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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며... 시스템 사고의 지적 여정

복잡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론의 탄생

by KEN

개인부터 가정, 동료, 그리고 사회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직면하는 다양한 문제 현상에 대한 진단, 대책 수립, 개선의 시행. 이 중 어느 하나도 단선적인 것이 없다.

이처럼 복잡다단한 문제들을 직면하고 올바른 해결안을 만들어내는 힘은 결국 각 개인에게 종속된 역량에 달려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문제해결의 단초를 '시스템 사고'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그와 관련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지금부터...



끝나지 않는 복잡성, 새로운 사고의 필요성 대두


시스템 과학의 거장 러셀 에이코프(Russell Ackoff)는 2009년 10월 29일 세상을 떠나기 불과 일주일 전, 오랜 동료인 잠시드 가라제다기(Jamshid Gharajedaghi)와 의미심장한 대화를 나누었다. 두 사람은 끊임없이 발생하는 시장 거품(bubble), 결함 있는 비즈니스 모델, 세계화의 도전, 비용을 가리지 않고 효율성만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관행, 고질적인 실업 문제, 급증하는 재정 적자, 공교육의 위기, 그리고 점점 더 심화되는 사회적 양극화와 같은 해묵은 상호작용적 문제들이 다시 부상하는 현상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했다. 이러한 문제들은 기존의 분석적 도구와 지배적인 성장 패러다임이 더 이상 우리 시대의 복잡성을 다루기에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총체적 난국, 즉 문제 시스템(messes)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등장했던 시스템 사고(Systems Thinking)의 지적 계보를 추적하고자 한다. 하나의 철학적 개념에서 출발하여 복잡한 사회문화적 문제를 탐색하고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설계 방법론으로 진화하기까지의 여정을 따라가 볼 것이다.


이 여정은 E. A. 싱어의 응용철학에서 시작하여, 운영 연구(Operations Research, OR)의 부상과 한계를 거쳐, 사회 시스템 과학(Social Systems Sciences,S³)의 탄생, 그리고 마침내 통합적이고 포괄적인 방법론으로 성숙해 가는 과정을 아우른다.



철학적 기원: 응용철학에서 시스템적 사고의 씨앗을 발견


하나의 실천적 방법론이 가진 진정한 힘과 방향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철학적 뿌리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근간을 이루는 원칙들이야말로 전체 지적 흐름의 궁극적인 목적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시스템 사고의 여정 역시 1941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의 한 철학과에서 시작되었다.


이 역사에 대한 상세한 기록 속에서 에이코프 자신은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당시 그는 철학과의 거장이었던 E. A. 싱어 주니어의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싱어의 철학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핵심 신념에 기반을 두고 있었으며, 이는 훗날 에이코프 사상의 초석이 되었다.


첫째, 철학의 실천:

철학 자체의 발전을 위해서는 철학의 적용, 즉 실천이 필수적이다.


둘째, 학제간 접근:

실제 문제를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학제간 접근이 요구된다.


셋째, 사회 영역의 중요성:

과학의 모든 영역 중 사회 영역이 가장 많은 연구를 필요로 하며, 동시에 가장 어려운 분야이다.


이러한 철학적 원칙은 곧 실천으로 이어졌다. 에이코프는 웨스트 처치맨, 토마스 코완과 함께 철학을 실제 사회문제에 적용하기 위한 비공식 연구 그룹인 실험 방법 연구소(The Institute of Experimental Method)를 결성했다.


하지만 이들의 시도는 학계의 저항에 부딪혔다. 1946년, 에이코프는 ‘응용철학 연구소’ 설립 아이디어에 대한 학장의 지지에 힘입어 (당시) 웨인 대학교 철학과 교수직을 수락했다. 이듬해 처치맨이 합류하면서 이들의 계획은 구체화되었지만, 전통적인 철학과의 동료들은 이들의 노력을 학문의 매춘 행위라며 격렬히 반대했다. 이 싸움은 결국 응용적이고 학제적인 연구와 기존 학문의 정통성 사이에 존재하던 깊은 긴장감을 보여주는 사건이 되었다.


결국 이러한 학문적 저항은 에이코프와 동료들이 자신들의 작업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 보다 수용적이고 실용적인 이름표를 찾도록 만들었고, 그들은 새롭게 부상하던 운영 연구(OR) 분야에서 그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OR의 부상과 한계: 방법론의 제도화와 그에 따른 반성


운영 연구(OR)는 초기에 응용적이고 학제적인 문제 해결 방식을 제도화할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을 제공했다. 1951년, 에이코프와 처치맨은 (당시) 케이스 공과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최초의 OR 박사 과정을 설립했다. 케이스 공과대학은 곧 전 세계 OR 연구자들이 순례하는 ‘메카’가 되었고, 이를 모델로 한 프로그램들이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1964년, 연구 그룹은 대부분의 교수진과 학생, 연구 프로젝트를 이끌고 펜실베이니아 대학교로 돌아왔으며, 와튼 스쿨이 제공하는 매우 지지적인 환경 속에서 활동은 더욱 번창했다.


