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갱도요새 Feb 27. 2022

부부싸움하고 숨이 턱 막힐 때

공감 못 하는 배우자가 잘못이다

"그게 또 무슨 말이냐고 하겠지. 제발 예민 좀 떨지 말라고 하겠지, 제발 꼬치꼬치 따지지 말라고 하겠지. 그냥 넘어가면 안 되냐고 하겠지. 그 말이 나를 더욱 숨 막히게 한다는 걸 당신은 나와 10년 아니 20년을 살아도 모를 거라고, 그래서 그만하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다. 

(중략)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남자, 그래서 미안하다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남자. 나와 관계된 일이라면 언제나 이성적이고 객관적이어서 내 편인 적이 없는 남자. 그게 뭐가 잘못됐느냐고 되레 화를 내는 남자. 알 거 없다고 말한 뒤 차갑게 돌아서는 남자."

<공공연한 고양이> 중 '식초 한 병', 김선영



소설책을 읽다가 너무 공감 가는 구절이 있어 적어두었다. 완전히 이혼을 결심하고 찾아온 의뢰인들의 눈에는 늘 숨이 막히는 체념이 서려있다. 단순히 이혼을 고민하는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눈빛이다. 그 눈빛은 종종 이 의뢰인이 정말로 사건을 맡길 것인지 단순히 상담만 받고 갈 것인지를 짐작하는 데 쓰이곤 한다. 그 덤덤하고 고요한 눈빛은 그가 견뎌왔을 세월을 짐작하게 한다.


평소의 일반적인 부부싸움은 그냥 화가 나고 다 때려 부수고 싶게 만들지만, 정말로 이혼을 부르는 부부싸움은 사람의 숨을 막히게 한다. 10년, 20년이 지나도 배우자가 변함이 없을 것 같다고 느껴질 때, 배우자가 평생 잘못한 걸 모를 것 같다고 느껴질 때, 영원히 내 편이 아닐 것이라고 느껴질 때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듯한 고통을 느끼고 이혼을 결심하게 되는 것이다. 


배우자가 영원히 내 편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그 숨 막히는 듯한 고통은 부부싸움의 원인이 된 사실 그 자체보다는 '공감'의 부재로부터 비롯된다. 부부간뿐만 아니라 사람 사이의 어떤 관계에서도 공감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공감만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그 어떤 갈등도 같이 이겨낼 수 있다.



부부싸움이나 애인과의 싸움에 대해 이야기할 때 흔히 남자들은 공감능력이 없다고 말하곤 한다. 자기편을 절대 들어주지 않고 객관적인 상황 분석만 한다는 것이다. 여자들은 감성적이고 남자들은 이성적이라는 등의 말을 예전부터 흔히들 해왔는데 사실 그렇지는 않다. 남자들이 직장 상사의 비위를 귀신같이 맞추고, 애인한테 차인 친구와 밤새도록 술 마시며 위로해주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반대로 이혼 상담을 하다 보면 남자들도 배우자가 자신에게 전혀 공감을 해주지 못한다고 토로한다. 그러니 비단 남녀 차이가 아니라 그냥 공감능력의 차이이다.


꽤 오래 유행 중인 MBTI 테스트에서 T(Thinking, 사고형) 유형은 공감도 못하는 로봇이고 F(Feeling, 감정형) 유형은 싫어도 공감을 하게 된다는 것이 밈처럼 돌고 있는데 이것도 틀린 말이다. F유형은 F유형 나름의 공감을 하고, T유형은 T유형 나름의 공감을 하는 것이다. 사실 사람의 유형을 저렇게 나누는 것이 의아하긴 하다. 감정이 생기려면 상황을 일단 상황을 인지해야 하기 때문에 선T 후F인 것이 맞는데, 음...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랑 F의 반응 방식에 꽤 유의미한 차이가 나긴 하는 것 같다.

분명히 웹툰 대학일기로 보이는데 T랑 F 차이를 검색했더니 나온 짤이라 몇 화인지 알 수가 없다...


흔히 공감능력을 향상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하는 말에 계속 맞장구를 치거나, 상대방의 마지막 말을 반복해서 따라 하라고 하는데 이것도 완전히 맞는 말은 아니다. 계속 이런 식으로 한다면 아마 "내 말 듣기는 하고 있는 거야?", "너는 맨날 건성으로 대답하더라"라는 식의 핀잔만 듣게 될 것이다. 이혼 상담을 할 때 의뢰인들이 많이 하는 얘기 중 하나도 배우자가 핸드폰을 하면서 "어, 어. 그랬어. 어"라는 식으로 건성으로 맞장구만 쳐준다는 것이다.


