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거래 활용해 집 같은 공간 만들기
'띠리링' 적막을 깨는 소리에 얼른 핸드폰을 잡았다. 순간 아차차 이미 놓쳐버렸네. 허무함에 한참을 멍하니 빈 화면만 쳐다보며 입맛만 다셨다. 중고거래 입에 저렴하고 좋은 물건이 등장하면 귀신같이 알고 사람들이 몰렸다. 다들 잠도 안 자고 앱만 쳐다보는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갖고 싶은 걸 못 가질 때 오는 좌절을 오십이 다 되어 처음 알았다. 물건에 집착하는 요즘 내 모습이 나조차도 낯설다.
이유 없이 우울하다고 했더니 동료가 해준 말
처음 사택을 배정받고 먹고 잘 수 있는 최소한만 하자고 마음먹었다. 계속 있을 것도 아니고 주말엔 집에 돌아갈 예정이니 그 정도면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집 안 구석에 넣어 두고 잊고 있었던 이불 더미를 꺼내고, 숟가락과 젓가락 그리고 밥그릇만 달랑 챙겨 왔다.
잠자리가 조금 불편하고 챙겨 먹는 음식이 부실해도 크게 까다로운 성격이 아니기에 괜찮았다. 하지만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를수록 힘도 없고 지독한 무기력에 시달렸다. 더구나 깊은 외로움까지 더해 컨디션이 내내 최악이었다.
그러던 중 회사 인근에 일하고 있던 지인과 연락이 닿았다. 발령 나서 이곳에 오게 되었단 말을 꺼내니 고맙게도 사택에 한번 놀러 오겠다고 했다. 이때다 싶어 그 주 금요일에 바로 약속을 잡았다. 퇴근 후 지인이 추천한 고깃집에서 저녁을 겸한 술 한 잔을 하고 맥주와 안주를 챙겨 사택으로 향했다.
처음 사택에 들어섰을 때 지인의 놀란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마치 어릴 때 살았던 집 같다며 곳곳을 돌아보았다. 허술한 세간살이를 보며 측은한 듯 날 바라보았다. 식탁 대용으로 쓴 캠핑용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들이켰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요즘 이유 없이 우울하단 말을 꺼냈다. 그랬더니 지인이 바로 해결책을 제시했다.
"내 생각엔 공간 때문인 것 같아.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해 놓아야지 이게 뭐야. 나라도 우울하겠다. 요즘 당근으로 어지간한 건 저렴하게 구매 가능하니 활용해 봐. 제발 궁상맞게 살지! 말고."
지인 덕분에 오래간만에 사람 온기를 느끼며 따스한 밤을 보냈다. 지인은 다음날 떠나는 순간까지도 집을 꾸미라며 신신당부했다. 집 상태와 더불어 내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했었나 보다.그러나 무얼 사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으나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
태생이 물욕이 없는지라 살면서 꼭 사고 싶은 것조차 별로 없었다. 더구나 대학까지 집 주변에서 다녀 결혼 전까지 자취도 한번 안 해 보았다. 어머니가 담당했던 구매가 결혼 후에는 자연스레 아내로 넘어갔다. 나와 달리 쇼핑을 즐기는 아내 덕분에 그간 불편없이 지냈다.
AI가 알려준 혼자 살 때 필요한 것들
심지어 매트리스는 나눔으로 얻을 수 있었다. 나눔은 순서가 아니란 글귀에 마음을 다해 구매 필요성을 100자 이내로 적었다. 다행히 나에게 운이 따라주어 당첨되었다. 주말에 집에서 SUV 차량 뒷좌석을 모두 평평하게 만들고 꽉 들어찬 매트리스와 조립용 침대를 싣고 사택에 돌아왔다.
낑낑대며 간신히 침대를 조립한 후 그 위에 매트리스를 얹었다. 집과 유사한 상황이 되어서인지 그간 깊은 잠이 들기 어려웠는데 그날은 누웠다 깨니 아침이었다. 중간에 깨는 일 없이 깊이 잤다. 가전제품은 당근을 활용하고, 주방용품은 마트에서 구매했다. 하나둘 집 안이 채워지기 시작하며 정말 사람 사는 분위기가 났다. 필수품 구매가 완료되었음에도 당근에서 헤어 나오기 어려웠다.
욕심이 생겼다. 의자와 아령, 실내 자전거 등을 구매해서 방 한 칸을 실내 헬스장으로 꾸몄다. 소음을 의식해서 두툼한 매트리스까지 깔았다. 거실 썰렁한 벽은 숲이 그려진 현수막 그림도 사서 걸었다. 피톤치드가 곳곳에 퍼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침 햇살 때문에 잠이 깼는데, 그걸 막아주는 암막커튼도 필요했다. 신기하게 이것만 사면 모두 끝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또 다른 물건이 떠올랐다. 장바구니가 계속 채워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엔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님에도 사고픈 충동이 일었다. 내 안에 잠자고 있던 쇼핑 본능이 되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수시로 당근 앱을 켜며 사바나의 포식자처럼 사냥감을 노렸다. 미니 밥솥과 1구 인덕션을 건졌다. 마지막은 욕실 청소용품으로 마무리했다. 대학교 1학년 때 당구에 빠졌을 때가 생각났다. 누우면 천장이 당구대로 보이던 시절이었는데 이제는 물건들이 둥둥 떠다녔다.
이러다간 큰일 나겠다 싶어 한동안 앱도 지우고 자중의 시간을 가졌다. AI의 네 번째 조언, 자기 관리 능력이 중요했다. 노력 끝에 쇼핑 중독에서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다.
머물고 싶은 공간 만드니 삶이 안정되었다
얼마 전엔 함께 발령 난 회사 동료가 점심 때 잠시 사택에 놀러 왔다. 문을 열고 펼쳐지는 숲의 풍경과 방 한 칸에 구성된 헬스장을 보며 놀란 눈치였다. 미리 챙겨 놓은 손님용 귀한 커피를 대접하며 담소를 나눴다. 사택이 너무 좋다며 퇴근이 늦어지면 가끔 자고 가도 되냐고 물었다. 나야 언제든 환영이라며 방도 남으니 그러라고 했다.
동료와 헤어진 뒤 불쑥 머릿속에 손님용 이불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다시 쇼핑 본능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서 앱을 켜고 검색해 보니 마침 이불 나눔이 있어 신청했고, 받기로 약속을 잡았다. 주말 집에 가는 길에 찾기로 했다. 집이 어느 정도 갖춰지니 이제는 손님 맞을 준비가 필요했다. 또다시 AI에 도움을 요청해야겠다. 처음에 맨몸뚱이만 놓여 있던 걸 생각하면 크나큰 발전이다.
비록 잠시 머물 사택이지만 가고 싶고 쉬고 싶은 공간이 되니, 전반적인 삶이 안정되었다. 섣부른 생각 같지만, 이제는 어느 곳에 가도 혼자 생활할 수 있겠단 자신감도 생겼다. 객지 생활 덕분에 나이 50에도 성장 캐릭터가 되었네. 막막했던 이곳 생활도 이렇게 조금씩 적응해 가고 있다.
오마이뉴스 연재기사 '주말부부 이야기' 두번째 기사가 발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