그러나 바로 이 성공의 정점에서, 1960년대 중반에 이르러 에이코프는 OR의 방향성에 대해 깊은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의 비판은 실패나 지원 부족이 아닌, 학문의 궤적에 대한 근본적인 지적 불만에서 비롯되었으며,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도구에 대한 중독:

OR이 경영의 실제 문제보다 수학적 도구 자체에 중독되었다. 그 결과, 문제에 맞는 도구를 찾기보다 자신이 가진 도구를 적용할 수 있는 문제를 찾아다니는 주객전도의 상황이 발생했다.


둘째. '문제 시스템'의 간과:

OR은 현실이 개별 문제들의 집합이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현실은 강력하게 상호작용하는 문제들의 시스템, 즉 ‘메스(messes)’로 구성되지만, OR은 개별 문제를 분석을 통해 현실로부터 추상화하고 분리하여 다루는 데 그쳤을 뿐이다.


셋째. 학제성의 상실:

OR은 본래의 학제간 협력 정신을 잃고 하나의 분과 학문이 되어버렸다. OR 전문가들은 다른 과학, 전문직, 인문학 분야와의 상호작용 없이 자신들의 수학적 기법에만 몰두했다.


넷째. 시스템적 사고의 외면:

OR은 당시 활발히 발전하고 있던 시스템 사상가들의 방법론, 개념, 이론들을 완전히 무시했다.


이러한 비판은 OR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정교하고 총체적인 패러다임의 발전을 촉발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기존 방법론의 한계를 직시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상의 탄생이 예고되고 있었다.



사회 시스템 과학의 탄생: 복잡성에 대응하는 새로운 패러다임


운영 연구(OR)의 도구 중심적 접근 방식에 대한 반성은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시스템 전체를 설계하는 방향으로의 전략적 전환을 이끌었다. 이는 새로운 학파의 공식적인 탄생을 의미했다. OR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 스쿨의 다섯 명의 교수들(러셀 에이코프, 에릭 트리스트, 하산 오즈베칸, 토마스 사티, 제임스 엠쇼프)은 ‘사회 시스템 과학’(Social Systems Sciences, S³)이라는 혁신적인 프로그램을 설계했고, 이는 곧 ‘S큐브드(S³)’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S³ 프로그램의 핵심 목표는 인간이 주요 역할을 하는 사회 시스템을 계획하고, 연구하며, 설계할 수 있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이는 사회 시스템 이론과 전문적 실천을 개발하고 활용하는 데 전념하는,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접근이었다. S³는 문제 해결에서 설계로의 개념적 도약을 상징했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1974년 에이코프가 잠시드 가라제다기에게 했던 말이다.


“설계는 시스템 방법론의 미래이며, 선택이 구현되는 매개체이다.”

(design is the future of systems methodology and is the vehicle through which choice is manifested.)


이 한 문장은 S³가 추구하는 사상의 본질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있다.

이는 주어진 문제를 수동적으로 분석하고 해결하는 반응적 자세에서 벗어나, 바람직한 미래를 능동적으로 창조하는 창의적 자세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여기서 ‘설계’(디자인)는 인간의 주체성과 이 방법론의 궁극적 목적인 ‘선택 역량’의 강화를 위한 핵심적인 수단이 된다. 이처럼 미국에서 탄생한 강력한 새 패러다임은 이후 예상치 못한 문화 간의 협력을 통해 더욱 풍부하고 확장된 지평을 열게 된다.



동서양 사상의 융합과 발전: 상호작용적 설계에서 통합적 방법론으로


서로 다른 문화적, 학문적 전통의 지적 융합은 종종 어느 한쪽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혁신적인 돌파구를 만들어낸다. 시스템 사고의 발전사 역시 이러한 지적 수렴의 중요성을 명확히 보여준다. 1968년 이란에서 처음 만난 에이코프와 가라제다기의 협력은 시스템 방법론을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에이코프는 이 협력 과정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근본적으로 이질적인 외계의 관점이라 생각했던 것이 너무나 쉽고 자연스럽게 공동의 노력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이러한 융합의 핵심에는 가라제다기의 통찰이 있었다. 그는 에이코프의 ‘상호작용적 설계’가 단순한 방법론을 넘어, 다양한 개념을 통합할 수 있는 하나의 플랫폼이라는 사실을 간파했다. 이 플랫폼 위에서 그는 자신의 독창적인 사상과 다른 학자들의 통찰을 결합하여 훨씬 더 포괄적인 시스템 방법론을 구축했다. 이는 MIT의 토마스 리 교수와의 약속을 이행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가라제다기가 통합한 핵심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 상호작용적 설계:

에이코프의 핵심 개념을 전체 방법론의 기반 플랫폼으로 활용했다.


▪︎ 반복적 접근:

구조, 기능, 프로세스를 끊임없이 반복하며 전체를 파악하는 가라제다기 자신의 전체론적 사고를 결합했다.


