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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까야 Jul 04. 2024

보급경제실천의 날

 

보급경제실천의 날


  그가 군대 생활을 한 1970년대는 물자 부족과 군대 내의 부정부패가 횡행하던 시절이었다. 일부 부대에서는 밑단에 가야 할 온갖 물품이 중간에서 떼어먹는 일이 수두룩했다. 전방 부대의 경우에는 겨울 김장을 하면 늘 백김치가 되었노라고 했다. 관물(官物) 절도와 횡령이 많던 시절이다. 김장용품 등의 식품뿐 아니라 온갖 소모품이나 의류 등 군수품의 횡령이 심했다. 요즘이야 그런 게 없고 군대 내의 사망사고가 주요 이슈이나 그 당시에는 구타나 탈영, 사망사고가 늘 있던 시절이었다. 官物이라 함은 官에서 지급한 물건이다. 관물대, 관물정리, 관물조사등의 합성단어가 많이 나온다. 영어로는 Government Issue (GI)라 하는데 GI는 미국 병사를 지칭한다. 병사는 그야말로 관물이다.


  그의 집안에는 아들만 넷이 있었는데 그를 제외한 세 명은 모두 휴전선 부근의 최전방에서 빡빡 기다가 제대했다. 그도 당연히 입대 후에는 최전방에 가려니 했고 그게 당연한 일로 생각되었었다. 그러나 논산 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그가 새벽에 도착한 자대는 대구였다. 대구에서 군 생활을 하게 된 게다. 넷 중에 하나인 그는 후방에서 근무를 한 게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전쟁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2차 세계대전 중 4형제를 참전시킨 가족 중 셋이 전사하자 남은 한 명은 반드시 살려서 귀향시키겠다는 대통령의 명령으로 최전선에 있는 나머지 하나인 라이언 일병을 찾아서 고향에 돌려보내느라 수많은 병력이 희생한다는 이야기 다. 그도 혹시 라이언 일병처럼 가족 중 셋은 전방에서 근무했으니 나머지 하나는 후방에서 근무시킨다는 군대의 휴먼드라마의 장면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것은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병역행정과 군대 일이 그다지 과학적 관리나 휴머니즘이 아니거니와 패밀리 친화적인 행정은 더욱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의 부친이 돈이나 백을 써서 후방으로 뺐다? 그럴 리 도 없다. 함흥에서 1.4 후퇴 때 내려온 부친은 군대에 장성급, 영관 급 장교는커녕 육군 중사도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돈과 백을 쓸 수도 없었다. 루트를 알아야 뭐를 하던 할 게 아닌가? 안다 한들 아들 넷 중에 굳이 그를 후방에 빼 줄 만한 이유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군대에서는 군용품 관리가 엄격했다. 군용품이 민간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막아야 했고 그 방법으로 모든 관용품에 “군용”이라는 마크를 새기는 거였다. 거의 모든 물건에 군용 마크가 붙었다. 그렇다고 해서 불법유통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효과는 있었다. 군에서 지급하는 소모품 모두에 붙였다. 속내의는 물론이다. 당시 소문에는 여군용 생리대에도 군용 마크가 찍힌 제품이 보급된다고 했으나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군에서는 모든 물자가 부족하다. 빠듯한 국방예산에, 무기 구입에 많은 예산이 소요되는 바 장병의 소모품까지 신경 쓸 수가 없었을 뿐 아니라 기 지급된 물건을 어떻게 아끼고 재 사용해서 부족분을 메워야 하는 실정이었다. 그런 소모품들의 대부분은 미군이 주고 간 것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을 때였고 그것을 아껴서 부대 운영을 해야 할 때였다. 수통은 2차 대전 때 쓰던 거였다. 한 달에 한번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에 “보급경제실천의 날”을 제정해서 부대 내 모든 물품에 대해 재고조사 및 손질 수리하여 아껴 쓰자는 행사였다. 그날의 행사 표어 중의 하나는 

“미군이 물려주신 군수 물자를 아껴 사용하여 국방 자립 이룩하자!” 

