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AI 이슈들

[팔란티어] 7. 동행과 우려 (종합)

by KEN

◼︎ 팔란티어 이슈 리뷰 순서 (링크) — 기술 안보 측면의 검토

1. 그들의 일하는 방식
2. 창립자의 관점, 『기술 공화국』 내용
3. 기술 패권주의 – 미국 중심주의
4. 알렉스 카프의 기술 패권주의
5. 피터 틸: 권력의 설계자이자 킹메이커
6. 한국의 기업 첨단 노하우는 안전한가?
7. 동행과 우려 (종합)
지금까지 여섯 차례에 걸친 글을 통해 팔란티어의 운영 철학과 실제 행보를 살펴보았다.
다소 중복되어 보이는 부분도 있겠지만, 이른바 ‘팔란티어 이슈’를 보다 입체적으로 조망하고자 하는 종합적 의미에서, 관련 내용을 다시 한번 정리하며 이번 연재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부디 우리 기업들이 보유한 기술을 온전히 지키고, 핵심 역량을 주권적으로 행사하여, 글로벌 경쟁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우위를 확보하는 주체적 기업으로 성장해 가기를 기대한다.


팔란티어와 한국 첨단 제조기업 협력의 기술 안보 딜레마


세계 최고 수준의 데이터 분석 기업 팔란티어와 한국 기업의 협력은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국가적 기술 안보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팔란티어의 뛰어난 기술력 이면에는 공동 창업자 피터 틸의 급진적인 정치 철학이 깔려 있으며, 바로 이 점이 딜레마의 핵심을 이룬다. 틸은 현대 민주주의 시스템 자체에 근본적인 회의를 품고 있고, 기술을 통해 권위주의적 통치 구조를 구축할 수 있다는 신념을 보인 인물이다. 이러한 배경을 고려할 때, 한국의 핵심 첨단 제조 기업들이 민감한 기술 데이터를 팔란티어에 맡기며 협력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피터 틸

팔란티어는 2003년 피터 틸을 비롯한 실리콘밸리 출신들이 설립한 기업으로, 본래 미국 CIA 등의 대테러 데이터 분석을 지원하면서 성장한 일종의 비밀 스타트업이었다. 실제로 팔란티어는 미국 정보기관의 투자를 받아 출범했고,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 등에 기여하는 등 안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2020년대에 들어 상장하고 민간 기업 대상으로도 솔루션을 확장했지만, 여전히 미 국방부와 CIA 등 미국 연방정부 계약이 매출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미국 국가안보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다시 말해 팔란티어의 뿌리는 미국 중심의 정보통제와 안보 전략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러한 팔란티어의 정체성에는 창업자인 피터 틸의 세계관이 크게 작용했다. 앞선 글에서도 자세히 살펴봤듯이 틸은 자유와 민주주의가 양립하기 어렵다고 공언하며, 기존 민주주의 정치 메커니즘에 대해 노골적인 불신을 표현해 왔다. 그는 기술을 통해 사람들을 설득하거나 동의 얻을 필요 없이 세상을 일방적으로 바꾸는 것을 이상적인 비전으로 언급하기도 했는데, 이는 정치보다 기술을 통한 통치를 선호하는 권위주의적 성향을 드러낸다. 실제로 틸은 미국 내 정치적으로도 극우적 입장에 서서 대선 캠프를 지원하고 정부 요직 인선을 돕는 등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미국의 패권 유지와 중국 등 경쟁국 견제에 강한 신념을 보여왔다. 요컨대 팔란티어는 기술 기업이지만, 틸의 이념이 반영되어 미국의 이익과 권력 중심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이 같은 배경을 지닌 팔란티어와 협력하는 것은 단순한 소프트웨어 구매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팔란티어는 자사 플랫폼을 “미션 크리티컬”, 즉 정부와 기업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인프라로 포지셔닝하며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이는 곧 팔란티어를 도입한 조직의 데이터 운영 체계가 팔란티어를 중심으로 재편됨을 의미한다. 틸이 꿈꾸는 기술을 통한 권력 구축에 타국의 핵심 산업 데이터까지 편입되는 셈인데, 이는 한국 입장에서는 경계해야 할 함의를 지닌다.



