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 casa tu es casa
ㅣㅣ 1. 붉은 크리스마스
성탄절 예배
크리스마스이브의 저녁이었다. 평소와 같이, 나는 우리 교회 2층의 구석진 자리에 앉아 있었다. 교회 안은 성탄의 기쁨으로 충만했으며, 장엄한 찬가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화려하게 장식된 트리와 다양한 장식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반짝이는 장식들은 희망의 빛을 퍼뜨리며, 눈부신 전구들은 따뜻한 위로를 전달했다. 교회 곳곳에는 교인들의 손길이 닿은 장식과 미술 작가들의 작품들이 어우러져 성스러운 예술의 전당을 이뤘다. 가장 시선을 끌었던 것은 2층으로 향하는 계단 앞에 전시된 붉은 십자가였다. 그 붉은 십자가 앞에 서면, 마치 붉은 피의 직물로 섬세하게 짜인 듯한 느낌이 가슴 깊은 곳을 울렸다.
그날의 예배는 평소와 달랐다.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아 교회 안은 특별한 활기로 가득 찼다. 화려한 트리와 눈부신 장식들이 성스러운 공간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특별한 순서를 기다렸다. 프로 가수들이 특별 게스트로 초대되었으며, 그들의 공연은 평소와 확연히 달랐다. 그들의 찬송은 단순한 노래를 넘어서며, 각주마다 정교하게 조율된 멜로디와 하모니를 이뤘다. 그들의 목소리는 맑고 강력해 교회의 높은 천장을 울리고 성도들의 마음까지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 특별한 크리스마스이브의 예배는 참석한 이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감동적인 순간으로 남았다.
예배에 몰입하고 있던 그 순간, 친구로부터 연이어 전화가 왔다. 예배 중이었기에 나는 문자로 간단히 답했다. "지금 예배 중이야, 나중에 전화할게." 그러나 친구는 계속해서 전화를 걸어왔고, 내 아이폰은 여러 번 진동하다가 곧 조용해졌다. 예배를 마친 후, 나는 교회 주차장 구석으로 향했다. 야마하 R3 레플리카 오토바이를 타고 왔기 때문에 찬바람을 맞으며 가야 했다. 무스탕 재킷의 지퍼를 최대한 올리고 완전무장한 뒤, 키를 꽂아 엔진을 켰다. 야마하 특유의 거친 엔진 소리가 주변을 울렸다. 겨울이었기 때문에 약 3분간 예열한 후에야 오토바이를 출발시켰다.
소주 한 병
내 방의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아이폰의 화면은 밤의 어둠을 가르는 등대와 같았다. 그것은 탈출구였으며, 수많은 이야기와 멀리 떨어진 장소로의 관문, 하루의 무거운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장벽이었다. 소주를 한 모금씩 마실 때마다 세상은 점점 더 흐려졌고, 유튜브나 넷플릭스에서 흘러나오는 콘텐츠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마치 의식처럼 나를 잠재우는 진정제가 되었다.
이 의식은 단순히 하루를 마무리하는 방법으로 시작되었지만, 오랜 시간 동안 이어진 불면증으로 인해, 결국 술에 취하지 않고서는 잠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벌써 20년째, 매일 밤 소주 한 병을 비우며 나만의 수면 유도제로 삼았다.
그날 밤, 나는 고요한 방 안에서 소주병을 들었다. "자, 이 한 잔에 2023년을, " 나직이 중얼거리며 첫 잔을 비웠다. 또 한 잔을 채우며 마음을 다잡았다. "자, 또 한 잔에 배신한 자들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소주의 매캐한 향이 코끝을 자극하며, 마음 한편에 자리한 원망과 분노가 서서히 풀리는 듯했다.
세 번째 잔을 손에 쥐며 나는 더욱 진지해졌다. "그리고 또 한 잔에, 후회와 참회를..." 이 말과 함께 소주가 목을 타고 내려가는 순간, 올해의 고통과 슬픔, 실수들이 모두 스르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소주 한 병이 고갈되는 동안, 나의 마음도 서서히 비워졌으며, 그렇게 혼자서의 술자리는 무거운 한 해의 무게를 조금씩 내려놓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오랜만에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 채로 잠에 들었다.
나는 때때로 신비한 꿈들을 꾸곤 한다. 이러한 꿈들은 종종 예지몽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특별한 이야기의 구성을 이루기도 한다. 어떤 밤에는 꿈속에서 인생의 한 계절을 온전히 살아내기도 한다. 그것은 불과 한밤의 잠으로 이루어진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깨어난 후에는 마치 몇 달간의 경험을 한 것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꿈들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때로는 내 삶에 대한 통찰이나 영감을 제공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꿈속에서 만난 사람이나 경험한 사건들은 나중에 현실에서 마주치게 되는 상황들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기도 하다. 이는 마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능력처럼 느껴지며, 나를 둘러싼 세계와의 연결고리가 더욱 강해지는 기분을 준다.
때로는 이 꿈들이 나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어떤 꿈에서는 나 자신이 미래에 마주칠 도전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는 현실에서 직면한 어려움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 다른 꿈들은 과거의 기억이나 감정을 다루며, 이를 통해 내면의 평화를 찾거나 오래된 상처를 치유하는 데 기여한다.
꿈은 나에게 단순한 수면의 일부가 아니라, 내면의 세계와 교감하고 자아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신비로운 여정이다. 그것은 현실과는 다른 방식으로 시간과 공간을 경험하게 해 주며, 때로는 삶의 의미를 탐구하고 내 존재의 깊이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창을 열어준다. 이렇게 꿈을 통해 얻은 통찰과 영감은 나의 일상생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더 넓은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의 욕구를 자극한다
새벽 전화
그날 밤, 나는 꿈의 세계를 여행하고 있었으나, 그 내용은 희미한 안개처럼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새벽의 고요를 깨운 것은 전화기의 진동이었고, 그 소리는 꿈과 현실 사이의 가느다란 실을 끊어버렸다. 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전화기를 잡고, "여보세요?"라고 중얼거렸다. 그 순간, 전화기 너머로 전해진 목소리는 내 마음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친구의 목소리였지만, 그가 전한 소식은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야, XX가 죽었어." 그 말은 순식간에 꿈과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며, 나를 깊은 실의로 몰아넣었다.
시간이 멈춘 듯, 나는 몇 시간 동안 친구의 영정 사진 앞에 앉아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려 애썼다. 그의 웃는 얼굴은 이제 추억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밤이 깊어가면서 조문객들이 하나둘 찾아왔지만, 그 수는 예상했던 것에 비해 턱없이 적었다. 친구는 평소 수많은 사람들과 어울렸고, 그의 직업적 특성과 인품은 더 많은 이들이 그의 마지막 길을 함께할 것이라 기대하게 만들었다.
화가 치밀어 올라, 나는 친구의 아내에게 다가가 그의 아이폰을 달라고 부탁했다. 손가락이 떨리는 가운데, 연락처에 등록된 모든 이들에게 비보를 전하는 메시지를 작성했다. "우리의 소중한 친구, XX가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마지막 가는 길, 함께해 주세요."라는 호소는 디지털의 차가움을 넘어서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 퍼졌다.
그 이후, 사람들은 물밀듯이 친구를 추모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모두가 충격과 슬픔에 잠겼지만, 그의 삶을 기리는 이야기들이 공간을 채웠다. 각자가 기억하는 그의 웃음, 그의 친절, 그리고 그가 남긴 영향력은 슬픔 속에서도 우리 모두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
그날 밤, 나는 꿈에서 깨어나 깊은 슬픔과 현실의 무게를 마주했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친구가 우리에게 남긴 사랑과 우정의 깊이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었다. 그의 부재는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남겨진 상처가 되었지만, 그를 통해 얻은 추억과 교훈은 시간이 지나도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이다
2. 떠나보내고
한 우주 소멸
"우리 각자의 삶은 한 권의 서사시와도 같다. 시간의 강물에 떠 있는 수많은 존재 중 하나일지라도, 각자의 경험과 이야기로 세계에 깊이를 더한다. 어떤 이는 산봉우리처럼 드높은 업적으로 기록되지만, 대부분은 조용한 호수처럼 겸손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그들의 삶이 덜 중요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들의 일상이야말로 시대의 정신을 반영하고, 역사의 숨결을 이어가는 것이다. 각 인간의 존재는 별들이 수 놓인 밤하늘에서 빛나는 하나의 별과 같다. 수많은 별들이 모여 밤하늘의 웅한 풍경을 이루듯, 우리 각자의 삶도 인류라는 저마다의 우주에서 빛을 발산한다. 그러한 별 하나가 사라질 때, 그 우주는 그 별이 품고 있던 이야기와 기억들을 잃게 된다. 하나의 삶이 종료됨에 따라, 그 삶이 남긴 사랑과 슬픔의 순간들, 깨달음과 후회들은 조용히 시공을 떠돌며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을 기다린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삶은 단순한 존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모두 우리가 살아가는 이 역사 속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짓고, 그 이야기를 통해 무언가를 남긴다. 삶이라는 무대 위에서 우리는 저마다 주연이자 조연이며, 때로는 관객이기도 하다. 우리의 대사와 행동 하나하나가 서사시의 한 구절을 이루며, 우리가 더 이상 그 무대 위에 서 있지 않을 때도, 우리가 남긴 서사는 계속된다. 존재의 의미를 사색할 때, 우리는 고대 철학자들의 사유에 기대어 볼 수 있다. 그들은 우리가 우주 안에서 차지하는 공간이 미미하다고 가르쳤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 각자가 가지는 가치와 영향력은 무한하다고 믿었다. 이러한 관점은 우리에게 겸손과 책임감을 부여한다. 우리의 삶의 이야기가 어떤 책의 페이지를 장식할 때, 그것은 단순한 글자의 나열이 아닌, 시대를 초월하는 서사로 남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이야기가 디지털 형식으로 남을 때, 그것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예술과 문화의 한 부분으로 남게 된다. 각 사진은 우리의 감정, 경험, 그리고 생각을 담아내며, SNS는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 우리의 가치와 인간성을 세상과 공유한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죽음이 누군가의 기억으로 남을 때, 우리는 인생이라는 거대한 수레바퀴에 연관된 수많은 에피소드와 경험했던 시간들, 그리고 행복했던 순간들을 누군가의 마음 한 구석에 물방울처럼 남겨 놓는다.
"생명의 소중함을 넘어 한 개인이 사라질 때, 우주의 한 부분이 소멸하는 것처럼 깊이 있고 신중하게 죽음을 대면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안타까운 사람들의 죽음은 더 큰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3. 정리
회한
친구의 삼일장이 막을 내린 후, 나는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서 비롯된, 영혼을 쥐어짜는 듯한 슬픔에 휩싸였다. 그 순간의 고통은,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던 충격의 파도와 같았다. 그 여파로 인해, 이후 두 달 동안 나는 마치 세상과 단절된 것처럼,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일상의 모든 순간들—회사에서의 업무, 친구들과의 만남, 심지어 가장 친밀해야 할 가족과의 대화조차도—이 모두가 무의미한 장면들로 변해갔다. 나는 깊은 우울의 나락으로, 끝없이 추락하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마치 친구의 죽음이 나의 부주의에서 비롯된 것처럼, 그날, 마지막으로 그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한 무거운 죄책감이 나를 짓눌렀다. 이 무한한 후회와 회한은, 나를 점점 더 깊은 절망의 소용돌이로 밀어 넣었고, 나의 존재 자체마저도 의문스러워졌다.
그러나 깊은 어둠 속에서, 불길처럼 번지는 진실이 있었다. 친구의 죽음은, 수년간 내 영혼의 그늘진 곳에 쌓인 자아소외감과 염세주의에 불을 붙인 단지 한 순간의 불꽃이었다. 이 충격적인 사건은, 내 삶의 방향을 이미 잃어버린 나에게, 목표의 부재와 존재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방황에 깊은 상처를 더했다. 이미 흔들리고 있던 내 삶의 모든 요소들은, 친구의 갑작스러운 부재라는 폭풍우 속에서 결정적인 타격을 받았다.
나는 마치 좀비처럼, 다른 이들처럼 살아가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매일을 견뎌냈다. 그러나 이 깨달음은 내가 얼마나 절망적으로 삶에서 멀어져 있었는지, 내 존재가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를 직면하게 만들었다.
이 모든 고난의 여정은, 내 인생을 비극적인 드라마로 만들어, 깊은 슬픔과 상실감, 그리고 존재에 대한 의문을 남겼다. 그것은 나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기보다는, 근원적인 질문들과 끝없는 의구심의 늪으로 빠트렸다. "진정한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이렇게 고통 속에서만 깨달음을 얻는가?", "앞으로의 삶에서 나는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친구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통해 내 마음속에 더욱 깊이 자리 잡았다.
친구의 부재는 나에게 단순한 상실 이상의 것을 남겼다. 그것은 나의 존재와 삶의 방식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나는, 삶의 진정한 가치를 찾아 헤매는 여정 속에서, 나 자신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더 깊은 침묵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나는 더 많은 의구심과 질문을 마주하게 될 것이며, 그것들이 나를 어디로 이끌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정리
“난 더 갈 수 없다.” 이 말은 내가 내린 결정의 시작이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내 존재와 내 삶의 방향성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내 주변을 철저히 정리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내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물질적인 소유물들을 하나둘씩 팔아넘기면서, 나는 물질적인 부에 대한 집착에서 점점 벗어나기 시작했다.
우리의 삶은 때로는 돌바닥 같은 길을 따라 걷다가, 예기치 못한 막다른 곳에 다다르기도 한다. 그 순간, 우리는 멈춰 서서, 지금까지의 길을 돌아보며, 앞으로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지 결정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길에서 결정을 내린 순간, 나는 회사를 떠났다. 이 결정은 내게 큰 용기와 결단력을 요구했다. 내면의 목소리는 처음에는 미약했지만, 결국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진정으로 내 삶을 내 방식대로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정리한 뒤, 내 삶에서 남은 건 오직 사랑하는 강아지와 R3뿐이었다. 그 작고 순수한 존재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충성으로 내 마음의 한가운데 자리 잡았다. 강아지의 순수한 눈빛은 어떤 말보다도 더 큰 위로를 주었고, 내가 겪은 모든 변화와 상실 속에서도 변함없는 애정을 보여주었다. "신의 성품과 어머니의 마음을 가진다"라는 표현처럼, 강아지는 내게 있어 가장 큰 위로와 힘이었다.
어렵게 와이프에게 강아지를 부탁하는 순간이었다. 이 결정은 우리 둘 사이의 마지막 연결 고리와도 같았다. 강아지에 대한 사랑은 변치 않았기에, 내가 더 이상 그의 일상을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아팠다. 그 작별은, 우리가 함께 나눴던 시간과 추억들, 그리고 서로에 대한 애정의 깊이를 다시금 상기시켰다. 와이프와의 대화는, 한때 공유했던 삶에서 이제 각자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현실을 더욱 절실히 깨닫게 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나는 새로운 삶의 시작점에 서 있었다. 강아지를 와이프에게 맡기며 느낀 아픔은, 나의 선택과 변화가 단순히 물리적인 정리를 넘어선 깊은 정서적 여정임을 깨우쳐 주었다. 강아지에게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건네는 순간, 나는 내 삶의 다음 장을 펼쳐 나가기 위해 필요한 용기와 결단을 다짐했다. 그 작은 존재가 내게 가르쳐준 사랑과 충성의 가치는, 앞으로 나아가면서 마주칠 모든 순간들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4, 막연한 여정
6개월치 짐
친구의 부재는 나에게 단순한 상실 이상의 것을 남겼었다. 그것은 나의 존재와 삶의 방식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었다. 그때, 나는 삶의 진정한 가치를 찾아 헤매는 여정 속에서, 나 자신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더 깊은 침묵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했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더 많은 의구심과 질문을 마주했었고, 그것들이 나를 어디로 이끌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이 여정은 내게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삶의 근본을 흔드는 깨달음을 가져다주었었다. 나는 과거의 나로부터 벗어나, 미지의 길을 탐색하면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나서기 시작했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의구심과 질문이 나를 시험에 들게 했었지만, 그것들은 동시에 내 존재의 깊이를 더욱 깊게 파고들게 만들었었다.
