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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서 정리

[독서토론] 김미옥의 『미오기傳』

배다리도서관 야간 독서모임

by K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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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서 읽었다. 이 책은 그렇게 읽는 책인 듯하다. 둘째가 선물 받았다는 LED 스탠드 등을 머리맡에 두고, 누워서 봤다. 진지하게 밑줄 그어가며 읽을 책은 아닌 듯하다. 수없이 "이걸 내가 왜 읽지?"를 반복적으로 되뇌며, 읽는다. 또 읽었다. 그럼에도 수월하게 읽혔다. 어두운 얘기도 밝게 써 내려가는 묘한 매력을 지닌 작가다. 그 점은 무척이나 좋았다. 10점 만점에 10점. 그 외에는... 글쎄. "진짜, 내가 왜 이걸 읽고 있지?" 답은 하나. 이번 달 토론용 서적이라는 것...


암튼 이런 책이 잘 팔리는 모양이다. 그 점이 핵심! 난 평생가야 이런 류의 잘 팔리는 책은 쓰지 못할 것 같다.

암튼... 흥미로운 서술임은 분명.


그렇다면, 남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고 있는지 알아보자.


김미옥의 <미오기전>, 현대 한국 에세이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가라고 평한다.

"'활자 곰국' 시대를 연 개척자여서? 아니면 김미옥이라는 한 사람이 지닌 자기 서사의 힘이 막강해서?"

어쩌면 둘 다 일 듯하다. 좀 더 섬세하게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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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서점가는 예전의 공식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던 새로운 목소리들이 곳곳에서 등장하는 모양새다. 예를 들어 서평가이자 작가인 김미옥이 그중 하나다. 이이는 SNS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스스로의 독자적인 권위를 만들어낸 듯하다. 그러더니 마침내 자신이 지나온 고단한 삶을 하나의 단단한 서사로 묶어냈다. 자전적 에세이 미오기전은, 독서를 통해 역경을 이겨 내고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주체적으로 써 내려간 한 사람의 담백한 기록이라고 읽힌다. 작가가 스스로를 ‘활자 곰국 끓이는 여자’라 표현했듯, 이 책은 인생의 매운맛과 쓴맛, 짠맛을 오래도록 우려내 독자에게 깊고 진한 위로를 건네는, 말 그대로 ‘곰국 같은’ 책이라는 평가다.


잠시 살펴본 바로 김미옥 작가는 이미 하나의 권위가 된 듯하다. 그이의 등장은 독자의 힘이 또 하나의 권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사례가 되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스스로 ‘활자 중독자’로 표현한다. 해마다 800권에 가까운 책을 읽는다고 하니 인정할 만하다. 2019년부터 SNS에 잘 알려지지 않아 아쉬운 책들을 소개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입소문이 났고, 어느새 팬덤도 생긴 모양이다. 그러다가 제도권 매체에 주목을 받게 되었고, 여타 책이나 일간지 등에 칼럼이 실리면서 그 영향력은 더욱 확장되어 갔나 보다.


그리고 마침내 출간된 이 책 미오기전은, 그의 비평 활동을 떠받치고 있던 삶 자체가 이미 강력한 문학적 토대였음을 조용히 증명했다는 평이다. 글쓰기와 독서가 그의 삶을 어떻게 지탱해 왔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어떻게 독자들에게까지 이어지는지, 책은 담담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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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작가 김미옥을 조금 더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어 보인다.

자전적 에세이라는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이 바로 그의 삶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김미옥 작가에게 독서는 단순한 지적 취미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책을 통해 스스로의 존엄과 주체성을 지켜냈던 것 같다. 그 지난했던 과정은 미오기전 곳곳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정규 교육의 기회를 충분히 누리지 못했던 그는 결국 스스로 길을 찾아 독학형 인간이 되었다. 어린 시절의 가난과 가족 부양의 책임은 그의 삶을 관통하는 굵은 배경선이 된다. 그러니 그의 글에서는 마치 마당놀이의 그것과도 같은 해학적 웃음이 묻어난다. 말 그대로 웃픈.

