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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얄리 Nov 25. 2020

feat. 외동딸로 산다는 것

어른 세계의 염탐꾼

  외동딸, 지금은 부모 입장에서 아이를 많이 두지 않고 집중적인 케어를 한 후 아이가 성인이 되어 자립하면 남은 시간을 자신과 배우자에게 집중한 채 노후를 준비할 계획을 세우는 까닭에 자녀를 한 명만 낳는 것이 희귀한 예가 되지 않지만 나의 어린 시절에는 달랐다. 60명 가까이 되는 반에서 형제자매에 대한 현황을 조사할 때면 외동딸 혹은 외동아들은 대게 1명 내지는 2명이 있을 정도였으니까.


  드문 경우에 속했기에 나의 부모님이 가장 염려했던 건 '혼자 남겨질 때를 대비해서 강해지고 주변에 사람이 많아야 할 텐데'라는 것이었다. 자식의 '결핍'은 부모에게 걱정거리이자 대책을 마련해야만 하는 숙제로 남는 법이라 항상 염려에 기초해 아이를 집중적으로 훈육시키려 한다. 반면 자식의 시각은 어떠한지 잘 모르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가정에서 형제자매에게 눈 돌릴 일이 없기에 본의 아니게 아이는 '어른 세계의 염탐꾼'이 된다. 기본 소양인 '침묵의 태도'를 탑재한 채. 그리고 염탐의 결과로 알게 된 것들로 처신할 방향을 잡고 자신의 미래를 재단한다.




근본적 차이에서 오는 외로움  


  아빠는 북적이는 대가족의 장남으로서 짊어져야 할 책임감으로 인해 '혼자만의 자유가 어느 정도 보장된 가정'을 갈망했고, 엄마는 전쟁으로 인해 이산가족이 되어 고아처럼 지냈기 때문에 늘 '함께 할 수 있는 가정'을 갈망했다. 두 사람이 꾸린 가정에서 아빠는 현실에 종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상상한 미래의 청사진이 있어야 그것을 이뤄나가기 위해 노력할 현재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고, 엄마는 당장의 현실이 해결이 되어야 그다음의 미래를 상상할 여력이 생길 수 있다고 여겼다. 어느 쪽도 양보하지 않은 채 두 사람은 서로 합의점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는 대신 각자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아빠의 삶에는 오직 자신만, 엄마의 삶에는 오직 자신 외에 가족만 있는 그런 삶으로. 타협이 없는 삶은 극단을 지향할 뿐이다. 딸은 아빠의 멍한 눈동자에서 그리고 엄마의 깊은 한숨에서 소통의 출구를 잃은 외로움을 읽는다.


이기심보다 위험한 이타적 피해의식


  미래를 위한 아빠의 과감하고 독단적인 선택의 실패는 현재에 대한 강한 집착을 가지고 있는 엄마의 과민한 불안을 증폭시켰다. 엄마의 책망 수위가 올라가고 아빠의 죄책감이 한도를 초과해 자기 방어를 시작하려 할 때 딸은 아빠의 팔을 잡고 엄마에 대한 이해를 구한다. 그나마 격해진 분위기에서도 아이의 두려움을 좀 더 바라봐 줄 마음의 여유를 가진 아빠를 믿고, 감정이 극단으로 치달아 아무것도 볼 여유가 없는 엄마의 편을 들어준 것이다. 삶에서 타인이 부족했던 아빠보다 자기 자신이 없었던 엄마가 어린 딸에게는 더 위태로워 보였다. 자신의 삶을 망친 - 스스로는 망칠 삶 조차 없으므로- 상대에 대한 원망의 힘으로 자신이 헌신한 이들과 자신을 모두 벼랑 끝으로 내 몰아 함께 추락하려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더 보호해야 할 대상이라 느꼈다. 그건 더 기댈 수 없는 대상이 된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피해의식으로 얼음 위를 걷는 듯 불안정해 보이는 엄마에게 실망이라는 무게를 실어주고 싶지 않았던 딸은 '스스로를 돌봐야 하는구나. 내가 잘해야 하는구나' 라며 처신의 방향을 세운다.


부부, 그리고 부모의 자리  


  부모를 의지하기보다 자신을 더 다그치며 버텨야 했던 시간이 많았던 딸은 자신이 예상한 것보다 더 일찍 가정을 꾸린다. 어쩌면 그만큼 '홀로 버티는 삶'에 지쳤기 때문일 것이다. 딸이 가정을 이루려고 했을 때 상대를 선택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기준은 '최악의 상황에도 자신과 타인을 극단으로 몰고 가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건 '자기 자신을 보호하면서 타인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힘을 가진 사람'을 의미했다. 딸은 동반자가 될 사람에게 결혼을 하는 데 있어서 원칙을 말한다. '무엇보다 부부의 행복이 최우선'이라는 것. 그건 부부간의 단절이 낳은 불행이 아이의 삶 마저 흔드는 어린 시절의 경험 때문이다. 아이가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되는 시기는 자연스럽게 와야 한다. 의지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려서가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딸은 엄마를 힘들게 했던 아빠를 더 닮았고 딸의 동반자는 엄마와 더 닮았다. 딸 부부에게도 근본적인 차이에서 오는 외로움은 비껴가지 않았다. 두 사람에게도 치열한 다툼의 시간이 주어졌다. 다만 '오직 자신만 있는 삶'이나 '자신 외에 가족만 있는 삶'으로 눈을 돌리지 않으려는 타협의 의지가 있는 것이 달랐다. 타협 없는 극단화가 가져오는 외로움은 근본적인 차이에서 오는 외로움보다 더 강하니까. 딸과 딸의 동반자, 두 사람의 아이는 부모의 사그라지지 않을 것 같은 깊은 외로움을 읽어낼 만큼 염탐할 기회를 많이 가지지 못했다. 타협의 회수가 늘어날수록 외로움의 깊이가 얕아진 까닭이다. 아이가 조금 더 천천히 부모에 대한 의지를 덜어내고 자립할 준비를 해 나가길 바라던 딸이 재단한 미래는 현재가 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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