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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소하 Mar 19. 2020

2010년대 결산 : 국내 음악 (20위~11위)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게시해봅니다. 최근까지 웹진 온음에 보다 집중하고자 하여 브런치 활동에 소홀하였으나, 웹진이 오픈한 지 1년이 넘어가며 조금은 여유가 생겼기에 다시 브런치 활동을 열심히 병행하려 합니다. 


어쩌다 보니 브런치에 마지막 글을 올린 지도 1년이 조금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지난 1 년간 개인적인 일들도 있었고, 브런치와 웹진에서 사용하던 필명을 'Purfle'에서 '양소하'로 변경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지난 기간 동안 온음이라는 웹진에 (나름대로) 열심히 참여하면서, 웹진과 브런치를 모두 효과적으로 활용할 방안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저에게 있어 온음과 브런치는 저의 글을 게시할 수 있는 인터넷 공간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온음은 다른 필진 두 분과 함께 만들어나가는 공동체적 공간이지만, 브런치는 오로지 저 스스로 만들어나가야 하는 개인적인 공간이라는 분명한 차이점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온음에는 보다 웹진의 발전을 도울 수 있는 글 위주로 게시한다면, 브런치에는 다소 개인적인 생각들을 늘어놓는 공간으로 만들까 합니다. 물론 앞서 말했듯, 브런치에 게시되는 글은 다른 누군가의 검토도, 피드백도 받지 못하기에 많이 걱정됩니다만, 그렇기에 여기에는 보다 제 개인적인 생각들을 과감하게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시도의 결말이 어찌 될지는 모르겠으나, 많은 관심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서문


지난 2010년대에 들어 우리나라의 대중문화는 전 세계로 활동 반경을 넓히는 발전의 국면을 맞이했습니다. 한국 작가의 책들이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인기를 얻었으며, 서문을 작성하는 오늘(2020.02.10)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칸 영화제와 골든 글러브 시상식에 이어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요 상을 휩쓰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앞선 사례 이외에도 미술, 연극, 무용, 요리, 패션, 게임 등 수많은 문화/예술 분야의 종사자들이 한국의 능력을 전 세계에 입증하였으며, 이와 동시에 그 능력을 마음껏 뽐내는 순간들을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매 순간 우리를 울고 웃게 만든 음악인들의 활약 또한 눈부셨습니다. 수많은 국내 아티스트가 해외 유수의 페스티벌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고, 케이팝 시장은 빠른 속도로 전 세계에 진출해 글로벌 팬층을 섭렵하고, 그 기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렇듯 지난 10년간 수많은 예술/문화인들이 훌륭한 작품과 능력을 토대로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한국 문화 팬들을 즐겁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발매된 셀 수 없이 많은 훌륭한 작품 중에서 스무 개의 작품을 추려내는 작업은 지금까지 해온 어떤 것보다도 행복했지만, 동시에 심히 고된 일이었습니다. 너무도 쟁쟁한 후보군 사이에서 수도 없이 고민했고, 또 이를 어떤 방법으로 독자분들께 전달할지에 대해, 그리고 독자분들이 이 리스트를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 끝없이 걱정을 거듭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의 취향과 선택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이고, 그저 지난 10년간 감상했던 작품 중 제 마음 가장 깊이 존재하는 스무 개의 작품을 제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노력으로 여러분에게 전하는 것이 최선의 방식이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제가 내놓은 리스트가 여러분을 설득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은 쉽게 서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작성한 이 리스트를 통해 여러분의 지난 10년을 회고하고, 또 앞으로 이어질 한국 대중음악의 멋진 행보를 기대할 수 있을 근거를 전달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작업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본고에는 지난 10년간 발매된 작품 중 총 스무 개의 작품을 선별해 정리했고, 이를 저의 취향과 의견을 보태 감히 순위를 매겨놓았습니다. 리스트에 포함된 작품이 절대적으로 좋은 작품이 아니듯, 포함되지 않은 작품이 절대적으로 좋지 않은 작품이 아닙니다. 지난 10년간 발표된 모든 작품은 우리 모두를 각각의 방식으로 행복하게 해 줬으며,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빛을 받을만한 것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대중음악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지난 2010년대를 빛내 주신 모든 아티스트와 관계자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2020년대의 한국 음악 시장에 대한 응원과 기대의 말을 건네고 싶습니다. 또한 지난 1년간 저의 글과 웹진 온음을 찾아주셨던 모든 독자분께도 늦게나마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싶습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20

