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stlife의 Swear It Again
우리는 모두 영원을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세상의 중력을 거스르게 하고, 단 한 사람의 확신만 있다면 어떤 거친 풍파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만 같던 청춘의 한 자락. 그때 우리 곁에는 늘 웨스트라이프의 목소리가 있었다. 그들의 데뷔곡 ‘Swear It Again’은 90년대가 저물어가던 1999년, 아일랜드에서 날아온 다섯 명의 청년이 세상에 던진 가장 정직한 서약이었다. 이 곡은 유행을 선도하는 파격적인 사운드도, 현란한 기교도 없었지만 오직 '진심'이라는 가장 고전적인 무기로 전 세계인의 심장을 관통했다. 시간이 흘러 수많은 트렌드가 명멸하고 음악의 형태가 바뀌었음에도, 우리가 여전히 이들의 선율 앞에서 마음이 무장해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 노래가 우리가 가장 갈구하면서도 두려워하는 '변치 않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곡의 도입부를 장식하는 마크 필리의 감미로운 보컬은 마치 조심스럽게 꺼내 놓는 속삭임과 같다. "사랑이 영원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망설임 없이 당신을 보며 웃었습니다."라는 서사는 사랑의 시작점에 서 있는 모든 이들의 보편적인 풍경이다. 하지만 이 노래가 단순한 찬가를 넘어 우리 가슴에 깊이 박히는 지점은, 사랑의 환희보다는 그 뒤에 올지 모를 '불안'을 응시한다는 데 있다. 상대방이 품고 있는 불확실성,
혹시라도 우리가 다른 연인들처럼 변해버릴지 모른다는 그 근원적인 공포를 이 노래는 외면하지 않는다. I'm never gonna say goodbye 라는 단호한 선언을 반복함으로써 그 불안의 틈새를 메운다. 이것은 치기 어린 장담이 아니라, 사랑의 유한함을 아는 자가 내뱉는 가장 비장한 약속이다.
음악적으로 ‘Swear It Again’은 보이스 밴드 전성시대의 정수를 보여준다. 다섯 멤버의 목소리가 차례로 쌓이며 후렴구에서 거대한 화음으로 폭발하는 구조는,
혼자만의 고백이 공동의 서약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청각적으로 재현한다. 특히 셰인 필란의 호소력 짙은 리드 보컬은 노래에 단단한 뼈대를 제공한다. 그의 목소리는 너무 가볍지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무겁지도 않다. 딱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어깨만큼의 듬직함을 가졌다. 90년대 팝 발라드 특유의 서정적인 현악 세션과 정직한 드럼 비트는 곡 전체에 안정감을 부여하며, 듣는 이로 하여금 이 약속이 결코 쉽게 흔들리지 않을 구조물이라는 믿음을 갖게 한다. 우리는 이 노래를 들으며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감정이 얼마나 견고한 물리적 실체가 될 수 있는지를 경험한다.
사랑은 시작보다 유지가 어렵다는 진부한 진리는, 역설적으로 '지속'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한다. 현대 사회는 모든 것이 빠르게 소비되고 교체되는 인스턴트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사람과의 관계조차 효율성을 따지고, 조금이라도 불편하거나 어긋나면 쉽게 손을 놓아버리는 냉소주의가 만연하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다시 한번 맹세하겠다(Swear it again)"는 외침은
대단히 반항적이고 낭만적이다. 한 번의 맹세로 충분하지 않아,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어제의 약속을 갱신하겠다는 태도. 그것은 사랑을 감정이 아닌 '의지'의 영역으로 끌어올린다. 웨스트라이프는 노래한다. 세상의 모든 연인이 헤어지고 사랑의 유효기간이 끝난다고 해도, 우리만은 그 법칙에서 예외가 되자고. 이 무모한 용기가 우리를 다시 꿈꾸게 한다.
브런치를 즐겨 읽고 기록하는 이들은 대개 삶의 흔적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흩어지는 순간을 붙잡아 영원히 박제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Swear It Again’ 역시 소리로 쓴 일기장과 같다. 1999년의 그들이 불렀던 이 노래를 지금의 우리가 다시 들을 때, 우리는 단순히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 시절 우리가 믿었던 사랑의 가치가 여전히 유효한지, 우리는 누군가에게 이토록 단단한 약속이 되어준 적이 있는지 스스로 묻게 된다.