“미국이 주신 물건에 대해 감사히 생각하자!” 

등등이 있었다. 말도 안 되는 표어였다 만 그 당시에는 당연한 걸로 여겼다. 아울러 이를 통해 중간에 횡령되는 물건이 없는지 장부상에 있는 관물이 제대로 있는 지의 재고 조사를 하는 목적도 있었다. 당일이 되면 부대 내 모든 물건이 연병장에 모여진다. 각종 장비를 비롯해서 내무반의 모포 등도 꺼내서 수량을 맞춰보고 확인했다. 그러면서 모포 수선도 같이 행해졌다. 당시의 군대 모포는 몇십 년을 덮었는지 울의 섬유 성분은 거의 없고 그저 맨 섬유 성분 정도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나마도 있으면 재고조사에 통과가 되는 것인 바 그것을 다시 바늘로 수선하여 다시 덮는 거다. 모포 같은 경우는 공용 물품이지만 개인 지급용 소모품은 개인이 알아서 수선해서 입어야 했다. 


  군대의 사병 소모품 중에 속내의가 있다. 팬티는 규정상 보급 정량이 3장이었는데 그 당시의 속내의라는 게 하얀 광목으로 만들어서 좌측하단에 “군용” 마크가 찍혀 있는 거였다. 밴드도 없이 일반 하얀 끈으로 매게 되어 있는 거다. 요즘 해변에서 입는 프리스타일 반바지 정도 생각하면 될 거다. 그 흔한 고무줄도 없이 끈으로 되어있었다. 말이 21세기 군대 지 속내의만 보면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 지키던 병졸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개인화기인 창에서 M16으로 바뀐 거 외에는... 

행사일이 되면 모포 꿰매는 것은 물론이거나 와 양말, 속내의 등 모든 물품을 꿰매 입어야 했다. 요새야 해져서 못 신는 양말이나 못 입는 옷은 없다. 유행이 지나서 못 입는다. 아니 되려 찢어진 청바지를 입는 게 유행이고 찢어진 청바지가 더 비싸기도 하다. 

   어떤 병사가 끈으로 되었는 걸 떼 내고 노란 통고무줄(우리가 애 키울 때 기저귀 채울 때 쓰던 그 노란 통고무줄 말이다.)로 교체하고 입고 다니다가 복장불량으로 군기 교육대에 끌려간 적도 있었다. 빤쓰 고무줄 바꿨다고 그게 군기 교육대까지 가야 할 대역 죄인인가? 


  군 수뇌부에서는 장병들의 보급품이 말단에 전달되는지 중간에 새는 게 없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그가 자대에 배치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군사령부에서 보급경제실천의 날 행사 점검이 나왔다. 군 사령부 군수참모가 직접 나온다고 했다. 군수참모는 원 스타 장군이다. 그가 있던 대대 급 부대가 발칵 뒤집혔다. 어차피 장부와 실제는 안 맞는다. 부족한 물건은 이웃 부대에서 급히 빌려와야 했다. 장부상 없는 군수품이 많았기 때문이다. 다 그렇고 그렇게 지나가던 시절이다. 이번에는 군수참모가 개인 소모품 지급이 제대로 되는지? 관리는 제대로 하는지를 확인하겠다고 하면서 내무반 점검을 한단 다. 당연히 내무반이 발칵 뒤집혔다. 일등병이 원 스타를 보기가 쉽지 않다. 요즘이야 원 스타 던 포 스타 던 그놈이 그 놈이지만 일등병의 눈에 보이는 원 스타는 그야말로 옥황상제 급이다. 그런 사람이 내무시찰을 온 다니 이게 어디 상상이나 할 일인가? 대대장인 육군 중령뿐 아니라 부대 내 모든 간부가 벌벌 기었다. 


