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샤론의 꽃 Nov 17. 2023

대화해 줘서 고마워요


 철커덕거리며 달려오는 열차를 눈앞에서 놓쳐버렸다. 객실에서 쏟아져 나온 승객들이 바삐 움직인다. 간발의 시간차로 열차를 보내버린 나도 다른 이들도 전광판으로 눈길을 돌린다.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힌 서울지하철역에서 자기가 탈 열차를 기다리는 무리 속에 할머니 한 분이 두리번거린다. 오가는 사람들 틈에 불편하게 서있던 할머니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여기서 천안으로 가려면 어디 가는 열차를 타야 돼유?”

 “천안행을 타면 돼요. 다음 열차는 인천행이라 타지 말고 그다음 열차가 천안행이니 놓치지 말고 타세요.”

 “내가 여기 서울역 근처에서 자랐는디, 39년생인디 천안으로 간지 55년이나 됐시유. 동생이 아파서 만나고 집으로 가는 길이유. 대화해 줘서 고마워유!”

 묻는 말에 단순히 대답했을 뿐인데 자신의 신변의 사적인 이야기를 꺼내 놓으며 고마움을 표시하는 할머니를 다시 보았다. 코앞으로 다가온 그녀는 묻지도 않은 일상생활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내기 시작했다. 말하는 그녀의 눈빛은 반짝거리고 얼굴엔 생기가 돌았다. 오랜만에 사람 사는 냄새를 맡은 듯하다. 얼마나 외로움에 지쳤으면 난생처음 보는 사람에게 하염없이 말을 걸어오는 걸까. 할머니의 마음은 열려 있는데 그를 둘러싼 주변 환경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그녀는 몸집에 비해 조금 큰 배낭을 메고 있다. 등짐 배낭 속에는 지난날을 욱여넣은 삶의 편린들이 꿈틀거리며 세상 밖으로 나오고 싶은 주인의 마음을 닮은 것만 같다. 작달막한 체구에 C자로 흘러내린 곡선을 그린 몸을 지탱해 준 건 지팡이였다.

장수시대인 요즘 나이로는 그리 늙지 않은 연세인데도 몸을 지탱한 지팡이가 아니면 혼자는 거동이 불편한 처지다. 내 곁에 바짝 다가선 할머니는 말하고자 하는 욕망을 감추지 못했다. 조금은 정리되지 않은 말이 입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흐트러진 언어 속에서도 본인이 지닌 기억을 잊지 않으려는 듯 자신의 실체를 나타내려 하는 마음이 엿보인다. 나는 옆에서 가만히 말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예의를 갖춘 셈이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혹시라도 다른 열차를 타면 길이 어긋나기 때문에 꼭 천안행을 타라고 말하자 다시 대화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인천행 열차가 들어오자 열차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할머니가 따라 들어오려고 한다.

 “할머니, 다음번열차 천안행 타고 가서 천안에서 내리세요.”

 “이번 열차 같이 타고 가다가 수원에서 갈아타면 되는 디...”

 “이 열차는 수원으로 안 가고 인천으로 가니 꼭 다음 열차 타세요.”

 어둠이 내린 시간에 천안까지 가는 거리가 짧은 거리도 아닌데 잠시 만난 사람과 동행하려는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기까지는 내 심정이 복잡했다. 대화상대와 동행하다 수원에서 환승하면 천안으로 갈 수 있다는 속내다. 할머니는 자기의 말을 들어주는 대화 상대를 자신의 의식의 공간으로 초대해서 잠시라도 함께 동행하려는 생각이고, 나는 할머니가 집으로 가는 행선지를 벗어나 다른 곳에서 길을 헤맬 것을 걱정해야 하는 두 사람의 생각이 서로 달랐다. 고독이 덕지덕지 온몸에 배어 있는 할머니는 이번에도 대화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건 외로움이라고 한다. 삶의 마디마디마다 숨어있던 외로움이 가슴속에 스며들면 낯선 사람일지라도 곁에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다. 우연히 만난 사람이지만 잠시 대화함으로 외로움을 이기려는 할머니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노년의 길모퉁이에 서있는 나를 돌아본다. 어둠은 주변공간에만 내린 게 아니고 내 마음속에도 검은 휘장을 친다.

 할머니를 만나기 한 시간 전에 대학로 예술극장 무대 위에서 펼쳐진 연극을 봤다. 현대무용을 접목시킨 공연은 배우들의 대사가 한 마디도 없는 작품이었다. 무대 위 노련한 배우들의 연기와 무언의 동작은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배우의 연기를 통해서 관람객들에게 무슨 메시지를 전해주는지 알 수 있었다. 연극 연출가는 소음공해에 노출된 복잡한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을 표현하기 위해 배우들의 움직임 속에 들리지 않은 언어를 포함시켰다. 연극 관람 후에 푸른 호수 위에 잔잔한 물결 같은 평화가 가슴에 아스라이 스며들었다.

 연극관람 후 배우들의 연기에 몰입된 감정이 채 가시기도 전에, 말을 계속 걸어오는 할머니를 보면서 언어의 기능이 사람에게 미치는 표현의 한계를 생각해 봤다. 대사 한마디 없이도 감동을 주는 배우들이 관객에게 주는 영감과, 누군가와 대화를 통해서 가슴속에 응어리를 풀어내려는 할머니와의 대화가 대비되었다. 할머니는 자신을 묶은 마음의 감옥에서 자유를 찾으려 한 것일까. 처음 보는 사람에게 55년 전의 이야기를 꺼내놓는 것은 기억의 숲에 우거지는 잡초를 제거하면 새로운 길이 보일 거라는 생각에서 일까? 노년의 할머니에게 젊었던 지난날은 레일 위를 달리는 열차처럼 지나갔다. 이제는 혼자 외로움과 싸워 나가며 살고 있을까?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바람처럼 스쳐간다.

 열차 문이 스르르 닫힌다. 어둠이 깔린 레일 위를 달리는 열차 안을 바라보고 쓸쓸히 서있는 창밖의 할머니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할머니의 외침이 귓전을 스친다.

 “대화해 줘서 고마워유!”

 ‘할머니, 같이 동행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작가의 이전글 바람의흔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