공감은 단순히 상대방의 기분에 맞장구쳐주거나 상대방에게 무조건 동의를 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을 공감이라고 한다면 변호사들은 형사사건을 변호할 때 범죄를 저지르고 온 의뢰인에게 아무 공감도 해줄 수 없을 것이다. "어휴, 그렇죠, 아이가 울면 때려야죠!", "술 한 병밖에 안 드셨는데 음주운전 좀 하실 수도 있죠"라는 식의 맞장구를 쳐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공감은 단순히 감정에 맞장구쳐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상황을 이해하고, 나도 너의 감정을 이해하고 나는 네 편이라는 것을 인식시켜주는 과정이다.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서 그 사람이 느꼈을 감정을 이해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형사사건의 경우 의뢰인이 저지른 범행 자체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그 범행을 저지르기 전까지 의뢰인이 느꼈을 고통이나 분노, 혹은 상황이 저질러진 이후 의뢰인이 느꼈을 당혹감, 괴로움, 자책 같은 것에는 공감을 해줄 수 있다. 반대로 범행을 저질렀는데 오히려 피해자를 탓하며 자기 확신에 차있는 사이코패스 유형의 의뢰인들을 보면 '이 상황에서는 반성을 하셔야 됩니다'라고 알려주어야 한다.



변호사들이 많이 하는 실수가 의뢰인에게 전혀 공감하지 않은 채 법리나 판례를 들어 예상되는 결과만 알려주는 것이다. 흔히 공감능력 부족한 사람에 대해 '공감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꾸 해결책을 내놓으려고 한다'라고들 하는데, 변호사들이 딱 그런 셈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타인에게 공감을 해주어야 하는 상황에서 뭔가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것 같다는 부담을 느낀다. 


세상 모든 일에 정답은 없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보다는 그냥 차분히 들어주기만 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자기 일에 대해 제일 고민을 많이 해봤을 것은 자기 자신이다. 남이 잠깐 듣고 생각해서 던져주는 해결책이나 조언은 이미 다 시도해봤을 가능성이 높다. 그냥 가만히 상대방이 하는 말을 들어주고, 그가 느꼈을 상황에서 나는 어땠을지, 혹은 그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여주면 된다. 그렇게 공감을 해주다 보면 상대방이 해결책은 스스로 알아서 찾아낼 것이다. (물론 변호사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직업이라 일단 경청하면서 의뢰인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해결책을 찾아서 제시해야 한다.)




공감은 대단한 능력이 필요한 게 아니다. 상대방의 상황과 감정을 이해하고, 나도 그렇게 느낀다는 것을 인식만 시켜주면 된다. 생활비가 부족해져서 배우자가 화를 내는 상황에서 "내가 돈 벌어오는 기계야?"라고 화를 내거나 "그럼 너도 돈 더 벌면 되잖아"라고 비아냥거리는 것이 아니라, "생활비가 부족해서 살림 꾸리기 힘들지? 나도 그 돈으로 생활하긴 막막할 것 같아. 그런데도 항상 우리 가족 너무 잘 챙겨줘서 너무 고맙지."라고 배우자의 입장에 먼저 공감을 해준다면, 화를 내던 배우자도 누그러질 것이다(누그러지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공감능력이 심하게 결여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고, 이혼을 고민해볼 만하다.). 그러고 나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차분히 하면 된다. "그런데 계속 대출금리도 오르고 상여는 줄어서 어쩔 수 없을 것 같아."라는 식으로. 대화를 더 하면서 생활비를 줄일 방법을 찾거나 하는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찾으면 된다.


부부 사이에 싸움이 없을 수는 없다. 애초에 험난한 인생을 같이 살아가는데 갈등이 없다면 오히려 뭔가 크게 잘못된 것이다(아마 갈등이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 대단히 공감능력이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부부 사이에 공감만 잘 이루어진다면 정말 큰 갈등도 결국은 이겨낼 수 있다. 어떤 갈등이든 공감을 바탕으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갈등의 해결책을 찾던가, 해결하기 어렵다면 고통을 함께 나누면 되는 것이다. 그럼 적어도 그 관계를 놓아버릴 정도의 숨 막히는 괴로움은 없앨 수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