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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시 Oct 28. 2019

인생에는 노잼 시기가 있다

뭘 해도 재미가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은 시기

https://www.flickr.com/


"인생 노잼이다."


처음 친구에게서 이 말을 들었을 때,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 재미있으려고 사는 건데 노잼이라니, 그럼 이 친구는 이제 뭘 보고 삶을 살아야 하나? 나는 친구를 향해 말했다. 아냐, 세상에 찾아보면 재미있는 게 얼마나 많을 거야. 그리고 나는 절대 노잼 시기에는 빠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후 노잼 부정기가 찾아왔다.


"내 좌우명은 신나게 살자로 할래."


언니는 내 선언에 '너무 추상적이지 않냐'고 말했다. 내 선언을 부정당한 것 같아 언니에게 괜히 심통을 부렸다. '신나고 재밌게 지낼 거라는 마음가짐으로 있자는 말이 내 일상을 재미있게 만들 거다'라고 하며, 언니에게 괜히 떼를 썼다.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난 어느 주말, 주말에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뭘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시간순삭 개미지옥이라는 유튜브를 봐도 별로 흥미가 당기지 않고, 새롭게 드라마를 봐도 재미가 없었다. 1분 1초가 가는 건 아까운데, 그 1분 1초를 채울 만한 일이 있는지는 아무리 해도 알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면 오늘만 그런 게 아니라, 며칠 전, 몇 달 전부터 그랬다.


왜 이러지 요즘? 그 순간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인생 노잼이다."


그제서야 내가 지금 '노잼 시기'를 겪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


인생의 노잼 시기. 뭘해도 재미가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 보이는 시기다. 아무런 의욕도 없고 시작하는 것도 부담스럽고, 실제로 힘겹게 시작을 해봤는데도 재미가 없다. 시간이 가는 것은 아까운데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은 모두 재미도 없고 이게 나한테 무슨 도움이 될까 싶다. 그러면서도 과연 나한테 도움이 될만한 게 뭔지 조차도 알 수가 없다.


나는 항상 나이드는 것을 두려워했는데, 그 이유는 내가 더 이상 빛나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인생을 마주하는 게 막막해질까봐였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노잼 시기가 되니, 늙는 것이 두려운 것도 더 배부른 문제고 이제 그 시기가 잘 그려지지조차 않는다. 비교적 젊은 지금의 나도 이미, 더 이상 빛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우울감에 빠져서 울고 싶어졌다.


***


하지만 나는 항상 내게는 글이 있고, 글을 계속 쓰는 한 인생의 재미 역시 계속 될 거라고 생각해왔었기에, 한 번 글을 쓰며 내 심경을 정리해보자는 발상도 할 수 있었다. 글로 마음을 정리하다보니 세 가지를 알 수 있었다.


1. 노잼시기를 '시기'로 볼 수 있다는 것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가 일반적으로 겪는 문제라는 것이다.


실제로 언니에게 말했더니 언니가 눈을 번뜩이며 '나도!'를 외쳤다. 자기도 요즘 웹소설 몇 편 말고는 아무것도 재미도 없고, 드라마도 이제 재미가 없는 것 같고, 회사도 재미도 (원래) 없고, 이제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다른 친구들에게도 "요즘 뭘하면서 시간을 보내야할지 모르겠어." 라고 했더니 "노잼 시기구나?"라고 했다. 즉,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 모두가 간헐적으로 거치는 시기라는 것이다.


이러한 무기력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일반적인 현상으로 보는 것은 극복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문제의 원인을 자신 내부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 귀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극복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단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생각에서는 탈피할 수 있었다.


2. 목표의 상실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


무언가를 열심히, 혹은 절박하게, 혹은 욕심을 가지고 할 때는 노잼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그럴 틈이 없기 때문이다. 무기력과 '노잼'은 목표가 상실된 상태에서 발생한다. 회사에 다닌지 2년이 채 안 된 사회초년생도 마찬가지다. 


사회초년생이라는 시기는 직장을 얻는 동시에, 직장을 얻는다는 목표를 잃어버린 시기이기도 하다. 일이 곧 자아실현으로 연결된다면야 좋겠지만, 직장은 그저 직장일 뿐인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사회 초년생에게는 또 다른 목표가 필요하다.


물론 그 목표를 잡는 것 부터가 노잼으로 느껴지기에 조금 노력이 필요하긴 하다. 의도적으로라도 단기, 중기, 장기의 목표를 세워보자. 가령 '단기 : 이번 주 내로 글 세 편 쓰기. 중기 : 뿌듯함을 느낄 수 있을 만한 프로젝트 기획해 보기. 장기 : 인생계획 세우기'.


물론 모두가 나의 아이덴티티를 강하게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되어야 더욱 동기부여가 될 것 같다. 


3. 장기목표에 가까워지기 위한 자극제를 노력해서라도 찾자.


사실 이러한 노잼 시기에는 장기목표가 뭐였는지, 있었는지도 생각이 안난다. 어차피 다 무의미한 게 아닌가 싶고. 꿈이 있든 그걸 이룰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들지 않는다. 하지만 삶의 장기목표를 '무엇을 이룬 삶'이 아니라 '어떤 형태의 삶'인지로 두고 생각해보면 조금은 낫다.


가령 나는 계속 글을 쓰고 싶고, 그 글은 내 일상, 혹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은 책, 문화 콘텐츠, 여행... 인간관계나 내가 일상에서 겪는 기분, 생각, 느낌을 옮기는 일. 그럼 책을 읽고 콘텐츠를 보는 것도 단순히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것을 느끼고 분석하고 쓰기 위해서, 나의 결과물을 남겨두기 위해서, 라는 새로운 의미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 그저 그래 보이던 콘텐츠도 조금은 더 흥미로워질 것 같다.


***


김초엽의 소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에는 갈등과 불행과 차별은 없지만 행복과 즐거움도 없는 말 그대로 '재미없는' 세상과, 괴로움과 갈등과 불행이 가득하지만 행복하고 뿌듯하고 기쁜 순간도 많은 세상이 등장한다. 두 세상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하면 어떤 것을 골라야 할까? 지금 이 세상의 만연한 차별을 보면 화딱지가 나서 갈등도 차별도 없는 세상을 고르고 싶다가도, 결국에는 불행과 괴로움이 가득하지만 행복한 순간도 있는 지금 세상에 마음이 기운다.


사실 지금의 세상도 이미 재미가 없다면 전자(불행 없는 세상)가 나은 것 아닌가 싶지만, 결국에는 노잼이 아니었으면 하는 최소한의 욕심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왕 이 세상을 고른 거 더 재미있게 살아봐야겠다. '신나게 살자'라는 (일단 현시점의) 좌우명, 추상적이긴 하지만 일단은 희망적인 좌우명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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