팔란티어의 운영 방식

팔란티어의 기술 플랫폼은 기존 기업 환경에 깊숙이 파고드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주요 제품인 팔란티어 파운드리(Foundry)는 기업 내부·외부의 방대한 데이터를 하나로 통합해 ‘디지털 트윈’을 구축하는 운영체계이다. 즉, 여러 데이터베이스와 시스템에 흩어진 정보를 모두 팔란티어 플랫폼 상에 복제·연결하여 마치 하나의 살아있는 디지털 조직처럼 만들고, 이를 AI 분석과 시뮬레이션에 활용하도록 돕는다. 예컨대 글로벌 항공사 에어버스는 팔란티어 도입으로 25개의 데이터 사일로를 통합해 생산 효율을 4배 높였다고 보고되었다. 이러한 성과는 팔란티어가 단순히 분석 툴을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 기업의 운영방식을 재구축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팔란티어는 엔지니어와 데이터 전문가를 직접 고객사 현장에 파견하거나, 고객사 인력과 합동 팀(TF)을 꾸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실제로 KT와의 파트너십에서도 팔란티어의 글로벌 엔지니어들이 참여하는 공동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팔란티어 솔루션에 대한 현장 교육(AIP 부트캠프)을 통해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팔란티어 측이 밀착하여 내부 프로세스 개선을 주도하는 이러한 운영 방식은, 협력 기업 입장에서 보면 외부인에게 속살을 드러내는 일이나 다름없다. 팔란티어 팀은 데이터를 들여다볼 뿐 아니라 업무 흐름 자체를 재설계하는 과정에 관여하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데이터 관리 방식이다. 팔란티어는 “고객사의 어떤 데이터도 자체적으로 저장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표방하며, 보안 우려가 큰 경우 고객사 내부에 데이터 서버를 구축하는 식으로 신뢰를 얻고자 한다. 실제로 삼성전자 사례에서 팔란티어는 삼성 평택사업장 내에 자체 서버를 설치해 데이터가 외부로 나가지 않게끔 조치했다고 한다. 아울러 팔란티어 아폴로(Apollo) 플랫폼을 통해 온프레미스부터 클라우드, 엣지 환경까지 다양한 인프라에서 소프트웨어를 원격 관리·업데이트할 수 있어, 민감한 환경에는 폐쇄망 설치도 가능하다고 홍보한다. 팔란티어는 자신들의 시스템이 철저한 권한 관리와 감사 로그로 데이터를 통제하며, 개인정보를 수집·저장·판매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트윈”으로 기업 운영을 복제한다는 팔란티어 방식 자체가 갖는 잠재적 위험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다. 팔란티어가 비록 고객 데이터 원본을 밖으로 가져가진 않는다 해도, 데이터 통합 과정에서 얻는 통찰과 최적화된 운영 지식은 궁극적으로 팔란티어의 자산이 된다. 다시 말해 고객사의 노하우가 팔란티어의 플랫폼 속에 녹아드는 효과가 생긴다. 이는 아래에서 살펴볼 한국 기업들의 사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한국 주요 산업에서의 적용 사례

현재 팔란티어와 협력하여 AI·빅데이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거나 도입한 것으로 알려진 한국 기업들은 다음과 같다. 이들 사례는 팔란티어 기술이 반도체, 조선, 통신, 방산, 건설, 제조 등 전 산업 분야에 걸쳐 적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 반도체 부문: 제조 공정 구축 및 운영, 수율/품질 관리, 설비 효율화, 생산성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 삼성전자 DS(Device Solutions) 부문은 공정 데이터 분석을 위해 2024년 말 팔란티어의 AI 플랫폼을 도입했다. 반도체 공정 관련 데이터는 그동안 “영업기밀”로 취급되어 외부와 거의 공유되지 않았으나, HBM 고대역폭메모리와 3nm급 파운드리 수율 문제로 심각한 한계에 봉착하자 이례적으로 팔란티어와의 협업을 선택한 것이다. 삼성은 AI센터 조직을 신설하여 팔란티어 플랫폼을 통한 공정 업그레이드, 설비 효율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으며, 팔란티어의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생산성 향상 해법을 찾고 있다. 삼성 내부에서도 반도체 데이터 유출 시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우려했지만, 팔란티어가 데이터를 절대 외부에 저장하지 않고 삼성 내부 서버에서만 운용할 것을 약속함으로써 협업이 성사되었다. 이는 데이터 주권을 지키기 위한 삼성의 안전장치라 할 수 있다.


