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이 기대가 컸는데 실망이 없다?
홋카이도 3일 차 계획은 비에이였다. 홋카이도에서 가장 기대가 컸던 곳이고, 그 큰 기대를 더더욱 충족시켜 주었던 곳이다. 사실 이곳에 가는 방법을 두고 상당히 고민이 깊었다. 뚜벅이가 비에이를 여행하는 방법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버스 or 택시투어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버스투어는 6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드는데 거리를 생각해 보면 저렴한 편이고 삿포로에서 출도착을 해서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패키지로 묶여 다녀야 하기 때문에 한 번에 많은 사람들이 이동해야 하고 마음에 드는 여행지에 더 머물거나 할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택시투어는 2시간에 12만 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 가격이 만만치 않고 비에이역까지 이동을 따로 해야 한다는 점이 아쉽지만 원하는 장소에 접근성이 좋고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었다. 물론 두 가지 방법 모두 내가 생각하는 자유로운 여행에선 좀 벗어나있었던 데다 교통비는 비행기값과 JR티켓만으로 이미 너무 많이 썼다는 생각이 들어서 두 방법 모두 손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비에이까지 JR로 이동한 뒤 버스와 자전거를 이용해 여행을 하기로 계획했다. 다만 자전거 대여소가 비수기에도 운영이 되는지 여부를 알 수 없어서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도 전화 걸기가 무서운 나는 일본에서도 전화를 해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삿포로에서 JR로 비에이역에 가기 위해선 아사히카와 역을 경유해야 했다. 아침 6시35분에 출발하는 열차가 가장 이른 기차여서 다섯 시반쯤 일어나 샤워를 하고 곧바로 나왔다. 또다시 삿포로역까지 긴 행군의 시간을 가지면서 더 이상 이 도시가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벌써 3일째 이 거리를 똑같이 왕복하고 있지 않은가. 3일이란 시간은 삿포로를 동네 마실처럼 생각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시계탑이니 TV타워니 하는 곳들을 지나쳐 삿포로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익숙하기 그지없는 JR티켓 판매소에서 지정석을 예약해 티켓을 받았다. (삿포로에서의 생활이 진짜 삶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비에이행 열차는 지정석이 없어 예약이 안된다고 하여 조금 아쉬웠다. 지정석 무제한인 홋카이도 JR티켓이 왠지 제값을 하지 못해 보였달까. 비싸게 샀으니 비싼 값을 해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아사히카와행 열차는 삿포로에서 북쪽방향으로 달렸다. 그 말인 즉슨 오른쪽 창가는 동쪽이므로 일출을 직방으로 얻어맞는 곳이라는 소리다. 우리나라보다 동쪽에 있는 홋카이도이기 때문에 해가 더 일찍 뜬다는 사실도 더해서 나는 아침부터 부족한 광합성을 열심히 할 수 있었다. 나에게 사실 가을 홋카이도의 기차는 전체적으로 더웠던 것으로 기억되는 이유다. 지정석 열차칸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왼쪽 창가자리로 옮겨 앉을까 생각도 했지만 나중에 타는 사람이 있을까 봐 그리 하지도 못했다. 물론 아사히카와에 도착할 때까지 추가로 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원칙주의의 나라에선 원칙을 따라주는 게 맞다.
