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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mi Lee Dec 21. 2018

부모님의 장례식, 어떻게 치를 건가요?

 아빠가 자꾸만 바다로 가려고 한다. 통영 사람이라 바닷가에서 나고 자란 아빠가 항상 바다를 바라보고 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퇴직해서 통영으로 돌아가 살 일만 기다리고 있다. 작은 섬에 들어가 방을 한 칸 얻어서 만날 낚시만 하고 살고 싶다고 한다. 큰 수익을 바라지 않고 잡은 고기로 회를 떠 식당을 하고 싶다고 하기도 한다. 이것은 작은아버지들 집에서도 공통적으로 나오는 레퍼토리다. 사촌동생들과 나는 아빠 삼 형제가 ‘삼돌이 식당’을 운영해 보면 어떻겠냐며 키득거렸다. 우리가 인터넷에 후기를 아주 알차게 써서 여행자들 사이에 맛집으로 등극시켜 주겠다는 장담도 하면서.


 그동안 가고 싶은 바다도 자주 못 나가고 도시에서 40년 넘게 참고 살아온 아빠는 꽤 답답했을 것이다. 아빠가 바다에 나가서 낚시를 하는 것은 보통의 둑방 낚시들과는 스케일이 다르다. 배낚시 한 번 나가면 갈치 철에는 갈치가, 도다리 철에는 도다리가, 한 마리도 아니고, 낚싯대 하나에 7~8 마리씩 주렁주렁 달려 올라온다. 그 짜릿함은 해 본 사람만이 안다. 크기도 얼마나 큰 지 모른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웬만한 크기의 월척 인증사진 따위는 별로 놀랍지도 않다. 낚시가 잘 되는 날에는 60L 아이스박스 한 통이 가득 채워져 오는데, 할머니 댁 외할머니댁, 사촌네, 친구네, 동네 사람들까지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나눠주기 바쁘다. 내가 보기에 아빠는 고기를 낚는 재미보다 나누어 주는 재미로 낚시를 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으면 남들 큰 거 다 나누어 주고 손바닥 만한 작은 물고기만 우리 집 냉장고에 채워둘 리가 없다. 그래서 늘 엄마의 볼멘소리를 들으면서도 지칠 줄 모르고 낚시를 끊지 못하신다. 아빠가 얼마나 열정적이냐 하면 토요일까지 회사에서 근무를 하고 그 날 저녁에 바다에 나가서 일요일 아침까지 밤을 새우고 낚시를 한다. 일요일 낮에 돌아와 한 숨 눈을 붙이고 다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잔업에 야근을 밥먹듯이 한다. 그리고 또 토요일이 돌아오면 출정을 하신다. 딸들도 울고 갈 아빠의 체력은 예순이 된 지금도 건재하다. 나도 아빠가 낚시를 할 때만큼은 가장 생기 있어 보여서 좋다. 하지만 사실 우리 가족들은 아빠가 바다를 나갈 때마다 불안해한다. 엄마와 딸들 뿐만 아니라 할머니 댁 외가댁까지, 아빠가 바닷가에 낚시하러 갔다는 소식을 들으면 걱정부터 한다. 외할머니는 ‘통영 앞바다에 낚싯배가 뒤집혔다’와 같은 뉴스가 나오면 어김없이 이서방 지금 어디에 있냐고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식구들이 이렇게 유난스러운 이유는 바로, 할아버지가 바다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장남이었던 아빠가 할아버지의 유해를 수습하러 갔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어촌마을의 어부였다. 그날도 고기를 잡으러 고깃배를 탔는데 뱃머리를 돌리는 순간 할아버지가 사라졌다고 한다. 사라진 할아버지는 그 후로 며칠간 소식이 없었다. 한참 후에야 수색대가 발견한 흔적에, 할아버지의 장화 등만 발견되었다고 한다. 서른 살이 갓 넘었던 아빠가 그것을 확인했다.  할아버지의 장례식은 집에서 치러졌다. 낡았던 옛집 마루에 할아버지의 영정사진과 함께 상이 차려졌고 정통의 노란 상주복을 입고 기다란 모자를 쓴 아빠가 손님을 맞았다. 그때가 내가 6살이었는데 처음으로 아빠가 우는 모습을 보았다. 한 번도 운 적이 없는 아빠가 이렇게 사람 많은 데서 울다니. 나는 너무 부끄러워서 저 멀리 장독 뒤로 숨어버렸다. 나는 장례식이 뭔지도 모르고, 하늘나라에 가는 건 좋은 것 아니냐며 세상 발랄하게 할머니 집 잔디마당을 뛰어다녔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 절을 하라고 하는데 그게 싫어서 몸을 베베 꼬았던 기억도 난다. 생전 나를 너무 예뻐해, 할아버지 손을 잡고 걸어 다닌 기억이 없을 정도로 손주를 업고만 다녔던 할아버지였는데...... 할아버지의 장례식, 그 기억이 생생한 나는 특히 아빠의 출정 때마다 구명조끼 등 안전용품을 사다 바치며 조심하라고 잔소리를 보태본다. 나 역시 언제 부모님 말씀 듣느라 내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소신을 굽힌 적이 있던가. 좋아하는 것조차 못하고 살면 아빠 인생에 무슨 낙이 있을까 싶어 낚싯대나 아이스박스를 사드리는 데에 일조하며 마음속으로 기도만 한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다녀오시라고. 그리고 아빠가 밤샘 낚시를 다녀온 다음 날 엄마에게 문자를 보내 아빠의 무사귀환 소식을 들어야 마음의 평화가 온다.


