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의 기록 _ 수필
“오늘도 산에 가야지!”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오고 나서, 새로운 습관이 하나 생겼다. 그건 바로 산에 가는 것. 내가 이사 온 동네는 꽤나 한적한 곳에 만들어진 거대한 아파트 단지다. 그래서 그런지 주변에 산이, 호수가 참 많다. 이사를 오기 전에는 근처의 체육공원에 가는 게 하나의 습관이었다. 이 습관은 건강의 적신호가 들어오고 난 이후부터 생겼는데, 확실히 운동을 하고 안 하고 컨디션 차이가 명확하게 느껴진다.
‘아, 나이를 먹었구나’
산에 오르기 전, 산 입구에 있는 공원에서 간단하게 몸을 푼다. 먼저 발목을 왼쪽, 오른쪽 순서로 뱅글뱅글 돌린다. 바깥쪽으로 두 바퀴, 안쪽으로 두 바퀴씩 돌린다. 그다음엔 무릎을 돌린다. 오른쪽으로 두 바퀴, 왼쪽으로 두 바퀴. 발목과 무릎을 돌리다 보면 종종 “뚝뚝” 하는 소리가 난다. 가끔은 아플 때도 있고, 시원할 때도 있다. 보통은 스트레칭되는 시원함이 주로 찾아온다. 그리고 나서는 다리 스트레칭을 시작하는데, 왼쪽 다리부터 짧게 10초, 그리고 오른쪽 다리 짧게 10초. 다시 길게 왼다리 10초, 오른다리 10초. 이제는 바닥에 손을 대지 않고 다리 스트레칭을 하기가 꽤나 힘들다. 오른다리 10초를 하고 난 다음 바로 일어나 벌어져 있는 다리를 그대로 유지하고 허리를 앞으로 숙인다. 손바닥과 바닥을 맞닿게 하고, 혈압이 오를 때까지 버티고 있는다. 손바닥에 닿는 바닥의 감촉이 뜨겁다. 여름이 오고 있는 것 같다.
‘에구구’
허리를 들어 올린다. 그리고 나선 허리를 돌린다. 오른쪽으로 10번, 왼쪽으로 10번. 어깨와 팔을 스트레칭한다. 뒤쪽으로 10바퀴, 앞쪽으로 10바퀴. 그리고 슬슬 산을 향해 걸어가며 오른 다리와 왼 다리 무릎을 접었다 폈다를 몇 번 반복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산을 타기 시작한다. 오늘은 산에 사람이 많이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왠지 모르게 들면, 쓰고 있는 마스크를 소심하게 내려본다. 그리고 깊게 숨을 들이마쉬며 걷는다. 익숙하지만 낯선 풀 냄새와 나무 냄새, 흙 냄새가 몸속에 가득 차오른다. 주변을 잔뜩 채우고 있는 냄새를 온 몸에 가득 채우고, 선선히 불어오는 산들바람을 마주하며, 지저귀는 새소리,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한 걸음 한 걸음씩 오늘의 목적지인 십자봉을 향해 걷는다.
산은 매일이 다르다. 분명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산길이 어느 날은 굉장히 어색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우수수 떨어져 있던 낙엽들이 치워졌다던지, 어제는 없었던 풀잎이 새로 돋아난다던지. 전날 밤에 비가 왔거나 습기가 많았다면 풍겨져 나오는 냄새도 다르다. 눅눅하고 습한 풀냄새. 나는 이 눅눅하고 습한 풀냄새를 좋아한다. 귀에 들려오는 새와 풀벌레 소리도 매일이 다르다. 어떨 때는 아예 새와 풀벌레 소리가 들리지 않고 바람이 나무를 흔드는 소리만 들려올 때도 있다. 뭐가 됐던지 간에 산은 늘 다르고, 이 다름은 나 역시도 매일이 달라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소심히 마스크를 내리고 걷다 보면 맞은편에 하산하고 있는 사람들을 마주한다. 황급히 다시 마스크를 올려 쓴다. 가끔 바닥을 보며 걷고 있을 때는 맞은편에 오는 사람을 보지 못하는데, 괜히 머쓱한 기분이 든다. 대 역병의 시대가 찾아오고 나서 가장 큰 변화는 바로 마스크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깊게 숨을 들이마쉬고, 내뱉는 아주 자연스럽고 천연한 행동에 통제가 생겨버린 답답함. 하산하는 사람과 스치듯 지나가면 다시 또 소심히 마스크를 내리고 주변 냄새를 잔뜩 맡는다.
