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 Kim Aug 24. 2020

구독자 1명이 늘었다는 것은

내게 관심을 준다면 난 진흙탕 안에서도 숨 쉴 수 있을 거야

제게 생긴 호기심을 환영합니다.


얼마 전 구독자 1명이 늘었다. 이곳에 마지막 글이 올라온 것은 2019년 1월이니 공백기만 거의 20개월이다. 내가 이 공간을 떠났다 해도 납득 가능한 시간이다. 아마 지금 이곳은, 인기척이 전혀 없는 고요한 집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가구도 있고 정원에 식물도 있는데 주인은 보이지 않고 밤에 불도 안 들어오는 그런 곳.


그런데 누군가는 이곳을 마음에 들어했다. 남들은 다 휙- 지나가건만, 어떤 사람은 멈춰 서서 내 공간에 호기심을 보인 것이다.


여기서 뭘, 하려나 하는 관심.




기대감은 애정이지


새로운 구독자는 글 몇 개를 ‘좋아요'하고는 내 브런치를 구독했다. 2년 내내 멈춰있는 플랫폼을 구독한다는 것은,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는 괜찮은 것 같고, 이다음도 궁금하다는 기대감.


왜냐면 나도 그런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진짜 다음 편을 기다리는 어떤 작가의 글이 있는데, 그 사람은 1년 넘게 'NEW'가 없다......(절망). 생각날 때마다 사이트에 들려서 오늘은 나왔나? 확인하고, 이미 읽은 이야기를 또 읽고, 도대체 언제 오려나, 하다가 이제는 살아만 있다면 다음 편은 올려주시겠지.... 하는 마음이다.그분이 언제 또 새 글이 올라올지 모르겠지만, 난 당연히 그 글을 좋아하라라는 확신이 있다. 지금까지 글들이 내 취향이었기 때문이다. 영원히 썸띵 뉴가 없다 해도 그건 그거대로 새드엔딩, 괜찮아 받아들일 수 있다.


기다림과 기대감.

말해 뭐해, 이건 애정이지.


기다림, 말해 뭐해 애정이지.


누군가 내 세계에 관심을 보이네


글 쓰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싫어할 거라는 선입견이 있던데, 이유가 뭘까? 내가 아는 작가들도 다 말이 너무너무 많다. 그들 사이에서 말하는 타이밍 잡는 건 '체스 메이트'와 같다. 자, 이번엔 내 차례고 난 이 기회를 소홀히 보내지 않겠다, 다들 밤샐 준비 해라, 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내 기준에 작가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그걸로 글까지 쓰는 사람들이다.


나 역시 기본적으로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서로 생각을 교류하는 게 너무 재밌고, 신기하고, 종종 감동적이다. 하루에 16시간 내내 (기쁘게) 말할 수도 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내용을 레벨 업 시켜서 새롭게 말할 수 있다. 잘 들어주는 친구들 정말 너무 좋고, 피드백을 줘서 핑퐁이 되면 더 좋다. 이렇게 말하다가 계속 알맹이가 남으면 그것이 글이 된다.


그런 내가 지난 2년 간 아무 글도 안 올렸다면, 이거야말로 뭔가 있는 거다. 다행히 급격한 신변의 변화는 발생하지 않았는데, 사실은 몰래 글을 올리고 몰래 내렸기 때문이다.


대놓고 내 글들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행여나 누가 읽을까 봐 급하게 내린 게 한 50개는 넘는다. 그러니까 겉에서 봤을 때 불도 안 켜져 있고, 주인도 없는 빈 집처럼 보였겠지만. 분명 떠났을 거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 안에서 남들 다 잘 때 혼자 후레쉬키고 조용히 살고 있었던 거다.


주목! 여기! 누가 있습니다, 바로 접니다! - 하고 적절한 순간에 뽐내면서 나타나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그 '타이밍'이 안 왔을 뿐이다.


엄청나게 답답했다. 나는 계속 말하는데, 글을 쓰는데, 내가 생각하는 게 제대로 표현이 되지 않아서. 옹알이 중인 신생아에 감정 이입되고 그랬다.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두루뭉술하고 분명하게 잡히는 것이 없었다. 내가 완전히 알지 못하니 무엇을 써도 만족할 수 없었다. 가끔은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늘 실패했다는 뜻이다.


뭘 흩트려놓긴 했는데.....


어쩌면 이미 진흙탕에서 숨 쉬는 법을 깨달았을지도 모르고


스스로의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쓰는 족족 성에 차지 않는 시기. 이것도 슬럼프의 한 형태임은 나중에 알았다. 마침내 이제 정말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 타이밍 좋게 구독자 1명이 늘었다.


지금 누군가 좋아하는 이야기들은, 내 입장에서는 오래전에 흘러간 조각들이다. 나를 이루는, 혹은 나는 이미 잊어버린 - 내 세계의 조각 중 일부를 좋아한다면, 앞으로 내가 하는 것에도 관심 보이지 않을까? 적어도 호기심은 있지 않을까? 물론 실망을 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순서로 치자면 관심 가져 주는 게 먼저다. 관심은 애정이고, 애정이 없다면 기대감도 없을 테니까.


원래 해석은 멋대로 하는 거라고, 내게는 구독자 1명이 늘었다는 알람이 기다려 주겠다는 신호 같았다. 지금 어디서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때가 되면 뭔가를 또 써 달라는 그런 메시지. 그때가 되면 자기의 취향에 부합하는 무언가 나타날 거라는 기대감까지 내가 추가 해석했다. 메시지는 받는 사람 입장에서 재해석되니까. 그것은 내 세계를 계속 이어가도 되겠다는 어떤 확신이자 힘이 됐다.


누군가는 내 글을 좋아한다. 누군가 내 세계에 관심을 보이고, 그 애정으로 우리가 어떤 점에서 만났다. 이제는 좀 더 많은 사람의 기대감을 충족시키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뭔가를 써보고자 한다.


계속해서 내게 관심만 준다면. 나는 그 진흙 속에서 숨을 쉴 수 있다. 어쩌면 지금 이미, 진흙탕 속에서 숨 쉬는 법을 깨달았을지도 모르고. 진주처럼 그 안에서 살아가도 되고. 어떻게든 될 거다. 진기명기가 여기 있습니다, 여러분.


흐린 날 맑은 날 다 지나가 보는 거야. 무브 무브!




작가의 이전글 세련되게 후려치는 '돌려까기의 기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