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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mi Lee Nov 23. 2018

부모님에게 다가가는 법


 권위적이고 수직적인 한국 문화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많지만 모든 것에는 절대적인 좋음도, 절대적인 나쁨도 없이 각각의 장단점이 있는 법. 집안에서의 권위적인 가장이 되지 말라는 것도 아빠에게 하는 말이지, 그렇다고 우리가 아빠의 권위를 무시해도 된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한국문화가 지향하는 이 ‘서열’ 개념의 바탕은 바로 ‘공경’과 ‘존중’이었다. 위에서 윽박지르고 강요해서 바라는 공경이 아닌 아래서 우러러나는 윗사람에 대한 공경. 이렇게 만들어진 서열은 동방의 예의지국이라는 국가적인 이미지 메이킹을 확실히 할 만큼 외국사람의 눈에도 아름다워 보였다. 직장에서 나의 상사가 본인의 권위를 세우려고 노력하는 것은 아니꼬워 보이고 나를 힘들게 할 수 있을 테지만, 새로 온 신참이, 나에게 싹싹하게 굴며 선배 대접을 확실하게 해 준다면 세상에 이만큼 예쁘고 기특한 후배도 없을 것이다. 요즘은 수평적인 문화가 보편적이니, 선배님이나 나나 똑같은 인간이라 여기는 후배의 행동이 살짝 불편한 적 없었던가? 누구에게든 존중받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외국인도 마찬가지다. 다들 “스티븐” “마이클” 부를 때 나 혼자 오빠라고 불러보라. 껌뻑 죽는다. 그만큼 사람들은 예의를 좋아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 집안의 아버지다. 밑에서 ‘까야’함이 당연한 것이다.     


 자식의 10대에서 20대까지 아빠와 어색한 집안이 많을 것이다. 아빠도 뭐가 그리 불편했던지 나에게 늘 쌀쌀맞았고 우리의 대화는 5분 이상 넘어가질 않았다. 아빠는 나의 유학비를 대느라 회사와 가게 투잡을 이어가느라 늘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던 시기였고, 알바 한 번 할 일 없이 매 학기 학비와 용돈을 꼬박꼬박 타 쓸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아빠의 나에 대한 사랑 표현임은 생각도 못했던 때였다. 게다가 우리 아빠는 경상도 아빠다. 요즘 나오는 친구 같은 아빠, 탈권위적인 아빠와는 사뭇 다르다. 아빠들이 많이 오픈되었다고 하지만 친구들에게 들어보면 대부분의 아빠는 사실 경상도 분이 아니신데도 거의 경상도 스타일을 꽤 오랫동안 고수하고 계신 것 같다. 특히 그 윗세대에게 깍듯한 예를 올렸던 우리 아버지 세대라면 더욱! 그래서 아빠는 더욱 자식들이 어렵다.     


 아빠와 친해지기 위해 의도했던 행동은 아니나, 나는 아빠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이 없었기 때문에, 아빠의 취미에 동승하기 시작했다. 낚시도 따라가고 경륜장도 따라가며 아빠와의 시간을 부러 만들었다. 그전의 나는 선상낚시를 하면 재미없다고 배 안에 앉아 있거나 어딜 가자고 하면 선뜻 나서지 않는 딸이었다. 20대 중반이 되고서부터 갑자기 아빠를 따라다니기 시작하자 처음에는 아빠도 조금 당황하셨다. 어느 날 갑자기 아빠와 친해져야지 하고, 아빠와 여행을 계획한다거나 식사를 하러 간다거나 얼마나 어색하고 뜬금없는가. 여행 내내 식사 내내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고 정말 많은 말을 만들어야 할 텐데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하지만 경륜장은 달랐다. 아빠의 특기이기 때문에 어떻게 경륜 표를 작성하는지, 선수들에게 어떤 특징이 있는지, 3연승은 뭔지 2단승은 뭔지 배워야 했다. 얼마나 경륜장을 자주 가셨으면 아빠는 거의 박사 수준이었다. 매우 오랜만에 아빠가 나를 가르치셨다. 일만 하던 아빠가 경기에 집중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모습을 보는 것이 새로웠고, 그렇게 아빠처럼 경륜장에 모여 욕을 하고 함성을 지르는 중년 남성들의 미간의 주름은, 모두 아빠의 그것과 무척 닮아 있었다. 그런데 도박판에는 초짜가 딴다고, 경기를 시작한 지 세 판 만에 내가 5 배승의 당첨에 걸린 것이다. 나는 기뻐서 소리를 질렀고 아빠는 웃겨서 쓰러지셨다. 내가 걸었던 금액은 단돈 200원, 당첨액은 고작 1,000원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빠가 아무리 채근해도 나는 1000원 이상의 판돈을 걸지 않았고 아빠는 이렇게 나를 알아가셨다. 밖에 내놔도, 사업을 한다고 나서도 크게 위험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 헛된 돈을 좇지 않을 것이라는 것,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딸에 대한 믿음이 이 경륜장에서 생겼다고 한다.     


 어릴 적을 생각해보면 아빠는 무수히 많은 시간을 나에게 맞춰주려고 쓰셨다. 주말을 온전히 바쳐 놀이공원을 가서는 엄마 아빠 교대로 다른 놀이기구에 줄을 서주며, 짧은 시간 안에 나와 동생이 최대한 많은 놀이기구를 탈 수 있도록 해주었고, 내 피아노 연주회가 있던 날 하루 종일 뒤치다꺼리하며 공연히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내가 아픈 날은 물론 아빠의 선약을 취소하고 응급실을 뛰어다니셨던 기억이 있지 않은가. 직장을 다녀 보니 주말을 누군가를 위해 바친다는 것이 새삼 얼마나 큰 일 인지 알겠다. 그랬던 아빠의 스케줄을 이제는 우리가 좀 맞춰주면 어떨까. 아빠가 좋아하는 일에 동참하고 가서 구경하고 사진 찍어주고 해 보자. 자식이 셀카를 들지 않으면 사진이라도 자주 찍으시던가. 자식 중심으로만 살았던 아빠를 위해 내 주말을 하루 오롯이 바쳐 본다면 어떨까.     


 한 번은 입장을 바꿔서 생각을 해보면 좋겠다. 아빠 생각 좀 하자. 사회생활을 하며 위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크던가, 밑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크던가. 상사나 선배가 못살게 굴면 무척 속상하다. 당연하다. 그런데 아래에서 후배나 후임이 나에게 따박따박 말대꾸하고 자기가 잘났다며 옳은 말 딱딱 내뱉고 선배는 안중에도 없어한다면? 미치고 환장한다는 말 정도로는 표현이 안된다. 나라는 자식이 아무리 속 뒤집어지게 해도 눈 감아 준 것이 아빠다.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실수로 아빠에게 서운함을 안겨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집안이 화목하려면 가장이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웃으면 된다고 한다. 그런데 아빠가 이상스러울치만큼 많이 웃는데도 가족들의 반응이 싸늘하다면? 상처 받은 아빠는 두 번 그 일 못한다. 그 아빠를 웃겨줄 사람은 우리다. 이상스러울치만큼 아빠에게 상냥해져 보고 곱살스러워져 보자. 사실 아빠와의 관계를 회복하기는 쉽다. 다들 표현의 차이일 뿐, 알고 보면 아빠는 자식에게 세상에서 가장 쉬운 남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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