그 여정 속에서 나는 깊은 침묵과 내면의 소리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며, 삶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게 되었었다. 내가 마주한 의구심과 질문들은 결국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고, 내 삶의 방향을 명확히 하는 데 도움을 주었었다. 비록 그 당시에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모든 과정이 나를 어디로 이끌지는 이제는 분명해졌다.
이 모든 것은 과거의 일이 되었지만, 친구의 부재가 나에게 남긴 근본적인 질문과 의구심은 여전히 나의 삶을 이끄는 빛이 되어주고 있다. 그 당시의 여정은 나에게 삶의 진정한 가치를 찾아 헤매는 것이 단순한 탐색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깊이 이해하는 과정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나는 필요한 요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장 먼저, 저렴한 비용으로 여정을 시작하기 위해 저가항공의 비행기 표를 알아보고 구매했다. 멕시코로의 여정이 최대 6개월 간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비자 기간에 맞추어 일정을 신중하게 조절했다. 여행 준비 과정에서 멕시코 방문에 필수적인 예방접종도 받았는데, 그로 인해 몸이 조금 아팠다. 또한, 더운 나라의 기후에 적합한 여름 옷을 준비하고, 필요한 몇 가지를 추가로 주문했다.
여행의 안전을 위해 COVID 예방접종 증명서와 필요한 약품들을 의사의 처방에 따라 준비하는 것이 중요했다. 모든 준비를 마친 후, 나는 드디어 이 여정에 나설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다. 내면의 공허함과 무거웠던 생각들을 잠시 뒤로하고, 새로운 세계로의 모험과 새로운 경험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기로 했다. 이번 여행이 나에게 새로운 시작을 마련해주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나는 앞으로 나아갔다. 이 모든 과정은 내 삶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여정이 될 것임을 믿었다.
저가항공
왕복 6개월 티켓을 구입하며, 시장 가격 대비 40% 저렴한 요금으로 비행을 예약하는 것은 몇 가지 준비와 각오가 필요했다.
첫 번째 각오는 시간적인 제약과 경유의 어려움이었다. 멕시코로의 여정은 두 번의 경유를 필요로 했으며, 특히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휴스턴으로 향하는 비행기로 갈아타야 하는 과정에서 긴 대기 시간을 견뎌야 했다. 이동 중에는 두 개의 캐리어와 가방을 모두 들고 다녀야 했는데, 이런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행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여행의 시작은 조심스러운 선택으로 이루어졌다. 안전과 편의를 우선시하며 결정한 경로는,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의 경유 시간이 단 40분임을 알게 되면서 첫 번째 시험대에 올랐다. 이 작은 발견은 여행이 단순한 이동이 아닌, 예측 불가능한 여정임을 상기시켰다. 항공사의 국제선에서 국내선으로의 화물 자동 전환 서비스는 작은 안도감을 주었고, 긴 대기 시간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으로 변모했다.
이코노미 클래스의 좌석에서 경험한 두 번째 도전은 더욱 내밀한 시험이었다. 긴 비행 시간 동안, 잠을 청하거나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옆 좌석의 승객과의 소소한 상호 작용은 마치 조용한 사회적 무도회와 같았다. 중간 좌석에 앉은 것은,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미묘한 인지와 배려를 요구했다. 기내식과 물을 최소한으로 섭취하는 것, 통로 쪽 승객의 움직임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은 모두 이 여정의 일부였다.
샌프란시스코행 비행을 거의 잠들지 못한 채로 마치며, 나는 여행의 물리적인 불편함 너머에 있는 귀중한 교훈을 발견했다. 이 모든 경험은 여행이 단지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의 발견과 성장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코노미 클래스의 제약 속에서 찾은 작은 기쁨과 깊은 성찰은, 앞으로 내가 마주할 여행의 순간들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여행의 시작부터 마주한 이 작은 모험들은, 앞으로의 여정이 얼마나 의미 있고 풍부할지를 암시하는 듯했다.
오랜만의 비행
밤이 깊어갈수록 별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어느덧 하늘은 반짝이는 별들로 가득 찼었다. 그 많은 별들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 밤하늘을 바라보던 추억들이 마음속 깊이부터 떠올랐다. "그때는 밤하늘의 별들이 금빛 모래알처럼 빛나며 우리의 꿈과 상상을 감싸주곤 했었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시야가 흐릿해진 노안과 서울의 공기 오염으로 인해, 하늘의 별들을 쉽게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 나는 여전히 별들의 아름다움과 매력에 마음을 빼앗겼다. 앞으로도 이 아름다운 별들은 우리에게 빛과 희망을 전해주는 존재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창문 너머로 펼쳐진 그 경이로운 광경은, 내가 겪은 친구의 죽음과 현재 마주한 어려움들로 가득 찬 불투명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만들었다. 그 푸르스름한 하늘과 황금빛 노을 사이에서 어둠과 빛의 조화는,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두려움과 무거운 짐을 덮어주었다. 이 순간, 나는 멕시코로의 여행을 통해 새로운 삶의 목적을 찾고, 깊은 자아성찰의 길을 걷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이 여행은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 나 자신과의 대화를 위한 것이었다. 친구의 부재는 나에게 삶의 허망함을 일깨웠고, 이제는 그 상실감을 통해 더 깊이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힘을 주었다. 그 놀라운 하늘 아래, 나는 새로운 시작을 향한 각오를 다졌고, 어떠한 형태로든 내 인생의 새로운 장을 쓸 준비를 갖추었다.
이제 이 프롤로그를 마무리하며, 나는 멕시코에서의 여행이 시작될 것이다. 그곳에서 나는 새로운 경험을 통해, 삶의 균형을 다시 찾고, 그동안 잃어버렸던 존재의 의미를 되새길 것이다. 청명한 하늘과 별들이 내게 깨달음의 순간들을 선사했듯이, 멕시코의 땅도 내 영혼에 새로운 통찰을 가져다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장을 향해 나아간다—내 삶의 이야기에서 다음 페이지를 넘기며, 멕시코에서의 여정에 모든 감정과 기대를 실어 본다.
5. My Home is Your Home
첫번째 이야기(February 14, 2023)
멕시코 시티의 공항은 7년 전과 마찬가지로 북적였지만, 그때의 내 발걸음은 가볍지 않았다. 비즈니스 차 방문했던 그때와 달리, 이제는 삶의 중요한 전환점에 섰던 나에게 이 여행은 자유와 모험을 의미했다. 50이라는 숫자가 내 인생에 던졌던 의문들에 친구들과의 재회가 기다리는 여정으로 답했다.
공항 로비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는데, 나는 장엄한 모습으로 돌아온 자신을 카메라에 담으려 했다. 인스타그램을 위해 준비했던 360도 카메라와 Go2는 나의 손에서 빛을 발하려고 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배터리 방전이라는 작은 위기가 발생했다. 더 큰 문제는 나를 픽업하러 온 데이비드와 이시스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내 마음이 급해지면서, 페이스북 메신저를 열어 위치를 확인했다. 멕시코 시티의 위험에 대한 소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불안감을 느꼈지만, 친구들과의 재회를 생각하며 가방을 끌고 달렸다.
그리고 그 순간, 데이비드와 이시스가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Hola! Brother, Comoestas sister~~" 짧은 스페인어 문장보다는 7년 만에 재회한 기쁨의 포옹으로 마음이 따뜻해졌다. 나의 불안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솟아올랐다.
"Whats up man…" 몇 안 되는 영어 문장과 스페인어 단어를 섞어 콩글리시로 인사하고난 후, 멕시코 시티의 복잡함 속에서도 우정과 재회의 기쁨은 언어와 시간의 장애물을 뛰어넘는 것을 깨달았다. 이 여행은 비즈니스로 차가웠던 과거와 달리,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여는 서사시의 시작이었다.
COVID-24 시대의 격변 속에서 이시스 부부의 삶도 격동의 연속이었다. 그들이 정성껏 일궈온 사업이 팬데믹의 여파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들은 나와의 만남을 위해 우버 택시를 불러 줄 만큼의 여유와 친절을 간직했다.
멕시코 시티의 거리는 변화의 증거로 가득 찼다. 깨끗해진 도로와 줄어든 매연, 그리고 부드러워진 택시 기사의 운전 스타일은 이곳의 변화를 나타냈다. 비록 여전히 붐비는 트래픽은 서울을 연상시켰지만, 이시스의 집 근처라는 이점 덕분에 신속하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시스와 데이비드는 팬데믹의 어려움에 굴복하지 않고 적응과 진화를 이뤘다. 이시스는 새로운 길을 걷기로 결심해 타투 아티스트 면허를 취득하고 자신만의 샵을 열었다. 데이비드는 오락실 체인점 사업을 정리하며 새로운 사업 모델을 구상했다. 그들의 의연함과 도전정신은 멕시코 시티의 생명력을 상징하며, 우리는 이시스의 새로운 샵을 방문하기로 한 약속을 기약하며, 이들의 끊임없는 변화와 성장이 이 여행을 통해 풀어낼 이야기의 중심이 될 것임을 알았다.
도착과 동시에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I need a Taco, please!" 멕시코의 진정한 맛을 찾아온 나의 여정은 타코 한 접시에서 시작되었다. 한국의 여러 타코 가게들이 내놓는 미국식 체인점 스타일과는 확연히 다른, 멕시코 특유의 맛을 갈망했다. 이곳에서의 타코는 단순한 음식을 넘어 문화와 전통의 맛이었다.
짐을 풀기 무섭게 우리는 이시스의 집 근처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멕시코의 타코는 그 자체로 한 편의 서사시와 같았다. 한국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그 깊이와 복합적인 맛! 게다가 타코 한 개의 가격이 우리나라 돈으로 겨우 1,000원이라니, 서울에서 같은 타코 두 개를 먹으려면 10,000원이 넘는 것을 생각하면, 가격 또한 매력적인 부분이었다. 가격대비 만족도는 말할 것도 없었다. 바로 현장에서 신선하게 준비되는 타코를 먹으며, 나는 장난스럽게 생각했다. "아마도 나는 타코를 먹기 위해 멕시코에 온 건가?"
이시스와 데이비드는 내 타코에 대한 열정을 보고 웃었다. 그들은 나를 이끌고 시장 안쪽에 있는 한 작은 타코 가게로 안내했다. 그곳에서 나는 멕시코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진정한 타코를 맛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멕시코의 맛뿐만 아니라 그들의 따뜻한 우정과 새로운 시작,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추구하는 삶의 여유와 행복을 맛보았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이시스의 배려심은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서 드러났다. 담배를 즐기는 나를 위해, 그녀는 집의 1층 방을 내게 제공했다. 이 방은 이전에 그녀의 오빠가 사용하던 공간으로, 그는 몇 년 전 병마와의 싸움 끝에 세상을 떠났다. 이 방은 멕시코의 전통을 담은 그의 생전 사진들과 기념할 만한 소품들로 가득 차 있었으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유골함이었다. 멕시코에서는 유골을 집 안에 모셔두는 것이 일종의 전통이었다.
이 방에서, 나는 멕시코의 삶과 죽음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를 느낄 수 있었다. 벽에 걸린 사진들은 오빠가 생전에 누렸던 행복한 순간들을 간직하고 있었으며, 각종 소품들은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았는지를 보여주었다. 유골함은 멕시코인들이 죽음을 어떻게 기념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슬퍼하기보다는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기억하며, 존중하는 것이 그들의 방식이었다.
이 방에서 보내는 밤은 단순한 숙박을 넘어서 멕시코 문화와 그 깊은 전통 속으로 들어가는 경험이었다. 나는 담배를 피우며, 이시스의 오빠가 생전에 느꼈을 평온함과 그 가족의 끈끈한 유대감을 묵상했다. 그리고 그 밤, 나는 멕시코의 영혼과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깊은 사색에 잠겼다.
밤의 불빛들이 주방을 가득 메웠다. 나는 신선한 재료들을 정성스럽게 손질하며 한국의 맛을 멕시코에 전달하는 요리사로 변신했다. 냄비에서 물이 소리를 내며 끓기 시작했고, 나는 '오뚜기' 라볶이의 붉은 소스를 조심스럽게 붓고 재빠르게 섞었다. 떡과 어묵은 그 속에서 춤을 추듯 부드럽게 휘어지며 매콤한 향기를 내뿜었다.
자장면을 준비하는 과정도 예술의 하나였다. 검은콩 소스가 뜨거운 팬 위에서 기포를 내며 끓었고, 그윽한 향이 주방을 가득 채웠다. 면발은 적당한 탄력을 지니도록 물에 삶아져 나왔고, 나는 재빨리 면을 건져내어 소스와 섞었다. 각종 채소와 돼지고기가 소스와 어우러져, 그 복합적인 맛의 조화가 기대되었다.
김치는 한인 마트에서 구입한 햇김치로 매콤한 고춧가루와 함께 조화를 이루는 다양한 양념들이 그 속에 스며들어 있었다. 소주 한 병은 차갑게 냉장고에서 기다리고 있었으며, 그 시원함이 이 뜨거운 요리에 완벽한 대비를 이룰 것이 분명했다.
주방은 활기로 가득 차 있었고, 각 요리가 완성될 때마다 나는 그들에게 선보일 한국의 맛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멕시코의 친구들이 한국 음식 앞에서 놀라움과 행복을 나눌 그 순간을 상상하며, 나는 각 접시를 정성스럽게 준비했다.
드디어, 차려진 식탁 앞에 앉은 친구들의 눈빛은 내가 만든 음식에 대한 기대감으로 반짝였다. 라볶이의 매콤한 맛, 자장면의 달콤하고 진한 맛, 그리고 김치의 시원하고 아삭한 맛이 어우러지는 순간, 우리 사이의 웃음과 대화는 더욱 풍성해졌다. 그렇게, 음식을 통해 한국과 멕시코, 두 문화가 한데 어우러지는 축제의 시간이 펼쳐졌다.
6. 2일(February 15, 2023)
고양이들
이시스의 집은 마치 동물의 왕국이었다. 집안 곳곳에서 털복숭이 친구들의 활기찬 에너지가 넘쳐흘렀다. 작은 강아지들부터 연로한 친구들까지, 대략 6~7마리의 강아지와 3마리의 고양이가 그곳에서 함께 살았다. 내가 키우던 하얀 비숑 강아지와는 달리, 이곳은 사랑이 넘치는 피난처였다.
특히 한 검은 고양이가 나의 마음을 훔쳤다. 이 녀석은 강아지처럼 호기심 많고 애정이 넘치는 듯, 나를 따라다니며 애정을 구걸했다. 화장실 문턱을 넘는 그의 작은 발걸음 소리조차 나를 웃게 만들었다.
밤이 되어 침대에 들어서자, 그 검은 고양이가 내 등 위에 우아하게 자리를 잡았고, 발끝에서는 회색과 검은색이 어우러진 또 다른 고양이가 내 발을 따뜻하게 했다. 그들의 부드러운 촉감과 고요한 숨소리는 마치 오래전부터 나와 함께한 것처럼 편안함을 선사했다.