조신하게 지내던 추석 아침, 이대로 늙어 죽으라는 덕담을 들으며 동태 전을 먹는 내게 고모는 그게 목구멍에 넘어 가느냐고 소리를 질렀는데... 넘어갔다. (44쪽)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아버지의 보증 실패로 공장과 집을 잃으며 가족사는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를 여의고, 그는 어린 나이에 생계의 무게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교사가 그를 수양딸로 삼아 대학까지 지원하겠다고 나섰지만, 어머니는 막내딸이 오빠들의 학비를 도와야 한다는 이유로 그 제안을 거절하고 공장으로 이끌었다. 이 일화는 작가가 제도적 지원과는 멀어진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그는 검정고시로 학력을 이어갔고, 세상의 지식과 삶의 기술은 거의 모두 독서와 독학으로 쌓아야 했다.

나를 양녀로 들이려 했던 계획이 실패하자 선생님은 공장에 찾아오시거나 공휴일에 나를 불러 학습 계획을 세우고 검정고시 공부를 시켰다. 엄마에겐 비밀이었다. 희망을 걸었던 아들 셋이 뛰어나지를 못하니 엄마의 신경은 극도로 피폐해져 딸년이 책을 본다는 사실만으로 허파를 뒤집곤 했다.(24쪽)


그가 독서를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은 지식 그 자체만은 아니었다. 가난이 만들어내는 소외와 차별 속에서, 흔히 말하는 ‘평범함의 기준’을 확보하기 위한 주체성이었다. 그는 “너무 가난하면 티가 나고 갈라치기가 되고 사회에서 소외된다”고 말하며,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필요했고, 그 힘을 길러주는 매개가 바로 책이었다고 고백한다.


책은 그에게 낙인이 아닌 자신으로 서기 위한 도구였다. 생각하는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통로이자, 홀로 버티며 나아갈 수 있도록 지탱해 준 버팀목이었다. 바로 이 지점—독서가 그의 삶에서 수행한 구원의 기능—이 김미옥 서술의 가장 깊은 뿌리이자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책들을 버리며 책의 운명에 대해 생각했다. 책에도 생명이 있어 사람들이 읽지 않는 책은 사라질 터. 나의 운명이 아닌 책의 운명을 생각하며 울던 철없던 시절이었다. (93-94쪽)


김미옥 작가는 해마다 800권에 이르는 폭넓은 독서를 바탕으로, 기존 문단의 권위 구조와는 다른 독자 주도형 비평가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그의 서평은 학계의 기준이나 제도적 틀보다는, 자신이 느낀 감각과 솔직한 판단에 의해 형성되며, 이는 그의 전작 제목처럼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쓰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그이의 비평 활동 가운데 특히 의미 있게 다가오는 지점은 연대의 실천이다. 그는 ‘알려지지 않아 안타까운 책’을 찾아 소개함으로써, 주류 시장에서 쉽게 묻혀버리는 작품들에게 다시 숨을 불어넣는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많은 독자들의 호응을 불러일으켰고, 그가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 잡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나아가 미오기전의 출간은, 독학으로 길을 개척해 온 비평가로서의 삶 자체가 문학적 가치가 있는 하나의 서사임을 확인해 주는 계기가 된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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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옥의 삶이 녹아든 책 <미오기전>의 서사구조를 좀 더 들여다보자.


미오기전은 단순한 에세이를 넘어, 자신의 삶을 하나의 ‘전(傳)’으로 올려놓는 과감한 시도를 담은 책이다. ‘전’이라는 말은 한국 고전 문학에서 한 인물의 생애를 기록해 후대에 의미를 남기려는 형식을 말하는데, 작가는 이 전통적 틀을 빌려 자기 삶의 여정을 보편적 가치가 있는 서사로 끌어올리고자 시도한다.


