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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Dec 22. 2021

일상의 악센트를 읽고-4

chapter 2를 읽고 #2


p57-58 아름다운 것을 읽고

올해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것은 세화에서 본 노을이 아닐까. 6월이 되고 나서 멋진 노을을 꽤 많이 봤지만, 그래도 가장 황홀했던 노을은 6월 4일의 붉은 노을이다. 매일 지는 노을이건만, 조금이라도 핑크빛으로 물드는 날이면 밥을 먹다가도 카메라를 챙겨 들고 곧장 바닷가로 뛰어가던 그때. 언덕 위를 올라갈지 주춤거리던 순간, 옆 가게에서 일하고 있던 직원이 "와 환타 같다!"라면서 성큼성큼 언덕을 올라가는 걸 '에라 모르겠다!'라며 따라 올라갔었는데, 정말 잘한 일이었지! 날이 더워질수록 더 붉게 노을이 물든다던데, 돌아오기 전까지 그날처럼 황홀했던 노을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정도의 차이. 핑크빛 노을은 종종 목격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잊을 수 없는 풍경이다.


p59-61 한 걸음 물러나서 보기를 읽고

여행이 천직이라고 느낀 건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였다. 겁이 없는 성격이냐고? 아니. 전혀. 오히려 그 반대이다. 자동차 시속 100km만 넘어도 속도를 줄이라며 아빠의 어깨를 꼬옥 잡고, 훅 떨어지는 롤러코스터뿐만 아니라 스릴 있는 놀이기구는 돈을 준다고 해도 타지 못하는 겁쟁이다. 이렇듯 겁이 정말 많은 내가 기체가 흔들리는 건 별로 무섭지 않아 하는 게 나 또한 정말 신기할 지경. 여행이 시작되는 순간,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튀어나오는 것일까? 새로운 환경, 예기치 못한 상황을 두려워하지 않는 평소의 나가 되었으면 하는 그런 사람이 된다.


p62-65 등을 곧게 펴고를 읽고

벽에 붙은 "허리 수술 2000만 원"을 보고 자세를 고쳐 앉으며 밤샘 작업을 하던 런온의 오미주는 내가 2021년 가장 처음으로 마음을 준 드라마 속 인물이다. 자신의 능력으로 천천히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고, 남이지만 한집에 같이 살 만큼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언니 매이가 있고,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순둥한 기선겸이 있으며 영어를 기깔나게 잘한다. 오미주는 내가 되고 싶은 인물이기도 하다. 프리랜서로 일하지만 끊임없이 나를 찾는 사람이 있고, 든든한 조력자가 공과 사를 아우르면서 늘 곁에 있으며, 올바른 신념을 가진 다정한 연인이 있고, 영어를 잘하는. 과연 서른 살의 나는 오미주와 같은 삶을 살 수 있을까?


p66-68 잊어도 좋아를 읽고

혼자 여행을 하는 내 귀에는 이어폰이 항상 꽂혀있다. 점원과 말을 주고받을 때나 현지 분위기를 만끽하고 싶을 때를 제외하면, 지하철 안에서 버스 안에서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서, 언제나 늘 bgm처럼 내 발걸음에는 음악이 깔린다. 여행을 가기 전, 그 도시와 어울릴만한 노래들을 플레이리스트에 담는다. 그렇게 여행 내내 들은 노래는 도시와 한 몸이 된다. 일상으로 돌아오더라도 그 노래만 재생하면 나를 그때 그 장소로 데려다 놓는 하나의 플레이 버튼인 셈이다. (마치 상견니에 나오는 카세트테이프처럼) 유독 생경하게 기억이 나는 노래들이 몇 곡 있다. 악뮤-오랜 날 오랜 밤은 혼자 오사카 성 주변을 산책하던 날을, 아이콘-고무줄다리기는 교환학생 생활을 했던 광저우에서 타고 다닌 버스 안 풍경을(친구 둘이 같이 앉고 나는 새로 올라온 영상을 봐야 한다며 그 뒤에 혼자 앉았었지.), 백예린-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는 아직은 쌀쌀한 기운이 남아있던 후쿠오카 첫 여행을 기억나게 한다. 이건 내가 여행을 기억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p69-72 비밀의 장소를 읽고

내 비밀 장소는 토일월 저녁에만 오픈하는 '위스키, 세화'다. 아침~낮에는 '가는곶,세화'라는 이름으로 운영하는 베이커리. 고소한 빵 냄새와 그 빵을 사려는 사람들의 발길로 활기가 넘치지만 어두워지면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 작은 조명들로 간신히 '여기에 가게 있어요'를 알리며, 아는 사람들만 아는 위스키 바가 된다. 이곳을 알게 된 건, 두 달 동안 머물던 숙소 근처에 빵이 맛있는 곳이 있다고 해서였다. 단순히 빵만 사갔으면 눈길을 안 줬을 텐데, 앉아서 음료나 한 잔 마시고 갈까 하여 보게 된 메뉴판에 <토/일/월에만 운영하는 위스키, 세화 안내문>을 보고 위스키에 대한 지식이 1도 없지만, 그래도 이 동네에 그 시간까지 여는 가게가 몇 개 없으므로 한 번 와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돌아갈 날이 몇 주 남지 않았을 무렵, 처음 찾게 된 다크한 분위기의 가는곶, 세화는 단 두 번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세화의 최애이자 비밀 장소가 되었다. 어쩌다 합석하게 된 근처 다른 게하에서 일하는 스탭 언니와 저녁에만 나오신다는 남자 사장님, 이 두 사람과 우연히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앞서 방문했던 다른 스태프들이 느꼈던 것처럼 나의 안식처가 되었다. 곧 돌아간다는 언질을 드리긴 했지만, 그래도 마지막 인사를 못 하고 온 게 마음이 쓰인다. 출국 전에 제주에 다시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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