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 열리는 팝업 게스트 하우스의 오픈 밋업,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글을 우연히 접했다. 평소 호기심이 생기는 것들은 모두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지라, 그리고 올해 나만의 여행의 키워드인 '로컬'과 너무도 어울리는 주제라서 지원서를 쓰게 되었다. 며칠 뒤 참여자로 선정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받았다. 가을을 떠나보내고 겨울을 시작하는 이 시기에 경주로 떠나게 되었다. 제주도 여행에 이어 바로 떠나게 되어 기차표 예매를 미루다가 결국 새벽 6시 반 기차를 타야만 했다. 신경주역에서 경주 시내로 가는 버스 배차간격이 워낙에 길고 예측하기 어려워서 걱정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바로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순조로운 여행의 출발이었다.
도착한 시간은 9시 반이었지만 가게도 열지 않고 사람들도 지나지 않는다. 천마총과 대릉원 후문 길을 따라 캐리어를 끌고 걸으며 대강 사진을 찍어보았다. 단풍 든 나무들과 낙엽과 가을 하늘, 고분의 곡선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사진이 나왔다. 고분이 내려다 보이는 카페에서 차 한잔을 마시며 기다리다가 숙소에 짐을 맡기고 본격적인 경주 황리단길 여행을 시작했다.
두 달 전쯤부터 인물사진에 취미가 생겨 카메라와 삼각대를 챙겨 들고 출사에 나섰다. 미리 알아둔 대여점에서 한복을 빌려 입고 머리도 했다. 황리단길 주변에 사진 찍을 만한 곳은 대릉원과 첨성대가 있었는데 줄을 서서 사진을 찍어야 했기에 첨성대로 향했다. 도보로 첨성대에서 넉넉히 사진을 찍고 돌아오려면 한복은 두 시간은 빌리는 것이 넉넉하다. 좀 더 이른 가을이었다면 핑크 뮬리로 둘러싸인 첨성대를 볼 수 있었을 텐데, 추워진 날씨가 아쉬웠다. 하지만 잘 익은 감나무와 모과나무를 볼 수 있어 좋았다. 황리단길에는 셀프 사진관들과 흑백 사진관들이 많았는데 셀프 사진관에서 한복 입은 모습을 남기고 한복 체험을 마무리했다.
이상한 일상
딱 체크인 시간에 맞춰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인 황남 디귿집은 디귿자 형태로 된 한옥집이었고 온돌방과 도미토리로 구성되어 있었다. 밖에서도 넓은 창을 통해 다이닝 룸이 들여다 보여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궁금해하며 들여다보곤 했다.
호스트이신 일상님은 차 한잔을 내어주시며 프로그램과 숙소 설명을 해주셨다. 경주 황리단길에서 진짜 경주, 옛 신라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신 것이 느껴졌다. 손 지도 4장을 받았는데 이 손지도를 사용하면 스마트폰과 길 찾기 앱에서 잠시 해방되어 동네를 여행할 수 있다. 또 지도에 있는 큐알코드를 찍으면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맛집, 볼거리, 카페 등의 데이터도 볼 수 있게 연결되어 있었다. 식당의 철학이나 비하인드 스토리 등과 쉽게 알기 힘든 정보들이 저장되어 있어 아주 유용했다. 나 이외에도 이상한 일상에는 6명의 게스트가 더 있었는데 우리들은 600 대 8의 경쟁을 뚫은 행운아들이었다. 우리들을 선택해 주신 이상한 일상과 경상북도청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워케이션'을 주제로 휴식을 기획하신 의도와는 조금 다르게 퇴사자들이 더 많았다. 우리들은 전부 외향적인 사람들이었고 방청객 같은 리액션의 소유자들이었고, 여행과 사진에 진심이라는 공통점을 갖거 있었다. 만난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친해진 우리들은 저녁도 함께 먹고, 와인과 맥주를 고르며 온종일 함께했다.
오직 오픈 밋업 멤버들을 위해 준비된 프로그램인 경주의 밤 티타임에 참여했다. 경주 로컬 디저트와 신라 전통 추출 방식의 발효차를 준비해주셨다. 현미, 쑥, 단호박 맛의 떡과 약과로 이루어진 간식상은 색 조화부터가 예뻤다. 블루베리 잎으로 만든 차는 건강해지는 맛이었다. 발효차는 레몬과 로즈마리를 블랜딩 해서 만든 차였는데, 향은 식초 같은 냄새가 났지만 맛에서는 생각보다 신 맛이 덜했다.
정신없이 사진을 찍느라 차가 식어서 아쉬웠지만 너무 힐링되는 시간이었다. 간식 하나하나의 맛을 음미하고 차를 마시면서 향과 맛을 천천히 느껴 볼 수 있음이 좋았다. 약과는 아무 날이나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님이 구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한다. 일상님이 해주시는 간식과 차에 대한 이야기를 상상하며 즐길 수 있어 더 좋았다.
야경 출사팀 결성
날이 점점 쌀쌀해져서 다른 게스트 분들과 다이닝룸에 들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문득 게스트 히히님이 '동궁과월지에 가서 야경을 보고 와야겠다'라는 말을 했다. 동궁과월지의 야경을 떠올린 순간 즉흥적으로 함께 가고 싶어서 자리에서 일어나니 웬걸 다른 2명의 게스트들도 가고 싶다고 했다. 밤 9시가 가까운 시각, 카메라와 삼각대를 챙겨 동궁과 월지로 향했다.
동궁과월지는 황리단길에서 차로 7분쯤 걸렸고, 밤 10시면 소등을 한다고 했다. 서둘러 야경을 보기 위해 들어갔는데 안압지의 화려한 조명이 연못에 반영된 것이 정말 아름다웠다. 11월의 경주는 일교차가 매우 커서 정말 손이 뻣뻣해질 정도로 추웠지만 사진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었다. 솜님과 써니 님도 평소 사진 취미가 있어서 함께 사진을 찍는데, 출사 동호회나 알고 지내던 사진작가님들 외에 함께하는 출사는 처음이라 즐겁고 반가웠다. 처음 만난 누군가와 공통분모가 있다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