책에는 김미옥 작가가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삶을 담은 약 60편의 짧은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독자들은 이 짤막한 에피소드들을 읽으며 “각 편이 하나의 단편소설 같다”는 평가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렇게 단편 소설처럼 구성된 이야기는 에세이가 갖는 진솔함에 서사의 흡입력까지 더해, 읽는 재미를 한층 깊게 한다.


평론가들이 “자서전이라 하기엔 지나치게 소박하고, 에세이라 하기엔 또 지나치게 진지하고 명랑해서 장르가 모호하다”고 말한 것도 흥미롭다. 오히려 이런 평가는 미오기전이 기존 문학적 틀에 갇히지 않고 독자적인 형식과 매력을 구축했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기록해 낸 작가의 태도는, 결국 이 책의 가장 큰 힘이자 특징이 되었다.

16살부터 엄마와 형제들에게서 떨어져 10여 년을 자취 생활하면서 나의 언어 세계는 완전히 달라졌다. 내가 입에 올릴 단어 선택에 신중했고 아름다운 문장에 심취했다. 가끔 집에 가서 다시 욕의 세례를 받았지만 내 영혼의 털끝 하나도 건드릴 수 없었다. (50쪽)


미오기전의 서사는 가난과 고통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려 했던 김미옥 작가의 노력을 중심으로 흐른다. 그중에서도 그녀가 삶을 버티게 해 준 힘을 ‘밥 한 공기의 힘’이라고 표현한 대목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 의식이 된다. 작가에게 밥 한 공기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수단이 아니라, 울고 쓰러진 뒤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작은 용기와 긍정의 상징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나는 사흘을 앓았다. 사흘째 되던 날 문이 열리더니 밥상이 들어왔다. 매일 그 나쁜 남자에게 얻어맞고 돈 뜯기던 옆방 여자였다. 김치찌개 냄비에 밥 한 공기였지만 내 평생 그토록 맛있는 밥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밥을 해 먹은 기미는 없고 끙끙 앓는 소리가 들리더라는 것이었다. 내가 멍하니 밥상 앞에 앉아 있으니 문을 반쯤 열어놓고 담배를 피우던 여자가 혼자 먹으라며 나갔다. 배려였다. (127쪽)


그녀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이었던 경험 중 하나는, 사흘 동안 제대로 먹지 못하고 누워 있던 어린 미옥에게 술집에서 일하던 애숙이라는 여인이 밥 한 공기를 건넸던 순간이다. 그 한 끼를 통해 김미옥은 직업이나 신분을 넘어 ‘사람’을 보는 눈을 배웠고, 이 시선은 이후 그녀의 실천적 연대로 이어졌다. 실제로 그녀는 비정규직 노동자나 사회적 약자를 돕기 위해 추천사와 칼럼 수입을 꾸준히 기부해 왔다. 개인의 삶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윤리적 실천으로 확장되는 이 순환 구조는 미오기전을 단순한 자전적 기록이 아니라 사회적 메시지를 지닌 작품으로 만들어준다.

나는 내가 살아온 것이 나 혼자의 힘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술집 여자의 밥 한 공기 같은 도움을 알게 모르게 받고 살았다. 내가 사람의 직업이나 계층을 보지 않고 인간성을 보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128쪽)
내가 세상을 헤쳐나갔던 힘은 밥 한 공기의 힘이었다. 훗날 자리를 잡고 그녀를 찾으려 애썼지만 찾을 수 없었다. 내가 세상에 돌려줄 수 있는 것은 '밥 한 공기'라고 생각했다. 착하고 선해서가 아니라 빚을 갚는다는 생각이 컸다. 적은 금액이었지만 이자를 갚는다는 마음이었다. (272쪽)


