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나]
올드카 투어
근처 광장으로 이동하니 올드카 여러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이곳에는 올드카 투어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우리에게도 다가와 투어를 권유했다. 쿠바에 왔으면 모름지기 올드카 타고 시내 한바퀴 돌아봐야지! 투어 설명을 들어보니 시내를 투어를 마치고 나면 원하는 곳에 내려준다고 했다. 시내 구경도 하고 모로요새까지 이동할 교통수단도 해결할 수 있었기에 흔쾌히 신청했다. 출발하기에 앞서 올드카에 앉아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투어 가이드는 여러 각도에서 정성스럽게 사진을 찍어주었다. 드디어 올드카를 타고 아바나 시내를 드라이브했다. 일반 택시를 타면서 풍경을 보는 것과 오픈카에서 보는 풍경은 느낌이 사뭇 달랐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도심을 드라이브하는 이 상쾌함이란!
올드카 투어 첫 방문지는 혁명광장이었다. 혁명광장은 오늘도 한적했다. 그럴만도 한 것이 뜨거운 태양이 작렬하는 오후 3시, 그늘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넓은 광장에 많은 사람이 있을 리가 없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체 게 바라와 시엔 푸에고스의 얼굴 조형물이 설치된 건물을 배경 삼아 단체 사진을 찍었다. 화창한 날에 방문하면 건물 벽면에 그려진 인물상과의 사진이 선명하게 잘 나온다. 푸른 하늘도 건축물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니 누구든 찍기만 하면 금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혁명광장은 해가 저물 때 찾아오는 것이 가장 좋았다고 본다. 더위를 피할 곳이 없어서 금방 지친다. 당시에도 햇볕이 너무 뜨거워서 사진만 빠르게 찍고 그늘이 있는 곳을 찾아 이동해야 했다.
그러고 나서 올드카를 정비하는 틈을 활용해 올드카와 함께 개인 사진도 촬영했다. 결과물을 보니 사진 속 주인공은 올드카였고, 사람은 그저 조연에 불과했다. 아무렴 어떤가? 기분만 좋으면 됐지! 날이 정말 좋아서 화사한 올드카의 색감이 선명하게 나왔다.
다음 목적지는 베다도 거리에 있는 존 레논 공원이다. 도대체 왜 쿠바에 존 레논 동상이 있는가 하니 존 레논이 부른 노래 Imagine이 혁명과 전쟁으로 상처 입은 쿠바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었고 큰 위안이 되었다고 한다. 존 레논에게 감사를 표하고, 기념하기 위해 그의 동상을 세웠다고 한다. 존 레논 동상과 사진을 찍으려고 준비하는데, 어떤 노인 한 분이 재빠르게 오시더니 갑자기 존 레논 동상에 안경을 씌워주시고 가셨다. 알고 보니 이 어르신은 관광객들이 동상과 사진을 찍으러 오면 동상에 안경을 씌워주고, 관광객이 떠나면 안경을 회수하는 일종의 안경 지킴이라고 한다. 이번에도 한 명씩 존 레논과 대화하는 컨셉으로 사진을 찍기도 하고, 단체사진도 남겼다. 남는 건 사진이다!
존 레논 동상에서 시간을 보내고 근처 바에서 라이브 밴드의 연주를 들으며 모히또를 마셨다. 큼직한 민트잎이 한 무더기 들어 있었고, 럼을 원하는 만큼 넣을 수 있었다. 지난 번에는 달달한 모히또를 먹어본 적이 있어서 이번에는 알코올 향이 강한 모히또를 즐기고 싶었다. 그래서 낮인데도 불구하고 럼을 한가득 넣어달라고 말했다. 역시나 알코올 맛은 씁쓸했다. 럼 추가 비용은 없었다고 해도 모히또 한 잔 가격은 생각보다 비쌌다. 게다가 가이드의 몫까지 우리가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또 라이브 밴드의 무대를 듣고 나서 팁까지 낸 상황이었다. ‘이거 다 모으면 맥주가 몇 캔인데..’ 다소 기분은 찜찜하긴 했지만, 맛 좋은 모히또 집을 안내해 준 대가로 술 한잔 사주었다고 생각하고 나왔다. 약간의 알딸딸한 취기가 체내에 돌고 있는 상태로 따스한 햇살을 받으니 찜찜했던 기분은 어느새 풀렸고, 아바나의 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하며 드라이브를 즐기고 있었다.
올드카를 타고 말레꼰 해안도로를 따라 이동했다. 첫날 밤이라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말레꼰 해변은 아주 아름다웠다. 무엇보다 깔끔하게 잘라낸 듯한 수평선이 매혹적이었다. 검푸른 바다의 색과 파란 하늘의 색이 만들어내는 조화로움이야말로 진정한 한 폭의 그림이었다. 분명 자연의 산물이지만, 인위적인 것보다 더욱 인위적으로 보이는 아이러니. 곳곳에는 낚시꾼들이 방파제 위에 올라 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아마도 방파제 근처가 고기가 잘 잡히는 포인트인 듯 했다. 시선을 조금 오른쪽으로 돌리니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옆으로 모로요새도 보였다. 날씨 정말 좋다.
짧은 말레꼰 해안도로 드라이빙을 마치고 긴 해저터널을 지나니 모로요새에 도착해 있었다. 해안도로를 달리며 바라본 섬에 이제는 우리가 서 있었다. 투어 가이드는 단체사진을 찍자고 먼저 요청했고 우리 핸드폰으로도 사진을 남겼다. 고마운 마음에 팁을 건네주었는데, 대뜸 추가 요금을 요구했다. UFC선수처럼 건장한 체구의 남성이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니 움츠러 들었는데, 곧바로 웃으면서 농담이었다고 말했다. 농담이라고 해도 주먹이 코코넛처럼 크고 단단한 사내가 그런 태도로 나오면 그 순간 누구라도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다 같이 유쾌하게 웃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투어 가이드와 운전기사는 올드카를 타고 돌아갔고, 우리는 모로요새 주변을 둘러볼 겸 요새 건너편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