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함에 대한 역설

A Star Is Born

by 이방여백

세상에는 끝내 무너짐으로써 완성되는 아름다움이 있다. 모든 것을 쏟아부어 텅 비어버린 상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어 오히려 고결해 보이는 그 처절한 끝자락 말이다. 영화 <스타 이즈 본>의 대미를 장식하는 ‘I'll Never Love Again’은 바로 그 무너짐의 미학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노래다. 무대 위 조명을 받는 앨리(레이디 가가 분)의 눈동자에는 화려한 스타의 탄생보다,

자신의 전부였던 한 남자를 떠나보낸 여자의 지독한 고독이 서려 있다. 이 노래는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이별 앞에서 남겨진 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처절한 맹세이자, 동시에 결코 지켜질 수 없음을 알면서도 뱉어내야만 하는 슬픈 역설이다.


영화 속 잭슨 메인(브래들리 쿠퍼 분)과 앨리의 사랑은 음악이라는 공통의 언어로 시작되었다. 이름 없는 바에서 노래하던 이름 없는 여자와, 이미 정점에 서서 서서히 저물어가던 스타의 만남. 잭슨은 앨리의 외모가 아닌 그녀의 내면에 잠자고 있던 노래를 발견해주었고, 앨리는 잭슨의 이명이 들리는 고통스러운 삶 속에 유일한 정적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스타가 탄생하기 위해선누군가의 빛이 사그라져야만 하는 것일까.


앨리가 세상의 조명을 받을수록 잭슨은 어두운 그늘 속으로 파고든다. 그들의 사랑은 서로를 구원하는 동시에 서서히 침몰시키는 구멍 난 구명보트와 같았다. 잭슨이 선택한 마지막 뒷모습은 앨리를 향한 지독한 배려였을까, 아니면 더 이상 짐이 되고 싶지 않았던 비겁한 탈출이었을까. 영화는 그 답을 내리는 대신 앨리의 목소리를 통해 그 상실의 무게를 견디게 만든다.


‘I'll Never Love Again’의 첫 소절이 흐를 때, 우리는 앨리의 목소리에서 떨림을 읽는다. 그것은 가창력의 기교가 아니라, 심장이 찢겨나가는 소리에 가깝다. "당신에게 작별 인사를 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당신이 내게 마지막이었다는 걸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라는 가사는 모든 상실한 자들이 겪는 보편적인 후회다.


사랑의 끝이 예고되어 있다면 우리는 더 다정했을까. 마지막인 줄 알았더라면 그 손을 조금 더 꽉 쥐었을까. 노래는 그 부질없는 질문들을 선율 위로 길게 늘어뜨린다. 레이디 가가의 보컬은 초반의 절제된 슬픔에서 시작해, 후반부로 갈수록 모든 감정을 폭발시키며 듣는 이의 영혼을 흔든다.


특히 영화의 연출은 영리하게도 앨리의 현재 공연 모습과 과거 잭슨이 피아노 앞에 앉아 이 곡을 처음 들려주던 순간을 교차시킨다. 잭슨이 써둔 가사는 앨리의 목소리를 빌려 비로소 완성된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 듯, 앨리에게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는 무거운 고백을 남겼다. 그 고백은 저주인가, 아니면 지독한 사랑의 증명인가.


누군가를 너무나 깊이 사랑한 나머지 그 빈자리를 다른누구로도 채우지 않겠다는 결심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오만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오만이 있기에 우리는 인간의 사랑이 신성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다시는 안 그래'라는 약속을 한다.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거나, 다시는 이토록 힘든 일을 하지 않겠노라는 사소한 다짐들. 하지만 사랑에 있어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는 말은 그 결이 다르다. 그것은 새로운 사랑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지금 떠나보낸 사랑에 대한 예우다. 당신이 내 인생에 남긴 흔적이 너무나 크고 깊어서,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 다른 어떤 것을 들이는 행위 자체가 당신을 모독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기. 앨리는 무대 위에서 전 세계 사람들을 향해 노래하지만, 그녀의 눈은 오직 객석 어딘가에 앉아 있을 것만 같은 유령, 잭슨만을 향한다.