조선·에너지 부문: 미래형 조선소 구축

HD현대 (조선·에너지 부문) – 현대중공업그룹으로 잘 알려진 HD현대는 팔란티어와 함께 미래형 스마트 조선소 구축 프로젝트인 “FOS(Future of Shipyard)”를 2021년부터 추진 중이다. 팔란티어 Foundry 플랫폼을 전 조선계열사에 도입하여 디지털 트윈, 자동화, 로보틱스, AI가 접목된 자율운영 조선소를 2030년까지 완성하는 것이 목표다. 2023년까지 1단계 가시화 조선소(Visible Shipyard)를 완료했고, 현재 2단계 연결·예측형 최적화 조선소를 구축 중인데, AI가 빅데이터를 학습해 작업 인력과 시설 운영의 최적 조건을 도출하는 단계라고 한다. 이로써 생산성 30% 향상, 건조 기간 30% 단축을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HD현대는 2022년 9월부터 팔란티어와 무인 수상함(USV) ‘테네브리스’도 공동 개발 중이며, 방위산업 분야에도 협력을 넓히고 있다. 참고로 HD현대는 2022년 팔란티어코리아 지분 25.1%를 인수하여 팔란티어와 합작법인(JV)을 설립하기도 했는데, 이를 통해 한국 공공·민간에 맞춤형 빅데이터 솔루션 공급에 나서고 있다. HD현대 산하 정유사 현대오일뱅크나 건설기계사 두산인프라코어도 이미 팔란티어 Foundry로 의사결정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여 운영 중이며, 해당 계약 규모는 2개사 합쳐 2500만 달러를 넘는다. 즉 조선 외 에너지, 산업기계 분야까지 팔란티어 기술이 스며든 상태다.


☞ 통신 부문: 기간통신 업무 운영 프로세스

KT (통신) – 통신기업 KT는 2025년 3월 팔란티어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여, 한국 최초로 팔란티어 전략 파트너사(Premium Partner) 지위에 올랐다. KT는 팔란티어의 AI 플랫폼(AIP)을 자사 클라우드·네트워크 인프라와 결합하여 내부 업무 프로세스를 최적화하고, 금융권 등 보안과 규제가 중요한 산업에 특화된 AI 솔루션을 공동 개발하고 있다. 또한 앞서 언급한 AIP 부트캠프 교육을 도입해 임직원과 고객사의 Palantir 솔루션 활용 역량을 높이고 있으며, KT의 안전한 공공클라우드 환경에서 팔란티어를 구동함으로써 데이터 주권을 지키면서 AI 혁신을 이루겠다는 전략이다. KT의 사례는 팔란티어 기술이 통신 인프라와 금융 데이터 등 민감한 영역까지 침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방산 부문: 개발

LIG넥스원 (방위산업) – 국내 대표 방산업체인 LIG넥스원은 2024년 8월 팔란티어와 “미래 무기체계 개발을 위한 빅데이터 플랫폼 활용” MOU를 체결하고, 첨단 무기 개발에 팔란티어의 데이터 관리 플랫폼을 적용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팔란티어 플랫폼을 정찰용 무인수상체, 초소형 SAR 위성, 기뢰제거, 전자전(EMSO) 분야 연구개발에 활용하여, 방대한 센서·시험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고 AI로 분석함으로써 개발 효율을 높일 계획이다. LIG넥스원은 자체 축적한 기술력에 팔란티어의 AI 해석능력을 결합해 유·무인 복합전투(MUM-T) 등 초연결 미래전장에 대비한 자율무기 솔루션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국가 안보가 달린 군사 R&D 데이터마저 외국 플랫폼에 의존하는 것에 대해 업계 일부에서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 건설 부문: 통합 의사결정

DL이앤씨 (건설) – 대림산업의 후신인 DL이앤씨는 건설업계 최초로 2022년부터 팔란티어와 협력해 대형 건설 프로젝트의 데이터 통합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디레이크(DLake)”로 명명된 이 플랫폼은 67개에 달하는 사내 시스템의 정보를 팔란티어 Foundry로 클라우드 상에 통합하여, 현장 공사 데이터에 기반한 경영 의사결정 체계를 마련하는 프로젝트이다. 이를 통해 공정 품질과 안전 관리 등에서 데이터에 입각한 실시간 판단이 가능해지고 업무 효율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건설 산업은 전통적으로 데이터 활용이 미흡했던 분야인데, DL이앤씨가 선도적으로 팔란티어를 도입함으로써 스마트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건설 분야 데이터도 해외 기업 플랫폼에 의존하게 됨에 따라, 건설 공정 노하우나 사업 정보의 외부 유출 가능성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 스마트팩토리 부문: 체계 구축

