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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내가 애 둘 엄마가 된다니

이래서 사람 일은 장담을 해서는 안 되는 거군요

by 쎄오

'기형아 검사 결과 정상이고 아이 성별은 여아입니다'

산부인과에서 온 문자였다. 이보다 더 기억에 남을 생일 선물은 없으리라.

생일을 맞아 남편과 오랜만에 점심 데이트를 하러 가는 강변북로 한복판에서 병원에서 온 문자를 확인하자마자 나도 모를 괴성을 지르며 환호했다.

'나 딸 원했네, 원했어'




내 나이 마흔에 자연임신으로 둘째를 갖게 된 우리 부부는 마흔 넘어 애 낳아 기르는 건 돈 많은 연예인들이나 가능한 것 아니냐며 절대 우리 이야기는 아닐 거라고 장담을 해 왔던 터였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의 기준보다도 훨씬 더 청춘이었고 그랬기에 계획에도 없던 둘째를 자연히 갖게 되었다.

이쯤 되니 파워 J인 나도, 이것은 하늘의 운명 또는 애 둘이 될 전업 맘 팔자인가 하며, 거진 종교인의 마음으로 애써 정신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가족계획을 했더라면 다섯 살 터울일 리도 없을 것이고 아들, 딸보다는 아들 아들이 더 정답에 가까웠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아이를 갖고 낳는 것만큼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이 또 어딨으랴.


그런 우리에게 둘째의 임신 사실과 그 아이가 딸이란 소식은 단 한 번도 생각지 않았던 상황이라 쉽사리 쓰다 달다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아무 일 없다는 듯 예정했던 일본 여행을 강행했을 뿐이고 여행 내내 속으로는 서로의 탓을 했지만 겉으론 세상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배운 사람들처럼 앞으로 펼쳐질 상황에 대한 시물레이션만 계속 돌리고 있었다.


다행히 주변에선 둘째가 딸인 것에 대해 모두 축복해 주었다. 친언니는 내가 딸을 낳게 되면 용돈을 두둑히 주리라 하였고 시어머니는 이렇게 기쁠 수가 없다며 본인도 드디어 '손녀'가 생겼다고 아주 행복해하셨다. 하기야 양가 집안 모두 고추밭에서 살고 있던 터라 딸아이 소식은 충분히 재미있고 흥미로울 이야깃거리이긴 했다. 그저 앞날의 걱정은 우리 부부 둘만의 몫일뿐...


우리를 잠식시킨 걱정의 우선순위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이제 겨우 내가 경제 활동을 본격적으로 해 볼까 하는 상황에서 또다시 향후 2~3년간은 외벌이로 살아야 한다는 것.

두 번째, 내 나이 마흔에 과연 건강히 임신을 완주하고 자연분만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하는 것.

세 번째, 잠을 못 자 비몽사몽 반 좀비의 생활을 무탈히 잘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것.




5년 만의 임신과 출산이라 새삼스럽지만 그래도 또 한 번 경험해 봤다고 미리 할 수 있는 준비와 대책을 세우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이젠 이렇게까지도 말한다.

'어우 그럼, 딸이 하나 있긴 있어야지. 우리 이제 아들 딸 세상 다 가진 거네. 여보 축하해!^^

그저 돈 만 없을 뿐이야...'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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