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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오늘 Jul 23. 2023

당신은 해고입니다.






  내 취미는 블로그 포스팅이다. 주로 독후감을 올리고 가끔 짧은 에세이나 텃밭 일기를 올린다. 지인들에게 블로그 주소를 알리지 않았음에도 개인적인 생각이 담긴 글을 올릴 땐 언제나 마음속에 검열관이 있었다. 검열관은 혹시나 누군가가 내 글을 보고 허접하다며 비웃진 않을까, 내 의도를 오해해 악플을 달지 않을까 조사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한국 남성은 왜 젖가슴에 환장하는가'라는 제목으로. 문학, 특히 고전이나 한국 문학을 읽다 보면 젖가슴이라는 단어가 종종 나오곤 한다. 왜 둥그렇고 탐스러운 과일만 보면 죄다 처녀의 젖가슴에 빗대는 건지, 왜 이렇게 엄마의 늘어진 젖가슴이 그리운 건지. 평소라면 어휴, 하고 지나갔을 일을 그날은 꽤나 흥분한 상태로 개인적인 생각을 적었다.

  그리곤 내내 전전긍긍했다. '젖가슴'에 환장한 누군가가 ‘젖가슴’을 검색하다 내 글을 발견하면 어쩌지? ‘뭐, 환장?'이라며 씩씩거리며 악플을 달면 어쩌지? 감히 문학적 장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런 불온한 글을 썼냐며 이 사람 좀 보라고 SNS나 커뮤니티에 내 글을 퍼트리면 어쩌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결국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글을 비공개로 돌렸다.

  기껏 비공개로 돌려놓곤 내 글이 이렇게 사라져 버리는 게 아쉬웠다. 그럴 땐 나만의 요령이 있다. 적당히 수줍은 표정을 짓고 선해 보이는 누군가에게 슬쩍 글을 내밀면 된다. 마침 독서 모임에서 선량해 보이는 인상의 희영님을 만났다. 나는 휴대폰을 내밀며 개미만 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참, 부끄러운데, 제가 글을 한번 써봤어요. 혹시 괜찮으시면 읽어보실래요?”

콩닥거리는 마음을 들킬까 주절주절 덧붙였다.

  "글이 좀 공격적이죠? 글을 쓰면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데 막상 보여주려니 그들의 평가가 신경 쓰여요. 이 글도 블로그에 비공개로 쓰고 희영님에게만 보여주는 거예요."

 정말로 선했던 그분은 글이 참 좋았다는 짤막한 감상평과 함께,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우주의 작은 진실을 알려주었다.

  “제가 예전에 글쓰기 모임을 했었는데요. 사실, 글을 쓰는 것보다 더 힘들었던 건 남의 글을 읽는 거였어요. 오늘 님 생각보다 사람들은 훨씬 더 남의 글에 관심이 없어요.”

 내 얼굴은 뜨거워졌다. 가슴도 더 빠르게 쿵덕거렸다. 이제 와 고백하자면 나는 파리 날리는 블로거다. 파워블로거가 아니라 파리블로거. 내 포스팅의 조회 수는 대개 한 자릿수이고 많아봐야 백 언저리다. 그러니까 간판도 제대로 달려있지 않은 망해가는 떡볶이 가게 주인이 별점 1개를 받는게 두려워 네이버에 업체 등록을 하지도 않고 벌벌 떨었던 셈이다.

  그후 난 내 안의 검열관을 해고했다. 비공개로 쓴 글들도 전체 공개로 바꿨다. ‘한국 남성은 왜 젖가슴에 환장하는가’ 글을 전체 공개로 바꾸어도 걱정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가끔 ‘젖가슴 흥분’, ‘젖가슴 노출’이라는 검색어로 들어오기는 하지만.

  얼마 전에는 친구에게 블로그를 공개했다. 친구는 기뻐하며 내 블로그를 구경했고 내 생각보다 더 빠르게 관심이 식은 듯 보였다. 쥐어짜냈던 용기에 비해 결과는 참 싱겁고 허망해 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파면시켜도 검열관은 시시때때로 찾아온다. 그럴 땐 언제나 내 가슴을 후벼 팠던 희영님을 떠올린다. ‘그래, 사람들은 내 생각보다 더 내게, 내 글에 관심 없어. 걱정 말고 더 솔직하고 담대하게 써보자!’라고 되새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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