▪︎ 시스템 다이내믹스:

MIT 토마스 리 교수의 오랜 제안을 받아들여 제이 포레스터의 방법론을 통합하고자 시도했다.


▪︎ 자기조직화 과제:

사회문화적 시스템이 스스로 질서를 창출하는 네겐트로피 과정(neg-entropic process)에 대한 깊은 이해를 포함시켰다.


참고) 네겐트로피 과정 (Neg-entropic Process): 네겐트로피(Negentropy)란 엔트로피(Entropy)의 반대 개념으로, 시스템 내에서 질서, 조직, 구조, 정보 및 유용한 에너지의 수준이 증가하는 과정을 의미. 따라서 네겐트로피 과정은 이러한 질서의 증가를 통해 시스템의 붕괴나 무질서(엔트로피)에 저항하고 시스템을 유지하거나 발전시키는 모든 활동을 지칭


이처럼 동서양의 지혜가 융합되어 탄생한 종합적 방법론은 수십 년에 걸친 지적 여정의 정점을 상징한다. 이는 최초에 이 여정을 시작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강력한 사고의 틀을 제공하게 되었다.



결론: 선택 역량의 강화, 시스템 사고가 제시하는 미래


E. A. 싱어의 응용철학에서 시작하여 운영 연구(OR)의 제도화와 한계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거쳐, 사회 시스템 과학(S³)의 탄생과 동서양 사상의 융합을 통한 포괄적 시스템 방법론의 완성에 이르기까지, 시스템 사고의 지적 여정은 복잡성을 다루기 위한 인류의 끊임없는 노력을 보여준다. 이 길고 깊은 여정의 끝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단순한 문제 해결 기법이 아니다.


진화된 시스템 사고의 핵심 목표는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라는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인류의 ‘선택 역량’을 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방법론은 설계자가 미래를 예측하는 대신 선택하고, 선택의 이성적, 감성적, 문화적 차원을 깊이 이해하도록 돕는다.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된 상호의존성과 예측 불가능한 혼돈으로 정의되는 시대에, 전체를 조망하고 의도적으로 시스템을 설계하는 능력은 더 이상 단순한 학문적 훈련이 아니다. 빈번한 시장 거품, 결함 있는 비즈니스 모델, 고질적인 실업 문제와 같은 우리 시대의 ‘메스(messes)’에 대응하기 위해, 이는 의미 있는 진보를 이루기 위한 필수적인 생존 조건이며, 시스템 사고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희망적인 미래이다.



참고자료

1. Systems Thinking: Managing Chaos and Complexity, by Jamshid Gharajedaghi, 2011


정리) 시스템 사고(Systems Thinking)란 무엇인가?

시스템 사고는 세상을 개별적인 요소들의 합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상호 연결된 구성 요소들이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작동하는 '전체(Whole)'로 이해하고 접근하는 사고방식 및 방법론이다.

이는 문제나 현상을 고립시켜 분석하는 전통적인 분석적 사고(Analytical Thinking)의 한계를 극복하고, 복잡한 상호작용 속에서 문제의 근본 원인과 패턴을 파악하여 지속 가능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고안되었다.

1. 시스템 사고의 핵심 원칙
1) 전체론적 관점 (Holism)
- 부분이 아닌 전체: 시스템의 본질적인 특성은 개별 구성 요소들의 속성이 아니라, 구성 요소들의 상호작용과 전체 구조에서 나타난다고 본다.
- 창발성 (Emergence): 전체 시스템에서만 나타나는 새로운 특성(예: 비행기라는 시스템에서 '비행 능력')을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둔다.

2) 상호 연결성 및 관계 중시 (Interconnectedness)
- 모든 구성 요소는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이들의 관계와 피드백 루프(Feedback Loops)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 레버리지 포인트 (Leverage Point): 시스템 내에서 작은 변화로도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결정적인 지점(구조적 지점)을 찾으려 한다.

3) 목적 지향성 (Purposefulness)
- 시스템은 고유의 목적(Purpose)을 가지고 있으며, 시스템의 행동은 이 목적을 달성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다고 해석한다.
- E. A. 싱어와 러셀 에이코프의 철학적 유산은 시스템을 목적을 가진 존재로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2. 시스템 사고의 필요성: 문제 시스템 (Messes) 해결
시스템 사고가 필수적인 이유는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문제가 대부분 '문제 시스템(Messes)'이기 때문이다.
문제 시스템은 다음과 같은 복합적이고 상호작용적인 난국을 의미한다.
- 여러 문제가 얽히고설켜 있어 어떤 것이 진짜 원인이고 결과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 한 부분을 해결하려 하면 다른 곳에 예상치 못한 부정적인 영향(부작용)을 미친다. (예: 예산 절감을 위해 인력을 감축했더니 서비스 품질이 떨어지는 경우)
- 시스템 사고는 이러한 복잡한 '문제 시스템'을 총체적인 관점에서 재정의하고, 구조적 개선을 통해 지속 가능한 질서(네겐트로피)를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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