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나

그림 소설

by 희원이

[목차: 숙희였던 게이코와 에밀리 디킨슨]

♬ 할머니와 나

♬ 엄마에게

♬ 가보지 않은 길

♬ 아이도 내 마음 같지 않고

♬ 그래도 은생이었다

♬ 에필로그


[소개말]
- '숙희였던 게이코와 에밀리 디킨슨'은 놀이글 스타일을 적용한 그림 소설입니다.
- 이미지는 모두 고흐의 작품입니다.

- 작중 서술자인 여성 희원이는 자신의 가족에 관한 인터뷰를 한다. 다큐 감독이 전면에 나서진 않지만, 인터뷰 문체를 적용하고 있다. 감독은 주로 작중 서술자인 희원이에게 의존하지만, 할머니 등 다른 인물의 인터뷰도 담아낸다.
- 손녀로서 할머니에게 살갑지는 않다. 할머니는 조금 어려운 면도 있었다. 그냥 누구나 그렇듯 평범한 손녀의 평범한 할머니라고 하지만, 그 시절 할머니들이 청춘을 버텨온 과정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IMG_1760.PNG


현- 기증이 났다.

대- 구가 고향이라던 여자는

인- 제 서울이 고향이란다.

에- 이코 할머니가 아직 사랑도 모르던 어릴 적

게- 이코를 만났다. 게이코는


성- 공이란 중도에 자빠져 접시물에 코 박고 죽지 않으면, 그게 성공이라던

경- 성의 여자, 조선 이름은 숙희였던가.

이- 곳이 고향이었다가 저곳이 고향이 되기도 하는 사람, 숙희는 말했다.

란- 말이야, 그렇게 살았어. 어쨌든 살아야 했어.





IMG_1761.PNG → 서술자 나, 희원이


♬ 할머니와 나


글쎄요, 할머니요? 맞아요,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 조금은 이해해요. 더 정확히 말하면 처음에는 이해해야 할 분이 아니었죠. 할머니였으니까요. 그냥 할머니는 있었고, 할머니가 하는 일에 대하여 특별히 생각한 적이 없죠. 할머니는 으레 당신의 일을 하고 있었어요. 할머니는 저를 딱히 예뻐하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사랑을 살갑게 표현해주시지도 않았어요. 무뚝뚝한 편이었어요.





IMG_1762.PNG → 할머니, 언숙희


다른 분처럼 손자를 조금 더 챙기는 편이었지만, 손녀라는 이유로 차별 대우를 한 것도 아니었고요. 그렇다면 저는 할머니를 사랑했을까요? 저도 할머니를 닮은 면이 있었어요. 사랑하지만, 애정 표현을 잘하지 못했거든요.

중학교 이후로는 자주 뵙지도 못했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에 할머니가 돌아가셨고요. 제가 반말로 할머니를 친근하게 부를 때가 주로 기억나죠. 어느 순간부터 존대했는데, 갑자기 그때 할머니는 조금 어려운 분 같았거든요.




IMG_1763.PNG


그저 가끔 통화로나 인사를 드리고, 거의 뵙지 못했던 명절 때였나, 그럴 때도 한두 마디 하였을 뿐 특별한 기억은 없어요. 대학교에 입학하고 인사드렸을 때는 이미 할머니는 암 말기로 시한부 선고를 받고 제게 깊은 관심을 보일 여력도 없었죠. 그렇게 아프면 모든 것에 관심이 없어지나 봐요. 너무 아프니까, 할머니는 점점 당신의 고통에 매몰되었죠.


[할머니, 언숙희 여사의 생전 기록]
“그래, 서울에 있는 명문 대학에 갔다고? 잘했다. 수고했다.”





IMG_1764.PNG


그 말에는 수고했다는 격려와 함께, 손녀를 향해 덕담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냥요. 특별한 일이 있어서 그렇게 느낀 건 아니고요. 어쩌면 할머니와의 교감이 사라지면서, 제가 모종의 연대감을 찾지 못해서 그런 서먹한 느낌을 받았는지도 모르죠.





IMG_1765.PNG


사실 손주 세대에 할머니 인생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이 있을까요? 없지는 않겠죠. 할머니가 자서전을 쓴다든가 할 만큼 선망 받을 위치에 올라섰다면,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알렸을 테니까요. 모 소설가의 며느리는 남편과 함께 그분의 작품을 모두 필사했다는 소문도 있죠.


정말인지 모르겠지만요. 사실 몇 번 하다가 만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번거로운 일을 시켰다면 그만 한 이유가 있었겠죠. 그분의 자산과 가족의 경제적 안정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알 필요도 있었겠죠. 또 그분의 생각을 알아야 한다는 의미기도 하겠고요.