 우리는 서로 헤어지게 된다. 어떤 만남도 헤어짐을 전제로 하고 만나는 것을 안다. 부모님과 나는 서로 어떤 모습으로 헤어지게 될까. ‘부모님이 안 계시다면?’이라는 전제를 어릴 적부터 한두 번 해 본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쉽게 와 닿지는 않는다. 다만 아직 준비되지 않았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기에 그 헤어짐이 되도록이면 아주 먼 미래이기를 바랄 뿐이다.


 다른 사람의 결혼식을 갈 때, ‘나의 결혼식도 저랬으면 좋겠다’, 하는 것처럼 누군가의 장례식을 가면 이제 ‘아 언젠가는 나도 부모님의 장례식을 치러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내 차례가 아니기에 다행인 듯한 이기적인 마음이 드는 한 편, 남 일 같지 않아 보이기 때문에 더욱 가슴 아프다. 아마 부모님과 이별을 해야 할 즈음이 된다면 나는 더 단단해지고 더 안정적인 모습이 되어 있겠지. 그러면 내가 가 본 장례식 중 가장 경건하고 품위 있는 모습으로 보내 드려야지. 여기까지 생각이 들다가 섬뜩해진다. 나 뭐하는 거지. 이런 생각을 왜 하지. 이런 불경한 생각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지. 그리고 그럴 여력이 있으면 지금 잘해야지. 아,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결론이 나왔다. 결론은 그래, 지금 잘하면 되는 거다. 서너 살짜리 아이가 아무리 엄마를 힘들게 해도 ‘이 시절도 한 때인데’ 라며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부모님의 장례식을 치르게 될 날이 언젠가는 올 테니, 부모님이 곁에 있어주는 것도 오래지 않을 테니, 부모님의 건재한 모습을 보는 것도 축복이니 말이다.

 

 낚시 용품은 계속해서 업그레이드가 되어야 하나 보다. 아빠가 가지고 싶은 낚싯대가 자꾸 새로 생긴다. 대부분은 오프라인에서 살 수도 없어서 해외 직구를 해야 하는 제품이다. 내가 누구던가. 전 세계 글로벌 사이트를 다 뒤져서 최저가에 아빠의 손에 낚싯대를 안겨준다. 그러면 아빠는 친구들에게 딸내미가 일본에서 공수를 해 준거라며 자랑하느라 한 층 더 흥을 내며 낚시를 하신다. 낚싯대가 집에 도착하는 날은 엄마와 실랑이는 각오를 해야 한다. 문자가 온다.

 '네가 또 아빠 낚싯대 사줬니. 내 카드로 긁은 거니 네가 사 드린 거니. 낚싯대가 한두 개도 아닌데 사 달라는 대로 어떻게 다 사주니......' 

 (엄마는 원피스가 이미 수십 벌인데 왜 또 사는 걸까)

  장비가 좋아서 아빠가 바다를 더 자주 나간다는 것이 엄마가 반대하는 이유다. 그렇지만 장비가 나쁘다고 갈 걸 안 가겠는가. 옆 사람보다 낚싯대가 안 좋아서 덜 잡혔다는 소리를 듣는 것보다 낫다. 아빠가 기력이 있을 때 낚시를 가는 것이지, 아직 이렇게 밤샘 낚시를 한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마치 방황하던 나의 십 대를 아빠가 묵묵히 견디던 딱 그 모양으로 나는 아빠의 나들이를 마음 졸이며 지켜볼 뿐이다.






*12주 연재 동안, 좋아요, 댓글 남겨 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에 답글을 적을까. 아 그런데 너무 부끄럽고... 일일이 피드백을 못 드렸습니다. 글을 적으며 더욱 부모님을 생각하게 되고 더욱 효도해야지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저도 이 글을 쓰면서, 부모님과 통화하는 일이 잦아졌어요. 멀리 떨어져 살아서 아빠, 엄마가 항상 너무 보고 싶습니다.

연재하는 동안 한 해가 저물었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글을 쓰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자꾸 생기더라구요.

효도하며 살 수 있을까, 못다 한 이야기,

효도하며 살 수 있을까 2 매거진에 부지런히 연재해 보겠습니다 :)

https://brunch.co.kr/magazine/etebookstory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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