 

파라솔, 『언젠가 그 날이 오면』, 두루두루 AMC, 2015.07

파라솔의 첫 번째 정규 앨범인 『언젠가 그 날이 오면』은 밴드로서 이룩한 노력의 성과이자 각각의 인물들이 노력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결과물이다. 구도나 후보정의 열의가 드러나지 않는 커버 아트워크와 유기성이 뚜렷하지 않은 트랙의 구성은 밴드의 첫 앨범에서 느낄법한 부담과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허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고 했던가. 우리는 파라솔의 멤버들이 그저 본인들의 취향으로 만든 앨범에서 그들의 개성을 느낄 수 있다. 앨범을 전반적으로 주무르는 나른하고 눅눅한 소리들에 이어, 범상치 않은 가사들이 청자들을 어루만진다. 그들이  법원과 범죄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보편적인 사랑마저도 유머러스하게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단지 훌륭한 음악적 결실이 노력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인지하게 된다. 그렇게 그들의 소리와 가사가 어우러져 만드는 분위기는 그 안에서 그저 나태하고 낙천적일 수 있을, 현대인의 낙원을 만든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이 스스로 자처해 그 낙원에 입성하고자 하였고, 그 입성의 방법은 그저 파라솔의 음악을 틀어놓는 것뿐이었다. 곧  『언젠가 그 날이 오면』은 노력의 의미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현시대에서, 소정의 노력만으로 낙원을 꿈꿀 수 있는 음악이 된 것만 같다.




19 


Red Velvet, 『The Perfect Red Velvet』, SM Ent., 2018.01

케이팝 시장에서 절대 떼어놓을 수 없는 그룹의 컨셉에 있어서, 레드벨벳이 "레드"와 "벨벳"으로 양분된 음악적 분위기의 구분을 택한 것은 영리한 구상이었다. 단순히 그들의 설명처럼 '강렬함'과 '부드러움’으로 표현되기 힘든 복합적인 컨셉과 분위기일지라도, 그 둘을 조합함으로써 모든 컨셉을 구성할 수 있는 더없이 효과적인 방법을 그려낸 것이다. 또한 이렇게 양분되어 있던 레드벨벳의 최종적인 결합은 「행복 (Happiness)」과 「Dumb Dumb」을 거친 "레드"컨셉과, 「Automatic」, 「7월 7일 (One Of These Nights)」로 이어지는 "벨벳" 컨셉이 본격적으로 융합의 시도를 꾀한 『The Perfect Velvet』, 『The Perfect Red Velvet』, 『RBB』 연작에서 명료하게 발현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위치한 『The Perfect Red Velvet』, 그리고 그 타이틀 곡인 「Bad Boy」는 「피카부 (Peek-A-Boo)」에서는 조금 흐릿하게, 「RBB (Really Bad Boy)」에서 더욱 뚜렷하게 그려진 "레드"와 "벨벳" 조합의 중심을 잡고 있다. 때로는 정신없는 "레드" 컨셉 같이, 때로는 음산하고 차분한 "벨벳" 컨셉의 분위기를 표방하는 사이에서도 그 중심을 한쪽으로 치우치게 두지 않음으로써 둘의 조화가 성공적으로 맺어졌다.  「봐 (Look)」, 「Kingdom Come」, 「두 번째 데이트 (My Second Date)」등의 세련된 아이돌 팝을 그려낸 『Perfect Velvet』의 수록곡들을 그대로 가져온 리패키지 앨범의 형식을 차용하면서, 새로 투입된 「Bad Boy」와 「All Right」을 전면에,  「Time To Love」를 그 중심에 배치하면서 이전 앨범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도 익숙한 모습을 그려내어 균형을 유지했다. 결국 이렇게 한 그룹 내에서 양분되던 컨셉의 융합, 그러면서도 전반적으로 세련되고 그룹의 이미지를 유지하는 음악의 구성은 현재 케이팝 시장에서 SM엔터테인먼트 정도의 자본과 안정성을 가진 기획사만이 시도할 수 있는 것이며, 그러한 시도가 이루어졌던 5년간의 대장정의 결과물로서 형상화된 앨범이 『The Perfect Red Velvet』이다.




