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야기 Part1.
'너희 엄마가 본인이 이혼을 해봐서 그런가 딸은 안 했으면 하시던데...'
전남편과의 이혼을 준비할 때 그의 아버지가 날 회유하며 한 말이다.
순간 울컥하는 마음이 들긴 했지만 생각해 보면 세상 어느 부모가 자식의 이혼을 적극 찬성한단 말인가.
비단 본인의 이혼 여부와는 관계없이 자식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바라는 건 당연지사.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삶은 어땠을까.
자식의 입장에서 볼 수 있는 표면적인 것 외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삶은 과연 어떠하였나.
지난 글에서 언급한 대로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심리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전 남편과의 이혼 과정이 힘들어 정신적 도움을 받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상담 내용의 반 이상은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와 원가족과의 관계가 대화의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남편과 나는, If(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시뮬레이션을 가끔 돌리는데 몇 차례 나눠본 이야기 중 흥미로운 주제는,
'만약 우리가 지난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몇 살 때, 어느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가?'
남편은, 농구로 인기 좀 끌던 대학시절과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했더라면 좋았을 중고등학교 때 시절을 떠올리며 '왕년에 어쩌고 저쩌고' 신이 나서 이야기하는 반면,
나는,
'나에게 돌아가고 싶은 과거란 없어. 나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고 성인이 된 후 20대 시절은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정했거든. 나는 지금이 좋아. 내가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지금이 좋고 앞으로 더 좋을 것이고 매일이 리즈 경신이야.'라고 이야기한다.
그렇다. 나는 불우했다.
나라고 남편같이 잘 나가던 시절이 왜 없었겠는가.
이성에게 인기가 많아 남자친구는 늘 끊임없이 있었고 성적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아 대학도가고 친구도 많아 집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았으며 특별히 모나지 않은 학창 생활을 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정서적으로 불안해 어딘가 마음을 붙이고 싶은 본능에서였다는 걸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내 마음의 안식처가 원가족이었다면... 우리 집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부모의 관계는 미성년자 자녀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내가 자식을 낳아 길러보니 정말 더 그렇다는 사실을 매 순간 눈으로 보고 느끼며 살다 보니 더더욱 그녀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있다.
엄마, 그때 왜 우리를 두고 집을 나갔던 거야...
처음엔 '왜'가 궁금했다.
그 이유에 대한 답을 찾은 어느 순간부턴 왜 나갔는지는 알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렇게 독하게 그런 선택을 할 수가 있었는지 그때의 마음가짐이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때 그녀의 나이보다 더 많은 삶을 살아온 지금의 나는,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이유도 알겠고 그 마음도 어땠을지 충분히 이해도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상처받고 아팠으니깐 사과해 줘.
그때 두고 나가서 정말 미안했다고
정식으로 사과하란 말이야.
고작 며칠간의 부재였을 것이다.
앞뒤 전후 상황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한 가지 또렷한 scene이 있다면 하원 시간에 맞춰 학교 앞으로 찾아온 그녀가 내 앞에 쭈그리고 앉아 나와 언니는 잘 지내는지 동태를 묻고 몇 마디 나눴던 기억이다.
비가 온다고 우산을 가지고 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그녀가 나를 보러 학교에 찾아왔었다.
얼마 전 유퀴즈에 출연해 비가 오는 날이면 하염없이 엄마를 기다렸다던 한가인의 말이 난 너무나 와닿아 눈물이 날 지경이었는데...
일부 사람들은 그녀가 지금은 좋은 시댁 만나 잘 먹고 잘 살면서 죽는소리한다고 억지스럽다거나 와닿지 않는다며 거북해하며 남긴 댓글들을 보았다.
아무리 명품을 휘감고 좋은 환경에서 자란 남자와 결혼을 한들 원가족으로부터 갖게 된 상처와 흉터가 어찌 없던 일이 되겠는가.
그로 인해 괴롭고 고통스러운 순간의 정도와 횟수가 줄기야 하겠지만 그것은 없던 일도 덮어질 일도 아닌 것을.
아주 단편적인 이야기뿐이라 보편적인 공감을 사긴 어려운 방식이었지만, 그 사람의 서사를 들여다본다면 단순히 우산을 가져다주지 않은 게 뭐가 그리 서운할 일인가가 아닌 그럴 수밖에 없었을 상황과 환경이란 게 분명 있을 것이다.
나의 그녀도 분명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처해 있었을 것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