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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링 Nov 18. 2024

인정의 욕구는 결핍으로부터

내 작디작은 어린 날.

방학은 늦잠 자는 날에 불과했고,

산더미 같은 방학숙제는 악몽과도 같았다.


그중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기록해야 하는 일기는 너무도 하기 싫어했던 걸로 기억한다.


방학이 끝날 무렵, 밀려있는 나날들을 선생님이 매를 들고 쫓아오기라도 하는 듯 연필심이 닳도록 썼었다.


서걱서걱 소리를 내며 삐뚤삐뚤한 글씨를 큼지막하게 양을 채우기 위한 요량으로, 날짜가 바뀔 때마다 단조로운 하루에 짤막한 한 줄의 킥을 넣어 변화를 주면서.


지루하기 그지없었던  

내 방학생활을 들키기 싫어서였을까.


맞벌이에 정신없이 사셨던 부모님 밑에

홀로 내팽개쳐진 내 처지를 숨기고 싶어서였을까.


어린 시절의 나는 밀린 일기를 채우기 위해 오늘 날씨가 어땠는지, 엊그제는 비가 왔는지 눈을 질끈 감고 떠올렸더랬다.



시간이 흘러 다 큰 어른이 된 지금에도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어릴 적 썼었던 일기장은 SNS로 탈바꿈되었지만 그저 그런 일상은 동일하게 반복됐다.


24시간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듯 똑같이 나에게도 주어졌고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어떻게 하면 관심을 더 받을 수 있을까 또는 나의 24시간이 화려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카페라는 공간이 얼마나 이쁜지.

아니 그 속에서 흐뭇하게 미소 짓고 있는 내 옆모습이 얼마나 멋있는지.


이 집 곱창이 얼마나 예술인지.

아니 그 곱창을 먹고 있는 내 몸매가 얼마나 예술인지.


이곳의 야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니 그 야경 속 중심에 서있는 내가 얼마나 자유로운 사람인지.





불 꺼진 집에 애써 불을 켜지 않고 신발을 벗는다.

대충 감으로 탁자 위에 가방을 벗어던진다.


그대로 침대에 철푸덕 대자로 뻗어 누워

천장을 3초간 바라보다 눈을 지그시 감는다.


생각에 잠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나를 사랑해 줄 순 없을까?’

‘누군가에게 관심이라는 자극을 얻어내야만 내가 행복해지는 걸까?’


기억 어느 저편에 머물러 있는 어린 날의 나는 성숙되지 못한 채 지금까지 살아내고 있었다. 무엇이 문제인지는 생각할 수 있었지만 마음으로는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

다 큰 어른이 된 지금의 내가 어린 날의 나를 마주했다.


날 인정해야 할 사람이 비로소 나 자신이길 바라며, 아주 천천히 받아들이자고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컴컴한 방에 아무렇게나 드러누워 시작했던

사색을 마무리짓는다.


지그시 감았던 눈은 어느새 약간 경직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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