18


KIRARA, 『Sarah』, Self-Released, 2018.08

키라라를 수식하는, 혹은 본인 스스로가 이야기했던 많은 문장 중에서도, "쿵하면 쿵이 찍히고, 짝하면 짝이 찍혀서…"라는 문장이 가장 와 닿았다. 키라라의 음악에서 '쿵’은 '쿵’의 역할을 하고 '짝’은 '짝’의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그 '쿵’과 '짝’이 만나서 전체적인 리듬의 틀을 만들고, 그 사이에 '챙’하는 소리라던가, '짝’이 연달아 들어가기도 하고, '통 통’하는 소리가 난입해 박자를 쪼개기도 한다. 그리고 그 위로 강렬하거나 청명한 신디사이저가 파고들어 공간을 메우는 형식을 만든다. 또한 이는 이어지는 수식어와도 연관되어있다. 키라라가 공연에 앞서 말하는 "키라라는 예쁘고 강합니다. 여러분을 춤을 춥니다."에서 두 번째 문장에 집중해보자. 청자는 키라라가 만드는 음악에 필연적으로 춤을 추게 된다. 키라라가 만드는 리듬은 대체로 정형화되어 있다. 가끔은 정체 모를 소리가 난입해 구조를 흩트릴지라도, 기본적으로 그의 음악에는 '쿵’과 '짝’이 존재하기에 청자가 편히 춤을 출 수 있다. 이는 『Sarah』에서도, 『Moves』에서도, 혹은 그 이전부터도 이어져 온 키라라 고유의 무엇이었다. 그리고 이 글에서 다루는 『Sarah』는 앨범 자체에서 담고 있는 수많은 감정이 존재하고, 그럼에도 그 감정들이 청자의 춤에 개입하지 않는 작품이다. 우리는 키라라의 말소리나 소리들을 통해 슬퍼지기도, 유쾌해지기도 한다. 이러한 원시적인 감정은 「걱정」이나 「Wish」에서 더욱 깊어지기도 하지만, 청자는 그저 리듬에 몸을 맡기면 되는 것이기에 상관없다. 때로는 춤을 추는 와중에도 누군가에 대한, 혹은 스스로에 대한 감정에 휩싸이게 되지만, 단지 신나게 춤을 추는 행위를 통해 모든 감정을 잊을 수 있다.




17

 

김사월, 『수잔』, Self-Released, 2015.10

『수잔』의 시작부터 끝까지 김사월은 기타를 중심으로 하는 소리들과 본인의 목소리라는 존재만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며, 그 이야기에는 뚜렷한 서사와 서정이 담겨있다. 청자는 그 시간 동안 작품의 주인공 ‘수잔’에 이입한 채 시간을 보내게 되며, 그 이야기에 흠뻑 빠지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앨범 내내 점철된 주인공 수잔에 관한 이야기들은 타자가 바라본 수잔의 모습을 소개한 첫 트랙과, 「아름다워」, 「콧바람」, 「접속」에서 드러나듯 수잔을 사모하는 그 인물의 애절한 찬사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는 「젊은 여자」에서 분기점을 맞이해 급변의 바람을 맞는다. 아직까지 우리의 사회에 뿌리내린 편견들로 가득한 트랙의 앞에서, 우리는 그 편견으로 인해 상처 받을 한 인간을 그저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이는 곧 그 인간이 수잔이라는 사실과 함께 우리에게 더 애처로운 마음을 선사하며, 이러한 감상은 이어지는 트랙들의 화자가 이전의 타인에서 수잔으로 넘어왔음을 인지하는 순간 더 깊어진다. 수잔이 본인에 대한 이야기와, 어쩌면 기존의 화자였을지 모르는 존이라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순간을 거쳐 우리는 결국 『수잔』의 마지막이자 이야기에 앞서 나올 티저이고, 끝을 장식할 에필로그 일지 모를 「머리맡」을 통한 여운을 얻는다. 김사월의 말대로 수잔은 허구의 인물일지, 김사월 본인 일지, 혹은 그의 주변인이거나 전반적인 사회의 표상 일지는 알 수 없다. 허나 김사월과 그의 동료들이 힘을 모아 만들어낸 수잔의 이야기는 분명 청자의 현실적인 감각을 일깨우는, 어쩌면 현실일지도 모른다는 점에 있어 많은 의미를 시사한다.




