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초등학교 2학년 방학이었다. 독후감을 몇 편 써가야 했는데, 전부 줄글로 쓸 자신이 없어서 나름 머리를 쓴다고 ‘책 속의 한 장면 그리기’, ‘주인공에게 편지 쓰기’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하다가 ‘책을 읽고 느낀 감정을 시로 표현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게 내 첫 시였다.
그 시는 수상을 하여 교내 잡지에도 실렸다.
(그때부터 여태 친구로 남아있는 어떤 못난이들은 때때로 잡지 속 내 얼굴로 날 협박하곤 한다. 하지만 그걸 세상에 공개하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자폭 장치를 누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걸 그들도 알기에, 아직 아무도 버튼의 커버를 벗기진 않았다.)
고학년 국어 시간, 시조를 배웠다.
내가 처음 시에 빠진 순간이었다.
/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 이 몸이 죽고 죽어 일 백 번 고쳐 죽어
하여가와 단심가를 보고 뭔지 모를 두근거림을 느꼈다.
‘재미’였던 것 같다.
그때부터 한자와 시조를 탐구했다. 한자는 동음이의어의 짜릿함을 알려주었고, 시조는 고고하고 우아하며 강력했다.
어린이치고는 영악했던 아이들과 어른이라기엔 유치했던 어머니들에게 이리저리 치이며 ‘표현하면 안 되는 세상’을 강요받고 있던 나로서는 마치 비밀 친구가 생긴 것 같았다.
(공부하기 싫을 때마다 닳도록 읽었던 [역사를 간직한 8가지 시조 이야기] 책이 떠오른다.)
중학교에 진학해서는 본격적으로 시를 즐겼다.
사진을 꾸미고 영상을 만드는 것에도 관심이 생겨, 친구와 출사를 나가 찍어온 사진에 그때의 감정을 시로 적어 붙이곤 했다.
하지만 질풍노도의 시기답게 초등학생 때와는 차원이 다른 인간관계의 풍파를 겪었고, 감정을 글로 옮기는 취미는 그 자체로 스트레스가 되어 잠시 포기하고 말았다.
고등학교는 동네를 벗어나 조금 멀리 다녔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림자처럼 살았다. 공부는 여전히 하기 싫었지만, 학교에는 오래 앉아 있었다.
2학년 어느 날, 방과 후 수업 신청서에서 [시/에세이 반]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주저 없이 체크를 했다. 아주 오랜만에 느낀 두근거림이었다.
그 수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교내에서 찍은 사진에 창작 시 붙이기’였다. 친구들과 그때 쓴 시를 엮어 [18세 감성으로 20세들에게]라는 책을 만들기도 했다. 훗날 20세가 되어 다시 읽었을 때 눈물이 났다. 웃기고 귀엽고 아련해서 소중했다.
대학 시절. 왕복 3시간의 통학로 위에서. 머나먼 유학지에서. 그리고 코로나의 긴 침묵 속에서. 여유를 잃어버린 나는 시와 또 한 번 멀어졌다.
시를 잃어버릴 때마다 생각했다.
꾸준하지 못한 것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게 아닐 거라고.
하지만 시로 돌아올 때마다 깨달았다.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리워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나는 시가 좋았고, 멀어져도 결국 돌아왔다.
도로, 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