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브리콜라주 Dec 30. 2021

왜 ESG, ESG들 하는가?

바보야, 이미 다른 세상이 코 앞에 왔다고!

최근 1~2년간 인터넷, TV, 신문 등의 대중 매체를 점령하고 있는 '코로나'라는 단어 못지않게, 큰 화제를 몰고 다니는 키워드가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ESG'이다. 물론 우리 독자분들 중에서도 '난 한 번도 못 들어봤는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마 '기후 변화', '탄소 중립' 등의 개념들과 '공정', '인권', '상생' 등과 같은 용어들, 그리고 '지주 회사', '물적 분할', '경영권 방어'와 같은 단어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고 발뺌하시지는 못하시리라.

그렇다. ESG는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영문 약자이며, 최근의 기업 경영 환경에서 가장 핫한 키워드이자 모든 이슈의 '용광로' 같은 개념이라고 감히 정의해 볼 수 있겠다.

 

필자도 직업상 ESG 경영의 개념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하는 편인데, 첫 몇 달간 필자의 감정의 흐름을 요약하면 이렇다.

아, 아~하! 으흠.. 응? 에이~

 

처음에는 쉽게 개념이 다가오고, 조만간 명확한 정의를 내릴 수 있을 것 같다가, 이내 의심이 들고, 헛갈리다가 나중에는 회의감과 의문으로 가득 차게 되는 그런 공부...


이런 상황이 되었을진대, 더 이상 일반적인 방법으로 공부의 진도를 나가면 '주화입마'할 것 같아 일단, 조용히 모든 레퍼런스를 내려놓고 책상에서 물러나왔다. 그리고 생각에 잠긴다. 필자의 주특기이자 본 매거진의 주제인 와잉(Whying) 놀이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ESG를 공부하다 보면 마주하게 되는 몇 개의 문을 가지고 왜? 왜? 왜?를 파고들어 보았다.


1. 환경, 사회, 지배구조는 제각각의 개념인 것 같은데, 왜 ESG로 함께 이야기하는가?

필자가 맨 처음 가졌던 의문이었으나, '달걀'에 비유하여 설명을 해보니 제법 그럴듯하게 이해가 되었다. 즉, ESG는 최신 유행 이슈를 단순히 모아논 것이 아니라, 서로 매우 밀접하고 상호적이며 유기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달걀의 구조 (이미지 출처: www.chickens.allotment-garden.org)

환경(E)-사회(S)-지배구조(G)를 달걀에 대입시켜 보자. 즉,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 '지배구조(G)'는 노른자,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흰자는 '사회(S)', 그리고 '환경(E)'은 껍질이 된다. 만일 노른자가 썩으면 (기업의 의사결정이 잘못된다면) 흰자는 어떻게 될까? 당연히 흰자(사회)도 부패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껍질은? 노른자와 흰자가 신선함을 잃어가면 결국 껍질(환경)도 생기를 잃어 단단함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어떤 외력에 의해 달걀 껍질에 균열이 가고 그 단단함이 무너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 흰자는 당연히 형태를 유지할 수 없고 쉽게 상하게 될 것이며 흰자가 상하면 결국 노른자도 무사할 수 없게 된다.

이처럼 기업의 의사결정 시스템이 건강하지 않아 사회 시스템의 건전성을 해치고 그 결과로, 생태 시스템이 파괴되면 결국 그 영향으로 다시 사회가 무너지고, 무너진 사회에서 기업이 더 이상 영속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ESG의 핵심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E, S, G는 따로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완벽한 유기체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2. 그렇다면 누가 ESG의 불을 지폈을까?

ESG의 다른 이름인 '지속가능경영'의 개념은 1970년대 말 태동하였는데, 80년대 말 노르웨이의 수상 이름을 차용한 일명 '부룬트란트 보고서'로 이른바 국제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하였고, 그 후 약 30여 년 이상 꾸준히 발전해 온 개념이다. 또한, 근래 10여 년 간 많은 기업에서 유행하였던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과도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왜 이제서야 온 세계가 '마치 세상이 뒤집어진 것처럼' ESG, ESG 하게 된 것일까?


