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했어”
“뭐라구?”
“아빠 너무 잘했다고 멋져.”
가족들과의 식사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초등학교 2학년이 이러면서 내 등을 쓰다듬는다.
이 무슨 기분인지 모를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항상 하는 생각이 어린아이에게도 배울건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모든 사람과 상황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해준다고 했던가? 43살이 9살에게 칭찬받으면서 기분이 좋고 뭔가 뿌듯해지는 기분은 뭘까? 나의 결핍인 인정 욕구였을까? 갑자기 칭찬을 하는 딸도 당황스러웠는데, 사실 아이들은 부모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는 것을 다시 알았다.
예전에 취득한 칭찬박사 자격증에서 배운 ‘기술’을 공부를 부담스러워하는 아이에게 자주 써먹었다. 사사로운 수학 문제에도 칭찬해주고 모르는 영어보다 아는 쉬운 단어를 물어보며 칭찬을 해준다. 여기에 더불어서 내가 틀리거나 잘 못하는 상황을 아이에게도 이야기해주었다. 왜냐하면 아이가 모르는걸 풀다보면 나도 틀릴때가 있고, 아빠도 이렇게 틀릴수 있고, 너도 틀리는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을 알려주며 공부에 대한 부담감을 낮춰주기 위해서 그랬던 거다.
아이들을 지켜보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때가 많다. 현재보다 조금 더 나아지거나 작은 생각의 변화에도 칭찬을 해주고, 격려해주면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더욱더 열심히 하려는 아이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반대로 아이가 잘못하더라도 나무라지 말고 침묵이나, 아빠는 우리 딸이 이랬으면 좋겠어라는 단정적인 말로 짧게 말을 해주고 지켜봐 주는 것이 좋다.
영어 암기가 어려운 딸에게 같이 복습을 하며 조금씩 나아가려고 하는데 아이는 자꾸 복습을 저항하는것이었다. 선생님이 시키지 않은건데 안할거라고 우기면서 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이럴때 전에는 나도 모르게 ‘욱’하는 감정이 들면서 뭐라고 했었는데, 천천히 말해줬다.
“학원 친구들이 너 보다 많이 아는건, 그 친구들도 그만큼 시간을 투자한것이고 너는 그 시간을 지금처럼 하기 싫어하는 부담감으로 가득채운거야. 잘 못해도 괜찮아. 하지만, 그 친구들보다 노력하지 않으면서 그 친구들보다 잘하길 바란다면 그건 도둑놈 심보야. 10분정도 하린이가 생각할 시간을 갖고 다시 공부 시작해보자.” 라고 말을 해줬다. 그리고 나는 나의 할 일을 하고 있는데, 10분도 안되어서 아빠 공부하자 그러더니 다시 열심히 집중을 하며 공부를 했다. 아이에게 화가 날때는 숨호흡을 하고 감정적 접근보다는 아이를 위하는 마음과 객관적인 메시지를 주는게 아이를 더 성장시키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깨닫는 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순간들이 교육의 기회였다. 식당에서 술을 참는 모습도, 공부를 함께 하는 시간도, 심지어 내가 틀렸을 때 솔직하게 인정하는 모습까지도 말이다.
가끔 지치고 힘들 때가 있다. 내 일도 해야 하고, 아내도 챙겨야 하고, 양가 부모님들도 신경 써야 하는 현실 앞에서 말이다. 하지만 딸이 내 등을 쓰다듬으며 "잘했어"라고 말해주던 그 순간을 생각하면, 이 모든 것들이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가 된다는 건 결국 함께 성장해가는 과정이 아닐까? 나도 배우고, 아이도 배우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작은 행복들을 하나씩 발견해가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인생의 여정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