십자봉으로 향하는 길은 보통은 완만하여 그렇게 힘들지 않으나 십자봉에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어산을 오르는 산길은 꽤나 가파르다. 이 가파른 길만 잘 올라가면 보통은 크게 힘들지 않다. 이 가파른 길을 마주할 때쯤 되면 몸에서는 땀이 촉촉하게 나기 시작한다. 귀 뒤에 있는 마스크 줄도 물기를 머금고 있다. 잠시 시선을 위로 들어 가파른 길의 끝을 바라보곤 다시 걷기 시작한다. 짧은 구간이긴 하지만 꽤나 숨이 가쁘게 차오른다. 다리 근육이 뻐근하게 단단해져 오면 가파른 길의 끝에 다다른다. 빠르게 뛰는 심장박동을 진정시키기 위해 또 크게 숨을 들이마쉬며 천천히 발걸음을 내딛는다. 가파른 언덕을 지나 조금만 더 가면 어산에 도착한다. 여기에 밴치가 하나 놓여있는데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앉아 있다.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뒤로한 채, 다시 십자봉을 향해 발을 딛는다. 어산을 지날 때쯤이면 아무런 생각이 없어지곤 한다. 내 발이 흙에 닿는 감각과 바람이 내 몸에 와닿는 감각, 수많은 냄새가 코로 들어오는 감각, 천연의 소리가 귀로 들어오는 감각만을 느끼며 걷는다.
이렇게 온몸에 감각에 집중하며 부지런히 한 발자국 씩 나아가면 금세 십자봉에 도착한다. 어산과 마찬가지로 십자봉에도 밴치가 놓여있는데, 여기도 보통은 만석이다. 그런데 오늘은 밴치 하나가 완전히 텅텅 비어있어,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잠시 앉는다. 어산도 그렇고, 십자봉도 그렇고 엄청 경치가 훌륭한 편은 아니다. 바로 앞에 나무들이 우거져있어 시야가 탁 트인 곳은 아니라서 그런 것 같다. 십자봉까지 걸린 시간은 약 30분 정도. 생각이 많아 걸음이 무거운 날에는 조금 더 걸릴 때도 있고, 천연의 상태에 조금 더 빠르게 젖어들면 조금 더 빠르게 오를 때도 있다. 옆에 있는 아저씨들의 대화를 잠시 엿들으며 밴치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린다. 이곳에서 듣는 대화들은 꽤나 재미있다. 보통은 연세가 지긋이 있으신 분들끼리 대화를 많이 하시는데, 가끔은 이 친화력이 매우 부러울 때가 있다. 금방 서로 친구가 된다.
흥미로운 대화를 뒤로 하고, 다시 산을 타기 시작한다. 십자봉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매우 다양한 코스가 존재한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A코스, 십자봉에서 조금 더 내려가 왼쪽으로 크게 돌아 내려가는 B코스, 조금 더 내려가 오른쪽으로 크게 돌아내려 가는 C코스. 이 코스는 내가 그냥 붙인 이름이다. 보통은 A코스를 선호하고,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C코스, 달리기를 조금 하고 싶으면 B코스를 선택하는데 오늘은 B코스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B코스를 선택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선택한 B코스여서 일까. 하산하는 길이 매우 낯설게 느껴진 구간이 있었다.
‘어, 여기가 맞나? 길 잘못 들었나?’
보통 이런 생각이 들면, 내가 언제 이쪽으로 왔었는지를 생각해보는데 나무들이 이파리를 내기 전에 왔었다는 걸 금세 생각하곤 알 수 없는 확신에 차서 걸음을 내딛는다. 익숙하지만 낯선 길을 걸으며 잠시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조금은 두렵기도 하고, 설레이기도 한다. 귀에는 똑같은 멜로디를 정확한 박자로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려왔다. 들리는 새소리에 맞춰 걸음을 맞춰본다.
“바스락!!”
소리에 주변을 둘러본다. 보통은 새나 다람쥐, 청솔모가 떨어져 있는 낙엽들 사이를 가고 있는데 주변에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바스락!!!”
반대쪽을 쳐다봤는데도 마찬가지였다. 나무에서 뭐가 떨어졌나 하는 생각으로 발을 디뎠다.
“바스락!!!!”