전 세계가 ESG의 열풍에 빠져들게 한 직접적 도화선 역할을 한 것은, 다름 아닌 한 글로벌 자산운용사 CEO의 편지 한 장이었다. 2020년 1월, 세계 제1의 자산관리회사 블랙록(Black Rock)을 이끄는 래리 핑크(Larry Fink) 회장은 블랙록이 투자한 기업들의 CEO에게 연례 서한(Letter to CEO)을 보냈다. 거기에는 그 유명한 "기후 리스크는 투자 리스크이다 (Climate Risk Is Investment Risk)"라는 주제를 포함, 기업의 장기적 기업 가치를 높이고 지속가능 경영을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반쯤은 협박에 가까운'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래리 핑크의 2020년 CEO 연례서한 도입부 (출처: Blackrock 홈페이지)

이쯤에서, 그 편지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하길래 전 세계적인 ESG 열풍이 발생할 수 있느냐고 생각하실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 블랙록은 그럴만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2021년 3분기 현재, 블랙록이 관리하고 있는 자산의 규모는 약 USD 9.5 Trillion이다. 첨 보는 단위(Trillion)에 화들짝 놀라고 계신 독자들의 표정이 보인다. 현재 환율(1188.5원/USD) 기준 대한민국 원화로 환산하면 1경 1,243조 원 정도 된다. 휴... 1,243조 원도 현기증이 나는데, 그 앞에 1경 원이 추가로 붙어있다. 1경 원!

12월 20일에 확정된 2022년의 대한민국 예산이 607.7조 원이라고 하니, 블랙록이 얼마나 큰 자산을 관리하고 투자를 하고 있는지를 짐작하실 수 있을 것이다. 블랙록은 그 엄청난 자산들을 직간접 투자하여 미국 포함 전 세계 대부분의 우량 기업들의 주식을 사들였고 일부 경영에 간섭할 수 있는 대주주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심지어 우리나라도, 주요 시중 은행들을 모두 포함하여 KOSPI 100대 기업 중 약 50~60개의 회사들의 대주주 지위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래리 핑크 회장이 보낸 '연례 서한'은 전 세계적으로 명망 있는 거의 모든 우량 기업들에게 보낸 대주주로서의 경고의 메시지로 인식될 수 있는 것이다.

블랙핑크.... 아니, 블랙록의 래리핑크회장 (출처: https://www.edie.net/)
3. 그런데 왜 래리 핑크 회장은 이런 편지를 보냈나?

블랙록이 이런 메시지를 기업들에게 보낸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이 부분에 대한 Why? 가 사실 ESG 열풍의 숨겨진 본질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블랙록은 자산운영 회사이다. 즉, 고객 자금을 맡아 투자하고 운영해 이익을 고객에 돌려주는 것이 주 임무이다. 그렇다면, 블랙록의 주요 고객은 누구일까? 블랙록의 대표 고객 층은 바로 세계 각국의 연기금, 그리고 패시브(passive) 펀드인 ETF(상장지수펀드)에 투자한 개인 및 기관 투자자들이다.


두 고객의 투자 성향을 짐작해보면 블랙록이 ESG의 깃발을 앞장서 든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연금은 말 그대로 '은퇴 후 노년기를 준비하는 자금'이니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패시브 펀드는 주식 시장에서 개별 종목이 아닌 특정 지수를 추종하는 상품으로 단기적 등락보다는 장기적인 우상향 (즉, 지속 가능한 성장)을 기대하는 투자자의 자금이 주로 유입이 된다. 결국 두 고객의 투자 성향은 '장기적(Long-Term)', '안정적(Risk-Free)'이라는 키워드로 관통될 수밖에 없다. 투자의 원칙을 세우는데 당장의 수익성보다는 미래 가치, 지속 가능한 성장성을 보이는 투자처에 높은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는 입장인 것이다.

