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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달 솔방울 Jan 24. 2024

아침 도시락 싸는 시간

겨울 아침의 그러데이션


  아직 해가 다 뜨지 않은 겨울의 아침, 나는 가족 중에서 제일 먼저 잠자리에서 빠져나와 어둠이 자욱한 주방으로 토도토도 걸어간다. 졸린 눈 비비며 허리를 숙인 나는 스르륵 장을 열어 냄비를 꺼낸다. 다시 냉장고로 토도토도. 끼-익. 나이 많은 냉장고는 힘겹게 문을 열고 나에게 달걀 네 알을 건넨다. 나는 달걀들이 깨지지 않게 냄비에 조심조심 담고 쏴아- 물을 받는다.

  톡. 후드의 조명이 눈앞의 어둠을 즉시 물리치는 바람에 나는 잠시 눈살을 찌푸린다. 굵은소금 한 꼬집, 식초 한 스푼 쪼르륵. 똥-띠딩 땅. 인덕션을 켠다. 달걀 품은 냄비에 열을 당긴다.

  냄비의 열이 오르는 동안 나는 다시 토도토도 냉장고로 다가간다. 몽롱했던 정신이 얼마간 또렷해지기 시작한다.

  끼익- 드르륵. 바스락바스락. 냉장고 가장 아래칸, 도무지 빛이 들지 않을 것처럼 생겼지만 '태양광 저장소'라고 쓰여 있는 서랍칸에서 봉지에 든 사과를 꺼낸다. 나의 능숙한 왼손은 베이킹 소다 통을 들어 오른손에 들린 뜨개 수세미에 소다를 포르르 뿌리고는 재빨리 사과를 집어든다. 베이킹 소다로 슥슥 샤워한 사과는 도마에 올라 따악- 두 동강 난다.

  보글보글. 달걀 물이 끓어오른다. 인덕션 세기를 중간으로 줄이고 7분 타이머를 설정한다. 파스텔톤 부연 노른자와 약간 덜 익어 진-한 노른자가 섞인 반숙 달걀을 생각하니 입 안에 군침이 돈다.

  달걀 네 알이 익을 동안 사과 반쪽을 껍질째 채 썰어 신랑 도시락에 반, 내 아침 샐러드 접시에 반씩 나누어 담는다. 타이머가 있으니 나는 그 안에 작업을 끝내고 싶어 긴장을 한다. 슈웅 미끄러지듯이 냉장고로 다가가 엄마가 미리 채 썰어 주신 양배추통과 당근통을 신속하게 꺼낸다. 아삭아삭 오독오독 채 썬 양배추와 당근을 남편 도시락에 한 움큼, 나의 샐러드 접시에 한 움큼. 어제 씻어 둔 딸기 세 알, 엄청나게 다디 단 귤도 한 개 귀엽게 올린다.

  '띠디디디 띠디디디 띠디디디' 7분 타이머다. 신랑과 내가 먹을 달걀 2개를 건져 찬물에 담가두고 아기들 먹일 달걀 2개는 완전히 익도록 3분 더 끓인다. 그러는 동안 어제 퍼놨던 반찬 도시락에다 밥을 퍼담고, 다용도실에서 보온 가방을 가져온다.


각자의 자리에서 감사하고 감격하고 기뻐하는 하루 쌓아가길


  어둠에 잠겨있던 주방이 서서히 그 자태를 드러낸다. 까만 필터를 입힌 듯 컴컴하던 주방이 도시락 싸는 20-30분 사이에 색깔을 되찾았다. 흰 밥솥, 나무색 상판, 핑크색 아기 컵, 파아란 도마 위로 햇살이 스며든다. 안녕, 반가웠어. 새벽 끝자락에 걸려있던 어둠아.

  겨울은 오늘도 굼뜨게 떠오르는 햇빛을 붓 삼아 그러데이션을 그리며 아침을 부른다.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다가 서서히 깨어나는 내 몸과 마음에도 다채로운 감정이 깃든다.


  주방에도 나의 마음에도 아침이 왔다.



우와! 많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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