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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훈 Jan 12. 2023

낭만

달빛

밤거미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주홍빛의 줄을 토해낸다. 그것이 거미의 피인지, 아니면 실인지는 상관없다. 해가 그린 스케치북에 덧칠을 시작한다. 노을이라고 부르는 그것은 아름답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던 그때의 그들에게 공감한다. 수평선의 끝에서 보이지 않는 저편에 무엇이 있을까를 궁금해하기보다 설명할 수 없는 이 거미줄들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지 않았을까. 범선을 타고 출렁거리는 파도에서 보았던 그 순간을 지나치기 아쉬워 그들은 여기가 세상의 끝이라고 확신하지 않으면서도 단정 지은 것이 아닐까. 그 순간 파도가 연주하는 아름다움을 들었기에 그 연주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거미들은 계속 실을 뱉는다. 죽어가는것처럼 실을 토해낸다. 처음 토해낸 피처럼 붉었던 실들이 점점 썩어버린 피처럼 검게 변한다. 그들이 내뱉은 실인지 피인지 모르는 것들을 합치니 검어졌다. 하늘이 검어지니 달빛이 길게 늘어진다. 별 몇 개가 보인다. 낮의 켜지던 태양의 독주곡은 밤의 관현악에게 자리를 비켜준다. 밤바다의 파도가 조용히 현을 킨다. 달빛과 함께 밤바다가 만든 선율이 꺼저버린 바닷가로 가라앉는다. 가끔은 별들과 함께 트리오를 이루기도 하고, 또 어쩌다 비가 올 때면 그들은 함께 아름다운 콰트렛을 연주한다. 어두운 밤, 선상의 선원들에게 이곳이 끝이니 고생했다는 듯 전해주는 그것들의 G선상의 아리아. 길게 늘어진 달빛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부드럽게 이어졌던 아리아.




낮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처럼 거미줄을 없애간다. 형형색색의 간판들이 하나둘 생겨나고 점점 밝아지는 가로등들이 켜진다. 가게에서는 시끄러운 노래들이 서로 어울리지 못한 채 소리를 지른다. 밤이 시작되는 것을  싫어하는 것처럼 화려한 일렉기타와 드럼소리가 낮을 이어간다. 늘어졌던 달빛은 북적이는 사람들의 그림자에 덮인다. 별인 줄 알았던 반짝이던 것은 저렇게 반짝이는 것들은 별이 아니라 인공위성이라고 말하는 누군가에 의해서 존재의 의미를 잃는다. 안식을 주던 파도 소리는 손님몰이를 하는 가게들과 관광객들의 소리에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가끔씩 초대되었던 빗소리는 이제 그저 빗소리에 불과해졌다. 지구가 타원형이라는 것이 입증돼서 일까. 그것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 지구는 평평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버렸으니까.



저 너머 보이지 않는 수평선이 지구의 끝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거미줄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칠흑같이 검은 밤이 있던 순간이 있었다. 달빛이 등대의 역할을 한때가 있었다. 반짝이는 저 무언가가 당연히 별이라고 여기던 때가 있었다. 가끔씩 찾아오는 비와 함께 파도가 출렁이던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가 있었다. 가끔씩은 그것들이 한자리에 우연히 모여 아리아를 연주한 적이 있었다.



너무 어렸고 모든 것이 궁금했던 시절이 있었다.

북두칠성을 찾는다고 무작정 밤하늘을 바라봤던 순간이 있었다.

결국 찾지는 못하였지만 그저 반짝이는 달과 별을 보는 것만으로 좋았던 추억이 있었다.

아무것도 몰랐기에, 그렇기에 존재했던 낭만이 있었다.



https://youtu.be/97_VJve7UV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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