좋은 음악은 거울과 같아서, 빛바랜 멜로디 속에 비친 현재의 내 모습을 직면하게 만든다. 그 시절의 순수함을 잃어버린 채 너무 영악해진 것은 아닌지, 상처받지 않으려고 사랑의 크기를 미리 조절하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삶은 결코 노래 가사처럼 순탄하지만은 않다. 실제로 많은 연인이 이 노래를 배경으로 영원을 약속하며 결혼했지만, 그들 중 누군가는 이별을 맞이했고 누군가는 지독한 권태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이 노래의 가치를 훼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현실이 팍팍하고 배신이 난무할수록, 우리는 더욱 간절하게 이 노래의 세계관에 매달리게 된다.
단 한 순간이라도 누군가에게 "내 사랑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온 마음을 다해 외쳤던 기억, 그 기억의 힘이 우리를 평생 살게 하기 때문이다. 실패한 약속일지라도 그 순간의 진심만큼은 우주에 남는 흔적이 된다. 웨스트라이프의 화음은 그 찰나의 진심들을 모아
거대한 울림으로 승화시킨다.
영화적 서사로 치자면, 이 곡은 기나긴 갈등 끝에 서로의 손을 잡고 수평선 너머로 걸어가는 엔딩 크레디트와 같다. 모든 불신과 오해를 씻어내고, 오직 두 사람만이 아는 언어로 주고받는 마지막 확인 도장. "당신은 내가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는지 묻지만, 사실 그 답은 이미 당신의 가슴 속에 있습니다."라는 가사는 사랑의 확신이 외부의 증명이 아닌 내부의 공명임을 시사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에게 확인받고 싶어 하지만, 진정한 안정은 상대의 눈동자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나를 발견할 때 찾아온다. 웨스트라이프는 그 안식의 자리를 마련해준다. 그들의 노래는 언제 들어도 편안한 고향 집 같다. 화려한 인테리어는 아니지만,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눈을 감고도 알 수 있는 익숙하고 따뜻한 공간 말이다.
이 곡이 발표된 지 25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다섯 소년은 중년의 신사가 되었고, 멤버 중 한 명이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등 팀 자체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하지만 그들이 다시 무대에 서서 ‘Swear It Again’을 부를 때, 팬들은 여전히 눈물을 흘린다. 그것은 그들이 여전히 노래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감동이기도 하지만, 그 노래가 담고 있는 메시지가 여전히 우리 삶의 가장 소중한 지표임을 재확인하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이 아는 그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할 것입니다." 이 문장은 나이가 들어도, 세상이 변해도 마모되지 않는 인간 영혼의 가장 고귀한 소망이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단 한 번만이라도 이런 존재가 될 수 있다면, 그 인생은 충분히 성공한 것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글을 맺으며 다시 한번 이어폰을 고쳐 쓴다. 마크의 미성으로 시작해 셰인의 단단한 목소리로 이어지고, 마지막에 멤버 전원의 합창으로 마무리되는 그 완벽한 흐름 속에 내 마음을 얹어본다. 사랑은 어쩌면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지치고 힘들 때, 세상 모든 것이 나를 등지는 것 같을 때, 누군가 옆에서 나직하게 반복해주는 것. 그 단조롭고도 위대한 반복이 우리를 살게 한다. 웨스트라이프는 그 반복의 힘을 믿었고, 그 믿음은 전 세계 수천만 명의 가슴 속에 무너지지 않는 약속의 집을 지었다.
오늘 밤, 당신의 소중한 사람에게 이 노래를 공유해보는 것은 어떨까. 굳이 긴 설명은 필요 없다. "I'm never gonna say goodbye"라는 구절이 나올 때 슬며시 손을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사랑은 때로 백 마디 말보다 한 곡의 노래로 더 선명하게 증명되기도 하니까.
우리가 다시 한번 사랑을 맹세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맹세를 지키기 위해 오늘을 성실히 살아낼 수 있다면, 우리 삶의 사운드트랙은 언제까지나 이토록 따뜻하고 웅장한 선율로 가득할 것이다. 세월은 가도 노래는 남고, 사랑은 가도 약속은 남는다.
그 약속의 힘을 믿는 모든 로맨티시스트에게 이 글과 웨스트라이프의 음악을 바친다. 그리고 저자는 여전히 영원을 믿는다. 이 노래가 흐르는 동안만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