이시스의 집에서 보내는 밤은 이렇게 동물들과의 따스한 교감으로 가득 찼다. 그들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신뢰는 여행의 피로를 금세 잊게 만들었고, 나는 이 집의 일원이 된 듯한 느낌에 행복했다. 이곳의 따뜻함과 사랑에 감사하며 잠이 들었다.
그러나 강아지들의 야간 합창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나를 한층 도전적으로 만들었다. 밤이 깊어 담배 연기와 함께 신선한 멕시코 시티의 밤공기를 마시고 싶을 때마다, 문을 여는 소리에 강아지들이 짖어대는 것이다. 이들의 보호 본능은 사랑스러웠지만, 그 작은 짖음이 밤의 정적을 깨는 것은 조금 문제였다.
멕시코 시티의 밤은 조심해야 할 때가 많고, 담배 한 대를 피우기 위해 밖으로 나갈 때도 문을 잠그는 것이 필수였다. 이런 조심스러운 행동이 강아지들에게는 내 움직임을 알리는 신호가 되어, 마치 경보 시스템처럼 반응했다. 문을 조심스럽게 여는 소리에도 강아지들은 합창을 시작해 나의 밤을 요란하게 만들었다.
이 상황을 피하려 노력해보았지만, 그들의 짖음을 완전히 멈추게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들의 짖는 소리에 맞춰 문을 여는 타이밍을 조율해야 했고, 때로는 담배를 포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시스의 집에서 느끼는 소소한 불편함은 이곳의 따뜻함과 친절함에 비하면 사소한 것이었다. 나는 이 불편함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잠시 동안의 불편함을 기꺼이 감내하기로 했다.
브런치
멕시코 시티의 아침은 그 도시의 분주함을 그대로 반영했다. 사람들은 바쁜 일정에 쫓겨 아침 식사를 간단히 근처 샵에서 해결하거나 레스토랑을 찾았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어서, 집 근처의 유명한 맛집인 Marisquería로 발걸음을 옮겼다. 커피 향에 이끌려 아침부터 음식을 주문하면서, 멕시코 시티의 기후의 역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추운 겨울에도 뜨거운 음료를 기피하던 나에게, 이 뜨거운 커피는 하나의 도전이었다.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내며 커피 한 모금을 마시는 것이 필요했다. 반면, 이시스와 데이비드는 과일 주스와 콜라를 선택했다. 그들의 선택은 이 지역의 날씨와 어우러져 상쾌함을 더해주었다. 아침 식사 메뉴에 등장하는 코치니타 필릴은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전통 요리로, 어린 돼지고기를 아치오테라는 씨앗으로 만든 붉은색 페이스트와 구연산, 마늘, 기타 향신료로 마리네이드한 후, 바나나 잎으로 싸서 지하 오븐에서 천천히 구워냈다. 한국의 보쌈이나 풀드 포크를 연상시키는 이 요리는 살살 녹는 부드러운 식감과 깊고 풍부한 맛이 특징이었다.
Marisquería에 도착했을 때,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코치니타 필릴은 아침부터 먹는 잔치 음식이었다. 식욕을 돋우는 향과 색상에 압도당하며, 그 매력적인 요리 앞에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부드러운 돼지고기가 입 안에서 살살 녹으며, 나는 멕시코의 아침 식사가 얼마나 매혹적인지를 한 입 한 입마다 실감했다.
식사를 마친 후, 이시스와 그녀의 친구들은 집으로 돌아갔지만, 나는 주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10년 전만 해도 멕시코 시티의 시장 근처를 외국인 혼자 걷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지만, 최근 치안이 많이 개선되어 안전하다는 소식을 듣고 안심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동네를 거닐기 시작했을 때, 거리는 삶의 에너지로 가득 찼고, 상점들은 각양각색의 상품으로 활기를 띠었다. 시장의 풍경은 특히나 색다르고 생생했다. 친절한 인사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나를 더욱 환영받는 기분으로 만들었다.
산책을 하며 만난 사람들은 친절했고, 때때로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친절한 인사는 나를 환영받는 기분으로 만들었다. 멕시코 시티의 거리를 걷는 것은 단순한 산책이 아니라, 이 도시의 문화와 사람들의 삶을 경험하는 여정이었다.
산책을 마치고 어느 카페 앞에 도착했다. 대나무로 장식된 입구는 아름다웠고, 그곳에서 나는 서울이 아닌 멕시코의 한복판에 서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인식했다. 카페 안으로 들어가자, 멕시코 특유의 따스한 공기와 섞인 커피 향이 나를 반겼다. 나는 그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이 순간 멕시코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바이커 친구 히레
이시스의 배려로 바이크 전문가인 히레가 나를 돕기 위해 직접 그의 오토바이를 몰고 왔었다. 그가 타고 온 오토바이는 혼다 CBR250이었는데, 한국에서는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는 모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바이크 이상이었다; 그것은 그의 취향이 담긴 예술 작품이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장식된 바이크는 “모에” 스타일의 개성을 뽐내며, 나에게는 신선한 문화적 충격을 안겨주었다.
한국에서 바이크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스타일을 취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의 오토바이에 매료되었다. 한국에서 R3를 팔고 멕시코에서 새로운 바이크를 구입하려 했던 내 계획은 여기서 차질을 빚었다. 원하던 기종을 찾을 수 없어 고심하고 있었다.
나는 멕시코의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혼다의 슈퍼커브도 보지 못했다. 멕시코 사람들에게 슈퍼커브는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그들의 취향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작은 문화적 차이들은 나에게 멕시코에서의 생활이 단순한 여행을 넘어, 새로운 문화와 생활 방식을 배우고 이해하는 과정임을 상기시켰다.
히레의 오토바이를 보며, 나는 멕시코에서의 바이크 타기가 한국과는 다른 독특한 경험이 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바이크에 담긴 그의 정체성과 문화적 표현에 깊은 인상을 받으며, 나도 나만의 스타일을 찾아볼 것을 결심했다.
부릉부릉 소리와 함께 히레의 바이크를 조심스럽게 출발시켰다. 1단 기어에 발을 올리고 가속을 주었지만, 한국에서 익숙하게 타던 R3와는 완전히 다른 무게감과 조종감에 순간 중심을 잡기 어려웠다. 바이크의 무게가 무거운 것인지, 아니면 삼발이의 문제인지 확실치 않았지만, 이 바이크는 분명히 내가 익숙한 것과는 다른 종류였다. 조금 운전해본 후, 나는 안전을 위해 그 자리에서 멈추고 내렸다.
히레와 바이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의 조언에 따라 오토바이를 구매하기보다 렌트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멕시코에서는 번호판 등록과 보험 가입이 한국처럼 하루 만에 끝나지 않고, 최소 2주에서 한 달까지 소요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여행을 왔기 때문에, 그 긴 시간을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보험이 포함된 오토바이 렌트를 선택하기로 했다. 이 결정은 여행 기간 동안 더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과 자유를 줄 것으로 기대했다.
히레의 친절한 조언 덕분에, 나는 멕시코에서의 바이킹을 즐길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조언들은 여행을 더욱 풍부하고 문제없이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산타무에르테
멕시코의 길거리 햄버거는 그 자체로 하나의 미식 경험이었다. 한국에서 프랜차이즈 버거나 이태원의 수제 버거를 즐겼던 내 입맛은 멕시코 스트리트 햄버거에 완전히 사로잡혔었다. 패티의 육즙이 가득하고 할라피뇨의 매콤한 킥이 어떻게 그토록 완벽하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그 비밀을 알고 싶었다.
한 입 베어물 때마다 입안을 가득 채웠던 풍미와 매운맛은 입술을 붉게 물들였을 정도로 강렬했다. 평소 매운 음식을 즐기던 나에게 이는 정말 환상적인 조합이었다. 그 맛있는 스트리트 햄버거를 두 개나 먹었을 때, 나는 무엇보다도 멕시코의 풍부한 맛의 세계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었다.
한참을 웃고 떠들며 맛있는 스트리트 햄버거를 먹은 후, 나는 멕시코 시티의 살아 숨 쉬는 거리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활기찬 웃음소리와 다양한 색깔의 건물들이 내 눈을 즐겁게 했다. 그러던 중, 나의 발걸음은 한 이색적인 유리상자 앞에서 멈췄다.
유리상자 안에는 '산타 무에르테'라 불리는 인형이 자리 잡고 있었다. 죽음의 사신을 연상시키는 이 인형은 낫을 들고 있었고, 그 주변에는 미키마우스 인형, 장난감, 과일, 연필, 쿠키 등 예상치 못한 물건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 상반된 아이템들의 조합은 처음에는 다소 혼란스러웠지만,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나는 근처에 있던 친구에게 이 흥미로운 유리상자와 그 내용물에 대해 물었다. 친구는 “산타 무에르테”가 멕시코에서는 다양한 의미를 지니는 존재라고 설명했다. 사람들은 사랑, 성공, 보호를 비롯해 여러 가지 소망을 담아 산타 무에르테를 숭배하며, 그 주변에 놓인 물건들은 각자의 소원이나 감사의 표시를 상징한다고 했다. 누군가는 건강을 위해 과일을, 누군가는 학업의 성취를 위해 연필을 봉헌하는 식이었다.
이러한 설명을 듣고 난 후, 산타 무에르테 주변의 다채로운 물건들이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오히려, 멕시코인들이 삶과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리고 그들의 일상 속 깊숙이 자리 잡은 신앙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멕시코의 다채로운 문화적 풍경 속에서, 서울의 친숙한 풍경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었다.
산타 무에르테, 또는 '성스러운 죽음'은 멕시코의 민중 신앙 속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그녀의 기원은 명확하지 않지만, 일부 학자들은 그녀의 신앙이 아즈텍 문명의 죽음의 여신 미크틀란시우아틀(Mictecacihuatl)에서 유래했다고 보았다. 콜로니얼 시대 이후, 스페인의 가톨릭 신앙과 혼합되어 오늘날의 형태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산타 무에르테는 대개 여성의 형상으로 해골과 같은 얼굴에 신부의 베일을 쓰고 낫을 든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죽음이 공평하게 모든 인간에게 찾아온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죽음 이후의 삶, 정의, 보호, 그리고 진실을 상징한다. 신도들은 삶의 어려움을 극복하거나 소망을 이루기 위해 산타 무에르테에게 기도했으며, 그녀의 상징물 앞에 헌물을 바쳤다.
산타 무에르테 신앙은 특히 멕시코의 하위 계층, 범죄자, 그리고 소외된 사람들 사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미쳤다. 이들은 종종 사회적이거나 종교적으로 공식적인 보호를 받지 못해 산타 무에르테를 자신들의 수호자로 여기고 강한 신뢰를 보냈다. 그녀의 신앙은 전통적인 가톨릭 신앙과는 별개로, 멕시코 곳곳에서 보편적인 현상으로 자리잡았다.
산타 무에르테의 대중적인 표현은 멕시코 고유의 데이 오브 더 데드(죽은 자의 날) 축제와도 연결되어 있었다. 이 축제는 죽은 자들을 기리고, 죽음을 자연스러운 생명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멕시코 문화의 핵심적인 부분을 형성했다. 산타 무에르테는 이러한 죽음에 대한 태도를 상징하며,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는 그것을 존중하고 수용하는 멕시코 사람들의 방식을 반영했다.
멕시코의 산타 무에르테 앞에 서서, 나는 멀리 내 고국 한국의 오래된 전통을 떠올렸다. 한때 그곳에서도 마을의 평안과 주민들의 복을 비는 무당이나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같은 신상들이 존재했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신의 은총을 구하고, 어려운 삶의 순간들에 힘을 얻었다. 이 멀리 멕시코의 땅에서도, 사람들은 비슷한 방식으로 삶의 고난을 이겨내기 위해 자신들만의 신성한 힘에 의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생각은 나를 깊은 사색에 빠뜨렸다. 약자들의 존재는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항상 있으며, 그들의 삶은 신비로운 힘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 차 있다. 삶의 고난에 직면했을 때, 그들은 영적인 존재에 기도하고, 소망을 빌며, 구원의 어떤 형태라도 찾으려는 본능적인 욕구를 드러낸다.
내 마음은 무거워졌지만, 동시에 그들의 믿음이 주는 힘과 위로를 생각해보았다. 그들의 신앙은 종교적인 의미를 넘어서,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내일을 향해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어주는 것 같았다. 멕시코 시티의 활기찬 거리에서 산타 무에르테를 마주하며, 나는 인간의 삶이 얼마나 유사한 고민과 신념으로 얽혀 있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희망을 찾아가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또한 죽음을 직면하는 유쾌한 태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7. 3일(February 16, 2023)
멕시코시티 버스
멕시코 시티의 대중교통을 다시 이용하며, 나는 변화와 불변 사이의 대조를 목격했다. 몇 년 전의 기억 속 교통 수단들은 흔히 낡고 복잡한 인상을 주었지만, 이번에 탑승했던 버스는 그야말로 새롭고 깨끗한 모습이었다. 새 차량들이 늘어나 교통 체계 자체가 업그레이드된 듯했다. 하지만 이곳의 대중교통이 여전히 에어컨을 갖추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사람들은 멕시코의 더운 날씨에 익숙해져 있었다. 버스나 지하철의 문을 열어 자연스러운 바람이 스쳐가게 하거나, 단순히 더위를 참아내는 모습에서 그들의 적응력을 엿볼 수 있었다. 나 자신도 멕시코의 기후에 서서히 적응해가고 있었다. 봄버 점퍼를 입고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나를 보며, 나는 이 나라와 그 기후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도시의 대중교통 안에서, 나는 멕시코 사람들의 일상의 한 부분에 동화되어갔다. 차창 밖으로 스치는 멕시코 시티의 풍경들이 내 여행의 기억에 새로운 색채를 더하며, 이곳에서의 시간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경험이 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었다.
타투
이시스의 샵 앞에 서자, 그곳은 마치 다채로운 문화가 혼합된 갤러리 같았다. 벽 한쪽에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들이 생동감 넘치게 그려져 있었고, 다른 쪽에서는 카카오톡 캐릭터들이 마치 그들만의 이야기를 나누는 듯 보였다. 공간 곳곳에는 Kpop 댄스 가수들의 음반과 포스터가 다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이곳이 단순한 타투 샵을 넘어 어떤 문화적 공간임을 말해주었다.
그녀의 샵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공간이었다. 최신의 전문적인 타투 장비들이 빛나고 있었고, 그녀의 재능과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작업공간에서는 이미 그녀가 수많은 예술 작품을 창조해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시스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타투는 그 자체로 그녀의 이야기와, 그녀가 살아온 멕시코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이시스는 자신의 공간을 통해 멕시코의 현대 문화와 한국의 트렌드, 그리고 전 세계적인 문화 현상을 아우르는 독창적인 장을 열었다. 그녀의 샵에 들어선 순간, 나는 그녀의 세계에 한 발짝 더 들어간 듯한 느낌을 받았고, 이곳이 단순한 상업 공간이 아닌,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 예술이 어우러지는 곳임을 실감했다.
또한 그녀는 전문성을 더하기 위해 타투 자격증을 2개나 취득했다. 한국에서는 타투가 불량하고 반 사회적인 이미지로 각인된 것이 이런 전문성이 보편화되지 않기 때문일까? 어쩌면 타투라는 문화가 과거 아즈텍, 마야 문명과 같은 고대 문명을 지니고 있는 멕시코에서는 아주 자연스러워서 이처럼 더욱 발전했을까 생각되었다.
