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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네시스 Aug 28. 2023

홋카이도를 여행하는 뚜벅이를 위한 안내서 - 2

시로이코이비토(하얀연인)파크

신치토세공항에는 커다란 쇼핑몰이 함께 있는데, 아무래도 일본 자국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곳인 만큼 국내선이 쇼핑몰에 가깝고 국제선은 멀다. 국제선에 내린 나는 무빙워크를 한참을 지나서야 비로소 쇼핑몰이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그것만으로도 꽤나 지치는 느낌이었다. 쇼핑몰 구경은 돌아가는 날 하기로 하고 곧바로 JR 창구로 향했다. 미리 준비한 홋카이도패스 바우처를 준비하고 여권과 함께 제시했다. 3년 만의 일본행에 입이 얼어붙어 일본어가 잘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이전에 조금 공부를 해놔서 일본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띄엄띄엄 잘 써먹은 일본어였는데 코로나로 하늘길이 막힌 3년 사이에 혀가 일본어와 완전히 어색해져 있었던 것이다. 일본어가 안 나오니 급한 마음에 영어가 섞이기 시작했고, 나중엔 역무원은 영어로 말하고 나는 일본어로 대답하고 있었다. 여행이 끝나갈 때쯤에서야 일본어가 다시 입에 붙기 시작했지만 이미 많은 흑역사를 남기고 만 뒤였다. 



신치토세공항 풍경



사실 JR 홋카이도패스의 경우 첫날은 신치토세공항에서 삿포로역에 가는 용도로밖에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개시하면서 아깝긴 했지만 어차피 유효기간 5일짜리 티켓이라 5박 6일의 일정에서 첫날이던 마지막날이던 삿포로-신치토세공항역을 이동하는데 1회성으로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면 첫날 아예 홋카이도 동쪽으로 달려서 말로만 듣던 오호츠크해를 찍어보고 올 걸 그랬나 싶기도 하다.) JR 홋카이도패스는 지정석 지정 횟수에 제한이 없었기 때문에 삿포로까지 지정석을 바로 받아두었다. 사실 열차이용계획을 시간표까지 모두 세워둔터라 첫날 지정석을 모두 발권해 둘까 생각도 했는데, 날씨상황 등을 고려해서 일정이 바뀔 수도 있었기 때문에 각각 당일에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덕분에 아침마다 꽤나 바빴다.) 예전에 규슈 같은 경우에는 패스권을 역무원에게 보여주면서 통과하는 방식이었는데 홋카이도패스는 직접 개찰구에 집어넣어야 하는 방식이라서 혹시나 나가면서 뽑지 않고 두고 가버리는 불상사가 생길 우려가 있었다. 재발급도 되지 않는 고가의 패스권이었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북해도는 추울 거라는 예상과 달리 차창을 투과하는 직사광선을 맨얼굴로 듬뿍 받아내야 했고 등이 흥건하게 젖어들고 나서야 삿포로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신치토세에서 삿포로로 가는 열차는 북쪽으로 달리기 때문에 오른쪽 창가자리에 앉으면 오전에는 피부가 따꼼하다.)  



JR패스 교환 / 삿포로역으로
삿포로역 스텔라 플레이스



입국 시 방역과 관련해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넉넉하게 삿포로역에 3시쯤 도착할 것이라 생각하고 계획을 짜두었는데 정작 역에 도착한 시각은 12시를 갓 넘긴 상황이었다. 원래 계획표상으론 3시에 숙소에 도착하여 체크인을 하고 짐을 내려놓은 뒤 가벼운 마음으로 저녁에 모이와야마 전망대에서 야경을 감상하는 것이 목표였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이틀차 오전 일정으로 잡아두었던 시로이코이비토파크 관람 일정을 미리 땡겨오기로 했다. 이틀차 오전의 비어버린 시간은 숙소에 가서 다시 계획하기로 하고 곧바로 JR라인을 타고 핫사무역으로 향했다. (자꾸 인터넷 밈인 "일해라 핫산"이 생각나는 역 이름이었다.) 사실 삿포로역에서 시로이코이비토파크까지는 JR이 아니라 사철인 도자이선을 타고 미야노사와 역으로 가는 것이 훨씬 가까운데 굳이 JR패스를 이용해서 가보겠노라며 JR을 탄 것이다. 290엔을 아껴보자고 한 짓인데 발바닥이 아작 나고 있었다. 카메라와 삼각대 등이 들어가 있는 관계로 가방 무게만 이미 10kg가 넘어가고 있었는데, 그걸 숙소에 좀 덜어두지도 못한 채로 이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걸어도 걸어도 나오지 않는 시로이코이비토 파크. 나중에 구글지도로 계산해 보니 1.7km를 쌩으로 걷고 있었다. 그러다 시로이코이비토 초콜릿팩토리 간판을 보았을 때 어찌나 반가웠는지 모르겠다. (물론 돌아갈 때는 도자이선을 타고 갔다.) 핑크빛 알록달록한 벽돌로 장식된 유럽스타일의 건물과 높은 시계탑까지, 유튜브에서 보던 바로 그곳이었다.  