   내무반 침상 끝에 전체 소대원이 도열해 있다. 군수참모인 원 스타는 대대장과 주임상사와 함께 근엄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내무반장의 보고에 이어 시찰이 있었다. 매의 눈으로 살펴본다. 부족한 관물은 없는지? 각자의 개인 보급품이 제대로 보급되었는지? 내무반을 쭉 돌아보다가 내 앞에서 멈췄다. 숨이 막힐 지경이다. 아니 씨 이게 왜 여기서 안 가는 거야? 그런 생각도 잠깐

“자네”
 “옛. 일병 이 땡땡!
 “육군 개인 지급품이 뭐 뭔가?”
 “옛”

전투복 상하 2벌

정복 한벌
 야전 상의 한벌

전투화 한 켤레

통일화 한 켤레

.

.

.

.

난닝구 3매
팬티 3매
 이상입니닷! 닷! 닷! 

자대 배치 얼마되지 않은 군기 바싹 든 일병이 내지르는 목소리는 건너편 관물대의 수통을 맞고 반향 되어 상대 쪽 관물대의 야전삽에 튕기어 계속 메아리가 친다. 답변으로 치자면 완벽하다. 올림픽 체조종목의 뜀틀에서 난이도 9의 고난도 기술로 완벽하게 착지한 거다.  수행 중인 대대장 중령의 입가가 올라가 있다.

 “역시 우리 대대의 에이스야! 저런 놈이 다 있었나? 서울병력에다 대학 다니다 온 놈이라 뭐가 달라도 달라…, 저런 놈은 육사에 가서 내 후배가 되었어야 했는데….”

주임상사는 주임상사대로 “저런 놈은 군대에 말뚝 박아야 하는데…. 그래야 군대가 좋아지는데…” 

내무반장이나 고참들 모두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때…
한 발 지나가던 군수 참모가 지휘봉으로 그의 아랫배를 찌른다.

“군대에 팬티는 없다. 군대는 빤쓰다 빤쓰! 알았나?”
 하마터면 풋 하고 웃을 뻔했다. 일등병이 원 스타 앞에서 웃었다? 죽음이라고 봐야 한다. 이를 악물고 참으면서 “넷! 시정하겠습니닷! 닷! 닷!

만족하던 대대장 얼굴이 일 그러 졌다. 주임상사와 내무반장도 파랗게 질려간다.
 “넷! 참모님 다시 교육시키겠습니다.”


  그날 밤부터 내무반에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다. 군수참모의 지적사항에 대한 징벌적  

행위가 시작되었다. 당시의 후방은 나름 끗발로 배치된 사람들이 많았는데 특히 대구의 토호세력의 자식들이 많았다. 고참중의 한 명은 대구땡고를 나온 성질 더러운 놈이 하나 있었다.
 “뭐? 팬티? 하여간 대학 물먹은 놈들은 안돼! 빠져가지고는…”왜? “사리마다”라고 그렇잖고?” “다음부터는 사리마다 석장이라고 해!”
 그놈이 제대해 나갈 때까지 두고두고 팬티/빤쓰 건으로 고초를 당했다. 


  지금이야 경제적으로 많이 부강해졌고 물자 부족 시대에 살고 있지는 않으니까, 모르긴 몰라도 요즘 지급되는 내의는 광목 노끈도 아니고 고무줄도 아닌 고급 밴드 형태의 BYC 던 Body Guard 정도의 고급품이 아닐까 싶다. 혹시 여군용은 와코루 나 빅토리아 시크릿에 주문해서 “군용” 마크 박아서 지급할지 도 모르겠다. 


   남자들은 군대생활 한쪽을 보고는 오줌도 안 눈다고 했다. 특히 논산 쪽으로는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 사건 이후로 대구에서의 만만찮은 군대 생활을 하게 된다.