아사히카와에 도착해서 비에이행 열차를 타기까지 시간이 약간 남아서 역 주변을 돌아보았다. 아사히카와역이 생각보다 되게 큰 것이 놀라웠다. 사실 홋카이도 제2의 도시라고는 하지만 인구 33만짜리 작은 도시일 뿐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작은 지방도시에 서울역같은 으리으리한 역사가 있는 셈이다. 왜일까 생각해 보다가 아사히카와 동물원에 생각이 닿았다. 일본에서 세 번째로 방문객이 많고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동물원이다. 나는 사실 홋카이도에 올 생각을 하기 십수 년도 더 전에 이 동물원의 존재를 알았는데 바로 가챠 덕분이다. 당시에는 "행동전시"로 유명한 일본의 동물원이라고 소개하면서 나온 가챠였는데 나는 그저 물개가 귀여워서 샀던 기억이다. 다른 동물원들이 우리 안에 갇힌 동물을 보여주는데 그치고 있다면 아사히카와 동물원은 동물의 습성을 분석하여 특유의 행동패턴을 보여준다는데 그 유명세가 있다. 예를 들어 무리 지어 걸어 다니는 펭귄의 습성을 이용하여 관객들 사이로 행진을 한다던가, 얼음구멍 사이로 헤엄치고 호기심이 많은 물범의 습성을 이용하여 물이 들어찬 유리통로를 기둥처럼 두어 사람도 물범을 구경하고 물범도 사람을 구경할 수 있게 해 두었다던가 하는 것들이다. 덕분에 무력하게 그저 하루하루를 보내는 동물들이 아닌 활발한 상태의 동물들을 구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연 300만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동물원이 된 듯하다. 동물원을 방문할 만큼 시간도 없었을뿐더러, 언젠가부터 동물원의 동물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왈칵 드는 사람이 되어버려서 이번에는 여행지에서 제외해 두었다.
역 밖에는 가을이 잔뜩 내려앉은 개천이 멋들어지게 흐르고 있었다. 대자연의 향기가 솔솔 나기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나무 한 그루 보기 쉽지 않은 대도시에서의 삶은 이런 물 풍성한 개천 하나만으로도 대자연을 느끼게 만드는 것 같다. 사진을 좀 찍고 돌아다니다가 역으로 들어가 편의점에서 샌드위치와 내가 애정해 마지않는 오후의홍차를 사서 아침식사로 허겁지겁 먹어치우고 열차에 올라탔다. (한국에선 3천 원 정도 하니까 일본에서 먹으면 먹을 때마다 천 원 이상 버는 기분?)
전날에 이어 다시 한 량짜리 열차를 타고 시골길을 달렸다. 어제와 다른 점이라면 깊은 산 속 오솔길을 따라 달리는 것이 아니라 너른 들판을 달렸다는 것이었다. 여름 한 철 농사가 끝나서인지 갈아엎은 밭들이 줄을 이어 보였다. 아마도 여름에는 푸릇푸릇하거나 오색 찬란한 무언가가 뒤덮고 있었을 것이다. 수확이 끝난 밭에 작물들이 남아있으면 땅의 영양소가 헛되이 소비되기 때문에 곧바로 갈아엎는데 이렇게 흙과 섞인 식물 잔여물들은 비료의 역할까지 하게 된다. 비옥한 땅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다른 이들의 사진에선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검은색 흙밭의 모습에서 홋카이도의 튼실한 작물을 상상하게 되었다. 그렇게 부지런히 달려 비에이역에 도착했을 때 같이 내리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단 둘이었다. 그 한 사람마저 어디론가 가버리고 나는 홀로 역 앞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초 유명 관광지의 비수기 풍경에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바로 정신을 차리고 관광안내센터로 직행했다.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시로가네 온천까지 가는 버스 시간표였다. 버스를 타는 위치까지 확인하고 밖으로 나와 눈에 들어온 버스정류장 표지판을 향해 걸어갔다. 버스가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아서 시간을 잘 맞춰 탑승해야했다. 이런 곳에선 버스를 한 번 놓치면 한두 시간은 기본으로 날려버리게 되는지라 아귀가 맞아떨어지게 움직여야 했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커다란 실수를 두 번에 걸쳐 연속으로 해버렸다. 하나는 시내버스시간표가 적혀있다고 생각했던 버스정류장이 스쿨버스 정류장이었던 것이다. 어쩐지 관광안내소에서 건네준 버스 시간표와 너무 차이가 심하다고 했는데, 시간표형태의 무언가에 홀려버린 바람에 스쿨버스 앞에서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정류소의 시간표가 업데이트되지 않은 것이라고 철떡같이 믿고 있었다.) 그래도 버스가 도착하기 전에 가까스로 알아차린 덕분에 곧바로 제대로 된 버스정류장으로 향할 수 있었다. 여기서 두 번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우측통행에 익숙한 한국인이라 아무 생각 없이 버스가 갈 것으로 예상되는 방향의 정류장에 서버린 것이다. 일본은 좌측통행이기 때문에 가려는 방향이 있다면 한국과 달리 건너편의 버스정류장에 서야 했다. 이 정류장의 시간표도 관광안내소의 시간표와 5분 정도 달랐지만 그 정도는 실수였겠지라고 무심코 생각했는데 건너편에서 제시각에 맞춰 오는 버스를 보고 나니 내가 건너편에 서있다는 사실이 대뇌의 전두엽을 스쳐갔다. 잽싸게 길을 건너 버스정류장에 서니 먼저 기다리시던 어르신이 "이 멍청이는 뭐지?"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시는 것 같았다. 실제로는 안 그러셨겠지만 내 마음속 창피함이 그렇게 느껴지게 한 것 같다. 차가 많은 동네였다면 시간에 맞춰 건너가는 것은 불가능했으리라.