코오롱베니트 (스마트팩토리) – 코오롱그룹 계열 IT서비스 기업인 코오롱베니트는 2022년 11월 팔란티어와 스마트팩토리 사업 협력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제조 산업의 디지털 혁신에 나섰다. 코오롱베니트는 팔란티어 Foundry를 활용해 국내 제조기업 대상 팩토리 빅데이터 플랫폼을 구축·공급하고 있다. 현재 ERP 연계 데이터 플랫폼을 공동으로 개발하기 위한 TF를 운영하며, 실제 여러 공장의 운영 데이터를 모아 PoC(기술 검증)를 진행하여 솔루션의 효과를 입증하는 단계다. 또한 한국 제조 현실에 맞게 팔란티어 솔루션을 현지화(한글 UI, 교육)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이는 팔란티어가 한국 제조업 전반의 디지털 플랫폼으로 확산될 발판을 마련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코오롱베니트의 협력으로 향후 국내 중견 제조사들의 공장 데이터까지 팔란티어 생태계에 편입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상의 사례들에서 볼 수 있듯, 팔란티어는 이미 한국의 반도체, 조선·해양, 에너지, 통신, 국방, 건설, 제조 등 거의 모든 첨단 산업 분야에 침투해 있다. 우리 국가 경제와 안보의 중추 산업들에 팔란티어의 플랫폼이 깊숙이 내재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곧 다음과 같은 물음을 제기한다. 이러한 핵심 데이터와 노하우를 해외 기업, 특히 미국 안보·정보 당국과 밀착한 팔란티어에 의탁하는 것이 과연 안전한가?



우려

팔란티어와의 협력에 대해 가장 크게 대두되는 문제는 기술 주권과 데이터 주권의 침해 가능성이다. 앞서 삼성전자 사례에서 보았듯이, 반도체 공정 데이터 같은 핵심 기술정보의 외부 유출은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 삼성은 이를 막기 위해 팔란티어 서버를 사내에 두고 데이터가 한 발짝도 밖으로 못 나가게 차단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모든 기업이 삼성처럼 강력한 협상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팔란티어 클라우드에 데이터를 올리는 형태로 도입한 경우, 미국의 CLOUD법 등 법적 통로를 통해 미 정부가 그 데이터를 요구할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 팔란티어가 미국 정부 주요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기업이라는 점에서, 기업이 보유한 민감한 산업 데이터가 미 정부의 정보망 레이더에 포착될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팔란티어는 전 세계 군사·산업 데이터를 한데 아우르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팔란티어의 군사용 플랫폼 고담(Gotham)은 이미 미군 및 정보기관에서 세계 각지 정보를 수집·분석해 왔고,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서 실시간 전장 정보 통합에 사용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한편 상업용 플랫폼 파운드리(Foundry)는 글로벌 제조, 금융, 에너지 기업들의 운영 데이터를 흡수하며 성장 중이다. 이렇게 축적된 글로벌 데이터 통찰력은 팔란티어만의 경쟁력이지만, 개별 국가나 기업 입장에서는 자국의 기밀까지 그 거대 네트워크의 한 부분이 되는 상황이다. 특히 방산 분야에서 지적된 우려처럼, 팔란티어가 미 국방성과 오랜 협력을 통해 글로벌 군사 데이터 허브를 구축한 만큼, 국내 방산업체가 팔란티어와 협력할 때 국가 안보 정보의 유출 가능성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업계에서는 국제 협력 시 국가안보와 직결된 수많은 데이터 보안 이슈가 발생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또한 기술 패권 측면에서 보자면, 팔란티어에 대한 높은 의존도가 장기적으로 한국 산업의 자생력을 약화시킬 소지도 있다. 팔란티어는 이미 각 산업별로 최적화된 솔루션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고, 이는 곧 해당 분야 전략·운영에 대한 간접적인 통제권을 의미한다. 예컨대 스마트팩토리 분야에서 국내 제조사가 팔란티어 플랫폼 없이는 공장 데이터 해석이나 운영 최적화를 하기 어려워진다면, 사실상 제조 공정의 디지털 주권을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건설사의 프로젝트 관리가 팔란티어 없이는 원활하지 않게 되고, 조선소의 운영 시스템이 팔란티어에 묶여버린다면, 해당 기업들은 향후 독자 생존이 힘들어진다. 더욱이 팔란티어 같은 외국 기업이 업계 표준 플랫폼이 될 경우, 한국 업체의 영업 비밀이나 노하우가 팔란티어를 통해 업계 공통 지식으로 전환되어 버릴 위험도 있다. 팔란티어는 다양한 고객사 사례를 모아 레퍼런스 모델을 만들고 솔루션을 개선할 것이므로,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만의 경쟁우위 요소가 희석될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국방·안보 영역에서는 기술 유출 이상의 문제가 제기된다. 팔란티어와 LIG넥스원의 협력 내용처럼, 미래 무기체계 개발 알고리즘에 팔란티어 AI를 활용하는 것은 자칫 타국과의 공동개발로 간주될 소지가 있다. 팔란티어는 미군과 이미 유사한 기술을 개발 중이므로, 우리 군용 AI 모델 개발 정보가 팔란티어를 통해 미군과 공유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이는 국방주권의 침해이자, 나아가 자주국방 이념과도 상충한다. 더불어 AI 군사기술 도입에는 법적·윤리적 논란도 따른다. 민간인 사생활 정보 활용이나 치명적 자동무기 등에 대한 거부감이 국내외에 존재하는 가운데, 팔란티어 같은 해외 기업이 우리 군 기술에 관여하면 이런 논란이 증폭될 수 있다. 사회적으로 AI 무장 체계에 대한 통제와 책임 소재를 두고도 이견이 발생할 수 있다. 결국 기술 안보 차원을 넘어서 민주적 통제의 문제까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정리하면, 팔란티어와의 밀착 협력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은 다음과 같다.

