왁자지껄 소란스런 할머니들의 얘기꽃은 그칠 줄 모른다. 거실 긴 의자에 앉아서 젊은 시절 겨우 입에 풀칠하며 자식들을 굶기지 않으려고 억척스레 살아온 얘기를 걸출하게 쏟아내는 경희 할머니의 말에 침을 흘리며 듣고 있는 서너명의 할머니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아있다. 얘기가 끝나자 잠자리에 들기 위해 각자 방으로 들어가도 큰 두 눈만 껌벅거리던 숙자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질 않는다. 쪽진 머리에 어눌한 말씨, 고운 피부에 쌍꺼풀진 선한 눈매는 과거에 마음고생하고 살아온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낮에 아들이 바나나와 과자를 사다놓고 가면서 어머니 출출할 때 간식으로 드시라고 말하면서 등을 보이고 떠나갔다. 옛날 남편이 자신을 두고 떠나간 것처럼...
가족들이 생각나서인지 내 옆에 앉아서 지난 과거를 더듬고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살지는 않는다. 긍정적인 것들만 애써 기억하려해도, 강렬한 인상이 남았거나 가슴 아픈 상처로 남았던 안개 같은 과거로 회귀 할 때가 있다. 허물어진 기억의 창고에서 바닥에 가라앉은 의식이 수면위로 떠오르는순간 기억 속 에서 멀어졌던 일들이 무의식중에 선명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건강한 사람뿐만 아니라 치매를 앓고 있는 환자에게도 해당된다. 통째로 편집된 일들이 어느 순간 고통스럽게, 또는 이야기 도중 우연히 떠오르기도 한다.
나이가 몇이냐고 물어도 대답이 없다. 나이를 잊고 산지가 오래된 것 같다.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 남편이 자신을 두고 등을 보이고 집을 떠나던 날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기억의 파편들을 조각조각 긁어모아 통제된 과거로 돌아간 그녀, 서서히 잊힌 자신을 무엇이 그토록 강렬한 옛날의 기억을 통째로 끌어당길 수 있던 걸까. 부정적이며 잊고 싶었던 과거를 쉽게 끄집어내는 능력은 무엇일까. 젊어서는 예뻤을 것 같다는 내 말에 예뻤으면 남편이 다른 여자와 바람나서 나가지는 않았을 거라며, 남편의 말이 나오자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비쳤다.
남편은 어느 날 젊고 세련된 여자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그녀는 예쁜 얼굴에 애교가 넘쳤다. 싱그러운 젊은 여자의 유혹에 빠진 남편은 본처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도덕적으로 금지된 그들의 사랑은 당당했고 좀처럼 깨어질것 같지 않았다. 둘이는 다정한 신혼부부 같았다. 본처인 자신이 남편과 내연녀의 두 사람 사이를 헤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발랄하고 예쁜 여자와 문맹인 자신의 초라한 모습이 비교되었다. 자존감은 이미 바닥에 떨어졌다. 여러 자녀를 낳고 살았지만, 젊은 여자에게 혼을 빼앗겨 버린 남편은 아내와 자식들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같은 집에서 살면서 남편의 그런 이중생활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냐는 말에
“이게 다 못 배우고 못 나서지유”
상대적 열등감 때문인지 한마디로 본인 탓으로 돌렸다. 가부장적인 남편의 기세에 눌려서인지 아니면 남편의 그러한 부정행위까지도 관습으로 받아들일 만큼 맹목적인 순종이었는지 억압된 삶을 숙명처럼 여기고 살아왔다.