발을 딛음과 동시에 빠르게 무엇인가가 S자를 그리며 앞으로 갔다. 순간적으로 발걸음이 굳었다. 길이 1m 정도 되는, 뱀이었다. 순간 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굉장히 낯선 생명체를 조우한 기분이 들었다. 굉장히 빠르게 계속해서 S자를 그리며 앞으로 갔다. 생각해보니 저 뱀 입장에서도 굉장히 낯선 생명체를 조우한 기분이었겠구나. 그런데 그 낯선 생명체가 자기보다 훨씬 크니 나보다 쟤가 더 무서울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발은 굳어서 움직이지 않았고, 저 앞으로 빠르게 S자를 그리고 바스락 거리며 가는 뱀을 바라봤다. 혹시 쟤가 다시 뒤를 돌아서 오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나는 빠르게 이 곳을 벗어나는 게 맞다는 판단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긴장으로 굳어진 발을 억지로 떼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산에서 뱀을 만나면 뛰지 말고 빠른 걸음으로 걷고, 길을 꺾을 때 직각으로 꺾으면서 걸으면 뱀이 잘 못 따라온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는데, 이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좁은 산 길에서 방향을 계속 직각으로 꺾으며 걷기 시작했다. 군대에서 제식훈련할 때의 발걸음으로. 우로, 좌로 직각으로 꺾으며 빠르게 걸었다. 어느 정도 걸었을까, 위험지역은 벗어난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잠시 멈춰 뒤를 돌아봤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는 없었고, 아까 그 규칙적으로 지저귀던 새소리가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니, 얘는 계속 지저귀고 있었겠지. 순간적으로 내가 긴장해서 그걸 못 들었겠지 싶었다. 만약 누군가가 내가 이런 식으로 걷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면, 어떤 모습으로 보였을까? 계속 직각으로, 우로, 좌로 꺾으며 빠르게 걷고 있는 거구의 남자. 낯선 생명체를 조우한 긴장감이 그분에게도 들지 않았을까. 천천히 다시 걷기 시작했다. 긴장이 풀림과 동시에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만약 저 뱀이 위협을 느끼고 나에게 덤벼들었다면 나는 어떻게 됐을까? 저 뱀은 독사였을까? 어, 대한민국에 독사는 없다고 들었던 거 같은데 아닌가? 저 뱀이 점프해서 내 목을 물면 난 죽었을까? 아니면 그 점프하는 뱀을 잡기 위해 오른팔을 들어 뻗었는데, 뱀을 못 잡고 그 오른팔이 물리면 어떡하지? 뱀을 만약 잡았다고 한다면 그건 또 어떻게 하지? 뱀이 꽉 물고 있는 내 오른팔을 바라봤다. 잠깐, 근데 뱀이 점프를 할 수 있나? 나는 왜 뱀이 점프를 한다고 생각한 거지? 아, 해리포터 죽음의 성물2에서 뛰어오르는 네기니. 와, 근데 해리 포터도, 네빌 롱바텀도 진짜 용감한 거구나. 네기니는 진짜 큰 뱀이었는데. 네기니에 비하면 정말 조그마한 뱀을 보고도 이렇게 굳어버렸는데, 그렇게 싸울 수 있다니. 21세기, 산에서 뱀에 물려 죽는 죽음은 어떤 죽음인 걸까? 뉴스에 나오기는 하겠다. 경기도 용인에 사는 양 모 씨가 산에서 뱀에 물려 죽은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잠깐만, 뱀에 물려 죽는 죽음은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좀 당황스럽네. 조선시대도 아니고 너무 슬프잖아. 뱀에 물려서 죽다니. 그럼 난 억울하게 죽은 총각귀신으로 남을 거야. 아니, 만약 진짜 오른팔이 뱀에 물렸으면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 일단 입고 있는 옷을 거칠게 찢어 물린 곳 위를 베어그릴스 처럼 이를 써서 단단히 묶고, 119에 전화해서 오른팔을 뱀에 물렸습니다. 현재 위치는 십자봉에서 조금 내려오셔서 왼쪽으로 꺾어서 길 따라 쭉 오시면 됩니다. 이렇게 얘기해야 하는 거야? 아니면 응급조치를 하고 마저 산을 내려가서 병원엘 가야 하는 거야?’
이미 상상 속의 나는 오른팔이 뱀에게 물려 구멍 두 개가 뚫려있는 상태였다.
‘저 뱀이 만약 돌연변이 뱀이라서 스파이더맨처럼 내가 변하면 어떡하지? 그럼 난 스네이크 맨인 건가? 아, 근데 멋없고 징그럽기만 할 것 같은데. 그리고 뭔가 영웅이 아니라 빌런 일 것 같잖아. 스네이크 맨. 아니야, 오른쪽 팔이 점점 뱀이 되어가는 거야. 기생수처럼. 키메라처럼. 오른팔은 뱀인 거지. 근데 나 오늘 편의점 알바 가야 되는데, 뱀 팔로 일 할 수 있을까? 손님들이 징그러워하지 않을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보니, 어느새 다시 내려와 있었다. 그리곤 잘 닦여진 아스팔트 길을 뛰기 시작했다. 스네이크 맨이라니. 뱀 팔이라니. 오늘은 산에서 뱀을 만났다. 익숙한 산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 만약 내일도 산을 타다 뱀을 만나면, 오늘과는 또 다르겠지. 산이 매일이 다르듯, 나도 매일이, 오늘이, 내일이 다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