이시스는 자신의 기술과 예술에 대한 전문성을 입증하기 위해 타투 자격증을 두 개나 취득했다. 이러한 자격증은 그녀의 업에 대한 심오한 이해와 능력을 증명하는 것으로, 고객들에게 신뢰를 주며, 타투 산업의 전문성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한국에서 타투가 가진 부정적 이미지는 부분적으로 타투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타투가 불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의료 행위로 간주되어 의사만이 타투를 할 수 있게 하는 법적 제한이 있었으며, 이는 타투 아티스트들의 활동을 제약했다. 이는 타투의 예술성과 전문성이 일반 대중에게 충분히 인식되지 못하게 하는 한 원인이 될 수 있었다.
반면 멕시코와 같은 나라에서는 타투가 오랜 역사와 문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전해왔다. 아즈텍과 마야 문명 등의 고대 문화에서 이미 몸에 상징적인 그림을 새기는 행위가 중요한 의식의 일부였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현대 멕시코에서 타투가 보다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예술의 한 형태로 존중받는 토양을 마련해주었다.
이시스의 샵에서 보이는 전문성과 타투에 대한 열정은 이러한 문화적 배경이 현대적 맥락에서 어떻게 재해석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그녀의 샵은 단순히 타투를 그리는 곳을 넘어, 멕시코의 고대 문화부터 현대 문화까지 이어지는 깊은 문화적 유산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이시스의 샵에서 보낸 시간을 통해, 타투가 단순한 장식이 아닌, 각 개인의 정체성과 문화적 자부심을 표현하는 수단임을 다시 한 번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내 손목 위에 새겨진 타투는 단순한 문양이 아닌, 나의 삶과 신념의 상징이었다. 이시스의 손에 의해 생애 첫 타투를 받게 되었고, 그것은 신으로부터 받는 선물과도 같았다. 그리하여 선택한 타투는 '여호와닛시', 히브리어로 '주는 나의 깃발'을 의미하는 단어와 '샬롬', '평화'를 상징하는 단어였다. 이 두 단어는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치들을 나타내며, 내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여는 데 있어 깊은 의미를 부여했다.
인터넷에서 찾은 히브리어의 정확한 도면을 가지고 이시스의 샵에 들어섰을 때, 그녀는 그 도면을 내 손목 위에 섬세하게 옮겨놓았다. 타투를 하는 동안 느껴지는 통증은 생각보다 강했지만, 그 아픔조차도 이 의식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통증은 나의 신념과 의지를 더욱 확고히 하는 과정이었다.
타투가 완성되었을 때, 나는 손목 위에 새겨진 상징을 바라보며, 이것이 단순한 잉크와 피부의 만남이 아닌, 내 존재와 신념의 교집합을 나타내는 표식임을 깨달았다. 여호와닛시와 샬롬은 나의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고, 멕시코에서의 이 시간은 내 삶의 방향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중요한 순간이 될 것이었다. 이시스에게 받은 이 타투는 내 삶의 중요한 전환점에 찍은 하나의 획으로, 앞으로 나아갈 내 길에 영원한 깃발이자 평화의 상징으로 남을 것이었다.
Santa Maria Ribeira 산책
산타 마리아 라 리베이라의 골목을 걸었을 때, 그것은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경험이었다. 이곳의 분위기는 오래된 멕시코의 정취를 간직하고 있었으면서도, 동시에 현대적인 에너지로 빛났다. 색색의 벽화가 거리를 장식했고, 건물들은 생기 넘치는 색상으로 채워져 있었다. 거리는 한 폭의 캔버스처럼 다채로운 삶의 모습들로 가득 차 있었다.
비록 데이비드의 경고가 있었지만, 그의 말은 오히려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튀지 않게 행동해. 그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그의 조언을 마음에 새기고, 나는 산타 마리아 라 리베이라의 심장부로 들어섰다. 그곳은 내가 읽었던 범죄율의 통계와는 거리가 먼, 생동감 넘치는 공동체였다.
실제로, 동네 사람들은 무척이나 친절했다. 나는 그들과 어울리며, 현지인들만의 비밀스러운 카페와 가게들을 발견했다. 길에서 만난 어린이들은 축구공을 차며 웃음을 터뜨렸고, 거리의 노인들은 나를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키오스코 모리스코의 역사는 멕시코의 국제적인 발자취와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이 구조물은 1902년, 호세 라몬 이바롤라라는 멕시코의 엔지니어에 의해 설계되었으며, 원래는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루이지애나 구매 박람회를 위한 멕시코관으로 제작되었다. 이 박람회는 루이지애나 구매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국제 행사였고, 각국은 자신들의 문화와 산업을 세계에 자랑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키오스코 모리스코는 무어(Moorish) 스타일로 설계되었는데, 이는 스페인과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문화에서 영향을 받은 건축 양식이었다. 무어 건축의 특징은 복잡한 기하학적 장식과 아치, 그리고 세밀한 석공술이었다. 이바롤라는 이러한 무어 건축의 요소들을 적절히 혼합하여 멕시코의 정체성과 결합시켜 키오스코 모리스코를 창조했다.
박람회가 끝난 후, 이 건축물은 멕시코로 옮겨져 산타 마리아 라 리베이라의 중심 공원에 재설치되었다. 이곳에서 그것은 산타 마리아 라 리베이라 지역사회의 중심지가 되었고, 다양한 문화 행사와 사회적 모임의 장소로 활용되었다.
이 키오스코는 최근에 개조되어 더욱 아름다운 모습으로 방문객들을 맞이했다. 그것은 이 동네뿐만 아니라 멕시코 시티 전체에 대한 역사와 문화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방문객들은 주말에 이곳에서 열리는 다양한 공연과 이벤트를 즐겼으며, 그것은 이 지역이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 살아있는 문화적 유산임을 증명했다.
그렇게 키오스코 모리스코는 멕시코 시티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되었으며, 나의 여행수필에도 이 건축물이 지닌 역사적 가치와 문화적 중요성을 담아냈다. 이 특별한 구조물은 멕시코의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장소로, 멕시코 사람들의 삶과 예술이 어우러져 이루어내는 아름다움을 대변했다.
멕시코 시티의 오후, 태양은 우리 위로 무자비하게 빛을 쏟아부었다. 그러한 뜨거운 날씨 속에서도, 산책의 즐거움은 단지 더위로 인해 멈출 수 없었다. 그런 나에게 이시스는 더위를 잊게 해줄 선물을 제안했다—바로 공원에서 파는 수제 아이스크림이었다.
이 망고 베이스의 아이스크림은 전통적인 수작업 방식으로 제조되었다. 멕시코의 전통 아이스크림 제조법은 현대의 기계가 아닌 손과 노력으로 이루어진 과정에 가미된 예술 작품과도 같았다. 큰 나무통을 중심으로 시작된 이 과정에서는 얼음과 소금을 섞어서 내부의 온도를 급격하게 낮췄다. 소금은 얼음을 더 차갑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다. 신선한 망고와 설탕, 그리고 우유나 크림을 결합하여 만든 혼합물을 더 작은 용기에 담아 이 냉각된 나무통 안에 넣었다.
그 다음으로, 아이스크림 제조자는 긴 막대기로 혼합물을 꾸준히 저었다. 이 지속적인 교반은 아이스크림에 공기를 불어넣어 부드러운 질감을 만들어내는 핵심 단계였다. 공기가 혼합되면서 아이스크림은 크리미하고 부드러운 질감을 가지게 되었으며, 망고의 깊은 풍미가 더욱 잘 배어나게 되었다. 이 과정은 단순히 아이스크림을 얼리는 것을 넘어서,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고 강조하는 방식이었다.
이시스가 내게 건넨 아이스크림 콘에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망고 아이스크림이 놓여 있었다. 그 진하고 달콤한 망고의 맛과 얼음처럼 차가운 식감은 이 뜨거운 오후에 내게 완벽한 위안을 주었다. 전통적인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아이스크림 한 스쿱은 멕시코의 태양 아래에서 나에게 달콤한 휴식을 제공했고, 이시스의 세심한 배려와 함께 이곳의 문화를 한층 더 깊이 체험할 수 있게 해주었다.
오토바이 렌트
멕시코 시티의 오후, 태양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가운데, 나는 드디어 기대하던 오토바이 렌탈샵에 도착했다. 일본 브랜드 바이크가 내 첫 선택이었지만, 여기서는 가격이 상당히 비싸서 결국 멕시코 브랜드인 이탈리카 FT150 GTS를 선택했다. 150cc의 파워에 기대를 걸며, 렌탈 계약서에 서명했다.
하지만 멕시코에서 오토바이를 렌트할 때 몇 가지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었다. 렌탈샵에서는 국제 운전 면허증이 영어로만 되어 있어서, 지방의 경찰에게 멈춰 세워졌을 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들은 스페인어로 번역된 운전 면허증을 대신할 수 있는 티켓을 제공했고, 이는 내가 도로 위에서 안전하게 다니기 위해 반드시 소지해야 하는 문서였다.
멕시코 도로를 이용할 때는 몇 가지 추가적인 사항들을 염두에 두어야 했다. 속도 제한과 도로 표시는 때때로 모호할 수 있으므로, 현지 운전자들과 같은 방식으로 주의 깊게 운전하는 것이 중요했다. 또한, 멕시코의 도로 상황은 예측이 어려울 수 있으므로, 항상 주의를 기울이고 다른 운전자들의 신호를 주시해야 했다. 특히 오토바이로 다닐 경우, 큰 차량에 비해 취약할 수 있어 더욱 조심해야 했다.
오토바이 상태가 매우 좋고 마일리지도 적은 것에 만족했으며, 렌트 비용이 한국의 1/4 수준이라는 사실은 더욱 기쁨을 더해주었다. 기본 보험까지 포함된 가격이었으므로, 내 여행에 있어서 예상치 못한 사고에 대비할 수 있었다.
시동을 걸고 엔진 소리를 들으며 나의 심장은 두근거렸다.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5단 기어 시스템에 익숙해지기 위해 조금의 시간을 할애했다. 이 150cc의 바이크는 적당한 무게감과 출력으로 나에게 만족스러운 주행을 선사했다. 멕시코의 도로를 직접 경험하며, 나는 새로운 자유와 모험의 맛을 느낄 준비가 되어 있었다.
타코이야기
오토바이의 엔진을 재가동하고 오랜만에 다시 길을 나섰다는 설렘을 안고, 멕시코 시내를 가로지르며 집으로 향했다. 도로 위에서는 그간의 녹슨 라이딩 실력을 다시 끌어올리는 기쁨을 맛보았다. 멕시코의 신호 체계는 한국과 유사했지만, 특유의 운전 문화는 나를 몇 번이나 긴장의 순간으로 몰아넣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토바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은 덕에, 오토바이 대열에 합류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멕시코 시티는 타코의 천국이라 불릴 만큼 유명한 타코 맛집들이 즐비해 있었다. 거리의 각 모퉁이마다, 사람들은 고유의 레시피로 만들어낸 타코를 내세워 그 지역에서 가장 맛있는 타코를 자랑했다. 이시스와 함께 한 맛집 탐방은 멕시코 시티의 식문화를 깊숙이 체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타코의 유래는 고대 멕시코로 거슬러 올라갔다. 원주민들은 옥수수로 만든 토르티야를 일상적인 식사로 활용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타코의 기본이 되었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도착한 후, 그들은 돼지고기, 소고기 등 유럽식 재료를 도입했고, 이는 토르티야와 결합하여 오늘날 우리가 아는 타코의 형태로 발전했다.
멕시코 시티의 거리에서 맛본 타코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음식이 아니었다. 이시스가 안내한 맛집에서는, 각 타코가 멕시코의 역사와 전통을 한 접시 위에 펼쳐놓은 듯했다. 타코 하나하나가 지역별로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고, 그것은 멕시코의 문화적 다양성을 증명하는 살아 있는 증거와도 같았다.
그뿐만 아니라, 타코와 함께 제공되었던 동그란 모양의 파는, 마치 라면에 김치가 그러하듯 타코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타코 고기를 끓인 기름에 바싹 구워져 나온 파는 타코의 맛을 한층 더 향기롭고 풍부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조합은 음식의 맛을 한 차원 높여, 입안 가득 멕시코의 맛을 느끼게 했다.
포장마차 앞에서 타코를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동안, 지나가는 행인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도 즐겁게 받아들였다. 그들의 눈빛에 담긴 호기심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더하며, 나에게 활기찬 저녁 시간을 선사했다. 이 광경은 멕시코 시티의 다채로운 삶의 일부였고, 나는 그 속에서 멕시코인들과 하나가 되었다. 이러한 경험들이 내 여행수필에 더욱 풍성한 색채를 더해주었다.
멕시코의 타코와 함께라면, 코로나 맥주는 빼놓을 수 없는 동반자였다. 코로나 맥주는 멕시코에서 태어나 전 세계로 퍼져나간 상징적인 음료로, 그 특유의 밝은 황금빛과 청량감이 특징이었다. 코로나 맥주에 라임 한 조각을 더하는 전통은 이 맥주가 가진 경쾌한 맛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라임의 산뜻한 산미가 맥주의 가벼운 몸체를 강조하면서, 타코의 풍부한 맛과 기름진 질감을 상쾌하게 깔끔하게 씻어내 줬다. 이 맥주가 국경을 넘어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맛의 조화와 독특한 음용 방식에 있었다.
타코와 함께 제공되었던 소스는 마치 음식의 옷을 입히는 듯, 타코에 새로운 캐릭터를 부여했다. 첫 번째는 '살사 베르데', 녹색 토마티요와 고추를 기반으로 한 소스로, 신선한 맛과 적당한 매운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두 번째는 '살사 로하', 빨간 토마토와 아르볼 고추로 만든 소스로, 깊은 맛과 더욱 강렬한 매운맛을 자랑했다. 세 번째는 '살사 크레마', 크림이나 아보카도를 베이스로 하여 부드러움을 더해줬다. 마지막으로 '살사 피코 데 갈로'는 신선한 토마토, 양파, 고수, 라임즙으로 만든 살사로, 타코에 신선하고 산뜻한 맛을 더해줬다.
이 다채로운 소스들은 각각의 타코와 결합하며, 멕시코의 각 지역에서 온 맛의 조화를 이루었다. 타코 한 접시와 소스, 그리고 코로나 맥주 한 병이 모여 멕시코의 풍미를 완성했다. 타코를 한 입 베어 물고 코로나 맥주로 입가심을 했을 때, 멕시코의 태양 아래에서 즐기는 완벽한 식사가 완성되었다. 이러한 조합은 멕시코의 삶을, 그리고 나의 여행수필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요소들이었다.
8. 4일(February 17, 2023)
Torta de chilaquiles
멕시코 시티에서의 오토바이 투어가 짜릿한 모험으로 가득 찰 것이었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모험을 시작하기 전에 필수적인 준비가 필요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길 찾기였다. 해외에서의 데이터 연결 문제는 여행 중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기에, 나는 미리 대비책을 마련했다.
구글 지도의 오프라인 기능은 이런 상황에 완벽한 해결책이었다. 여러 블로그와 여행자들의 조언을 참고하여, 나는 구글 지도 앱을 열고 멕시코 시티의 지도를 오프라인으로 다운로드했다. 이렇게 하면 데이터 연결이 불안정하거나 없는 지역에서도 내 위치와 목적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내비게이션을 사용할 때도, 이 오프라인 지도를 활용해 데이터 요금을 아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끊김 없는 길 안내를 받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여행 준비의 두 번째 필수 요소는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이었다. 멕시코의 도시뿐만 아니라 시골 지역을 누비며 진정한 멕시코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언어 장벽을 넘는 것이 중요했다. 스페인어에 능통하지 않은 나는 현지인들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최신 기술을 활용하기로 결정했다.
