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남편 이야기
브런치 스토리 연재를 하게 되면서 전 남편과의 이혼을 처음으로 정의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정의라기 보단 영화 한 편 관람 후 남겨보는 한 줄 평 같은 거랄까.
아픈 만큼 성장했다.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그와의 결혼을 준비하면서부터 어긋남의 전조증상이 많았던 것 같다. 정말 그럴 줄 몰랐다가 뒤통수를 맞은 것도 아니고 분명 이건 아닌데 싶은 순간들이 참 많았는데 당시에는 왜 용기 내지 못하였나 자책감에 괴로워하던 시절도 오래었지.
각 한 번의 이혼 경험이 있는 우리의 대화 속 서로의 모습은,
'만약에 상황이란 게 또 닥치면 난 이혼하자고 할 거야. 절대 참고 살아갈 순 없어.'
그 과정이 얼마나 아프고 힘든지 누구보다 잘 아는 우리지만 한 번의 경험을 통해 얻은 그 깨달음은 꽤 견고하다.
어려운 결정이겠지만 그래도 내려야 한다면 그 기준은,
'내가 과연 이 모든 걸 감당하며 살아갈 수 있는가'인 것이지, 결코 상대방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가가 아니다.
사람과 상황은 변하기 마련이다. 지금의 모습과 다짐이 영원하리란 건 신도 보장할 수 없고 오로지 당사자만이 아는 법.
누군가는 배우자가 외도를 해도 참고 살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은 문자 몇 번 주고받은 것만으로도 이혼을 주장할 수 있다. 기준은 나의 근간이 되는 도덕과 윤리로부터 세워지는 것이지 여론에 따른 잘못의 크기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어떠한 문제를 맞닥뜨리면 감정은 배제한 체 이성적으로 문제 해결에만 집중하는 나란 사람에게 그 끝이란 더 이상 그 문제의 답을 찾을 수 없단 판단이 드는 순간이다. 그래서였을까, 답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이혼의 모든 절차를 거치는 과정이 감정적으로 그렇게 많이 힘들진 않았다.
잠수 탄 그 사람을 찾아내 법원엘 데려가고 금전 문제를 정리하는 등의 실무가 다소 답답하고 힘들었을 뿐. 막상 법원에서의 우리 모습이나 마지막 인사는 쿨내가 진동하기 짝이 없었으니깐.
그런 나란 사람의 캐릭터에도 불구하고 신경정신과를 찾고 심리상담을 1년 넘게 다녔다는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물론 최초에 방문한 신경정신과에서 내려준 결론은,
"우울증을 앓거나 자살을 할 사람은 절대 아니고요.
의학적 도움보다는 법률 조언이 더 필요해 보입니다."
쳇, 정말 몸과 마음이 아파서 찾은 곳이었는데 저런 진단을 내리다니.. 그렇다면 또 다른 곳을 찾아볼 수밖에... 그렇게 또다시 가게 된 곳이 심장질환, 통증 관련한 병원 그리고 마지막 정착지가 된 곳이 심리 상담소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가 느낀 통증은 실존하는 것이었고 그것을 신체화 라고한단다.
그렇게 심리상담을 시작하게 되면서 지금의 남편과 연애를 시작한 초반에도 한동안 나의 상담은 지속되었다.
그런 나를 보고 남편은 의아해하며 전혀 상담이 필요 없어 보이는데 도대체 왜 받는 것이냐며 궁금해했지만,
"몸 관리 하려고 헬스장에서 운동하듯이, 정신 건강 관리차원에서 다니는 거야'
라고 대답한 나.
전 남편과의 이혼 과정을 통해 얻게 된 가장 큰 수확은,
이전엔 제대로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던 또는 그럴 기회도 필요도 못 느꼈던 내가 나 스스로를 공부하고 살펴보고 돌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를 통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 어디까지인지를 알게 되었다는 점은 꼭 부부관계뿐만 아니라 많은 인간관계와 처해진 상황에 대입해 볼 수 있고 어떠한 판단을 내리는 데 있어 좀 더 효율적인 접근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큰 이점이 된다.
물론 아픈 만큼 성장했고 나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었던 기회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이혼을 가볍거나 언제든 또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 아이를 갖고 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는 생활 속에서도 충분히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고, 매일을 배움의 기회라 여기며 지내는 오늘도 나는 또 그렇게 성장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