16


 

선우정아, 『It's Okay, Dear』, 매직스트로베리 사운드, 2013.04

지난 10년간 너무도 뚜렷한 활동 양상을 보여준 선우정아의 작품 중에서도 『It's Okay, Dear』는 아마 선우정아라는 인물을 가장 확실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It's Okay, Dear』을 구성하는 9개의 트랙은 제각각의 개성과 특징을 가지고 있다. 먼저 가사에 있어, 열등감을 '뱁새’로 유쾌하게 빗댄 「뱁새」와, 이와 반대로 애처로운 연인의 말로를 처절하게 그려내는 「당신을 파괴하는 순간」이 존재한다. 또한 조금은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표현들이 가득한 「Workaholic」과 「Purple Daddy」마저도 같은 작품 내에 공존한다. 덧붙여 이를 실연하는 선우정아의 목소리는 시시각각 변하는데, 「당신을 파괴하는 순간」에서의 선우정아는 중반부까지도 담담하게 유지하던 목소리 톤을 후반부에서 감정을 폭발시키는 듯한 처절한 목소리로 전개한다. 하지만 이런 처절한 목소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 「뱁새」에서는 너무도 명랑한 인물의 목소리가 들리고, 그의 재즈 보컬리스트로서의 면모가 뚜렷한 「You Are So Beautiful (Joe Cocker)」에서는 또 다른 목소리를 듣는 듯하다. YG라는 대형 케이팝 기획사의 작곡가이자 작사가였고, 재즈 보컬리스트였던 선우정아가 본인의 이야기를, 본인의 목소리로 그려내기 시작한 시점 이후에는 『It’s Okay, Dear』이 그 첨병이자 초석으로서 역할했고, 결국 잘 다져놓은 기반으로 그가 이후 2010년대를 마음껏 활보하게 된 셈이다.




15

 

f(x), 『Pink Tape』, SM Ent., 2013.07

"사랑은 존재하지만, 영원하지 않다."는 나레이션과 함께 시작되는 2분가량의 아트필름은 『Pink Tape』를 통해 만들어가고자 하는 많은 것이 담겨있다. 이미 케이팝 시장에서 독특한 포지션을 꿰차고 있던 f(x)는 『Pink Tape』를 통해 한 층 더 성숙해졌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앞서 말한 아트필름의 나레이션이 있다. 이전부터 f(x)의 특징이라면 재기 발랄한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독특한 표현방식의 가사에 있었다. 「NU 예삐오 (NU ABO)」에서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과 그들의 생활/사랑 방식을 이야기했고, 「피노키오 (Danger)」와 「Electric Shock」를 통해 더욱 실험적인 전자음의 도입과 사랑이라는 주제를 또다시 독창적으로 풀어냈다. 허나 사랑에 대한 새로운 의견을 내놓은 아트필름을 필두로, 『Pink Tape』에서의 f(x)는 조금은 성숙하고 차분한 음악을 전개했다. 여전히 「첫 사랑니 (Rum Pum Pum Pum)」의 가사는 독특했지만 알기 쉬운 비유로 표현되었고, 「미행 (그림자: Shadow)」와 「Goodbye Summer」는 서정적인 소리들로 가득했다. 그럼에도 「Pretty Girl」과 「여우 같은 내 친구 (No More)」등의 트랙에서 여전히 명랑한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전보다 세련된 사운드로 표현 방식을 변주해냈다. 이외에도 다양한 일렉트로닉 장르들이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는 '송캠프’라 불리는 새로운 프로듀싱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도입한 예시가 된다. 분명 2010년대 초반까지 케이팝의 위상은 현재와 크게 달랐다. 특히 아이돌 시장은 10대와 20대를 위한 음악이라는 편견에 갇혀 흔히 '30대 이상의 사람이 듣는 걸 들킨다면 창피를 당할’ 수준의 취급을 받기도 했다. 허나 『Pink Tape』라는 작품이 등장하게 되면서 아이돌 음악이 그저 트렌드를 따라가거나 유치한 음악이라는 꼬리표를 벗어던지게 되었고, 이를 넘어 아이돌 시장이 '세련되었다’는 이미지를 구축하게 되었다. 또한 그들이 『Pink Tape』를 통해 시도한 방식들이 지금까지도 케이팝 시장에 자리한 채 활용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f(x)와 『Pink Tape』의 등장은 2010년대의 케이팝 시장을 뒤흔든 핵심적 사건임이 분명해진다.


https://youtu.be/Zg6VB0saQX4




14

 