지금도 그는 팬티라고 안 한다. 빤쓰라고 한다. 아울러 제대 이후 그는 대구탕도 안 먹는다.  



그렇다. 

물자는 아껴 써야 한다. 낭비하면 안 된다. 아껴 쓰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나이 들어가는 우리가 모든 걸 아껴 써야 만할까?


  잘 아는 인생 선배 한 분이 계셨다. 자식들 모두 출가시키고 나이 든 노인 둘이 살다 가 부인이 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평소에 부인이 아끼고 모아 온 온갖 비싼 찻잔이 찬장에 가득했다.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한 찻잔이 많았다. 그분 역시 나이가 들어 어쩔 수 없이 실버타운에 들어가게 되었다. 요즘의 실버타운은 적어도 85세 전에 입소해야 받아 준다. 다 늙어 죽어 가는 사람은 돈이 있어도 갈 수가 없다. 

찬장에 고급 찻잔이 많다. 아들 딸 사위 며느리를 불러 다가 부인이 수집해 온 찻잔을 가져가라고 했다. 그러나 아무도 필요 없다고 안 가져간 단다. 요즘 저런 찻잔을 누가 쓰냐며, 요즘은 스타벅스 텀블러 갖고 다니며 차 마신다. 집에서도 커피는 그것으로 마신다. 
  요즘은 집에 누구를 불러서 차를 마시는 경우는 거의 없다. 동네 카페나 경치 좋은 강변으로 나가 커피숍에서 6,500 원짜리 커피를 마시고 두 돌 지난 손주 손바닥 만한 치즈 케이크를 8,000 원에 사 먹는다. 집으로 누구를 불러들이는 법이 없다. 집에서 저녁 손님을 치르는 일도 없다. 외부 식당에서 만나서 먹고 근처 스타벅스에서 차 마시고는 헤어진다. 


  우리들 젊었을 때처럼 직장 동료나 후배를 예고 없이 불러들이거나 데리고 오는 행위는 자살 행위라고 봐야 한다. 죽음이다.


  이 분은 당근마켓을 할 줄도 모른다. 어쩔 수 없이 처리 업자를 불러서 처리를 맡겼다. 처리하러 온 사람은 마대자루에 온갖 찻잔을 담아 옮긴다. 
 “아저씨 그거 죽은 집사람이 아끼던 비싼 거예요. 살살 다뤄 주시고 조심해서 가져가세요.” 

 “선생님 이거 갖고 가면 어차피 다 깨서 버리는 거예요. 이런 거 요즘 살 사람 없어요.”

부인이 아끼고 아끼던 고급 찻잔은 그렇게 허망하게 마대자루에서 깨져서 없어졌다. 회한이 밀려온다. 그렇게 아끼던 찻잔이다. Wedgwood, Noritake, Royal Copenhagen 등의 고급 본 차이나 찻잔이었단다. 


  집에 고이 모셔둔 찻잔은 써라. 장식품도 아니요 디스플레이 용도 아니다. 그냥 차 마실 때 쓰는 잔 일 뿐이다. 이젠 고급 잔에 커피를 마셔도 된다. 남편에게도 고급잔에 커피 타 줘야 한다. 다이소에서 사 온 싸구려 잔으로 마시지 말고…… 

아울러 장롱에 넣어둔 앞에 큰 단추 두 개 달린 분홍색 투피스도 아끼지 말고 입어야 한다. 롯데마트 갈 때도 입고 도수치료받으러 갈 때도 입어야 한다. 지금 안 입으면 입을 날 없다. 이제 우리 나이가 나이니만큼 뭐든지 쓰고 입고 먹어야 한다. 


아끼다 똥 된다.


남자의 경우는 이러한 아끼다 똥 되는 게 

첫째 “돈”

둘째 “사랑한다는 말”이다. (다소 오그라지고 닭살이 돋기는 하다만…)

이는 설명이 필요 없다. 설명이 필요하거나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아직 아낄 때가 아니다.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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