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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퇴근중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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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혁 Jun 12. 2022

퇴근중담(談) EP1. 워라벨

퇴근하는 길에 끄적여보는 '쓸 때(write)' 있는 생각.


오늘날 MZ세대의 특징을 꼽자고 하면 많은 키워드가 언급되지만, 한창 인생 가도(街道)를 달리고 있는 20대 후반의 내 또래 사이에서는 '워라벨'이 단연 극강의 화두다. (솔직히 말하면 나 스스로를 MZ세대라 부르는 것도 조금 오글거리긴 한다.)



먼저 물어보자.

현재 당신의 삶은 워라벨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 당초 당신이 생각하는 워라벨의 기준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사실 우리는 언론이나 주변 사람 등을 통해 워라벨을 '저녁 있는 삶'이라는 개념 정도로 대부분 인식하고 있을 터다. 혹은 이에 준하는 수준의 '퇴근 후 온전히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삶' 정도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넘겨짚어 본다.


주변에서 하도 워라벨을 외치는 사람들을 봐서 그런 걸까.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과연 우리의 일상이 위 두 조건을 만족한다면 과연 이 삶을 '워라벨 극강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시선에 대해 나는 조금 회의적이다. 왜냐하면 지극히 '내 기준'에서의 워라벨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즉, 워라벨을 절대적인 어떤 기준으로 일반화하기엔 성급하다는 말이다.


물론 상사에게서 폭언을 듣거나, 부당한 초과 근무를 지시를 받는 형태 등 근로기준법에 저촉되는 근무 환경은 필히 개선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상황이 아닌데도 워라벨을 갈구하는 이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적지 않은 수가 타인과 자신의 삶을 무의식적으로 비교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언젠가 친구들과 술 한 잔 기울이던 중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A: "야, 얘(필자)는 우리 같은 직장생활 이해 못 할 걸?"

B: "맞아. 너(필자)는 회사 다니면서 야근한 적 한 번도 없잖아."


당시엔 웃어넘겼지만, 속으로 적잖이 당황했다. 따지고 보면 이들의 말도 물론 맞다. 나는 친구들의 직장생활을 '당연히' 모른다. 마치 조세호의 "모르는데 어떻게 가요!?"와 같은 말이지 않을까. 그런데 이와 같은 논리라면, 이들도 나의 직장생활을 '전혀' 모른다는 말이 성립된다. 다시 한번 위 대화를 곱씹어 보자.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을 자연스럽게 비교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말하는 워라벨 기준은 피상적인 '야근 횟수'라는 걸 알 수 있다.


이쯤에서 잠시 내 일상을 언급해보자면, 위 친구들의 말대로 입사를 하고 난 이후부터 야근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심지어 유연근무제라 출퇴근 시간도 어느 정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고, 직장인의 유일한 낙인 점심시간도 1시간 30분이나 된다. 그러나, 나는 하루에 4시간 30분가량을 고속도로 위에서 보낸다. 집 현관에서부터 직장 책상에 앉기까지 편도로 약 2시간 15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즉, 하루에 '버려지는 시간'이 4시간이 넘는 셈이다. 2시간을 넘게 달리는 광역버스 안에서 생리현상이 급하게 찾아오는 상상을 해봤는데, 이를 글로 옮겨 적는대도 매우 버겁다. 더욱이 좌석마저 일찍 차는 날이면 2시간 30분을 겨우 지름 15cm 남짓한 플라스틱 손잡이 하나에 의지해 버텨야 한다. 이렇게 집에 돌아오면 말 그대로 녹초가 된다.


개인적은 푸념은 그만하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보면, 과연 내 일상은 워라벨이 지켜지고 있는 건지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께 묻고 싶다. 야근 횟수가 0인 반면 출퇴근길 소모량은 상당히 큰 루틴이 우리가 생각하는 워라벨에 가까울까. 이 중에서 일부는 "그 정도면 참을 만 하지"라고 할 수도, 또 다른 이들은 "이건 조금 힘든데"라고 말할 수도 있을 터다.



이렇게 보면 워라벨은 정말 '상대적인 개념'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고로, 자신이 꿈꿔왔던 그 기준에 도달해야만 "내 인생은 워라벨이 지켜지고 있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두서없는 글의 골자는 "타인과 나를 비교하지 말고 내 길 가자"는 말이다. 워라벨의 절대적 기준은 없다. 다만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어긋날 때, 우리는 '워라벨 없는 삶'이라고 각인하는 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곰곰이 내 주변을 둘러보니, 생각보다 자기 계발은 없이 눈앞에 놓인 상황을 탓하고 벗어날 수 없다며 우울해하기만 하는 친구들이 많고 요즘따라 더욱 많아진 것 같은 느낌이다. 열심히 저축하고 끊임없이 투자해 소위 말하는 '경제적 자유'를 이뤘다는 유튜브 속 어느 이들처럼, 당신이 꿈꾸는 워라벨에 다다르기 위한 어느 정도의 인고의 시간은 어쩌면 당연히 필요한 게 아닐까 싶다.


누가 어떻게 보든 간에, 나는 지금의 내 삶이 퍽 행복하다.

이유는 명확하다.


과거의 나보다 발전한 지금의 내가 보이고, 적어도 '이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고 싶은데?'라고 생각해오던 상상이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내가 꿈꾸는 워라벨'에 미약하게나마 다가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막연하게 소위 말하는 '노오력'을 하자는 말이 아니다. 매일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더라도 그 안에서 아주 작을지라도 의미 있는 가치를 찾아보자는 말이다. 하다못해 평소 나를 자주 갈구던 상사가 점심시간에 툭 칭찬을 건네는 그 순간일지라도.


그래서 마지막으로 내가 내린, 그리고 앞으로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나만의' 워라벨은 다음과 같다.

"Work, Life, Value"


같이 가치를 찾아보자. 분명 오늘보다 조금은 나은 내일이 찾아올 수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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