김미옥 작가의 문체도 많은 독자들이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다. 그녀의 글쓰기는 명랑함과 서글픔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삶의 애환을 위트와 익살로 녹여낸다. 그래서 힘든 이야기를 하면서도 독자를 웃게 만들고, 어느새 마음을 끌어당긴다. 이런 문체적 힘은 가난 때문에 주눅 들지 않고, 딸이라는 이유로, 혹은 여자라는 이유로 움츠러들지 않으려 했던 작가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

바빠서 분기별로 한 번씩 만나는 우리 숟가락 팀은 소주를 반주로 저녁을 먹고 나면 노래방에 가서 숟가락을 두드린다. 물론 노래방 기계는 화면만 보이게 하고 트로트를 불러 젖히는 것이다. 여자라서, 이혼녀라서, 늙은 독신녀라서 만만하게 보고 덤비는 세상에 숟가락으로 퍽큐를 날리는 것이다. 다 덤벼! (182쪽)


삶의 고단한 기억들을 “꼭꼭 눌러 담고 살아내던” 내면의 힘이 어느 순간 임계점에 이르러, 글이라는 분출구를 통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결과가 바로 이 책인 듯하다. 본명 ‘미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다 당당한 자아를 상징하는 ‘미오기’라는 문학적 페르소나를 얻었듯, 작가는 그동안의 고난을 유쾌하고 우직한 방식으로 돌파해 냈다. 이 페르소나의 탄생은 그녀가 삶 속에서 이뤄낸 조용하지만 단단한 성취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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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미오기전>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추천으로 유명해졌든 모양이다. 몰랐다. 찾아보니 평산책방에 이런 글이 떠 있었다.

미오기전, 저자 : 김미옥, 출판 : 이유출판, 추천일: 2024. 8. 21.
<추천글>
재미있습니다. 단숨에 읽게 하는 흡입력이 있습니다. 이 책은 SNS 서평가와 문예평론가로 뜨고 있는 김미옥 작가가 살아온 삶을 말하는 자전에세이입니다. 당당하고 긍정적인 삶이 담겨있습니다. 가난에 주눅들지 않고, 딸이라서 주눅들지 않고, 여자라서 주눅들지 않는 당당함이 보기 좋습니다. 각박하고 고단했던 삶의 순간들까지도 긍정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당당함이 슬프면서도 유쾌한 재미를 줍니다. 당당해지기 위해 얼마나 애썼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가짐과 노력이 삶에 긍정과 낙관의 힘을 준다고 믿습니다. 저자가 책머리에 썼듯이 아픈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을 책입니다.

사실 이 책은 이미 유명합니다. 내가 굳이 추천의 글을 보태는 이유는 저자의 삶이 책과 독서의 힘을 가장 강렬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힘들고 서러운 순간에도 저자는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책이 있어 삶이 누추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를 당당하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성장시킨 것도, 저자를 유명한 사람으로 만들어준 것도 독서의 힘입니다. 많은 독서가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는 서평을 쓰게 했고,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저자가 ‘알려지지 않아 안타까운 책’을 소개하고 추천하는 일을 해온 것이 고맙습니다. 오랫동안 책을 추천해 왔고, 지금은 책방을 열어 독서를 권장하는 일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깊은 동질감으로 이 책을 추천하고 싶었습니다.


평산책방은 추천 이유로 김미옥의 삶이 “책과 독서의 힘을 가장 강렬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린 시절의 힘든 시간 속에서도 책을 놓지 않았기에 그녀의 삶은 누추하지 않았고, 독서는 그녀를 당당하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성장시켰다는 평가다. 오랫동안 책을 권하고 책방을 운영하며 독서를 장려해 온 문 전 대통령이 저자와 “깊은 동질감”을 느꼈다는 고백은, 이 책의 기여를 높이 산 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독자들 역시 미오기전의 강한 서사적 흡입력에 큰 찬사를 보내고 있다. “하루 만에 책을 다 읽는 일이 거의 없는데, 이번에는 그렇게 됐다”는 독자의 후기는, 평범한 일상을 비범한 문장으로 바꿔내는 작가의 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모양새다.