버스를 타고 시로가네 온천에 도착하니 사람이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이른 시간이기도 했고 버스투어가 도착하기 전이라서 그랬나 싶기도 했다. 멋진 관광지를 혼자서 보는 것 만큼 짜릿한 경험은 잘 없다. 아주 오래전 불국사를 찾았던 때가 생각났다. 렌탈한 스쿠터를 타고 새벽에 도착한 불국사엔 관광객이 하나도 없었다. 마침 전날 내린 눈이 수북이 쌓여있었는데 스님 한 분께서 천천히 싸리비로 길을 쓸며 걸어가고 계셨다. 당시엔 좋은 카메라가 없어 그 장면을 담을 수 없었지만 인생에서 두고두고 그 장면을 떠올릴 만큼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일찍 여행을 다니면 그런 장면을 종종 만날 수 있어서 부지런을 떨곤 하는데 이날 오랜만에 그런 고요한 풍경을 다시 마주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비에이지역은 꽤나 오래전부터 온천이 발견되어 운영되던 곳이다. 특히 도카치다케를 비롯한 2천미터 전후의 산들이 연속해서 솟아있는 도카치다케연봉은 그 자체로도 이미 장관이지만 활화산이기 때문에 분화구에서 나는 증기까지 더해져 엄청난 풍광을 자랑한다. 과거에 두 곳의 온천이 이 산자락 아래 위치하고 있었는데 1926년의 대분화로 진흙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와 두 마을을 덮쳐 많은 사상자를 냈고 동시에 온천이 매몰되고 말았다고 한다. 그러다 1950에 온천이 새로 발견되자 당시 촌장이 "진흙에서 귀중한 플래티나(백금)가 발견된 것 같다."라고 말한 것에서 유래하여 시로가네(白金) 온천이라 명명되었다고 한다. 멋들어진 리조트와 여관이 들어서있지만 내게는 아직 부담스러운 가격이라서 이곳에서 하루를 묵을 순 없었다. 하지만 멋들어진 풍경을 마주하고 보니 언젠가는 꼭 다시 돌아와 하루를 묵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언젠가는이 이뤄지는 건 도대체 언제인가...)
리조트들이 있는 윗방향이 아닌 그 옆의 협곡쪽으로 걷다 보면 철제 다리가 하나 나타나는데 이곳을 내가 찾은 목적이 있다. 다리가 뭐 대단하다고 이것을 보러 왔냐 싶지만 진짜는 이 다리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이다. 비에이라고 하면 반드시 찾아봐야 할 장소인 "흰수염폭포"가 바로 이 다리에서 보이기 때문이다. 화산지형의 특성상 비가 오거나 눈이 녹은 물이 지표면을 따라 흐르지 않고 지면에 우선 흡수된다. 산 사이사이에 갈라진 틈을 따라 지하수를 형성해서 따라 내려오다 어딘가에서 갑자기 바깥으로 향한 틈새로 흘러나오게 된다. 제주도에서는 용천이라고 해서 수원지 없이 갑자기 해변에서 개천이 나타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사실 주변에 물이 나올 만한 곳이 없는데 갑자기 나타나게 되는 물줄기라서 그 자체로도 신기한데, 낙차까지 있어버리면 이건 반칙이다. 협곡을 지나는 다리에서 보면 아무것도 없던 벽면에서 갑자기 폭포가 생겨나있다. 작은 물줄기가 여러 차례 갈라지면서 하얀 물거품의 궤적을 남기고 그것이 벽면을 가득 채워 마치 하얀 수염이 가닥가닥 떨어지는 것 같이 보인다. 그래서 시로가네(흰 수염) 폭포라는 이름이 붙었다. 아무도 없는 그 철제다리에서 나는 입을 떡 벌리고 그 풍경을 눈에, 카메라에, 가슴에 담았다.