· 데이터 주권 침해 – 국가 핵심 데이터가 해외 기업 플랫폼에 종속됨으로써 자국의 통제권을 상실할 위험. (예: 반도체 공정 데이터, 국방 R&D 데이터 등)
· 영업기밀 및 노하우 유출 – 팔란티어가 여러 산업 데이터를 통합 분석함에 따라 축적된 인사이트가 경쟁국이나 다른 고객사에도 활용될 가능성. (예: 특히 미국 등)
· 기술 종속 및 의존 심화 – 팔란티어 플랫폼이 표준화되면 국내 기업들이 자체 디지털 혁신 역량을 키우지 못하고 장기적으로 팔란티어 없이는 운영이 어려워지는 구조.
· 정책·외교 리스크 – 미·중 갈등 등 국제정세 변화 시 팔란티어 기술 사용이 제약받거나, 미 정부 요구에 따라 데이터 접근이 이뤄지는 등 외교 압력에 취약해질 수 있음.
· 윤리 및 사회적 리스크 – 해외 기업 기술을 통한 대량 감시, 자동화된 군사 의사결정 등 민감한 이슈에 대한 사회적 통제력이 낮아지는 문제. 팔란티어가 관여한 시스템에서 투명성과 책임성을 담보하기 어려울 수 있음.



결론적으로, 협력에 대한 신중한 재평가가 필요하다

한국의 첨단 제조기업과 팔란티어의 협력은 양날의 검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팔란티어의 세계적인 데이터 분석 능력과 플랫폼을 활용해 AI 시대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빠른 길일 수 있다. 실제로 팔란티어 도입 기업들은 생산성 향상, 공정 최적화, 신속한 의사결정 등 긍정적 성과를 보고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 핵심 기술과 정보가 외부로 유출될 수 있는 통로가 열리고, 자국 산업의 디지털 주권을 잠식당할 위험이 상존한다. 더욱이 팔란티어의 배경에는 피터 틸의 미국 중심주의적 시각과 비민주적 통치 옹호 철학이 자리하고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기술은 중립적일 수 있지만, 그 기술을 주무르는 세력의 의도는 중립적이지 않다. 팔란티어라는 기술이 어떤 이념과 이해관계 위에 움직이고 있는지를 간파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스스로의 약점을 제공하는 꼴이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국 기업들은 팔란티어와의 협력에 있어 면밀한 위험 평가와 견제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각 산업의 기밀 데이터에 대한 철저한 보호 조치(예를 들면, 데이터 온프레미스 운영, 접근 권한의 철저한 통제 등)를 전제 조건으로 협력이 이루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정부 차원에서도 이러한 민간 부문의 해외 기술 의존이 국가 기술주권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고, 필요한 경우 정책적 가이드라인이나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장기적으로 국산 데이터 플랫폼과 AI 분석 역량을 키워 대안을 확보하는 전략이 병행되지 않으면, 향후 더 큰 종속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기술 안보는 총칼만큼이나 중요한 21세기 국가 안보의 축이다. 아무리 동맹국 미국의 기업이라 할지라도, 우리 핵심 산업의 맥을 쥐는 위치를 무방비로 내어주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팔란티어와의 협력은 분명 매력적이지만, 그 이면의 보이지 않는 대가를 냉철하게 직시해야 할 시점이다. 한국의 첨단 제조기업들은 혁신과 안보 사이에서 균형 잡힌 결정이 필요하며, “한국의 민감한 기술 데이터를 외국 기업에 맡기는 게 과연 온당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계속해서 자기반성적인 점검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신중한 접근만이 기술 패권 시대에 우리 산업과 국가의 자율성을 지키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끝.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팔란티어] 6. 한국 기업의 첨단 노하우는 안전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