스마트폰에는 구글 어시스턴트를 설치했다. 이는 스페인어를 한국어로, 그리고 그 반대로도 통역해줄 수 있는 뛰어난 도구였다. 음성 인식 기능을 사용하여 즉석에서 대화를 번역하고, 빠른 응답을 제공하여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해줬다.
더불어, 여러 번역 앱 중에서도 가장 평판이 좋은 것을 골라 다운로드했다. 이 앱은 텍스트와 음성 모두를 지원하여, 복잡한 문장이나 일상 대화뿐만 아니라, 메뉴판이나 지시사항과 같은 텍스트 번역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이렇게 스마트폰은 오토바이 여행의 필수 도구로 거듭났다. 길을 찾는 것부터 현지인과의 대화까지, 모든 커뮤니케이션 장벽을 허물 준비가 되었다. 이 기술들 덕분에 언어의 제약을 크게 느끼지 않고, 멕시코의 다양한 지역과 문화를 자유롭게 탐험할 수 있었다.
새벽의 첫 번째 빛이 멕시코 시티를 깨웠을 때, 나는 이미 오토바이 투어를 위한 마지막 준비에 한창이었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 아침이 다가왔고, 나는 데이비드와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우리는 아침 식사를 식당에서 직접 먹기보다는 테이크아웃으로 결정했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선택을 주문했다.
한국에서라면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나의 아침을 여는 음료였을 텐데, 멕시코에서는 그러한 관습이 일반적이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국적인 아침에 어울리게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데이비드는 멕시코인답게 콜라와 과일주스를 선택했고, 우리는 각자의 음료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우리는 멕시코의 아침 별미인 Torta de Chilaquiles를 즐겼다. Torta de Chilaquiles는 멕시코 아침 식사의 별미 중 하나로, 그 맛의 깊이와 다채로움은 이국적인 아침을 맞이하는 나에게 완벽한 위로였다. 이 요리는 한국에서 즐기는 어떤 샌드위치와도 다른 독특한 맛의 경험을 제공했다.
맛의 여정은 바삭하게 튀긴 옥수수 토르티야 칩에서 시작했다. 이 칩들은 뜨거운 살사 소스에 잠시 담가져 부드럽게 절여진 후, 다시 한번 불 위에서 살짝 볶아져 살사의 풍미가 깊이 스며들도록 했다. 살사는 토마토와 칠리, 양파, 마늘을 베이스로 하여 만들어져 토르티야 칩에 매콤하고 산뜻한 맛을 더해주었다.
그 위에는 녹은 치즈가 풍부하게 뿌려지고, 그 녹아내린 치즈는 살사에 절인 토르티야 칩과 함께 부드럽게 어우러져 진한 맛을 만들어냈다. 사워크림은 이 모든 맛의 조화 위에 산뜻한 색다른 맛의 레이어를 추가하며, 신선한 양파의 아삭한 식감이 전체적인 맛을 균형있게 맞춰주었다.
이 모든 구성 요소들이 전통적인 멕시코 빵인 '볼리요'나 '텔레라' 사이에 층층이 쌓여 Torta de Chilaquiles가 완성됐다. 빵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워, 손에 들고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그 안에서 풍미가 폭발했다. 때로는 달걀이나 닭고기를 추가하여 더욱 풍부한 맛을 즐길 수도 있었다.
이렇게 멕시코의 아침을 여는 Torta de Chilaquiles는 달콤하고 깊은 맛의 조화로움으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에너지를 제공했다. 바삭한 토르티야의 질감과 살사의 매콤한 맛, 치즈와 사워크림의 부드러움이 결합된 이 요리는 멕시코의 아침을 대표하는 맛이자, 나의 여행 이야기에 빠질 수 없는 주요한 장면이 됐다.
달동네
새벽의 고요함을 오토바이의 우렁찬 엔진 소리가 채웠다. 나는 테오티우아칸을 향해 길을 나섰다. 이른 아침의 적막을 헤치며, 멕시코의 아름다운 풍경이 점차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목적지는 멕시코의 자랑, 테오티우아칸의 위대한 피라미드였다. 이곳에 있는 피라미드 데 솔은 세계적으로도 그 크기와 위엄에서 이집트의 피라미드들과 견줄 만했다. 이 거대한 구조물은 아즈텍 문명의 존재 이전부터 이 땅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었으며, 오늘날까지도 그 웅장함이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었다.
테오티우아칸으로 향하는 길은 나에게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다. 그것은 역사의 깊이를 탐험하고, 인류 문명의 위대한 유산을 체험하는 여정이었다. 이 아침의 모험은 멕시코 시티를 출발하여 고대 문명의 심장부로 향하는 길이었으며, 테오티우아칸의 태양 피라미드가 내게 보여줄 역사의 이야기를 기대하며 바퀴를 굴렸다.
멕시코 시티의 소음과 매연을 뒤로하고 바이크에 몸을 싣고 달리니, 도심의 소란은 점차 멀어졌다. 이른 아침의 선선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시골로 통하는 길 위에서 나는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했다. 약 한 시간의 여정 끝에 펼쳐진 탁 트인 풍경 앞에서 나는 잠시 멈춰 섰다. 도시의 질서와 속도를 벗어난, 고요하고 듬성듬성한 푸른 자연이 편안하게 나를 반겼다.
산비탈에 흩어져 있는 집들 사이로, 한국의 어린 시절을 상기시키는 장면들이 눈 앞에 펼쳐졌다. 1980년대 달동네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이곳은, 가난했지만 서로를 살피고 돌보던 커뮤니티의 흔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당시의 집들은 간결하고 견고했으며, 판자와 흙으로 얼기설기 지어진 모습이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이웃 간의 따뜻한 대화는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며, 빨래줄에 걸린 옷가지들은 당시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그 시절 재래식 화장실이 주는 친밀감과 공동체의 유대감은 이제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장면이 되었다. 그렇게 변화한 한국의 현실 속에서, 가족 간의 유대도, 이웃과의 교류도 예전만큼 빈번하지 않아져 버린 오늘날, 멕시코 시티 외곽의 이 풍경은 마치 옛날의 단란했던 시절을 추억하게 만들었다.
지금 이 순간, 멕시코의 산비탈에 흩어진 집들을 바라보며, 나는 한국의 변화된 풍경과 대조되는 이곳의 모습에 향수를 느꼈다. 멕시코의 산들과 한국의 달동네가 내 마음속에서 어우러지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이 두 나라의 문화적 풍경이 조화롭게 어울리는 새로운 추억의 테이프 스토리를 짜고 있는 것 같았다. 이 풍경은 나에게 단순한 장소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며, 세월이 흐른 만큼 더욱 깊은 감정의 층을 형성해주었다.
피라미드
멕시코 시티의 분주함을 뒤로하고, 유료도로와 무료도로를 오가며 약 1시간 30분의 라이딩을 통해 나는 점차 변화하는 풍경 속으로 들어섰었다. 멕시코의 도로를 달리는 것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었으며, 도시에서 시골로, 현대에서 과거로 이어지는 시간 여행과 같았다.
높은 건물들이 사라지고, 도로 옆은 한적한 시골 풍경으로 대체되었었다. 나의 시야를 가득 채운 것은 아름다운 시골 마을의 모습과, 하늘을 찌를 듯이 높게 솟은 선인장들이었다. 건조한 기후가 만들어낸 붉은 흙의 도로는, 태양 아래에서 더욱 빛나며 멕시코의 거친 아름다움을 드러냈었다. 그리고 마침내, 티오테우아칸의 장엄한 피라미드가 지평선 위로 모습을 드러냈었다. 고대 문명의 유산이 세월을 뛰어넘어 현재까지 이어져 온 것을 목격하는 순간, 라이딩의 모든 순간이 이토록 경이로운 장면을 위한 준비였음을 깨달았었다.
티우테우아칸의 피라미드들은 멕시코의 거대한 고대 도시 유적 중 하나로, 그 역사는 기원전 1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한때는 세계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 중 하나였다고 추정된다. 이곳은 멕시코 시티에서 북동쪽으로 약 4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으며, 피라미드 데 솔(태양의 피라미드)과 피라미드 데 루나(달의 피라미드)를 포함하여 수많은 신전, 광장, 그리고 거주 구역들이 발견되었다.
태양의 피라미드는 기초면적이 이집트의 크프루 피라미드보다 컸으며, 고대 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건축물 중 하나로 알려져 있었다. 그 위에 올라서면, 주변의 광대한 도시 유적을 조망할 수 있는 장관을 연출했다. 달의 피라미드는 다소 작았지만, 티우테우아칸의 복잡한 도시 계획과 건축 기술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었다.
티우테우아칸의 도로와 건물들은 정교한 설계와 건축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조성되었으며, 이는 당시 사람들의 천문학적 지식과 신앙 체계와도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특히 '죽은 자의 길'이라고 불리는 주요 도로는 피라미드들을 연결하며, 이곳을 중심으로 영적이고 종교적인 의식들이 행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티우테우아칸의 유적은 오늘날에도 고대 문명에 대한 연구와 탐구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고대 인류의 지혜와 업적을 새삼스럽게 인식하게 만드는 곳이었다. 라이딩을 통해 이 역사적인 장소에 도착했을 때, 나는 멕시코가 간직한 고대의 신비와 문명의 흔적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그 위대한 역사의 일부를 체험할 기회를 가졌음에 감사의 마음을 느꼈다.
오토바이는 유료주차 약 40페소쯤 했다. 조심스럽게 세운뒤, 나는 아이폰을 손에 쥐고 거대한 피라미드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주변을 둘러싼 붉은 모래는 발걸음마다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추운 겨울 눈 덮힌 산길을 걷는 듯한 비슷한 소리를 전해주었다. 태양은 용광로처럼 내리쬐었고, 그늘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땅은 마치 오븐에 구운 듯 메말라 있었다. 그러나 뜨거운 태양과 대조적으로, 공기는 완벽한 청명함을 자랑했다. 그 덕분에 먼 거리에 있는 피라미드의 모습이 유난히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테오키우아칸의 피라미드가 이집트의 피라미드와는 다른 목적을 가진 공간임은 분명했다. 아포칼립토와 같은 영화에서 드라마틱하게 재현된 바와 같이, 중남미의 피라미드들은 종종 희생의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고 여겨졌다. 이는 당시 사람들의 종교적 신념과 세계관을 반영하는 것으로, 특히 아즈텍 문명에서는 기우제와 같은 의식에 인간 희생이 포함되곤 했다.
'죽은 자의 길'을 걸으며, 나는 잠시 눈을 감고 그 시절을 살았을 사람들의 삶과 정신세계를 떠올려 보았다. 전투에서 패해 노예가 되거나, 또는 힘없는 이들이 제물로 바쳐지던 시대를 상상하니, 그들이 느꼈을 두려움과 절망이 오버랩되었다.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행해졌을 의식을 생각하며, 그 피라미드의 계단을 피로 물들이며 내려오던 희생자들의 심정을 상상하는 것은 가슴을 아프게 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마주하면서, 나는 이 장소가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한때는 생생한 삶과 죽음의 장소였음을 깨달았다. 고대 사람들의 영혼이 아직도 이 땅에 남아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이는 나를 숙연하게 했다. 과거의 이야기들이 이 돌과 흙 속에 얼마나 많이 묻혀 있는지, 그리고 시간이 흘러도 그 사실이 얼마나 깊게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지에 대해 묵상하는 순간이었다.
죽음은 인생의 필연적인 종착지로, 인간의 탄생부터 죽음까지의 여정이 마치 '죽은 자의 길'을 걷는 것에 비유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삶의 시작과 동시에 우리는 모두 그 길을 걷기 시작한다. 현대 기술, 심지어 AI의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의 죽음의 시점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하며, 그러한 예측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것이 가져올 의미는 ‘축복이 아닐 것이 분명하다’.
테오티우아칸의 '죽은 자의 길'은 고대 도시를 가로지르는 중심축이었으며, 이 길을 따라 걸으며 태양의 피라미드로 향하는 여정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길이 끝날 무렵, 태양의 피라미드가 전체 시야를 장악하며 그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는 순간은 숨이 멎을 듯했다.
태양의 피라미드 자체는 그 구조와 규모에서 인간이 자연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경외심을 표현하는 듯했다. 이 피라미드의 각 층을 올랐을 때마다, 고대 메소아메리카인들이 천문학, 종교, 그리고 예술에 얼마나 깊이 몰두했는지에 대한 증거를 발견할 수 있었다.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섰을 때, 한때 이곳에서 수행되었던 의식과 제사의 장면들이 머릿속에 그려지며,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신비로운 순간을 경험하게 되었다.
데킬라
20년 간, 매일 저녁이면 술잔을 손에 들었다. 마치 나의 그림자처럼, 나와 함께했던 술들. 어느새 알코올이 내 일상의 일부가 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한국에서는 소주가 나의 충실한 동반자였다. 그 차가운 맑음과 불타는 듯한 여운이 내 삶의 일부였지만, 멕시코의 땅을 밟은 순간, 모든 것이 달라졌다.
멕시코에서 처음 돈훌리오를 맛본 그날, 나의 소주에 대한 사랑은 순식간에 KO당했다. 돈훌리오는 단순한 알코올이 아닌, 삶의 한 조각처럼 내게 다가왔다. 그 맛은 마치 멕시코의 태양을 담은 듯, 내 목구멍을 태우며 가슴속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그리고 남겨진 초콜릿 같은 달콤함은 그 어떤 소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깊고 풍부한 여운이었다.
돈 훌리오 데킬라는 1942년 멕시코의 한 데킬라 제조자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만든 술이었다. 그의 목표는 단 하나,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데킬라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농장에서 최고급 블루 아가베를 선별하여, 전통적인 방식으로 데킬라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돈 훌리오는 고유의 부드럽고 풍부한 맛으로 데킬라 애호가들 사이에서 빠르게 명성을 얻었다.
나의 기억 속 한 에피소드는 돈 훌리오를 마시며 경험했던 것이었다. 멕시코의 작은 바에서 처음으로 돈 훌리오를 맛본 그날, 바텐더는 그것이 단순한 술이 아니라 멕시코의 자부심이라며, 천천히 그 맛을 음미하라고 조언했다. 그 순간, 데킬라가 입안 가득 퍼지며 느껴지는 감각은 마치 멕시코의 햇살과 대지의 에너지를 한껏 느끼는 듯했다. 그리고 그 맛은 약간의 초콜릿과 바닐라의 달콤한 여운을 남겼고, 그 경험은 나를 오랫동안 매혹시켰다.
나는 그 순간을 잊지 못했다. 피라미드를 둘러보고 난 후의 그 저녁, 이시스가 꺼내준 돈훌리오 70년산은 단순한 술이 아니었다. 그것은 멕시코의 역사와 문화를 한 모금에 담은 삶의 정수였다. 그 맛과 향, 그리고 그 순간의 감동은 이제 내 삶의 일부가 되었고, 이국에서 느낀 소주에 대한 그리움을 단번에 씻어내 주었다.
