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우리는 제도를 얼마나 깊게 바라보고 있을까

– 관찰하고, 질문하고, 연결하는 실무자의 인사이트 기록

by 서은재



영감노트: 일상에서 건져 올린 HR의 조각들

- 관찰하고, 질문하고, 연결하는 실무자의 인사이트 기록

『영감노트』는 일상 속에서 인사(HR)의 본질과 방향을 고민해보는 칼럼 시리즈입니다.
바쁜 실무 속에서도 잠시 멈춰 생각해보는 이 기록들이, 누군가에게 작은 인사이트로 닿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제 글에 대한 다른 생각이나 시선도 언제든 환영합니다.



오늘의 조각: 드라마《서초동》이 남긴 질문

퇴근길에 우연히 보게 된 드라마서초동의 한 장면이 인상 깊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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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이 궁금하시다면 https://www.youtube.com/watch?v=lkBMUysWwPY&t=15s에서 직접 보실 수 있어요. 글보다 영상이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올 수도 있으니, 2분만 잠시 눈과 귀를 맡겨보시는 것도… 저는 추천드립니다.)


공공임대주택 보증금을 차압하려는 은행 측을 대리한 주인공 안주형 변호사에게, 상대역 강희지 변호사가 따져 묻는 장면이었는데요.

해당 장면에서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마음대로 쫓아낼 수 있으면 안되지 않느냐는 강희지의 말로 논쟁이 시작됩니다. 공공임대주택은 보호받아야 할 이들을 위한 제도인데, 그런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 수도 있는 은행 편에 서는 건, 최소한 마음 한 켠이 불편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 그녀의 입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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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안주형은 이렇게 반문합니다. “그럼 앞으로 은행이 이런 대출을 해줄까요?”

그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공공임대주택의 담보 가치를 제한하면, 은행 입장에서는 해당 집단 전체를 ‘신용위험군’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결국 집단 전체가 대출이 막혀 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해 입주를 포기하게 되는 사례가 더 많아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임대주택에 당첨되고도 보증금 못 구해서 그 집에 못 들어가는 사람이 훨씬 많이 늘어날 겁니다. 담보를 실행 못 하게 하는데 은행이 대출을 해주겠어요? 그러면 멀쩡히 대출 받고 꼬박꼬박 잘 갚을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거라고요. 그래도 뭐가 공익인지 그렇게 확신할 수 있어요?” — <서초동> 2화 중


2분 남짓한 짧은 장면이었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의 제도가 누군가를 보호하는 동시에, 또 다른 누군가의 기회를 가로막을 수 있다.”

제도가 만들어내는 의도치 않은 결과들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자주 고민하고 있을까요?





제도란 무엇일까:

좋은 의도가 곧 좋은 결과가 되지 않을 때

이 질문은 HR 실무에서도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제도의 방향성과 현장의 반응 사이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니까요.


좋은 취지로 시작된 제도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상대적으로 약한 위치에 있는 직원을 보호하겠다는 목적에서 출발했지만, 현장에서는 복잡하고도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됩니다. 개인 간 갈등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확대하는 허위 신고, 맞신고, 퇴사 후 보복성 신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역할 혼선, 을질, 인정되지 않는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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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힘’이라는 단어는 이제 법적 정의가 아니라 해석의 여지가 생기는 용어가 되었고, 그 안에서 HR은 조직 내에서 정의와 불의를 판단해야 하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느낍니다. 좋은 제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요.





또 다른 제도 앞에서: 주 4.5일제와 HR의 질문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또 하나의 제도 앞에 서 있습니다.


2025년 6월, 이재명 정부의 출범과 함께 노동정책에도 실질적인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변화는 바로 ‘주 4.5일제’입니다. “일하는 시간을 줄여 생산성과 삶의 질을 높이자.” 분명 명확하고 매력적인 메시지입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 변화가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일은 그대로인데 시간을 줄이면, 누구 몫으로 넘겨야 할까요?”
“중소기업은 인력 충원 없이 이 제도를 수용할 수 있을까요?”
“근무시간 단축이 과연 몰입이나 생산성과 바로 연결될까요?”


제도는 선언이 아니라,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의 문제입니다.





흐름을 되짚어보면

잠시 과거를 돌아보면, 노동시간 개편은 다음과 같은 흐름을 따라왔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주 68시간 → 52시간’ 단축을 시행하며 “저녁이 있는 삶”을 약속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근로시간 선택권 확대를 위해 ‘월·분기·연 단위 근로시간 운영안’을 제시했지만, ‘주 69시간제’라는 프레임에 부딪혀 철회되었죠.


이후 일부 업종을 중심으로 탄력근무제 단위가 확장되었지만, 본질적인 변화는 제한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재명 정부는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화두를 꺼내 들었습니다. 이외에도 정년 연장, 노란봉투법 등 다른 이슈들도 함께 맞물리며, 제도적 명분만큼이나 복잡한 이해관계가 교차하고 있는 상황이죠.





HR이 감당해야 할 몫

《서초동》의 안주형이 말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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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그렇게 딱딱 구분돼 있지 않아요. 하나가 바뀌면, 다른 것도 함께 바뀝니다.”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건 분명 긍정적인 변화입니다. 하지만 인력을 더 채용할 여유가 없는 조직, 유연근무제 설계가 미비한 조직, 몰입과 연결되지 않는 휴식은 오히려 누군가에게 또 다른 부담이 됩니다.


HR의 역할은 단순히 제도를 도입하거나 따르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 제도가 실제 누구에게 어떻게 작동할지를 질문하고 조율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의도와 구조, 공익과 개인,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관찰하고, 질문하고, 실험해야 합니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나타났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확신이 서지 않을 때, 그 불확실함을 경청과 실험으로 견뎌내는 일 — 그것이 지금, HR이 감당해야 할 몫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