우리는 근간에, 엄청나게 우량해 보이던 회사들이 급변하는 환경에서의 부적응, 회계 부정, 오너 리스크 등의 지배구조 문제들, 그리고 인권, 인종 차별 등의 사회적 이슈 등으로 한 순간에 몰락한 예를 수도 없이 봐왔다. 만일 내 노후를 책임질 자금이 그런 회사에 투자되어 있다고 생각해보라. 생각만 해도 끔찍할 것이다.

그러니 내 돈이 미래 가치 및  지속가능성이 높은 기업에 투자될 수 있도록 요구하고, 이미 투자를 한 기업들에게는 경영 의사결정구조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사회적 이슈와 기후변화 리스크에 대응 능력을 높이라고 적극 개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4. 그밖에 이유는 없을까?

다이너마이트가 터지기 위해서는 도화선도 필요하지만, 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화약과 부싯돌도 필요하다.


필자는 현재의 ESG 열풍의 화약고는 바로 다름 아닌, MZ세대라고 불리우는 우리의 '젊은 세대들'이라고 생각한다. MZ 세대들은 기성세대가 걱정하는 '전쟁'보다는 '기후변화'에서 더욱 공포를 느낀다. MZ 세대는 기성세대처럼 '먹고사는 문제가 먼저'라는 명분으로 사회의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구조를 짐짓 못 본 체 하거나 참지 않는다. 또한 전 세계에서 실시간으로 온라인을 통해 연결되어 소통하고 경쟁하는 데 익숙한 젊은 세대는, 단순히 지역의 이슈가 아닌 전 지구적인 이슈에도 쉽게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다. 바로 이런 세대가 성장하여 정부, 기관, 기업 등에서 핵심적인 의사결정권자로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의사결정은 기존 세대와는 다를 것이고, 그 파급력은 기존에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 마지막 퍼즐 조각이 필요하다. 화약과 도화선이 아무리 단단히 준비되어도 결국 불꽃 하나가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ESG 열풍을 촉발시킨 불꽃은 그 역할에 걸맞게 코드네임을 가지고 있다. 그 코드는 바로 'COVID-19'이다.

코로나 사태는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평범하지만 지속 가능한 삶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해 주었다. '아 마스크 한번 벗고 친구들과 맘껏 떠들고 놀아봤으면!', '가족들과 함께 가까운 해외여행 한번 가봤으면!'

또한, 철옹성 같이 보이던 기업, 국가의 시스템이 이런 작은 바이러스에도 얼마나 속절없이 무너지고 취약해질 수 있는지를 완벽히 보여 주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기업의 경계를 초월한 전 지구적인 '공동의 노력'이 절실하다는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백신 개발이나 치료를 위한 국제적인 공조를 통해 인류가 협동하면 단기간에 얼마나 위대한 결과를 얻어 낼 수 있는지도 분명히 보여주었다.

어떠한 저명한 이론가나 존경받는 정치가가 나와서 초월적인 존재감으로 대중을 설득한다고 해도, 이렇게 단시간에 효과적으로 인류를 설득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코로나 사태는 어쩌면 신께서 우리 인류를 더 크고 파괴적인 재앙에서 건져내기 위해 허락하신 '경고의 징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이다.  


ESG 공부를 하다 보니 드는 생각을 독자와 공유하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으나, 다 읽어보니 좀 어렵다는 생각도 든다. 고쳐보려고 잠시 생각을 품었지만, 연말의 짧은 휴가를 즐기고 있는 너무도 게으른 작가의 몸은 적극적인 거부 의사를 내비친다. "어이 브리콜라주, 썼다 지웠다 하는 것도 다 전기 낭비야.. ESG적으로 좀 살자.. 응?"


이에 오늘은 여기서 마친다.


끄읕.

매거진의 이전글 왜 원전과 재생에너지가 싸우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