줄리아드림, 『불안의 세계』, In a Dream, 2016.04

사회적 이슈와 그에 따른 정서는 예술과 문화에 깊게 잠입한다. 단순히 정확히 그 이슈를 지칭하는 방식이 아니더라도, 문화 시장에 속한 인물들은 다양한 행위를 통해 그러한 사건을 언급한다. 그리고 2014년 발생한 끔찍한 사고 역시도 문화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사고의 사상자 대부분이 열여덟 살의 어린 학생들이고, 이들을 방관한 채 사경을 헤매도록 내버려 둔 작자들은 권력을 가진 어른들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을 만큼 충격적인 사건은 수많은 문화인을 자극했다. 그리고 이를 어쩌면 명백히, 혹은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불안의 세계』는 사건을 넘어 우리 사회에 봉착한 '불안’을 이야기했다. 줄리아 드림은 계속해서 섬뜩한 분위기의 소리와 이야기를 그려나간다. 그와 동시에 그들은 계속해서 '바다’의 이야기를 중얼거린다. 본작의 '바다’는 특정한 사건을 지칭하는 단어가 되기도 하고, '불안'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는 '바다’라는 단어를 통해 과거의 기억에 묻히기도, 무의식적인 불안에 잠식되기도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들이 우리에게 주는 감상이 '불안함’이라는 점은 일관된다. 줄리아드림은 2CD라는 형식을 통해 부모세대와 자식 세대의 불안을 묘사한다. 이는 어쩌면 부모와 자식 모두가 불안한, 말 그대로 모든 인간이 불안한 사회를 암시하기도 하는데, 분명 이러한 사회는 허구의 것이라고 보기에는 현실과 너무 닮아있고,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간이 고난을 타파하는 방식은 먼저 그 고난에 맞서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우리는 줄리아드림이 들려주는 불안에 피하지 않고 맞서는 순간 그 불안을 이겨낼 첫발을 디디는 시작을 맞이하게 된다.




13

 

이랑, 『신의 놀이』, 소모임 음반, 2016.10

"이랑"이라는 아티스트가 『신의 놀이』를 통해 들려주는 것들은 담백하다. 수수한 목소리와 소리들로 꾸려진 음악의 공간은 도처에 빈 공간을 남겨두고, 그 소리의 종착지인 가사에는 은유나 비유보다는 직설적인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전작인 『욘욘슨』에서는 더욱 부각되었던 목소리가 다양한 악기의 조화로 조금은 흐릿할지라도, 여전히 이랑은 본인이 전하는 이야기에 가장 큰 힘을 싣고 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신의 놀이』는 보다 다채로운 방식들을 활용하여 지루함을 덜어낸다. 「가족을 찾아서」에서는 돌림노래처럼 이어지는 목소리들의 연결을 듣게 되고, 「웃어, 유머에」는 모든 공간을 채우는 웃음소리가 3분가량 계속된다. 또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와 「도쿄의 친구」에서는 우리의 일상처럼 평범한 듯 쓴웃음을 짓게 만드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놓는 반면, 앨범의 시작인 「신의 놀이」는 "한국에서 태어나 산다는 데 어떤 의미를 두고 계시나요"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며 생각의 여지를 제공한다. 결국 우리는 이랑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고, 그가 전해주는 이야기에 울고 웃으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가 전하는 이야기들은 어쩌면 뻔할지 모르는 것들이다. 소설처럼 화려한 스토리가 있지는 않으며, 과학도서처럼 어떠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것들도 아니다. 허나 이랑은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할 뿐이고, 우리는 이랑이라는 사람을 잘 알지 못하지만, 그가 전하는 이야기들이 가진 다양성과 그로 인해 일어지는 도취되는 감흥들에 이끌린다. 결국 이러한 것들은 이야기에 힘을 부여하며, 이랑은 지난 10년간 우리에게 가장 힘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이다.