흰수염폭포를 한참 구경하고 난 뒤에 다리 건너편의 터널이 궁금해졌다. 산 쪽 방향으로 구불구불 올라가는 계단을 터널로 만들어놓은 형태였는데 위에 무엇이 있다고 어디서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래도 관광지 바로 옆에 이렇게 본격적인 시설이 있다는 것은 위에 볼만한 것이 있을 것이라는데 생각이 닿아서 무작정 오르기 시작했다. 오르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는데 중간중간에 벌레 시체들이 놓여있어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혼자 여행은 호젓하기도 하지만 가끔 무섭기도 하다.) 계단수는 286개로 생각보다 많았는데 중간중간 쉼터의 벽에 퀴즈가 붙어있고 그 답이 다음번 쉼터에 있어서 잠시 숨도 돌릴 겸 생각도 하게 되었다. 동시에 나 자신이 조금 뿌듯해졌다. '이제 이 정도 일본어는 읽어지기도 하는군' 하면서 말이다.
숨이 턱을 지나 혓바닥쯤 차올랐을 때 계단의 끝이 보였다. 순간 자물쇠가 보여 문이 닫혀있나 싶었다. '이럴 거면 입구부터 막았어야지!'하고 화가 날뻔했는데 다행히 조금 뻑뻑하게 닫혀있었을 뿐 문이 열렸다. 산 중턱에 잘 깎아놓은 넓은 풀밭과 함께 세련된 건물 하나가 나타났다. 도카치다케 전망대라고 생각하고 입구를 기웃거리자 안내하시는 아주머니께서 나오셨다. 슬리퍼로 갈아신으라고 하시면서 뭐라고 말씀하셨는데 잘 알아듣지 못했다. 아마 영상을 보겠냐고 물어보신 것 같은데 내가 괜찮다고 해버렸던 것 같다. 안내하시는 분이 크게 당황하시는 게 느껴졌다.
나중에 알게된 것이지만 이 건물의 정체는 "도카치다케화산 사방정보센터"였다. 아직도 열심히 분화 중인 도카치다케에선 앞선 대분화에 따른 진흙사태로 많은 인명과 재산을 잃었던 적이 있다. 때문에 화산을 항상 감시하고 흘러내리는 진흙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할 여러 가지 방안을 강구했다. 그중 하나가 사방댐이다. 쏟아져 나오는 진흙이나 모래를 막기 위해 가운데가 뚫려있는 댐을 지은 것이다. 가운데가 뚫려있는 이유는 전부 막아놓으면 쌓이다 넘쳐 제 역할을 못하기 때문이다. 진흙과 함께 쏟아져내려 온 돌무더기나 나뭇가지 등이 그물 같은 역할을 하여 큰 덩어리들을 걸러주고, 진흙은 그 사이로 속도를 잃은 채 빠져나와 다음 사방댐에서 또 같은 일이 반복된다. 이 과정에서 화산쇄설류는 힘을 잃고 사람들이 대피할 시간을 벌어주거나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다. 아무튼 이런 역할을 총괄 감독하는 곳이 사방정보센터이고,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제공하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 사방정보센터의 역할에 대한 영상이었는데 내가 괜찮다고 해버렸으니 안내인분의 당황이 이해가 간다. 영어가 되셨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아무래도 관광 목적의 건물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바라는 것은 욕심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설픈 일본어와 손짓발짓으로 영상실에 들어가 영상을 관람했다. 널찍한 시청실을 혼자 전세내고 보고 있자니 VIP가 된 느낌이었다.(나 특별대우 좋아하네.) 다행히 한글자막 영상이 준비되어 있어서 크게 공부가 되었다. 도카치다케의 형성과정과 발생했던 화산폭발, 그에 따른 사방센터의 건립까지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좋은 자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