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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갱도요새 Aug 17. 2022

MBTI 소개팅 해보셨나요?

배려의 신호가 안 맞을 때

친구들 사이에서 MBTI 소개팅이 갑자기 유행이다. 나의 MBTI를 입력하고 16명의 MBTI 유형 소개팅 상대들과 소개팅을 하는 게임이다. 게임 속에서 대화나 상황이 진행됨에 따라 여러 개의 선택지 중에 나의 선택 하나를 고르고, 그 선택에 따라 상대방과 호감이 오르거나 떨어지게 된다. 소개팅 상대들의 외모도 준수하고(?) 매너도 좋은 편들이라 아주 과몰입해서 플레이했다. 주변 친구들도 다들 하는데 취향이 아주 다 다른 게 신기할 따름이다.


나의 소개팅 결과는 이랬다. 애프터를 못 받은 경우도 있다.


나는 ENFJ 유형인데 궁합이 제일 잘 맞은 것은 순서대로 ESTJ, INTJ, ENFP였다. 사실 제일 편하게 호감이 갔던 상대는 INTJ였는데 ESTJ가 파인다이닝에 데려가는 반칙을 저질렀다. 반면 INTJ는 나에게 스프카레정식을 강요해서 점수를 깎아 먹었고(왜 내 메뉴를 자기가 정해주는 거지?) 2등으로 밀려났다. ENFP는 참 귀여웠지만 초면에 길에서 갑자기 춤을 춰서 당황스러웠다. 다른 ENFJ 유형도 이렇게 결과가 나오는지 궁금한데 주변에서 ENFJ를 좀처럼 찾을 수가 없다.


16번의 가상의 소개팅을 마치고 나서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ISTJ 유형이었다. 상황은 이러했다. 소개팅 장소를 찾아야 하는 상황인데, 상대가 혼자 다 찾아보기는 힘들 것 같으니 나도 같이 맛집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ISTJ는 시간이 되는 사람이 찾아보는 것이 효율적이라며 '당신의 제안이 고맙지만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궁합이 -2가 된다. 내가 배려한답시고 한 행동에 대해 오히려 불편함을 느끼고 호감도가 떨어지는 것이다. 뜻밖의 비효율에서 사랑이 싹트기도 하는 건데 ISTJ는 가차 없었다.


아니 꼭 효율적이어야만 하는 건 아니잖아요!


반대로 ENFJ는 약속 장소에 일찍 와있었는데도 상대를 배려해서 '방금 도착했어요'라고 말하는데, ISTJ유형인 내 친구는 그걸 보고 조금 어려운 사람 같다고 느껴진다고 했다. ENFJ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냥 일찍 가고 싶어서 일찍 간 것이고 혹시 상대방이 부담스러울까 봐 배려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일 뿐인데 ISTJ는 오히려 어렵게 느낀다.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마음이 맞아떨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ENFJ를 어렵다고 느끼지 마세요. 그냥 당신이 행복하면 행복하다구요!


꼭 ENFJ와 ISTJ 유형이 아니어도 서로 배려의 신호가 맞지 않아 오히려 싸우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위 소개팅 게임에서도 그런 상황이 종종 나온다. INTJ는 나를 배려해준답시고 식당의 가장 맛있는 메뉴를 미리 찾아보고 시켜주려고 했는데, 나는 초면에 내 메뉴를 함부로 고르는 행동이 선 넘은 행동이라고 느꼈다(나는 먹는 것에 정말로 진심인 사람이다.). 주는 사람은 자기 딴에는 배려해준다고 한 행동인데 상대방이 불편해하니 화가 날 것이고, 받는 사람은 원하지도 않는 것을 마치 선심 쓰듯 받으니 기분이 나빠서 화가 난다. 


연인 간의 싸움에서도 그런 일이 많다. 남자가 퇴근하고 지쳐 있는 여자친구 집에 불쑥 찾아가서 여자친구를 기쁘게 해 주려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여자 입장에서는 집에서 겨우 편하게 쉬려는데 갑자기 찾아온 남자친구가 달갑지 않을 것이다. 부부간의 싸움도 대개 그렇다. 늦은 시간에 자고 있을 배우자를 깨울까 봐 연락을 안 했는데, 배우자는 오히려 연락이 안 오니 화가 난다. 배우자가 돈 걱정을 할까 봐 생활비가 부족하다는 얘기를 못했는데, 배우자는 그런 중요한 문제도 상의를 하지 않는 것에 화가 난다. 배우자가 먹고 싶어 하는 저녁 메뉴를 고르려고 기다렸는데, 회사에서의 일과에 이미 지친 배우자는 그냥 아무 음식이나 빨리 먹었으면 좋겠는데 메뉴부터 고르자고 하니 화가 난다. 서로 배려한답시고 하는 행동들인데도 싸움의 원인을 제공한다. 


배려의 오해로 인한 싸움의 가장 큰 문제는 서로 자기가 잘못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배려한 사람은 당연히 자기가 배려를 해서 한 행동인데 뭐가 잘못이냐고 느낄 것이고, 반대로 받는 사람은 자신은 기분이 나빴는데 왜 상대방이 사과를 하지 않는지 분노할 것이다. 배려해서 하는 행동도 받아들이기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는데 서로 그 점을 간과하게 된다. 부부싸움은 서로 반드시 사과를 하고 넘어가야 하는데 서로에 대한 오해가 쌓이면서 '저 인간은 원래 저런 인간이야'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서로 정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정답은 대화뿐이다. 나의 배려를 상대방도 배려로 받아들이는지에 대해 서로 대화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ISTJ가 나의 제안을 비효율적으로 느꼈다는 점에 대해 그와의 대화를 통해 아는 수밖에 없다. 그러고 나서 그가 효율적으로 맛집을 찾아준 것에 대해 고맙다고 하면 될 것이다. INTJ에게는 나의 메뉴를 골라줄 필요가 없고 나는 내가 고른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말해야 한다. 주는 나의 기분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받는 상대방의 기분을 생각해서 배려를 해주어야 하고, 받는 상대방의 기분을 알기 위해서는 대화를 하는 수밖에 없다. 서로 대화를 하다 보면 주는 사람의 마음과 받는 사람의 마음이 온전히 일치하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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