멕시코의 밤은 친구들과 함께 나눈 웃음과 대화, 그리고 나쵸와 돈 훌리오 70년산으로 따스해진 마음으로 가득 찼다. 그렇게 하루의 피로와 술의 온기가 어우러진 졸음 속으로 빠져들 때, 침대는 내게 안식의 공간이 되었다. 모든 걱정은 저 멀리 사라지고, 사랑스러운 고양이들이 하나둘 나타나 나의 밤을 지켜줬다. 부드러운 앞발로 등을 마사지하는 고양이, 발 아래 조용히 나의 안부를 확인하는 녀석들로 인해, 나는 평화로운 잠에 빠졌다.
이 밤, 고양이들의 고르르르 거리는 소리는 처음엔 낯설었지만, 곧 나에게 위안을 주는 자장가가 되었다. 그들의 부드러운 울림은 멕시코의 별빛 아래서 일상의 긴장을 풀어주었고,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그 소리와 따스한 몸짓으로, 고양이들은 이국적인 땅에서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고양이들과 함께한 그 밤은, 내 인생에서 가장 달콤한 꿈을 꾸게 해주었다. 멕시코의 밤하늘 아래, 그들의 온기와 동행하며, 나는 오랜만에 찾아온 깊고 평화로운 잠의 품에 안겼다. 그 소리는 이제 내 밤의 루틴이 되어,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평온의 멜로디가 되었다. 이 아름다운 밤, 고양이들의 매력이 내게 전해주는 무한한 위안 속에서, 나는 삶의 단순한 행복을 깨닫게 되었다.
9. 5일 My Home is Your Home 두번째 이야기(2/18)
푸에블라 가는 길
새벽 3시에, 천장을 바라봤다. 불면증이란 불청객이 10년 넘게 내 밤을 지배해왔었다. 하루에 겨우 2~3시간 잠을 자며, 낮잠으로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었다. 이제 이 불면의 순환에도 익숙해져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내 삶의 일부가 되었었다.
그러나 그날은 푸에블라로의 여정을 앞두고 있었기에, 새벽의 짧은 안식을 깨고 일어나야 했다. 헥터와의 약속 시간을 정하고, 잠시 눈을 붙이려 했으나, 멕시코 시티의 예측 불가능한 트래픽을 고려해 두 시간 일찍 길을 나섰다.
새벽 시장을 통과하는 길이 예상치 못하게 붐볐다. 새벽 일을 하는 차들로 인해 도심을 벗어나기가 의외로 힘들었다. 하지만 고속도로로 향하는 램프에 진입하자마자, 트럭들이 늘어나며 고속도로의 분위기를 알렸다.
시티 중심부를 벗어나자마자, 산비탈을 가득 메운 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도시적인 풍경과 대조적으로, 산과 산을 연결하는 케이블카가 하늘을 가로지르는 모습은 색다른 인생의 풍경을 제공했다.
멕시코 시티의 케이블카 시스템인 '멕시케이블'은 특히 빈민가와 산동네를 연결하며 대중교통의 틈을 메워줬다. '라 비가' 또는 '카블레부스'로도 불리는 이 케이블카는, 이코노카티틀란(Ecokatitlán)이나 케타팔파(Cetapalpa) 같은 주요 역을 포함해 지역 사회의 핵심 지점들을 연결했다. 이동 요금은 매우 저렴해 대중의 접근성을 높였으며, 한 번의 여정에 몇 페소에서 십여 페소 정도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멕시케이블의 탄생 배경에는 멕시코 시티의 지형적 특성과 교통 문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산비탈에 위치한 빈민가 주민들은 중심부로의 이동이 매우 어려웠고, 이는 일자리, 교육, 의료 서비스에 접근하는 데 큰 장애가 되었다. 이 케이블카 시스템은 그러한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사회적, 경제적 노력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지역들은 안전에 대한 우려가 높았다. 빈민가는 때때로 강력범죄의 온상으로 여겨졌으며, 외국인들에게는 위험할 수도 있다. 특히 혼자서 다닐 경우, 강도, 절도와 같은 범죄에 노출될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현지 안내인의 동행이나 충분한 정보를 갖추고 이동하는 것이 권장되고있다. 실제로 멕시코 시티에서는 케이블카 주변 지역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 사건이 보고된 바 있었다.
이처럼 멕시코 시티의 케이블카는 교통 혁신과 사회적 통합의 상징이자, 도시의 교통 문제를 해결하려는 지속 가능한 발전 모델로 평가받고 있었지만, 이용 시에는 안전에 대한 충분한 주의가 요구되고있다.
한국의 도로 교통법은 오토바이의 고속도로 이용을 제한하고 있었는데, 이는 주로 안전과 관련된 문제 때문일 것이다. 고속도로에서의 오토바이 사고는 대부분 심각한 결과를 낳기 때문에 이 같은 규제가 마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법은 모터사이클 애호가들에게는 많은 불편과 아쉬움을 주었다.
멕시코에서는 이러한 제약이 없어,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톨게이트를 지나며 스로틀을 꽉 당기는 순간, 기대감과 흥분이 교차했다. 하지만 현실은 현재 렌탈한 바이크의 최고속도가 120km/h에 불과해, 내가 꿈꾸던 질주본능을 만족시키기엔 다소 부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멕시코의 도로를 자유롭게 달릴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가슴 벅찬 경험이었다.
다음 번 멕시코 방문 때는 더 빠른 속도를 즐길 수 있도록 CBR 600RR 또는 마음을 사로잡은 Yamaha R6를 렌탈할 계획이다. 그때는 현재의 '느림보 거북이' 같은 속도와는 다른 차원의 짜릿함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멕시코에서의 오토바이 여행은 비용적인 면에서 한국과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였다. 렌탈비와 휘발유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 오토바이를 이용하는 여행자들에게는 분명히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그러나 고속도로의 톨게이트 비용은 예상 외로 높아 여행의 총비용에 상당한 부담을 더했다.
물론, 무료 도로를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유지보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아스팔트가 파여 있는 곳이 많고, 어떤 구간에서는 길이 자갈밭처럼 변해 있어 위험할 수 있었다. 이런 도로 상태에서는 한국처럼 과감하게 스로틀을 당길 수 없었으며, 조심스럽게 주행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했다.
헥터와의 첫 만남
새벽부터 푸에블라로의 여정을 시작했다. 헥터는 나를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멀리서부터 톨게이트까지 마중 나올 준비를 해왔었다. 하지만 나의 성급함이 앞서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해 버렸다. 그러자 우리는 재빨리 약속 장소와 시간을 조정해 다음 톨게이트에서 만나기로 했다.
헥터를 처음 보았을 때, 메시지로만 대화를 나눴던 터라 조금 어색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오토바이에 대한 열정이라는 공통 분모를 가진 우리는 곧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그의 세심한 배려로 도로의 위험한 구간들을 안전하게 넘길 수 있었고, 이른 아침의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푸에블라로의 여정은 더욱 즐거워졌다.
뷰가 아름다운 판자콜라
멕시코 주를 벗어나 푸에블라 주로 이어지는 길목에서는 아주 긴 산맥을 통과했다. 이 산은 그리 가파르지 않았지만, 그 길이와 높이에 따라 날씨가 변화하는 경계선 역할을 했다. 이곳을 지나며 분명한 기온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었다. 산을 오르면서 서늘한 공기가 점점 차가워졌다.
가죽 점퍼를 입고 있던 것은 다행이었다. 점퍼 덕분에 몸은 추위로부터 어느 정도 보호받을 수 있었다. 바이크를 타고 높은 고도로 올라갈수록, 더욱 뚜렷해진 추위는 여정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한 날씨의 변화는 푸에블라 주로의 진입을 실감나게 했고, 새로운 주의 다양한 기후와 지형을 경험하는 것은 이 여정에서 또 다른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멕시코의 고속도로는 한국과 다른 독특한 특징을 지녔다. 가장 눈에 띄는 차이 중 하나는 가로등의 부재였다. 어둠이 내리면 도로는 불빛 하나 없이 어두워졌고, 밤에 운전할 때는 특별한 주의가 필요했다. 무엇보다 가시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다른 차량이나 도로 상황을 적시에 인지하기 어렵고, 예기치 못한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한, 이곳의 휴게소는 한국의 깔끔하고 현대적인 휴게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대신, 소박하고 정감 있는 분위기의 나무 판자로 만들어진 집과 같은 구조들이 모여 휴게소를 이루었다. 간이 가판대에서는 다양한 장신구와 음료, 지역 특색을 반영한 음식들이 즐비해 여행자들에게 색다른 매력을 제공했다. 이러한 휴게소는 멕시코만의 문화적 풍경을 반영하며, 장거리 여행의 피로를 풀 수 있는 이색적이고 편안한 휴식처를 제공했다.
멕시코의 기후는 연중 건조하고 덥다는 점에서 한국의 사계절과 크게 달랐고, 자연 풍경에서도 이러한 기후적 특성이 반영되었다. 푸르른 선인장이 가득한 광활한 사막은 멕시코의 대표적인 풍경으로, 이들은 햇볕이 강렬하고 물이 부족한 환경에서도 생명력을 유지하는 놀라운 적응력을 보여주었다.
식물들의 생존 전략은 나뭇잎의 크기에서도 드러났다. 건조한 환경을 견디기 위해 수분 증발을 최소화하는 작고 두터운 잎을 가진 식물이 일반적이었다. 이는 물을 저장하고 최대한 활용하는 생태계의 지혜로, 멕시코 식물들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단풍으로 유명한 한국의 가을과는 달리, 멕시코의 가을은 그러한 색채 변화가 덜했다. 나무들은 연중 내내 강한 태양 아래에서 꾸준히 자신의 색을 유지하며, 건조함에 강한 다양한 토착 식물들이 이 지역만의 독특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었다. 멕시코의 산과 나무들은 이렇게 건조한 기후 속에서도 강인하게 생명을 잇는 모습으로, 자연의 끈질긴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푸에블라 주로의 라이딩은 멕시코 시티의 분주한 풍경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장면들을 연이어 선보였다. 멕시코의 광대한 면모를 다시금 깨닫게 하는 순간들이었다. 아담한 산들과 드넓게 펼쳐진 평원, 그리고 숨이 멎을 듯한 자연의 풍경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마을마다 자신만의 색채와 특성을 지니고 있어,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칠 때마다 각기 다른 독특한 풍경을 발견하는 것은 이 여정의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멕시코 시티의 산동네가 주로 벽돌이나 콘크리트의 원색을 드러내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푸에블라 주의 집들은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이는 마치 캔버스 위에 펼쳐진 다양한 색채의 팔레트처럼, 멕시코의 생동감과 문화적 정체성을 표현해주는 듯했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램프를 따라 내려가면서 푸에블라의 여러 도시들이 가까이에서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그 도시들의 평화로움과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나는 그곳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특히 이번 여정에서 처음 방문하는 헥터의 집이 있는 판자콜라는, 푸에블라와 틀락스칼라의 경계에 위치한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2차선 도로를 따라 굽이치는 길을 나아가며, 틀락스칼라의 수려한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도로 옆에서 마주친 깊고 맑은 눈을 가진 멕시코 소녀의 호기심 가득한 눈빛과 마주하며, 나는 헬멧의 바이저를 올리고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건넸다.
헥터의 동네가 바라다보이는 높은 산이 멀리서 조망되었고, 그 산의 기슭에 자리한 언덕 위에는 판자콜라가 자리하고 있었다. 헥터의 집에 도착했을 때, 눈앞에 펼쳐진 것은 아름답고 매력적인 세 층짜리 주택이었다. 서울 근교의 타운하우스를 연상시키는 이 집은 현대적인 콘크리트 구조와 쾌적한 주변 환경이 어우러져 있었다. 이곳이 멕시코의 한 가정집이라는 사실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매력적이고 아늑한 분위기를 풍겼다.
헥터의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오토바이를 주차할 곳을 찾는 동안 나를 반겨준 첫 손님들은 개들이었다. 그중에는 크고 우람한 개부터 작고 귀여운 검은 개, 그리고 활발한 점박이 개까지 다양했다. 이 지역을 오토바이로 오르내리면서 만난 수많은 개들은, 각자의 개성을 뽐내며 그들의 영역을 확실히 하고 있었다.
개를 매우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것보다 더 반가운 환영식이 있을 수 없었다. 그들의 짖는 소리, 꼬리를 흔드는 모습, 그리고 호기심 가득한 눈빛들은 이곳이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생명이 넘치는 공간임을 알려주었다.
헥터의 집에 도착하니, 그의 가족들이 나를 환영하는 모습이 참으로 따뜻했다. 아들 산티는 처음 보는 외국인 앞에서 쑥쓰러워 하며 아빠 헥터 뒤에 숨었지만, 그 소심한 모습 뒤에 궁금증이 가득 찬 눈빛이 엿보였다. 이본과 헥터의 장모님의 환영도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
내가 사용할 방을 안내 받아 2층으로 올라가니, 햇살이 쏟아지는 따뜻한 공간이 나를 맞이했다. 창문 너머로 내리쬐는 햇볕이 방안을 밝혔고, 새 침대 위에는 가지런히 침대 시트가 평온하게 펼쳐져 있었다. 벽면에는 미니멀리즘을 연상시키는 선반들이 구비되어 있어, 아름다운 간결함이 돋보였다.
나는 선반 위에 노트북, 전자장비들 그리고 오토바이 용품들을 정리하여 진열했다. 각 장비와 용품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이국적인 방 안에 나만의 작은 공간이 형성되었다. 이곳은 이제 멕시코에서의 나의 삶을 펼쳐나갈 임시 작업실이자, 새로운 모험을 위한 기지가 될 것이었다.
짐을 풀고 잠시 방에 앉아 있자, 방은 나의 물건으로 채워지며 점점 더 익숙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기 시작했다. 샤워 후 잠시 쉬고 있을 때, 이본이 상큼한 과일과 시원한 음료를 가지고 들어왔다. 그녀는 나에게 따뜻한 미소로 말했다, "이 방은 당신의 방이에요. 언제든지 편하게 쓰세요." 나중에야 듣게 된 이야기지만, 헥터는 나를 초대하기 위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고 한다. 새로운 침대를 구입하고 방 안팎을 멋지게 꾸미는 데 사용했으며, 정원 파티를 위한 정원 가꾸기와 필요한 장비들도 샀다고 한다. 그 순간, 나는 내가 받은 대우가 과분하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내가 무슨 큰 인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렇게 호사를 누려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환대가 나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이 여행이 나에게 얼마나 특별한 경험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잠시 쉬면서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들을 정리했다. 멕시코의 푸른 하늘, 끝없이 펼쳐진 평원, 그리고 피라미드의 웅장한 모습이 담긴 사진들을 구글 포토에 업로드하여, 이 여행의 순간들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다. 짐을 풀고 옷들을 정돈한 후, 사계절 내내 더운 나라인 멕시코지만 혹시 모를 쌀쌀한 날씨에 대비해 가져온 얇은 오리털 조끼도 캐리어 깊은 곳에서 꺼냈다.
방을 정리하고 있을 때, 배가 출출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헥터가 문을 두드리며 들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브라더, 오늘은 나에게 아주 특별한 날이야. 너와의 만남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한 저녁식사를 준비했어. 내 차로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자신 있게 추천하는 지역 식당으로 가보자고. 준비됐어?" 나는 그의 제안에 기쁘게 동의했다. 틀락스칼라의 지역 음식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멕시코의 음식은 그 다양성과 풍미로 이미 유명했으니, 이 지역에서 무슨 맛있는 요리를 맛볼 수 있을지 생각만 해도 입안이 군침 돌았다.
