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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Dec 31. 2017

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해야 하는 이유

2016년 4월 16일

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해야 하는 이유, 하지만 부모님 말 듣고 (법대/공대/고시 공부/대기업 취업) 해야 하는 이유


그 수많은 충고의 기본 이유는 같다. 그러므로 싫더라도 하다 보면 좋아질 테니 법대 먼저 가보라는 부모님 말씀도 맞고, 네가 좋아하는 거를 하라는 멘토 말도 맞다. 그건 반대말이 아니냐고? 아니다. 같은 말이다.


무언가에 성공하고 대가가 되려면 만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말콤 글래드웰의 주장이 있었다. 그 반론도 만만찮지만, 단순함을 위해, 대가가 되기 위한 노력과 투자를 만 시간으로 대치하고 얘기하자. 그렇게 말하면 만 시간 동안 집중해서 열심히 연습하면 대가가 될 수 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만 시간을 채우겠는가?

부모님이 어느 한 분야에서 일하셔서, 주위 사람 역시 그쪽이 많아서 나도 자연스럽게 하게 됐다면 어린 시절부터 별 신경 쓰지 않고 2천 시간 쌓게 될 수 있다. 게다가 사람들은 자신이 잘 하는 것, 잘 아는 것에 관심을 더 가지기 마련이므로, 어린 시절에 "아 나는 프로그래밍/노래/연기/축구를 잘 하는 아이구나!"라고 믿고 중고등학교 시기에 좀 더 시간을 투자해서 20이 되기 전에 2천 시간을 투자했다고 하자. 벌써 4천 시간이다. 전공으로 택했다면? 대학교에서 2천 시간 더 쌓았다. 졸업할 때 즈음이면 6천 시간. 그리고 일 시작하면 금방 확 늘어난다.

무언가를 할 때 집중하여 그 일에 빠진 상태를 flow라고 한다. 평균적으로 인생에서 flow의 시간이 많을수록 행복하고, 뭘 배우더라도 flow 상태에서 배워야 효과적인데 flow는 기본적으로 자기 주도적 배움 상태다. 외부의 자극에 단순히 반응하는 것보다는 내가 주도권을 잡고 이거저거 생각하고 계획하고 해보는 식이다. 어릴 때는 세상 전체에 대해서 배우는 시기여서 이게 훨씬 흔하다. 나이가 들면서 두뇌는 거름 능력이 강해진다. 나는 정치에 관심 없어도 한국 이번 선거에 대한 기사 읽는 데 몇 시간 집중했다. 일본 선거에는 아무 관심 없고 언제인지도 모른다. 내가 직접 뉴스를 찾아서 검색하고 읽는 그 "배움", flow가 배경 지식 있고 관심 있는 한국은 가능하지만 일본에는 해당 안 되는 셈이다. 내가 일본의 어린아이라면 훨씬 자연스럽게 배웠겠지. 하지만 어른인 나는 나와 관련된 일에 관심이 가고, 내가 아는 분야에 관심이 더 간다. 그래서 부모와 주변 환경이 아주 치명적인 역할을 한다. 모르는 분야, 내 주위 사람들도 모르는 분야, 나와 관련 없어 보이는 쪽의 공부를 하려면 flow가 훨씬 힘들고, 그러므로 배우기도 힘들다. 나보고 지금 20대 국회 당선자를 외우라고 한다면, 일본 국회의원 외우라는 것보다 훨씬 쉬운 것처럼.


그 다음은 심리적 요인. 난 (어렸을 때 트라우마로??) 먹고 사는 거는 신성하고 기술 연마는 생사 문제다라고 굳게 믿다 보니까, 이게 먹고 사는 데 도움이 된다 할 때 싫더라도 flow 상태로 들어가 공부할 수 있는 내공이 좀 더 높다. 엉덩이 힘 있는 애들 보면 다들 그런 게 하나씩 있다. 지기 싫어하는 경쟁심,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욕구, 번듯한 곳에서 일하고 싶은 명예욕, xx를 이루고 싶은 성취욕, 특정 분야에 대한 학구열 등등. 다들 그 모든 것이 조금씩은 다 있지만, 싫은 걸 참고 할 수 있을 만큼의 욕구는 한두 개가 전부다.


마지막으로는 가장 중요한 visceral joy. 몸을 혹사해서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 좋은가? 운동해서 얻을 수도 있고 다른 경쟁으로, 아니면 좀 엉뚱하지만, 사설탐정을 하는 것으로도 그 느낌을 얻을 수 있겠다. 몸이 동하는 기쁨을 준다면 우리는 반복해서 할 수 있다. 무언가 잘 몰랐던 것들이 반복해서 공부하니까 이해가 확 되는 느낌을 좋아하나? 난 좋아한다. 다른 이에게 내가 필요하다는 느낌이 짜릿하고 좋은가? 까다로운 무언가를 침착하게 만들어가는 성취감이 좋은가?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것이 좋은가? flow 상태로 배우려면 이것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다. 그래야 만 시간 채우는 것이 그리 괴롭지 않다. IT가 적성은 아니라고 늘 생각했지만, 문제 해결할 때의 짜릿함과 잘 정돈된 프로세스로 똑같은 일 두 번 안 해도 되는 기쁨, 나 혼자 조용히 일해도 되는 그 즐거움 때문에 난 17년 있었다. 컴파일러가 어떤 구조인지는 전혀 관심 없고 새로이 나와서 쿨한 언어들엔 아무 관심 없어도, 일할 때 그런 소소한 즐거움이 있었으니 할 수 있었다. 운동선수로는 일 년도 못 버텼을 거다.


