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바라 땅끝으로 달려갔는지 모른다
실패한 자가 되어야만, 세상에 낙오한 자가 되어야만
땅끝에 설만한 자격이 생기는 거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땅끝이 아니라 땅의 시작이라는 희망찬 메시지는 너무 식상했고,
땅끝은 나의 나락과 우울을 나와 함께 바다 저 바닥까지 처박아주길 바랐다
다시는 떠오르지 않도록
아무것도 없다던 땅끝에는
모노레일과 관광객과 음식점과 낡은 모텔이 즐비했다
내가 바란 적막함과 쓸쓸함은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땅끝에서 본 건 끊임없이 떠나가는 이들,
아주 잠시 머물렀다 떠나가버리는 많은 사람들,
그리고 나 역시 떠나야 하는 사람.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물러서지도 못할 땐
그저 가만히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것,
희망찬 내일도 아닌, 절망의 구렁텅이도 아닌
그저 그 자리에 가만히 머무를 줄도 한다는 것,
땅끝의 끝에 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