시로이코이비토파크 간판
시로이코이비토파크 주변 풍경



이전에 8번의 일본여행을 하면서 공항에서 자주 보았던 것이 바로 시로이코이비토(하안연인)라는 과자다. 첫 일본 방문지는 도쿄였는데 그때는 도쿄바나나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이라 그것만 사 왔었다. 그 다음번 여행이 되어서야 정보가 좀 더 많아져서 시로이코이비토도 사 왔던 기억이 난다. 홋카이도에서 1969년에 만들기 시작한 이 과자는 얇은 초콜릿을 역시나 얇은 쿠키 두 개 사이에 끼워 넣은 형태의 달달구리로 우리나라의 쿠크다스를 생각하면 얼추 비슷하다. 쿠크다스보다는 조금 단단하고 초콜릿도 두꺼워서 먹는 맛이 조금 다르긴 하다. 홋카이도에서는 어딜 가도 볼 수 있는 과자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공항 기념품점에서나 볼 수 있는 이른바 홋카이도 특산물이다. 이런 시로이코이비토를 생산하는 공장 옆에 견학을 겸해 테마파크 비슷하게 조성한 곳이 바로 시로이코이비토 파크다. 아기자기하게 조성해 놓은 견학코스를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코스인 판매점에서 지갑을 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시로이코이비토파크 정원 풍경



시로이코이비토파크의 관람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내부에서 진행되는 공장견학 및 역사 등에 대한 코스이고, 다른 하나는 야외에 마련된 정원을 거닐며 소프트아이스크림을 먹고 매시간마다 시계탑과 주변에서 시작되는 인형극 공연을 보는 것이다. 전자는 돈을 따로 내야 하는데 그 돈으로 아이스크림을 더 먹겠노라며 손쉽게 단념할 수 있었다. 야외 정원에 도착하자마자 아픈 발바닥을 쉬일 겸 벤치에 앉아 소프트아이스크림을 하나 시켰다. 홋카이도는 유제품이 유명한 고장으로 갖가지 특산물들이 있지만 내 최애는 역시 소프트아이스크림이다. 홋카이도 여행 중에 하루에 하나 이상씩은 꼬박꼬박 수혈했다. 야외에서 판매하는 시로이코이비토파크의 소프트아이스크림은 작은 것은 400엔, 큰 것은 550엔이었다. 나는 곱빼기주의자라 당연히 큰 것을 시켰다. 우유와 초코 두 맛을 다 보고 싶어서 믹스를 시켰는데 물론 맛은 있었지만 우유 본연의 맛을 느끼기에 조금 아쉬웠다. 다음에는 작은 것 두 개를 각각 먹어봐야지 하고 다짐했다. (아니, 두 개 다 큰 것으로 먹어야겠다!) 그렇게 앉아서 아기자기한 테마파크를 보며 힐링을 하고 있을 때 시계가 2시를 가리키며 팡파르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시계탑을 가리고 있던 커튼이 걷히고 그 안에서 동물과 사람들이 이동하며 음악을 연주했다. 저쪽 벽에선 요리사들이 나와 오페라인듯한 노래를 불러 젖혔고, 이쪽 벽에선 나팔을 불며 앞뒤로 춤을 추었다. 바닥의 작은 새집에선 새들도 리듬에 맞춰 춤을 추었다. 어디선가 비누거품이 나오면서 시계탑을 감쌌다. 순간 여기까지 오면서 투덜거렸던 고생길은 잊어버리고 동화 속에 들어와 앉아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 세계가 동화라면 나는 분명 아기돼지 삼 형제 중 막내일 테지. '벽돌집을 짓고 따듯한 곳에서 소프트아이스크림을 먹을 거야.'라는 상상을 하며 그 순간을 즐겼다.   




