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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콘 Jun 05. 2019

혹시 당신도 그저 버티고 있나요?
_브런치 무비 패스

영화 <하나레이 베이>을 보고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서 영화를 보았습니다.

*해당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며, 개인적인 시각을 공유합니다.



우선 기대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쿄 기담집]이라는 책을 보지는 않았지만 그의 글은 가슴 깊이 존경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섬세하고도 기묘한 감정선을 과연 어떻게 영상에 담을 수 있을까? 궁금함이 더 컸고 그래서 딱히 더 많은 정보를 찾아보지 않았다. 또한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프로듀서인 오가와 신지가 참여했다고 했기에 제대로 서정적인 일본 영화가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무채색, 혹은 무미건조한, 알 수 없는 그녀


'사치'는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하와이로 급하게 날아간다. 그녀가 마주하게 된 것은 곱게 눈이 감겨있는 아들의 얼굴과 상어에 물려 있어야 할 다리가 없는 아들의 신체였다. 담담했다. 아니, 담담했다고 하기보다는 그녀는 어떻게 슬퍼해야 할지 몰랐다. 방법을 몰라서 그녀는 담담하게 있었다. 아들의 소지품을 마주하고, 아들을 담을 유골함을 골라도 그녀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그녀는 스스로 울지 못해서 화장실에서 거센 물줄기를 통해 대신 울었다. 가슴 깊게 슬픔을 욱여넣었고, 그녀의 눈은 "여기서 울면 모든 게 무너져"라고 말하는듯했다. 그녀는 감정을 토해내기보다는 꾹꾹 눌러 담아서 가두었다. 아들의 서핑보드를 보고도, 아들이 가고 싶어 했던 하와이의 "하나레이 베이"를 가고도 그녀의 표정에는 읽을 수 없는 슬픔이 가득했다.


사치와 그의 아들


#각자 슬픔을 소화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에요.


그녀는 그녀 만의 방식으로 슬픔을 해소했다. 귀국길에 갑작스럽게 일주일 더 하와이에 머무르고, 같은 장소에서 아무와도 대화하지 않고 책을 읽으면서 떠난 아들을 애도했다. 마약 중 도자였던 남편, 그래서 사랑을 주고 키우지 못한 아들. 그녀는 살아남아야만 했던 엄마였다. 감정을 절제해야지 자신이 살 수 있었다.


그렇게 10년간 그녀는 같은 시기에 하나레이 베이를 찾았다. 늘 같은 곳에서 책을 읽고, 피아노를 치고 싶으면 친한 Bar에 들려서 가끔 피아노를 쳤다. 그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들의 부재를 애도했다. 가끔씩 아들에 대한 기억들이 떠올랐지만, 그저 떠올랐을 뿐 그녀는 꾹꾹 눌러 담은 슬픔이 그저 조용히 소화되기를 기다렸다.


누군가에겐 비련의 여주인공 같이 느껴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갑작스러운 임신으로 꿈을 잃어버린 '사치'에게는 오히려 감정의 표출이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그저 버티는 방법을 선택했을지 모른다.



#던져진 돌멩이는 작지만, 파동은 몇 십배가 된다.


10년 차가 된 어느 날 그녀는 하와이에 서핑을 즐기러 온 일본 남성 두 명을 마주하게 된다. 아들 또래만 한 아이들이고, 서핑을 즐기러 온 것만큼 그녀는 그 두 남자아이들을 외면하기가 쉽지 않았다. 두 학생들 역시 츤데레처럼 도와주는 사치에 관심이 있었다. 그녀가 왜 혼자 이 하와이에 있는지도 궁금했기도 했고, 사치의 도움으로 숙소도 싼 가격에 잡을 수 있었기에 세 명은 하와이에 머무르면서 자주 대화를 나눴다.


아들을 떠올리게 하는 아이들 때문이었는지, 그녀의 감정에 조그마한 돌멩이가 던져진 듯했다. 그녀의 표정은 조금씩 다채로워지기 시작했다. 흑백 세상에 색이 하나씩 생겨나듯이 두 명의 남자아이들은 그녀의 감정에 묘한 파동을 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떠나기 전 외발이 서퍼에 대한 말을 건넸다. 늘 '사치'주변에서 외발이 일본인 서퍼가 늘 지켜보고 있는데,  말이라도 걸라고 하면 사라지고 없다고. 그 말 한마디가 사치에게 큰 파동을 전해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정체불명의 일본인 서퍼를 찾아서 하나레이 해변을 미친 듯이 뒤적거리고 다녔다.



#혹시 당신도 그저 버티고 있는 건 아닌가요?


실마리 같은 희망, 분명 죽은 모습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하는 희망의 파동이 커져가면서 그녀가 눌러 담았던 슬픔이 막힌 둑이 터지듯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슬픔을 소화하고 있던 게 아니었다. 그저 버티고 버티면서 삶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그런 그녀는 뒤늦게 슬픔을 그리고 아들의 죽음을 마주하게 된다.


버티다 보면 언젠가는 지쳐 쓰러지는 시간이 온다. 그녀는 누구에게도 기댈 곳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마약중독자 남편으로부터 아들을 지켜야 했기에 버티는 삶을 선택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결국에 그녀는 버티기보다는 마주하는 방법을 배운다. 터진 슬픔을 눈물로 대화하게 되었다. 이제 더는 수돗물을 크게 틀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좀 더 후려한 얼굴을 가지게 된다.



#잔잔하고 고요한 영화


잔잔하고 고요했다. 영화는 받아들임에 대해 말해주었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인생이 그러함을 받아들이는 것. 누구나 슬픔을 간직하고 있지만,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우면서 다들 성숙해지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아름다운 하와이의 자연이 영상에 녹아들었고, 중간중간 서핑을 통한 역동성으로 영화의 지루함을 덜 수 있었다.


그리고 사치를 연기한 '요시다 요'의 연기가 일품이었다. 나도 모르게 영화를 보면서 그녀의 표정에 집중하게 되고 마음을 묻게 되었다. 지금 당신은 무슨 기분으로 그런 표정을 짓는 건가요. 그녀의 성숙한 여기 하나만으로도 '하나레이 베이'는 훌륭한 영화가 될 수 있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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