하지만 우리 할머니는 평범한 사람이라 딱히 내세울 만한 게 없다고만 했어요. 자신의 인생을 서술하는 데에 관심이 없었고, 그만 한 재주도 없었고요.





IMG_1766.PNG → 서술자 나, 희원이


우리에게도 할머니는 그저 우리의 할머니였고, 그것으로 되었다 여겼죠. 할머니의 과거라든지, 할머니의 가치관 같은 것을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어요. 할머니의 꿈도 마찬가지였죠.

그 시절엔 그저 입에 풀칠하는 게 삶의 목표였다고 외면해버린 것일 수도 있어요. 어찌 보면 할머니에게 그런 것을 궁금해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예, 맞아요. 그냥 할머니는 할머니니까요.





IMG_1767.PNG
IMG_1768.PNG
IMG_1769.PNG
IMG_1770.PNG


[할머니, 언숙희 여사의 생전 인터뷰]
“그 시절 얘기는 해서 뭐하겠어? 젊은 양반이 별 걸 다 궁금해하는구먼. 하기야 작가 양반이라 했지. 그래, 그래, 작가 지망생이 그런 궁금증이 있는 게 당연할 것이고, 그런 궁금증도 있어야 작가도 되는 것이고 그러겠지.
하지만 딱히 해줄 말이 없어. 종종 자기 인생을 말하면 대하드라마고, 책으로만 펴내면 세상이 깜짝 놀랄 거라 하는데, 내게는 그런 거 뭐 딱히 있을 리 없지.”

“처음엔 하루하루 입에 풀칠이나 할 수 있을까 무서웠고, 그래도 비참한 처지로 전락하지 않고 매일 바쁘게 일을 할 수 있어서 좋았지. 딱히 좋아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좋아하는 일이 있던 것도 아니고.
그냥 우연히 내가 미싱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았을 뿐이야. 친구를 도우러 들어갔던 수선집에서 재능이라면 재능을 발견한 거지. 푼돈이라도 쥐여주니, 일에 만족했던 거고.”

“그즈음 남편 될 사람도 일하던 시장에서 만난 거고. 당시에 어느 남자가 애비도 모르는 여식 딸린 사람에게 호의적이었겠어? 그런 면에서 그에 대해 별 토를 달지 않았던 남편은 특이했고, 일견 무관심인지 무뚝뚝함인지 그게 고맙기도 했지.”

“글쎄요, 그래도 우리 손주들은 나처럼 살지는 않았으면 싶지. 자식들이야 어쩔 수 없이 함께 가난을 견디고 자기 삶을 조금씩 포기한 부분도 있지. 우리 부부가 처음부터 아이들에게 뭘 해줄 형편은 못 되었거든. 그래도 열심히 살았어.
새벽녘에 일어나 도시락 싸서 애들 학교 보내고,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미싱 돌렸거든. 거래하는 아저씨들이 차를 끌고 오면, 정산 하고 모자 물량을 배당했지. 내 모자가 제법 튼튼해서 평이 좋았거든.”

“남편은 사업 수완이 좀 있어서 돈을 어디서 끌어 모아왔는지 내 기술을 활용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그렇게 십 수 년 일하고 나니 기반이 제법 잡혔어. 남편을 잘 만났지. 솔직히 그때는 엄청나게 좋아하고 말 게 뭐가 있나? 내가 딱히 잘난 것도 없고 말이지. 그냥 서로 의지하고 자식들 무리 없이 키울 수 있으면 그걸로 되었지. 무뚝뚝해도 사람은 말썽도 안 피우고 괜찮았지.”

“어디서든 지 밥벌이는 할 사람처럼 보여서, 과일 가게 아저씨 밑에서 일 배우던 때에 만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괜찮다 싶어서 집도 합치고 그냥 살았던 거지.
결혼식? 그것도 한참 뒤에나 자식들이 해준다고 해서, 기념으로 했지, 우리 살던 때엔 궁색한 처지면 뭐 그런 것도 없었지. 둘 다 고아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물론 좀 기반이 잡힌 뒤로는 형편이 나아졌다고 해도 이상하게 일을 안 하면 좀이 쑤시고 불안하기도 하고…. 쉬고 싶으면 쉬고,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먹고. 그래,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면서 사는 것도 괜찮지. 자식이 원수라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자식이 속 썩이진 않았던 것 같아. 어쩌면 내 마음가짐 덕분인지도 모르지. 처음부터 그런 생각은 안 하기로 마음먹었으니까. 그냥, 그런 마음을 먹었던 거지, 특별히 이유가 있다기보단…”











keyword
이전 06화해롭지 않다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