시로이코이비토파크 내부
소프트아이스크림


정원의 시계탑을 중심으로 매시간마다 인형쇼가 펼쳐진다


고양이가 특징인 곳이라 화장실도 고양이 마크가 그려져있다


공장 외관이 꽤나 멋들어진다



사실 시로이코이비토파크에 큰 관심을 가지고 간 것은 아니라서 가볍게 관람을 마치고 바로 숙소로 이동을 시작했다. 올 때 까짓 거 좀 걷지 했던 마음과는 다르게 광활한 삿포로에 기가 꺾여있던 나는 (이미 갖고 있는 패스로) 따로 돈을 내지 않아도 되는 JR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사철 도자이선에 탑승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역이 있는데 나는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안 그래도 잠도 많이 못 자서 피곤한 몸인데 바보 같은 짓을 했구나 하며 290엔으로 만끽하는 지하세계의 문명에 감탄했다. 


내가 숙소로 정한 곳은 '플랫 호스텔 케이큐 삿포로 스카이'라는 곳이었다. 3박 4일에 총 5만 6천 원 정도 하는 곳으로 나 같은 헝그리 여행자에게 적합한 곳이었다. 대충 스스키노라는 삿포로의 번화가 근처에 있다는 것만 알고 있는 상태라서 도자이선으로 닿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역인 오도리역에서 내려 구글지도로 검색하고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그 유명한 삿포로 TV타워도 얼핏 스쳐가고 커다란 상점가도 지나갔다. 한창 도로공사 중인 곳을 지나 플랫호스텔 간판을 확인하고 안에 들어가 예약한 바우처를 내미니 이곳이 아니란다. 물어보니 플랫 호스텔 케이큐가 하나 더 있단다. 내가 예약한 곳은 '스카이'고 여기는 '이치바'란다. 어쩐지 동선이 되게 좋은데 저렴하다 했다. 죄송하단 인사를 꿉뻑 올리고 잽싸게 튀어나와 다시 검색을 해보니 몇 블록은 더 걸어가야 하는 곳에 있었다. 아까 시로이코이비토파크까지 걸어갔던 여파가 아직 남아있었는데 하늘이 노래졌다. (오도리역에서 내리면 안 되는 거였다.) 길바닥에서 잠들 순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또 터덜터덜 걸어갔다. 덕분에 삿포로 시내의 풍경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때 니조시장 옆을 지나갔는데 그 유명한 유바리멜론을 보고도 지나쳐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홋카이도에 있는 동안 유바리메론을 먹어볼 기회는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다. 오늘의 교훈. 눈에 띄면 나중에 말고 지금 먹어라!  



삿포로역에서 숙소로 걸어가며(TV타워, 니조시장, 아케이드 등)



숙소는 삿포로 중심지에서 꽤나 벗어난 곳에 있었다. 그래도 도착한 곳에서 발견한 숙소가 외관상 꽤나 깔끔해 보여서 안심할 수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편의점도 하나 있어서 손쉽게 군것질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체크인을 하면서 JR티켓창구에서 어버버거렸던 기억이 떠올라 불안한 마음에 시작부터 영어를 썼는데 카운터에 계신 분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오랜만의 여행에서 오랜만에 느껴보는 언어장벽이었다. 일본어를 다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굴뚝같이 들었다. 잘생긴 청년이었지만 고객응대가 꽤나 차갑다고 느껴질 정도로 미소 없는 친구였는데 그래도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들어주고 부탁도 잘 들어주어서 속은 따뜻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게 요즘 말하는 냉미남이란 것인가. 




첫번째 숙소



도미토리의 1층에 배정을 받아 짐을 풀었다. 갈아입을 옷이며 각종 잡다한 물건들을 침대에 늘어놓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저녁에 여행정보를 검색할 생각으로 들고 온 태블릿이 자물쇠가 달린 사물함에 들어가지 않아 카운터에 맡겼다. 덕분에 한결 가벼워진 가방에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욕심은 고통의 근원이라던 이야기가 다시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그렇게 바락바락 싸들고 다녔던가.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했다. 아마 나는 시간과 공간만 바뀐 어디에선가 똑같이 무거운 가방을 메고 똑같은 후회를 다시 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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