이 책은 단순한 흥미를 넘어, 심리적 위로를 제공하는 ‘치유의 책’으로 읽히기도 한다는 평이다. 저자는 “아픈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을 책”이라고 직접 말한다. 그리고 실제로 독자들은 작가의 당당함과 밝은 목소리에서 “너도 잘 버텼다”는 격려를 얻는다고 말한다. 독서가 사회적 소외를 막고 인간을 단단하게 세우는 매개라는 작가의 메시지는, 문학이 현대인의 공감 능력을 회복시키는 중요한 도구라는 오늘날의 문학적 요구와도 맞닿아 있다.

당신은 누구냐고 물었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겨먹은 인간이다. 누군가 울면 가슴부터 미어졌다. 혼자 우는 눈물이 어떤 것인지 알기에 가끔 무방비가 되어 버린다. 누구인지, 어디 사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왜 우는지가 중요했다. 나도 누군가 왜 우는지 물어봐줬으면 하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98-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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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는 조금 비평적으로 접근해 보자. 나의 개인적 취향으로 에세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 않지만(으잉?^^;;;) 아니 그다지 선택하는 장르가 아니긴 하지만, 아무튼 토론을 위해 내 의견을 정리해야 하는 고통스런(?) 나의 <미오기전> 읽기의 반추이다.


미오기전의 가장 큰 서술적 장점은 고난의 순간들을 단순히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며 미학적으로 승화시키는 데 있다고 하겠다. 작가는 돌아보고 싶지 않은 과거조차 글쓰기를 거치면 내 것이 아닌 듯이 저쪽에서 반짝인다고 말한다. 이런 자기 거리 두기는 고통에 유머와 통찰을 더해 독자에게 희망을 전달하는데, 그 필력은 따라 하기 힘든 경지의 글쓰기라는 생각이다.


작가의 나눔 혹은 배품도 이 텍스트의 진정성을 더해주는 중요한 요소가 되겠다. 그는 책으로 받은 은혜를 책으로 갚는다는 마음으로, 추천사나 칼럼 수입을 비정규직 노동자, 외국인 이주민, 한국 작가 지원 재단 등에게 꾸준히 기부해 왔다고 한다. 작가의 메시지가 현실 속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그의 윤리적 실천은 글 안의 서사가 현실과 맞닿는 문학적 완결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수많은 긍정적인 찬사가 이어지고 있지만, 읽는 이의 관점에서 생각해 볼 만한 지점 또한 있다.


첫째, 형식의 문제다. 미오기전은 60여 편의 에피소드가 단편 소설처럼 짧고 힘 있게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큰 장점을 지닌다. 그러나 이러한 구성은 전통적인 에세이가 추구해 온 ‘전체 서사를 관통하는 사유의 흐름’이라는 측면에서는 다소 분절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자서전이라 하기엔 소박하고, 에세이라 하기엔 너무 진지하다”는 평가는, 이 책의 장르적 실험이 익숙한 형식을 기대하는 일부 독자들과 충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두에서 말했듯, 이 책을 읽는 내내 “도대체 왜 나는 계속 읽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여러 번 되풀이했다. 책의 3분의 1쯤 지나면서는 내용이 비슷한 자리에서 맴도는 듯해 조금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내가 무엇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계속 묻게 되는 순간들이 이어진 것이다. 물론 이런 느낌은 어쩌면 나만의 취향 문제일지도 모르겠지만...