어느 날, 남편은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아니면 여자의 부추김 때문인지 젊은 여자와 영원히 같이 살기 위해 아침 일찍 짐을 꾸려 집을 나섰다. 그녀는 집 나가는 남편을 보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남편을 바라보았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아도 한 마디도 입 밖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남편의 뒷모습이 눈에서 사라질 때까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가슴 에이는 이별의 순간을 그렇게 맞았다. 못 나가게 붙들지 왜 가만히 있었냐고 하자 상대는 젊고 예쁜 여자이고 나는 내 새울 것 하나 없는 촌 여자인데 붙잡을 용기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한때 같이 살아온 정 때문인지 대문 밖을 나가면서 세 번이나 뒤돌아보는 남편의 마지막 모습을 끝으로 이렇게 오랜 세월을 헤어져서 살 거라고는 예상을 못 한 것 같았다. 아이들이 있으니 언젠가는 돌아오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못 하고 가슴 시리도록 그리운 남편의 모습을 마음속에 새기며 인고의 세월을 살아온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이 되었다. 시간은 모든 기억을 허물고 망가뜨렸다. 쥐고 있던 모래알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듯 세월은 그렇게 그녀의 삶을 통째로 가시처럼 핥고 흘러갔다. 젊은 날 자신을 두고 떠난 남편의 희미한 기억을 그렇게 붙들고 있었다.
그 후 남편의 소식은 들었냐는 말에, 자녀들은 아버지가 어디서 살고 있는지 알고 있지만 새삼스레 굳이 묻지 않고 묵묵히 기다림의 세월을 살다가 요양원으로 들어왔다고 얘기한다. 친정이 경제적으로 부유했지만, 딸이라는 이유로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비교적 여유로운 집으로 시집왔지만 백년해로하지 못하고 남편을 타인에게 떠나보내야 하는 짓궂은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다.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며 가슴속에 끌어안은 바윗돌을 떨어내지 못하고 살아온 그녀, 주어진 현실에서 순종이라는 케케묵은 단어가 그녀를 왜 이토록 철저하게 주저앉혔는지 생각하게 했다. 그래도 한 번쯤 만나보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추한 모습으로 늙고 정신도 없는데 만나서 뭐 좋을 게 있냐며 손사래를 쳤다.
언젠가 제주도에 갔었다. 천혜의 자연환경은 경쟁 사회에서 지쳐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느슨하게 풀어 주었다. 바닷가에는 화석에 부딪치는 코발트색 바닷물이 가슴에 맺힌 잡념을 잊게 해주었다. 하늘에는 흰 구름이 둥실 떠 있고 녹차 밭 위에는 많은 풍차들이 서있었다. 파란 녹차밭 가운데 서 있는 풍차는 다만 바람의 힘에 의해 돌아간다. 풍차는 자력으로는 움직이지 않는다. 바람 없이 조용한 날은 거리의 조형물처럼 풍차도 가만히 서있다. 움직이지 않은 풍차를 보며 바람이 불기를 기다리듯이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은 그녀는 녹슨 인생의 마지막을 요양보호사들의 손길에 의해서 살아간다.
자신의 삶 속에서 자신이 삶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수동적인 삶을 살았던 그녀, 주어진 상황에서 묵묵히 순종이라는 삶을 미덕으로 알고 살아온 결과가 남은 삶을 죽을 날을 기다리는 요양원이라며 쓸쓸히 웃었다. 남편과 헤어진 지 몇 년인지 기억을 못 해도 남편에 대한 그리움은 그림자처럼 붙어있다. 기다림이라는 허기진 삶을 살아온 그녀는 자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바람 없이 서있는 조형물 같은 돌지 않은 풍차 같았다. 거실 조명등에 비친 할머니의 긴 속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어르신 낮에 아드님이 사온 바나나 드릴게요.”
“어른도 같이 들지유”
우리가 어르신들께 쓰는 존칭을 그녀도 우리 요양보호사에게 어른이라고 한다. 과거의 어두웠던 삶의 찌꺼기를 털어버리지 못하고 할머니는 오늘도 희미한 과거의 기억 속에서 헤매고 있다. 바나나를 입에 베어 물고서 지팡이에 힘주어 일어난다. 인생의 미로를 헤매는 할머니의 굽은 등은 질곡의 세월을 살아온 현재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