자, 만 시간이 필요한데 당신은 어디까지 왔는가? 환경적 요인, 20세 전까지 연마할 기회, 개인적인 관심 및 심리적 요인, 일 자체는 아니라도 그 일을 수행하면서 얻는 본능적인 기쁨을 다 합하면 얼마나 되는가? 이 중에서 환경적 요인이 아주 세면 어린 시절 경험도 좀 따라오기 마련이고, 게다가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하는 마음까지 있으면 관심이 좀 덜해도 마일리지 좀 쌓았을 것이다(그래서 당신은 부모님을 따라 의사가 되었다!!). 어떤 이는 어렸을 때 자신의 관심사를 찾고, 그걸 하고 싶은 마음이 부모님 기대 부응 욕구보다 훨씬 높고, 경쟁심과 성취욕도 높다 보니까 실력이 확 늘었다 (당신은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고 미대 가서 대박 났다!!).

사랑하는 것을 해야 성공한다는 말을 무시해야 하는 이유는, 만 시간을 투자하면 세계적인 대가가 될 수 있다고 할 때 사실 그 정도로 안 해도 먹고 살 만큼은 할 수 있기 때문이고, 정말 사랑하지 않아도 생계형 직업의 기술 쌓기 정도는 웬만하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난 피아노를 꽤 좋아하고 오래 쳤지만, 피아니스트 될 정도의 여건은 아니었다(개인적인 관심이 높지 않고, 어릴 때 실력 쌓을 기회가 제한적이었고, 내 먹고사니즘에도 부합하지 않으며 좋아하는 공부보다는 연습이라서). 그렇지만 동네 피아노 선생님 정도는 할 수 있다. 부모님이/주위 분위기가 음악 쪽이셨으면 음대 갔을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먹고 살기'를 기준으로 한다면, 정말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 경쟁률 높은 업계에서 다들 알아주는 사람이 되려면 다르다. 만 시간에서 5천 시간 정도로 되는 게 아니라, 만 시간 꽉 채우려면 그만큼 내 인생의 큰 부분을 투자해야 하는 건데, 그러려면 정말 좋아하던가, 멘토와 교육 기관이 약 빤 듯 효과적이던가, 정말 어릴 때부터 정예교육 받았거나, 김연아 선수 정도의 멘탈을 가지거나, 아니면 뭐 싹 다 해당하면 초대박 나는 거고. 그 정도 되어야 다 맞출 수 있는 것.


그러므로 "법대 우선 가봐라"라는 부모님 말씀은 맞다. 그 분야에 대해서 좀 더 알게 되고, 주위 사람들이 법조계 사람들로 바뀌면 관심이 생길 수 있다. 부모님이 법조계라면 유전학상으로 그쪽에 적성 있을 가능성도 좀 더 높다. 피아노나 운동과는 달리 법 공부는 꼬마 때부터 한 사람들 없으니, 비슷한 선에서 출발하는 거니까 승률도 좀 더 높다. 거기에다 사회정의 실현 욕구나 명예욕까지 있고 변호사/판사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는 데다가 공부도 원래 잘 한다면, 한국에서 알아주는 변호사는 안 될지 몰라도 적당한 변호사는 가능할 수 있다.

반대로 "네가 사랑하는 것을 해라"는 말도 맞다. 특히 한 분야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들은 여러 가지 요소를 갖춘 케이스가 대부분인데, 정말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하면서 크게 성공하기는 힘들다. 만 시간의 여정이 힘든데, 좋아하는 거라면 그게 훨씬 짧게 느껴지고 버티기가 쉽다.

그러나 그런 멘토들을 무시해야 할 이유도 분명히 있다. 크게 성공한 사람들은 자기가 여러 가지 요소를 갖췄다는 걸 잘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기도 한다. 자신의 관심이 엄청나게 강했고 (이것 자체가 흔하지 않다 - 미친 듯이 정진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성격상 요인이 크다), 추진력이 엄청났고 (역시 어느 정도 타고난다), 주위의 여건도 됐고 (스티브 잡스가 입시 공부했다면 애플은 없다), 마침 타이밍 좋은 도움도 있었고, 그러다 보니 만 시간이 술술 흘러가서 대박 난 케이스가 많거든. 뭐 그래도 다 자기가 열심히 노력해서, 잘나서, 사랑하는 걸 하다 보니까 잘 된 게 99%다 이런 식으로 말하겠지만.


결론. 

네 말도 맞고 내 말도 맞고 어쨌든 크게 성공하기는 쉽지 않고, 금수저 프리미엄 크고, 좋아하는 거 하다가 대박 나면 좋겠지만 그거 하나만으로는 안 되고, 먹고 살기는 만만치 않고, 그러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것만 찾으면 대박 날 거 같은 그런 느낌만으로 온몸 불사르기에 난 너무 나이 먹었다는 것.


그렇지만!!!

인생은 소소한 즐거움으로 살 만합니다. 대박 인생 자체가, 성취욕 추진력 노력 타고나지 않았다면 너무 힘들고, 그것 없이 인생 초반에 운으로 대박 났으면 지가 감당 못하거든요.

흠. 저도 어릴 땐 상당히 호전적이었는데 많이 죽었네요. 어찌 글이 다 이 모냥이야. 젊은 분들은 열심히 사세요. 나이 들면 지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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