둘째, 논지의 확장 필요성이다. 지금까지의 반응은 대체로 작가의 감동적인 생애, 고난을 이겨낸 의지, 독서의 힘이라는 주제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자칫 작가의 삶을 감동적 사례로만 소비하는 위험을 내포하는 것 아닐까. 더 나아가 가난, 차별, 여성으로서의 어려움 같은 구조적 불평등이 개인의 노력만으로 극복될 수 있다는 오해를 강화할 여지 또한 조심스럽게 엿보인다. 혹시 그 태도 자체가 또 다른 압박으로 작동하지는 않는지 비판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만 책 읽고 깨우치고 각성하면 세상의 모든 불평등과 차별과 어려움은 해결 가능해진다는 압박 말이다. 그건 아니지 않을까? 아이고 말이 자꾸만 꼬인다. 말을 어렵게 하려니 그런 듯... 암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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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옥의 미오기전은 말 그대로 우리의 독서 지평을 넓힌 것뿐만 아니라 잔잔하지만 오래 남을 흔적을 남긴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이 책은 한 개인이 독서를 통해 어떻게 구원받고, 사회적 소외를 벗어나 결국 자신의 삶을 스스로의 서사로 완성해 나가는지를 솔직하고 생생하게 보여준 보배로운 사례다.


작가는 자신의 고통을 억누르거나 숨기지 않고, 글쓰기와 독서라는 도구를 이용해 세상 앞에 당당히 꺼내놓았다. 그런 과정에서 독자들은 깊은 공감과 위안을 얻게 된다. 미오기전은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지금보다는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보편적인 마음을 다시 일깨워 주는 책이 되겠다.


미오기전을 읽으면서 들었던 작가의 성취라는 것이 결국은 제도권 밖에서 활동하던 한 서평가가 이루어낸 문학적 성취이자, 독학형 인간이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낸 자립 서사의 기록이라는 것이었다.


고단한 시간을 지나고 있는 우리들 모두에게 책은 ‘활자 곰국’처럼 깊게 우러난 지혜와 담담한 용기를 건네준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조용히 방문 열고 들이밀어둔 밥상처럼, 조용히 내민 손을 잡아보면 어떨까. 그것도 용기라면 그 정도의 용기는 내면서 말이다.



마치기 전에...


그녀의 책 <미오기전>은 '4부 소멸의 아름다움'에 실린 십여 편의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좋았다.

비로소 그이 내면의 의식 흐름이 읽혀져서다.

그전 3부까지는 추억을 끊임없이 되뇌는, 마치 튀는 레코드판처럼 되돌이를 했었다면, 비로소 4부에서는 추억을 벗어나 그녀의 생각과 사유, 삶을 풀어낸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그 부분이 가장 편안하다. 드디어 그이라는 존재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고나 할까.


사족 하나, 이 책은 편집이 묘하다.

1부 김 여사 해탈기, 2부 세상의 밥 한 공기를 넘어, 3부가 편집되어야 할 공간에 뜬금없이 '인생극장 5부작 위대한 면서기'가 삽입되어 있다. 그러다가 다시 3부 마이너들의 합창과 내가 가장 의미 있게 읽었던 4부 소멸의 아름다움으로 마친다.


어찌 되었건, 이 책을 잡으셨으면 4부의 끝까지 다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책을 중간에 멈췄을 때와는 분명 다른 느낌으로 저자의 의식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끄읕...

...


앗.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문장을 소개하는 것을 놓쳤다. 지금이라는 옮긴다. 진짜 마지막으로...


커서 우울할 때는 연필을 깎았다. 그리고 편지를 썼다.
나의 글은 시간이 흐르면 점점 희미해져 눌러쓴 흔적만 남을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가벼웠다. 사라지는 것들을 사랑했다. 내게 리포트를 맡기던 친구가 블랙윙 602 연필을 두 타스 선물했다. 사각사각 부드러웠다. 나는 그 연필로 가벼운 글을 썼다. 오늘은 헤밍웨이가 태어난 날이라거나 바람이 불어서 머리카락이 하늘로 올라갔다거나 조금 쓸쓸해서 혼자 노래를 오래 불렀다거나 하는, 누가 읽어도 아무렇지 않을 글이었다. (277쪽)



관련서적

미오기傳 - 활자 곰국 끓이는 여자, 김미옥, 이유출판,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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