12

 

장기하와 얼굴들, 『장기하와 얼굴들』, 두루두루 AMC, 2011.06

2010년대에 들어서며 흔히 말하는 '한국 인디 1세대’의 거목들은 몇 존재하지 않았지만, 유수의 훌륭한 밴드들이 등장하며 그 여백을 채우게 되었다. 그리고 그 선봉대이자 아이콘과 같던 장기하와 얼굴들은 2018년 밴드의 해체에 이르기까지 많은 인디 팬들을 만족시킬 음악을 선보여왔다. 그리고 데뷔 앨범인 『별일 없이 산다』에 이어 발매된 두 번째 앨범 『장기하와 얼굴들』은 그들이 일으킨 돌풍이 단지 일회성이 아님을 증명하는 작품이었다. 그들은 데뷔 당시의 모습 그대로 여전히 말하듯 노래하며, 장난스러운 악기 연주로 음악을 구성했고, 중독성 높은 가사와 멜로디로 무장한 독특한 인디 밴드의 모습 그 자체였다. 허나 그저 전작과 온전히 동일한 모습이었다면 그들의 미래는 암울했을지 모르지만, 한층 더 성장한 모습이 보였기에 『장기하와 얼굴들』은 모든 사람이 앞으로 펼쳐질 밴드의 미래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별일 없이 산다』의 음악은 유머러스하지만 그와 동시에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것이었다. 「나를 받아주오」에서는 처절한 가사와 목소리에 서글퍼지기도 했고, 「느리게 걷자」에서 무기력한 듯 희망찬 그의 이야기에 즐거워했다. 이는 본작의 「우리 지금 만나」에서의 서글프지만 조금은 성숙한 모습, 그리고 「마냥 걷는다」에서의 여전히 걷고 있지만 과거의 추억을 원동력 삼아 열심히 살아가고자 하는 성장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싸구려 커피」와 「TV를 봤네」의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하고 씁쓸했지만 이 또한 숙련된 모습이었고, 8분에 달하는 「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는 그들이 만들고자 한 음악들의 집대성이자 이후 펼쳐질 그들의 미래를 예고하는 듯했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별일 없이 산다』의 성장본이자 익숙한 표상이었고, 동시에 장기하와 얼굴들이라는 밴드의 앞날을 점치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 작품이 여전히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음악을 담고 있었기에, 우리는 새로운 세대가 새로운 페이지를 써 내려가는 장면을 두 눈으로 목격할 수 있었다.




11

 

XXX, 『LANGUAGE』, BANA, 2018.11

XXX가 힙합 팬들에게 선사하는 충격은 그 태초부터 존재했다. 정식 등장의 이전부터 김심야(Kim Ximya)와 프랭크(FRNK)는 각각 『The Anecdote』, 「4 Walls」의 참여로 이름을 알렸고, 이후 발매된 『KYOMI』에서 그들의 앞선 참여가 단순 우연이 아님을 증명해냈다. 그들은 분명 기존에 드물었던 소리들을 조합해냈으며,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구성으로 등장했다. 그렇게 데뷔 앨범을 발매한 이후 소식이 잠잠하던 차에 나타난 개인 작업물인 『Moonshine』과 「모방과 창작 Mixset Vol.1」을 통해 두 멤버는 개인의 역량마저도 드러내는 성과를 만들었다. 그렇게 증명의 과정을 거쳐 등장한 『LANGAUAGE』에는 데뷔작에서의 신선한 충격이 존재했고, 이와 동시에 개인 작업 등으로 성장한 역량의 표시마저 가득했다. 그들은 『LANGAUAGE』의 내부에서 각자의 기량을 마음껏 뽐내면서도, 두 사람의 합 또한 덩달아 성장했음을 예기했다. 「18거 1517」에서 김심야가 만들어낸 서사는 명료했으며, 「간주곡」에서의 프로듀싱은 프랭크의 흡입력 있는 구성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또한 이 모든 순간에는 두 사람이 함께했고, 그 조화가 어우러지는 지점이 속속 출현했기에 그 완성도를 높였다. 특히 이는 둘의 조화가 정점에 달하는 「수작」에서 두드러지며, 본작에서 가장 날카로운 프로듀싱이 빛나는 「Trust Us」와 냉철하게 시장을 관찰한 김심야의 시선을 엿볼 수 있는 「S_it」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렇게 XXX는 『LANGAUAGE』를 통해 다시 한번 시장을 향한 충격을 선물했다. 그들은 개인의 역량과 팀으로서의 조화를 명징하게 뽐내면서도, 전작에서 드러난 날카로운 견해들을 피력했다. 그들이 현재까지도 '반-미디어’의 기수이자 새로운 스타일의 귀감으로 자리 잡은 데에는, 『LANGAUAGE』라는 작품을 통해 그 위치에 도달하기까지의 노력과, 이 노력이 틀리지 않았음을 실력으로 증명해낸 점을 가장 높게 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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