헥터가 나에게 넉넉한 4륜 SUV의 앞자리에 타라고 권했다. 나는 그의 권유를 따랐고, 헥터의 가족은 뒷자리에 함께 앉아 우리의 저녁 모임을 기대하며 출발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틀락스칼라의 풍경은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낮은 건물들이 연속되는 조망은 이 지역만의 고유한 매력을 선사했고, 멕시코 시티와는 또 다른 평화롭고 아름다운 느낌이었다. 성당의 첨탑을 제외하고는 하늘을 찌를 듯한 고층 빌딩이 없어, 시야가 넓고 탁 트였다.
헥터의 차가 동네의 경사진 길을 천천히 내려갈 때, 나는 이곳의 일상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큰 개들이 길거리 여기저기에 풀려 있었고, 어떤 개들은 아예 길 한가운데 편안히 잠을 자고 있었다. 헥터를 비롯한 주민들은 그저 개들을 조심스레 피해 운전했다. 한국에서라면 경적으로 개들을 쫓아낼 상황이지만, 멕시코 사람들은 개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핸들을 조심스레 꺾었다.
이 문화적 차이는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 멕시코는 길거리 개들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몇 년 전 한국 뉴스에서는 들개들이 사람들을 공격하는 사건들을 들었지만, 멕시코의 개들은 그와는 달랐다.
사람들을 위협하거나 공격하는 대신, 이곳의 개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경고의 짖음을 보내기는 했지만, 다가가 손을 뻗으면 금세 순한 양으로 변했다. 심지어 겉보기에 위협적으로 보일 수 있는 도베르만이나 시베리안 허스키 믹스도, 멕시코의 이 지역에서는 누구에게나 친근한 존재였다. 이런 평화로운 공존의 문화는 내가 겪은 여행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로 남았다.
멕시코의 도로 상황에 관한 이야기는 여행자에게 중요한 정보이다. 특히 멕시코 시티는 교통 감시 카메라가 드물며, 이는 전국적으로 비슷한 상황인 것 같다. 고속도로를 포함하여 많은 지역에서 교통 감시 시스템을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멕시코 도로의 특징 중 하나는 예상치 못하게 높게 설치된 도로 방지턱이다.
이 방지턱들은 때로 30cm에 달하는 높이로, 멕시코 도로에서 운전하는 이들에게는 끊임없는 주의를 요구한다. 실제로 이 방지턱들은 교통 감시 카메라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사고율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속도를 줄이지 않고 이 방지턱을 넘다가는 차량의 손상은 물론, 심각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밤에는 이러한 도로 상황이 더욱 위험해진다. 가로등이 드문 멕시코의 도로에서는 빠른 속도로 운전하는 것이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특히 오토바이 운전자의 경우, 방지턱을 예상치 못하고 고속으로 달리다가는 사고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따라서 멕시코에서 운전할 때는 언제나 도로 상태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특히 야간에는 더욱 신중한 운전이 요구된다.
판자콜라를 떠나 도심지로 향하자 새로운 풍경이 나를 맞이했다. 한국의 모습과는 다른 멕시코의 성당들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역사를 담고 있었다. 스페인 식민지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견고함과 위엄을 자랑하는 성당들이 지역 곳곳에 존재했다. 이 성당들은 마을마다의 이야기를 간직하며, 작고 아담한 모습으로도 고풍스럽고 오래된 정취를 풍겼다.
도심의 길거리 음식 문화는 멕시코의 다채로운 맛의 향연을 제공했다. 타코와 과일을 중심으로 한 다양하고 저렴한 음식들은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었으며, 이러한 길거리 음식들은 한 끼 식사로도 충분할 만큼의 풍성함을 자랑했다. 멕시코 음식의 맛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적 상징이었으며, 이 땅의 사람들이 이토록 음식을 즐기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맛있는 음식이 넘쳐나는 멕시코에서는, 어쩌면 비만이 많은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매일같이 이러한 맛의 유혹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니, 멕시코인들의 식생활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함께 그들의 삶의 기쁨 역시 음식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찾아간 Antojitos Los Angeles 식당은 틀락스칼라의 영혼을 담고 있는 듯했다. 벽면에는 밝고 생동감 넘치는 색상의 벽화들이 그려져 있었고, 멕시코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소품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천장에서는 다채로운 파피엘 피카도(papel picado)가 축제의 날을 연상시키듯 흔들리고, 테이블 위에는 전통적인 멕시칸 타일로 장식된 러너가 깔려 있었다.
식당의 한쪽에는 멕시코 인디언 부족들의 전통 의상을 입은 인형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다른 쪽에는 세라믹으로 만들어진 카티리나(Catrina) 인형들이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바의 뒤편에는 다양한 종류의 테킬라와 멕시코 국내에서 생산된 맥주들이 선반에 진열되어 있어, 멕시코의 맛을 더욱 진하게 느끼게 했다.
실내 곳곳에는 멕시코의 전통 악기인 마리아치의 기타와 비올라, 트럼펫 등이 벽에 걸려 있었고, 은은한 조명 아래 멕시코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손으로 직접 만든 석고 공예품들도 눈에 띄었다.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식당 안은 마치 틀락스칼라의 작은 축제 현장과도 같은 분위기를 조성했다. 손님들은 멕시코의 풍부한 맛뿐만 아니라, 그들의 색감과 예술, 그리고 따뜻한 정서까지도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에 놓인 듯했다.
잠시 후, 테이블에는 이본과 그녀의 어머니가 추천한 틀락스칼라 지역 특색을 담은 요리들이 차려졌다. 나는 특별한 선호를 말하지 않았으나, 그들은 지역의 맛을 잘 아는 듯 나에게 맞는 선택을 해주었다.
Picadita를 첫 입에 넣는 순간, 그 고소한 옥수수 반죽과 신선한 야채, 치즈의 풍미가 어우러져 입안 가득 황홀한 맛을 느꼈다. 매콤한 소스가 그 황홀함에 불을 붙였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치도!!"를 외쳤다.
Taco Placero의 그 풍성함에 또 한 번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다양한 재료의 조화로움이 이루는 맛의 교향곡은 멕시코의 거리를 거닐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Gorditas Banderas의 각 재료는 멕시코 국기의 색을 대표하며, 그 삼색의 조화는 한 번 맛보면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사했다. 이 요리는 나의 입맛을 멕시코의 자긍심으로 가득 차게 했다.
마지막으로 Quesadilla는 치즈의 부드러운 풍미와 함께하는 맛의 축제를 완성했다. 간단해 보이지만, 그 속에 담긴 다양한 재료의 조화로운 맛은 단순함 속의 심오함을 깨닫게 했다.
이국적인 맛의 축제는 그저 식사 이상의 것이었다. 멕시코의 정성이 깃든 요리들은 나를 황홀한 맛의 여정으로 인도했고, 푸에블라의 맛과 정취를 더욱 깊이 체험하게 만들었다.
식탁 위에는 다채로운 음료들이 놓여있었다. 헥터는 콜라를 선택하며 그 달콤하고 시원한 탄산의 매력에 나도 빠져보라 권했지만, 한국에서의 식습관을 고려하여 나는 물을 요청했다. 그때 이본이 내 앞에 자줏빛 음료 하마이카를 내밀었다. 이 음료는 히비스커스 꽃잎을 말려서 만든 것으로, 상큼하고 산뜻한 맛이 특징이었다. 오미자차와 비슷한 풍미가 나를 매료시켰고, 그 이후로는 멕시코의 어디서든 하마이카를 찾게 되었다.
멕시코 사람들이 식사 시 자주 선택하는 콜라와 달리, 하마이카와 오르차타는 또 다른 인기 있는 선택지였다. 오르차타는 쌀을 기반으로 한 음료로, 쌀을 물에 담가 놓은 후 갈아 만들고 달콤한 계피와 설탕을 추가한다. 우리나라의 아침햇살 음료와 비슷한 고소한 맛을 내는 이 음료는 맑고 투명한 하얀색을 띠고, 특유의 부드러운 맛과 함께 시원한 목넘김을 제공한다. 나는 오르차타의 고소한 맛도 좋아했지만, 하마이카의 상큼한 신맛이 주는 청량감에 더 매료되었다. 이 두 음료는 멕시코의 식문화를 대표하며, 무더운 날씨에도 목마름을 즐겁게 해소해 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생활 필수품을 구매하기 위해 시내에 위치한 월마트로 향했다. 한국의 대형 마트와 다른 분위기에 적응하려니 처음에는 이국적인 느낌이 강했다. 한국에서는 주로 이마트나 롯데마트와 같은 국내 브랜드의 대형 마트를 이용하지만, 멕시코에서는 월마트가 거대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었다. 멕시코 곳곳에 자리 잡은 월마트는 그 지역 생활의 중심지 역할을 하며, 사람들의 일상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월마트 외에도 토종 브랜드인 소규모 식료품점들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월마트의 대형 매장과 가격 경쟁력 앞에서는 상대적으로 주목받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러한 시장 상황은 멕시코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대형 체인점들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는 현상을 반영하는 것 같았다. 월마트 안에서의 쇼핑 경험은 한국의 마트와는 분명히 다른, 특별한 경험이었으며, 다양한 로컬 제품들과 멕시코 특유의 상품 구성을 탐색하는 것은 재미있는 활동이었다.
10. 6일(February 19, 2023)
장미꽃 쿠키
새벽의 첫 빛이 창문을 통해 스며들며 방 안을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멕시코의 조용한 마을, 판자콜라에서의 첫 아침이 밝아오는 순간, 나는 눈을 떴다. 이본과 그녀의 어머니가 정성으로 준비한 아침 식사의 향기가 집안 구석구석을 가득 채웠다. 계단을 내려가 보니, 사랑으로 가득 찬 수제 쿠키들이 따뜻한 커피와 함께 정갈하게 테이블 위에 마련되어 있었다.
이본이 선보인 쿠키는 'Postre de manzana al horno'로 명명되었다. 오븐에서 구운 사과를 주제로 한 이 디저트는 장미꽃을 연상시키는 우아한 모양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사과 조각으로 이루어진 꽃잎이 여러 겹으로 아름답게 층을 이루고 있으며, 그 사이사이에는 시나몬과 설탕이 고운 눈처럼 내려앉아 있어, 맛을 보는 순간 사과의 신선함과 시나몬의 향긋함이 입 안 가득 퍼져 나갔다. 이 쿠키의 바삭하고 부드러운 식감은 커피와의 조화를 이루며, 나의 아침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다.
평소 크게 식사하지 않는 나지만, 이날 아침에는 푸짐하게 차려진 식탁 앞에서 그들의 따스한 마음씨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이본의 어머니는 멕시코에서 음식이 갖는 깊은 의미에 대하여 열정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멕시코 문화 속에서 또띠아는 단순한 음식을 넘어서, 결혼에 있어서 중요한 자격 요건 중 하나인 집안에서 직접 만들 수 있는 능력의 상징이라고 한다. 더욱이, 손님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행위는 사랑과 존중의 깊은 표현으로 여겨진다고 강조하였다.
이본 어머니의 따뜻한 말에 감동받은 나는 배가 불러도 정성을 다해 만들어진 그들의 음식을 거절할 수 없었다. 멕시코의 전통에 따라 손님을 대접하는 것은 그들의 사랑과 정성을 나누는 것이었고,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하며 기쁘게 그들이 준비한 식사를 즐겼다. 그 순간, 나는 멕시코 가정의 따스함을 직접 체험하며, 그 경험이 나의 여행 기록에 영원히 남게 되었다.
식사를 마친 후, 나는 설거지를 돕기 위해 일어났지만, 헥터와 이본은 나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하며 손님으로서의 휴식을 취할 것을 권유했다. 그들의 친절과 정성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득 안고, 나는 배를 채운 채로 소화를 위해 동네를 산책하기로 결심했다. 집을 나서며 맑은 공기와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걷기 시작했을 때, 샤샤라는 이름의 강아지가 나를 향해 꼬리를 흔들며 달려왔다. 강아지의 따뜻한 환영을 받으며, 나는 샤샤를 애정을 담아 쓰다듬어 주었다. 그녀는 마치 “신의 성품과 어머니의 마음”을 지닌 것처럼 느껴졌다.
샤샤는 나와 함께 산책을 시작했다. 그녀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랐지만, 그녀는 나를 보호하는 듯 마을 곳곳을 안내하며 나의 산책을 함께했다. 이 동네의 개들이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모습이 일상적이었지만, 샤샤는 다른 개들과 다투지 않고 오히려 나를 당당하게 보호해 주는 보디가드 역할을 해주었다. 그녀의 동행 덕분에 마을의 다양한 모습을 더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었고, 샤샤의 동행은 산책을 더욱 즐거운 시간으로 만들어 주었다.
평화로운 마을 산책
틀락스칼라의 부드러운 아침 햇살 아래,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깊은 성찰에 잠겼다. 한국에서의 성과주의와 치열한 경쟁을 뒤로한 채, 이 땅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나의 시간은 단순한 여행을 넘어서 인생의 새로운 방향을 탐색하고 근본적인 가치를 모색하는 데에 소중하게 사용되었다.
한국과는 판이하게 다른, 여기서의 산책과 맑은 공기는 나에게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했다. 이 평화로운 마을의 길을 따라 걸으면서, 나는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심도 있게 고민했다. 이곳 멕시코에서 보내는 시간이 비록 짧을지라도, 나에게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이 경험은 귀국 후 새로운 시작을 위한 깊은 통찰력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의 빠른 생활 속도로부터 한 발짝 물러나, 여유롭고 평화로운 이 아침을 배경 삼아 삶을 돌아보며, 나는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 나설 것을 결심했다. 걷던 골목길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자연스러운 인사 교환은, "¡Hola, buenos días!"라는 말 한마디로 시작되어, 누구든지 친근하게 "¡Gracias, buenos días!"로 화답하는 이곳의 따뜻한 분위기는 한국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것이어서, 나를 더욱 이곳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골목의 한 코너에서, 눈에 띄는 한 아이가 있었다. 큰 모자를 쓰고 파란색과 흰색 깃발로 치장한 채, 마치 새의 날개 같은 망토를 휘날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 그 아이에게 다가가 물었더니, 오늘은 마을의 카니발 준비로 분주한 아침이라고 설명했다. 아이는 자신이 입고 있는 의상을 테스트 중이라고 했다. 아이의 설명에 따르면, 오늘 예정된 마을 카니발은 화려하고 이색적인 문화의 진수를 선보이는 축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경험들이 모여, 나는 이곳에서의 체류가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마을 카니발 축제
멕시코의 오후가 점점 깊어지면서, 나는 틀락스칼라의 생동감 넘치는 일상에 다시 한번 몸을 맡기기로 결심했다. 아침에 목격한 카니발의 활기를 다시 한번 경험하고자, 오토바이의 시동을 걸었다. 이번에는 푸에블라의 장엄한 대성당과 그 주변의 아름다움을 직접 탐험하고자 하는 욕구에 이끌렸다.
헥터의 집을 떠나, 완만한 비탈길을 내려오면서 길가에서 느긋하게 누워 있는 개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이곳 풍경이 어느새 내게도 친숙해졌음을 느꼈다. "¡Hola, buenos días!"라고 말하며, 나는 이곳의 일상에 한층 더 깊이 스며들고 있었다.
골목길에서 만난 그 오토바이는, 틀락스칼라의 삶과 문화의 다양성을 담아낸 이동 수단의 캔버스와도 같았다. 선명한 빨간색으로 도색된 세발 모토택시는 멕시코의 역동적인 영혼을 표현하는 듯 보였다. 단단한 한 쌍의 뒷바퀴와 견고한 앞바퀴를 갖춘 이 구조는 특유의 안정성을 제공하며, 넓은 후방 좌석은 승객이나 짐을 실을 수 있도록 넉넉히 마련되어 있었다.
