 있냐. 우리도 사실 가족여행은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가는 거야.”     


 아니, 그게 진심이란 말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렇긴 하다. 아빠는 친구들과의 모임이 훨씬 즐거워 보였고, 다 큰 딸들이 사위 하나 데려오지 않아서 여자 셋 대화에 가끔 끼지 못할 때도 있으며, 본래 여행을 좋아하지 않아서 어딜 돌아다니는 걸 즐기는 스타일도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 아빠에게 용돈이나 챙겨 드리자. 자식이 내 맘 같지 않은 것처럼, 부모님도 내 맘 같지 않을 수 있지 않겠는가. 나도 어릴 적에 부모님이 가족끼리 놀러 가자고 하시면,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고 친구들과 놀러 가 버린 적이 있지 않던가.     


 아빠는 그간 못했던 낚시나 실컷 하고 싶다고 통영 할머니 댁으로 내려가고 싶다고 한다. 친구들이랑 낚시할 때 초라해지지 않게 장비도 제일 좋은 걸로 사 드리고, 옷도 제일 좋은 걸로 해 드려야겠다. 내가 직접 가서 낚싯대 던지며 함께 해 드릴 수는 없으니 이렇게 서포트라도 할 수밖에. 가만, 아빠만 챙겨드릴 수 없잖아. 아빠 은퇴한다고 내가 요즘 너무 아빠 아빠 거리는 것 같아 엄마가 서운해하실 것 같다. 그동안 아빠의 야근과 특근에 함께 밤잠 못 자고 야식 챙기랴 보양식 챙기랴 엄마의 공도 얼마나 큰데. 준비했던 여행 자금을 반으로 똑 나눠서 아빠 엄마한테 반반씩 골고루 드려야 할까? 자식이 힘들게 번 돈이라고 아껴 쓰고 못 쓰지 않게 돈 버는 게 힘들다고 내색도 하지 말아야겠다. 공으로 들어온 돈이 많다고 허풍도 좀 떨까 보다.

 아이고, 어릴 때가 좋았지. 아무래도 어른이 된다는 건 참 힘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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