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퇴근중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승혁 Jun 20. 2022

퇴근중담(談) EP2. MBTI

퇴근할 때 끄적여보는 '쓸 때 있는(write)' 생각

'만물 MBTI설'이 정설이 되어가는 요즘이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등 수많은 소통 상황에서 발생하는 어떠한 장애 요소도 무장해제시키는 일종의 EMP(전자기파) 역할과, 때와 장소에 상관없이 찰나의 '대화 공백'마저 꽉 채워주는 시멘트 역할까지 톡톡히 해낸다.

출처:KOGAS 웹진

잠시 부끄러운 경험을 말하자면, 나는 소개팅 자리에 나갈 때 대화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질문 목록을 죽 뽑아가는 편이었다. 기본적인 신상 정보부터 상대방의 꿈과 비전까지 파악할 수 있는 대화가 이어지도록 연습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적어도 하루 전엔 일정 시간을 투자해 허공에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야 했다.

위 상황을 미루어봤을 때, MBTI가 대단한 점은 소개팅과 같은 어색한 자리에서 16가지 유형, 하다못해 E(외향)·I(내향), S(감각)·N(직관), T(사고)·F(감정), P(인식)·J(판단)으로 분류되는 8가지 판단 지표만 알고 있어도 소모적인 과정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생판 모르는 사람'과 '큰 노력 없이' '실속 혹은 재미있는'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방점을 찍는다.

지금부턴 내 좁은 시야에서 파악해 본 'MBTI'에 대란 단상을 두서없이 적어 보려 한다. 먼저, 아래 5초도 안 되는 짧은 한 마디를 자세히 쪼개 보면 '우리가 MBTI에 열광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제가 한 번 MBTI 맞춰볼게요.
왠지 외향적(E)이실 것 같고..."


소개팅 자리에서 위 문장을 말하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서로에 대한 어떠한 배경도 알고 있지 않은 두 사람은 그래 봤자 채 몇 분 되지 않은 대화 속에서 파악한 사실과 직감만을 토대로 상대방을 규정해야 한다. 마치 정답을 찾아가는 '스무고개'가 시작된 셈인데, 이 과정에서 우리는 MBTI를 빌려 상대방의 성향과 가치관을 손쉽게 파악할 수 있을뿐더러 첫 소개팅 자리에서 가장 중요한 '재미'와 '흥미' 또한 배로 증가시킬 수 있다.

사실 외관적인 부분을 제외하면, 첫인상을 크게 좌우하는 요소는 상대방에 대한 흥미가 생기는지에 대한 여부다. 다음 약속이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풍겨야 하는데,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그런 느낌을 풍기기란 굉장히 어렵다. 이때 MBTI를 활용하면 보다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심지어 상대방 이미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뿐인데, 대화 전체를 리드하는 듯한 느낌도 자아낸다.

MBTI와 관련된 이야기(궁합, 각종 테스트 등)만 잘 버무려도 한 시간은 무리 없이 지나갈 수 있다. 워밍업이 잘 됐다면, 이후에는 MBTI 판단 지표에 국한된 내용 말고 서로를 보다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동사형 대화'로 넘어가 보면 어떨까. 지난날 소개팅보다는 훨씬 덜 어색할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마치 MBTI를 맹신하는 사람 같은데, 뭐든지 과유불급이라고 한 가지 유념해야 할 점이 있다.

MBTI에 잠식되면 안 된다. 세상 모든 사람을 16가지 분류로 나누는 점을 경계하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을 터다. 하지만 내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자기 자신마저 속여가며 스스로를 MBTI 유형에 가두지 말라는 뜻이다.​


최근 뉴스를 보면, 회사 면접에서조차 MBTI가 적극 활용되고 있다. 더 나아가, 마치 '옳은 MBTI'가 있는 마냥 인간 내면의 본성과 성질을 갈라 치기를 하고 있는 곳도 더러 있다. 행동의 좋고 나쁨은 있어도, 본질의 좋고 나쁨이라는 개념은 그 어디에도 없다.

즉, 내향형이라고 해서 사회 부적응자가 아니며 즉흥적이라고 해서 인생을 막 사는 건 아닌 것처럼 죽을 때까지 이 성질이 변하지 않는단 말도 아니란 것이다.

MBTI에 깊이 매몰되면 내가 모든 행동의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평가를 통해 나온 MBTI 유형에 내 자신을 끼워 맞추게 된다. 얕게 "나는 이런 유형의 사람이야"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무조건 이렇게 행동해야 하는 사람이야"라고 주객전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SNS처럼 '보여지기 위한 사람'으로 점점 변모할 수 있는 것이다.

​​


결론은 '만물 MBTI설'이 그렇게 좋은 정설은 아니란 것이다. 조금(?) 살아본 인생에 비추어보면, 인간은 평생 한결같을 수 없다. 순간순간의 상황에 맞춰 살아가는 생물이고, 수많은 깨달음과 노력을 통해 '변해가는' 존재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MBTI는 딱딱 적을 칸이 정해져 있는 답안지이고, 수많은 성격 변화의 가능성마저 배제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네 인생사와 사뭇 다르다.

칸이 정해져 있는 MBTI에 빗댄 내 자신 말고, 서술형 답안지 속의 나를 보자.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매거진의 이전글 퇴근중담(談) EP1. 워라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