이 모토택시는 단순한 기능을 넘어서 지역적 특성과 재치 있는 설계를 드러내며, 창의적인 수납 공간과 추가 좌석은 그들의 유연함과 실용적인 사고를 보여주었다. 모토택시 옆면에 설치된 천막은 무더운 날씨에도 승객들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된 세심한 배려였다.
이러한 모토택시는 멕시코인들의 일상을 보다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것뿐만 아니라, 멕시코의 다채로운 문화와 창의성이 어떻게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증거였다. 이 교통 수단은 틀락스칼라의 거리를 채우는 살아 있는 색채와 리듬을 통해, 멕시코의 생활 양식을 반영하며, 그 지역의 정체성의 일부를 형성한다.
비용은 지역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저렴한 편이며, 짧은 거리 이동부터 더 긴 여정이나 특별한 요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킨다. 이 모토택시 서비스는 틀락스칼라의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으로, 그 존재만으로도 거리는 더욱 활기를 띠고 주민들의 일상은 훨씬 편리해졌다.
멕시코의 오후가 저물어 가면서, 나는 틀락스칼라의 활기찬 도심을 가로지르며 큰 사거리를 향해 나아갔다. 그때, 멀리서부터 은은하게 퍼져오는 음악 소리가 내 귓가를 간지럽혔다. 이 흥겨운 리듬은 마치 오래된 도시의 심장이 뛰는 듯,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트럼펫과 바이올린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조화로운 선율을 따라, 나는 걸음을 옮겼고, 곧 생동감 넘치는 지역 카니발의 장관이 눈앞에 펼쳐졌다.
부활절 전 사순절 기간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벌이는 웨웨스 카니발은, 고대 유럽에서 계절의 전환을 축하하는 의식에서 유래한 축제다. 이 카니발은 봄의 시작을 알리고, 겨울 동안 쌓인 악령을 쫓아내며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자연과의 조화와 공동체의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 시작된 이 민속 행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현대적인 요소가 추가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기찻길을 따라 펼쳐진 대로는 화려한 복장을 한 사람들로 북적였고, 그들의 얼굴은 가면으로 가려져 있었다. 가면 뒤의 미소는 보이지 않았으나, 그들의 몸짓에서는 기쁨과 자유가 춤추고 있었다. 마리아치 밴드와 스몰 밴드가 축제의 열기를 고조시키며 멜로디를 이어갔다. 리듬에 몸을 맡긴 참가자들은 춤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고, 길을 걷던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행렬에 합류해 축제의 일부가 되었다.
다양한 복장과 가면 속에서도, 공통된 리듬과 움직임이 하나로 어우러졌다. 도시의 거리는 잠시 모든 계급과 경계를 허물고, 모두가 하나의 큰 공동체를 이루는 축제의 장으로 변모했다. 음악과 웃음, 환호성이 공중에 울려 퍼짐으로써, 카니발은 단순한 행사를 넘어, 삶과 문화의 풍성함을 축하하는 움직이는 향연으로 재탄생했다.
이 축제는 지역의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며, 전 세계 관광객들에게는 해당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동시에 지역 사회에게는 자부심과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주는 유산으로 자리 잡았다. 카니발은 삶의 순환과 재생의 주기를 상기시키며, 새로운 시작을 앞둔 마지막 축제로서 그 의미를 더한다. 이는 공동체 전체가 자연의 흐름을 기념하고 다가오는 부활의 시기를 준비하는 소중한 시간이자, 문화와 전통이 어우러진 풍부한 사회적 사건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푸에블라 대성당
푸에블라의 거리를 오토바이로 질주하며, 나는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코발트와 자홍색, 그리고 햇빛에 반사된 금색까지, 도시는 살아있는 색채의 풍경화처럼 내 앞에 펼쳐졌다. 스페인 콜로니얼 시대의 건축물들이 고요하게 자리 잡고 있었고, 구불구불한 길은 수백 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듯 보였다.
1531년 스페인인들에 의해 설립된 푸에블라는 '천사들의 도시'라는 명칭을 갖고 있으며, 스페인 정복 이후 유럽의 문화와 건축양식이 이 땅에 심어졌다. 웅장한 교회와 수도원, 그리고 광장들은 당시 스페인의 위엄과 신앙심을 오늘날까지 전달하고 있다. 도시의 많은 건축물들은 그 가치와 아름다움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푸에블라를 경험하며, 나는 이 도시의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매력에 깊이 매료되었다. 탈라베라 타일로 장식된 건물들, 섬세한 철제 발코니, 그리고 잘 보존된 거리들은 과거 장인들의 정신을 오늘날까지 이어주고 있었다. 푸에블라는 단순한 멕시코의 도시가 아닌, 역사의 층위를 넘나드는 살아있는 박물관과 같았다. 이곳의 거리를 천천히 달리며, 나는 '천사의 도시'가 간직한 역사적 중요성과 현재에도 얼마나 생생하게 존재하는지를 목격했다.
대성당으로 가기 전, 나는 오토바이를 안전하게 주차할 장소를 찾았다. 스타벅스 앞이 좋은 위치로 보여, 복잡한 유료 주차 앱 대신 그곳에 오토바이를 세우기로 결정했다. 주차를 마친 후, 나는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즐기며 푸에블라 대성당을 관람하기 위한 다음 여정을 준비했다. 이 순간, 과거와 현대가 교차하는 푸에블라의 도시 풍경 속에서, 나는 멕시코의 깊은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고 있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오토바이를 타고 푸에블라의 거리를 달리는 동안, 나는 이 도시가 시간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색채와 정체성을 유지해왔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다. 스타벅스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창밖으로 펼쳐진 푸에블라의 아침 풍경을 바라보는 순간, 나는 이 도시의 일상과 그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역사의 조화에 매료되었다. 거리는 이미 활기로 가득 차 있었고, 사람들은 각자의 일상으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잠시 그 분주함 속에서도 푸에블라 대성당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흐름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푸에블라 대성당의 웅장한 외관은 시간이 멈춘 듯한 순간을 선사했다. 이 거대한 구조물은 멕시코 가톨릭의 위엄과 정교함을 상징하며, 태양이 두 탑과 정면을 비추는 광경은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냈다. 거대한 검은색 철문과 바로크 양식의 석조 장식은 이곳이 멕시코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중 하나임을 증명했다.
성당 내부로 들어서자, 나는 그 정교함과 스케일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아치형 천장과 엄청난 크기의 기둥들, 화이트와 골드 톤의 세밀한 장식이 눈부시게 빛났다. 천장에는 천사의 조각들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었고, 중앙에는 황금색 태양 조각이 신성함을 더했다. 미사가 진행 중이었기에, 나는 조용히 이 모든 아름다움을 기록했다.
푸에블라 대성당은 1575년에 착공하여 약 300년의 긴 공사 끝에 완성되었다. 이 성당은 푸에블라의 스카이라인을 정의하는 두 개의 높은 탑과 함께 멕시코 바로크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성당의 내부는 웅장한 기둥과 아치형 천장으로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며, 금빛 장식과 조각들은 햇살 사이로 더욱 빛나고 있었다.
성당 곳곳에 새겨진 종교적 상징과 성인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관찰하며, 나는 이곳이 단순한 예배 장소를 넘어서, 멕시코의 종교적, 문화적 정체성을 담고 있는 역사적인 보물임을 깨달았다. 평온하고 성스러운 이 공간에서 기도를 드리며, 나는 푸에블라 대성당의 웅장함과 역사가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음을 느꼈다. 이 순간, 나는 멕시코의 깊은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는 것에 대한 감사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기도를 마치고 성스러운 푸에블라 대성당의 고요함을 뒤로 하고 외부로 나서자, 나는 그 역사적인 공간의 위엄에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했다. 멕시코의 흡연 문화는 비교적 관대한 편이지만, 나는 역사적 장소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담배를 피울 장소를 찾아나섰다. 성당 앞 광장의 한적한 구석에서 자리를 잡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주변을 둘러보며, 나는 광장이 사람들로 북적이는 모습을 관찰했다.
그 사이, 삐에로 복장을 한 광대들이 광장 한가운데에서 코미디 공연을 펼치고 있었다. 그들의 퍼포먼스는 마치 한국의 '개그콘서트'를 연상시키는 재미있는 스케치와 즉흥적인 언어 유희로 가득했다. 관객들은 광대들의 유쾌한 연기에 크게 웃으며, 그들이 선사하는 활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광대들은 기념품 판매와 기부를 받으며, 광장에 즐거움과 활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이 광경은 푸에블라 대성당이 지닌 웅장한 역사와 현대적 웃음이 어우러진 도시의 독특한 매력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성당의 장엄한 탑들이 마치 공연을 바라보는 듯한 모습과 광대들의 생동감 넘치는 문화 공연은 푸에블라의 다양한 정체성을 반영하며, 방문객들에게는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했다. 이러한 모습은 푸에블라가 어떻게 과거와 현재,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공존하는지를 잘 보여주며, 나에게 이 도시의 깊이 있는 매력을 다시 한번 깨닫게 했다.
산타세실리아 교회
푸에블라의 포장된 돌길을 따라 걷는 동안, 나는 이 도시의 영혼이 발밑에서부터 살아 숨 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각 블록마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은 건물들이 있었고, 태양은 그 모든 것을 환하게 비추며 건축물의 장엄한 면모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바로 그 순간, 헥터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는 나에게 보여주고 싶은 장소가 있다며, 함께 푸에블라의 숨겨진 매력을 탐방하자고 제안했다. 나는 그의 제안에 흥미를 느꼈고, 우리는 탐험을 위한 시간과 장소를 정했다.
우리는 오토바이를 타고 푸에블라 주의 조용한 마을, San Bernardino Chalchihuapan으로 향했다. 헥터가 말한 '산 꼭대기에 있는 보물'을 찾기 위해, 우리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열정적으로 올라갔다. 마을에 도착하자, 그곳의 소박함과 정감 있는 분위기는 나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산길을 오르며 만난 등산객들은 푸에블라 도시의 탁 트인 전망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파란 하늘과 그 위에 떠 있는 구름은 먼지 하나 없이 투명했고, 마치 고려청자처럼 아름다웠다.
교회 입구에 도착했을 때, 그 노란 문은 마치 신비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마법의 문처럼 느껴졌다. 문을 통과하는 순간, 나는 이곳에 온 것이 처음인 듯하면서도 데자뷰를 경험했다. 정상에서 바라본 푸에블라 시와 멀리 아틀리스코까지의 경치는 숨을 멎게 할 정도로 장관이었다. 산 아래 자치구 마을의 조용한 커뮤니티와 광활한 풍경은 마음속의 부정적인 기억들을 씻어내는 듯했다.
산타 세실리아 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 트리로 장식된 내부를 바라보며 또 한 번 기도에 잠겼다. 이곳은 산타 세실리아의 날에 수많은 공연으로 축제의 장이 되는 곳이라 들었다.
헥터는 다음 목적지로 '매직타운' 아틀릭스코로 향하는 것을 제안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굽이치는 길을 달리며, 멀리 포포카테페틀 화산의 위용이 점점 선명해졌다. 처음엔 화산의 웅장한 모습에 경이로움을 느꼈지만, 이제는 그것이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아틀릭스코로 접어들면서, 우리는 각 마을의 특유한 매력에 빠져들었다. 이곳은 멕시코의 다채로운 모습을 한눈에 보여주는, 살아 있는 그림과 같은 도시였다. 헥터와 함께한 이 탐험은 푸에블라와 그 주변 지역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뜻깊은 여정이 되었다.
마법도시 아틀릭스코
아틀릭스코의 '꽃의 도시'라는 별칭은 그곳의 화려한 색채와 살아 있는 그림 같은 집들로 인해 완벽하게 어울린다. 마을 전체가 하나의 캔버스처럼 다가오는 이곳에서, 우리는 높은 곳에 위치한 오래된 수도원에 도착했다. 17세기에 지어진 이 수도원은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고, 보수 공사를 통해 그 오래된 멋을 유지하고 있었다.
헥터가 들려준 수도원의 이야기는 멕시코의 깊은 역사와 풍부한 문화적 유산을 느끼게 했다. 프란시스코회 선교사 모톨리니아에 의해 16세기에 세워진 이 수도원은, 습기와 모기로부터 도망치고 원주민 개종자들을 스페인 식민자들의 영향으로부터 분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18세기 초에 추가된 바로크 양식의 레타블로는 아틀릭스코의 예술적 자랑거리이며, 멕시코 바로크 화가 프란시스코 마르티네즈의 손에 의해 더욱 빛나는 작품으로 거듭났다.
산머루 근처의 마을에 도달했을 때, 그곳의 분위기가 서울의 유엔빌리지를 연상시키는 것에 대한 당황스러움은, 멕시코의 이 매직타운이 가진 독특한 매력과 다문화적 정취의 공존을 더욱 실감하게 만들었다. 아틀릭스코의 거리를 걷는 동안, 이태원의 유명한 거리와 유사한 느낌을 받으며, 외국에 있으면서도 묘하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정감을 경험했다.
특히, 아틀릭스코의 긴 계단 위에 그려진 남녀의 그림들과 짧은 언덕의 형태가 이태원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발견은, 두 장소가 지닌 도시적 에너지와 다문화적 정취의 공존을 신기하게 느끼게 했다. 이러한 경험들은 아틀릭스코 방문을 한층 더 특별하게 만들었고, 이 매직타운의 매력이 왜 그토록 강하게 다가왔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아랍타코
늦은 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헥터의 제안으로 특별한 타코를 맛보기로 했다. '아랍타코'라 불리는 유명한 맛집에 도착했을 때, 그 인기를 증명하듯 긴 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의 타코는 전통적인 멕시코 타코와는 다르게, 벽면에 설치된 커다란 숯불 위에서 층층이 쌓아 올린 고기를 구워내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는데, 이는 터키의 케밥과 유사한 방식이다.
나는 타코가 전통적으로 멕시코 음식인지, 아랍 음식인지 궁금해하며 헥터에게 물었고, 그는 이 타코가 사실 아랍에서 멕시코로 전해진 것이라고 설명해줬다. 1930년대 레바논 이민자들이 푸에블라에 정착하면서 자신들의 전통 요리인 샤와르마를 소개했고, 이는 멕시코의 재료와 결합해 '타코 알 파스토르'라는 새로운 형태의 음식으로 발전했다. 이 요리는 원래 '타코 아라베스'로 알려져 있었으며, 수직 그릴에서 고기를 구워내는 방식이 특징이다.
오늘날, 타코 알 파스토르는 멕시코 전역에서 사랑받는 메뉴가 되었으며, 특히 푸에블라와 멕시코 시티에서 유래한 돼지고기를 사용한 스피트 그릴 요리로 인기가 많다. 이 레바논 이민자들은 군 징집을 피하고, 폭력을 피하며 더 나은 경제적 기회를 찾아 오스만 제국에서 멕시코로 이주했다. '아랍타코'에서 판매하는 타코는 멕시코와 중동의 맛이 어우러진 독특한 요리문화의 산물로, 그 맛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맛으로 자리 잡았다.
헥터의 설명을 듣고 나니, 이 타코를 맛보는 것이 단순한 식사를 넘어,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진 멕시코의 역사와 전통을 경험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멕시코가 가진 다채로운 맛과 문화의 교차점에서 또 하나의 특별한 기억을 만들고 있음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