음악적으로 이 곡은 고전적인 발라드의 구성을 취하고 있다. 잔잔한 피아노 반주 위에 얹힌 보컬은 점차 오케스트레이션과 합쳐지며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온다. 이 곡은 세련된 네오 소울이나 트렌디한 팝의 감각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휘트니 휴스턴이나 셀린 디온의 전성기를 떠올리게 하는 90년대식 대곡의 형식을 띠는데, 이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사랑의 속성이 그만큼 투박하고도 정공법적이기 때문이다. 조건 없는 헌신, 질투와 자괴감, 그리고 죽음마저 갈라놓지 못한 그리움. 이 촌스러울 정도로 진지한 감정들을 담아내기에 이보다 완벽한 곡은 없다.


영화 속에서 앨리는 스타가 되었지만, 그녀가 서 있는 무대는 지독히도 넓고 춥다. 수만 명의 환호성보다 잭슨의 짧은 칭찬 한마디가 더 간절했던 그녀에게 성공은 일종의 형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I'll Never Love Again'은 그 화려한 감옥 안에서 앨리가 부르는 유일한 자유의 노래다. 노래를 부르는 동안만큼은 그녀는 팝스타 앨리가 아니라, 그저 사랑하는 남자를 잃은 한 명의 연약한 인간으로 돌아간다. 마지막 소절에서 반주가 잦아들고 앨리의 생목소리만 홀로 남겨질 때, 극장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정적에 휩싸인다. 그 정적은 잭슨이 부재하는 세상 그 자체다.


브런치를 즐기는 독자들에게 이 영화와 노래는 각별한 울림을 준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끊임없이 기록하고 표현하며 살아가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잭슨이 앨리에게 알려준 소중한 가르침은 "진심을 담아 노래하라"는 것이었다. 기술은 배울 수 있지만, 영혼의 떨림은 흉내 낼 수 없다는 것. 이 노래가 우리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드는 이유는 레이디 가가의 가창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그 안에 잭슨 메인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향한, 그리고 우리 각자의 가슴속에 묻어둔 누군가를 향한 '진짜 눈물'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삶은 때로 잔인할 정도로 우리에게서 소중한 것을 앗아간다. 죽음이 아니더라도 이별은 늘 상실을 동반하고, 우리는 그 상실의 폐허 위에서 다시 삶을 꾸려나가야 한다. 앨리는 노래를 마친 뒤 무대를 내려와 다시 일상을 살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가슴 안에는 잭슨이 준 노래가 영원히 흐를 것이다.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는 그녀의 맹세는 시간이 흐르면 조금씩 희미해질지도 모른다. 언젠가 그녀 곁에 다른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고, 다시 웃으며 사랑을 말할 날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 노래를 부르던 찰나만큼은, 그녀에게 잭슨은 우주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결국 이 노래가 우리에게 남기는 것은 '기억'에 대한 태도다. 사랑하는 이를 잃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 슬픔을 빨리 털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슬픔을 정성껏 앓아내는 것이다. 온 마음을 다해 아파하고, 온 힘을 다해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노라 소리 높여 우는 것. 그 격정적인 애도의 과정을 통해서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이별을 맞이할 수 있다. 잭슨 메인은 앨리에게 스타라는 왕관을 씌워주었지만, 앨리는 잭슨에게 이 노래라는 영원한 안식처를 선물했다.


글을 맺으며 다시 한번 마지막 장면을 떠올린다. 앨리의 얼굴이 클로즈업되고, 화면은 잭슨의 생전 모습으로 이어진다. 음악은 멈췄지만 여운은 공기 중에 떠돈다. 사랑은 형태를 바꾸어 기억으로 남고, 기억은 다시 예술이 되어 영원을 산다.

‘I'll Never Love Again’은 그 영원함에 대한 가장 아픈 증명서다. 만약 당신의 삶에도 다시는 사랑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상실의 순간이 찾아온다면, 숨기지 말고 이 노래를 크게 틀어보길 권한다. 앨리의 비명 같은 고백이 당신의 막힌 가슴을 뚫어줄 것이며, 그 눈물 끝에서 비로소 당신만의 새로운 시작이 싹틀 수 있을 테니까.


비극은 우리를 파괴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를 가장 고귀한 존재로 재탄생시킨다. 스타가 된 앨리가 잭슨의 가사를 전 세계에 알렸듯, 우리의 상처 입은 진심도 언젠가 누군가의 가슴에 닿아 선율이 될 것이다.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는 그 슬픈 거짓말이, 사실은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가장 뜨거운 약속이었음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영화가 끝나도 삶은 계속되고, 노래가 멈춰도 사랑의 잔상은 남는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전망대든, 잭슨의 낡은 차고안이든, 사랑이 머물렀던 자리는 늘 이토록 시리도록 아름답다.

keyword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