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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 Feb 24. 2023

여행의 이유를 찾아서

두 번째 이스탄불과 첫 번째 부다페스트

 튀르키예는 90일간 무비자로 체류가 가능하다. 그러나 90일이 지난 순간부터, '이캬멧'이라고 불리는 거주증이 없다면 불법체류자가 된다. 이캬멧을 신청하고 최종적으로 발급받기 전 해외를 다녀온다면 서류 절차가 복잡해져 입국을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이캬멧 신청 전 급하게 무계획으로 가게 된 여행지가 바로 ‘튀르키예 이스탄불 - 헝가리 부다페스트' 였다. 내가 아는 부다페스트라곤 예술영화관에서 관람했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뿐. 그저 비행기 표값이 가장 저렴했기 때문에 목적지로 설정하고 훌쩍 떠났다.


결론부터 말하면 23년간 살면서 다녀보았던 여행들과는 너무나 다른 감정들을 느꼈다. 왜 사람들이 여행을 다니는지, 왜 그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써가며 자신만의 해외살이를 다독이는지 알 것만 같았다. 나는 나름 날 잘 안다고 생각했음에도 모르는 것 투성이었음을 깨달았다. 다음 여행은 어떻게 짐을 싸야 할지와 같은 소소한 것들부터 내 주변 관계에 대한 생각까지 바꿔준 게 바로 이번 여행이었다.


나의 시선으로 담아낸 부다페스트



 

타지에 머무르는 동안 이제는 그만 닿아있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던 관계들이 여행하는 동안 가장 먼저 떠올랐다. 기념품을 보면 그 사람들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물론 '무엇을 가장 좋아할까? 그 사람이라면 어떤 걸 샀을까?'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혹시 내가 익숙함에 속아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세상은 정말 알 수 없는 것으로 가득하구나 싶었다.


특히 서울 한 집에서 살 땐 거리를 두고 적당한 관계 속에서 지내고 싶었던 가족이 그랬다. 부다페스트는 동서양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이스탄불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정말 모든 건물이 유럽스러웠다. 한 번도 이런 곳에 와본 적이 없던 나는 한겨울 밤의 꿈을 꾸는 것처럼 신세계 속을 누비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그 모든 풍경에서 유럽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는 엄마가 매 순간 떠올랐다. 더불어 20년 전 길고 긴 유럽의 기차 여행에서 3살이었던 나에게 늘 손편지를 쓰셨던 아빠는 당시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상상해보기도 했다. 옹알이를 하고 있었을 3살 적의 내가 20년이 지나 그 대륙을 밟고 있다니. 헝가리의 한식집을 찾아 사방에서 소주를 마시는 한국 아저씨들을 보며 아빠가 무척이나 그리웠다는 점까지 여행에서 느낀 그 모든 복합적인 감정들이 합쳐져 다시 나만의 끈끈해진 관계를 만들어주었다.


돼지를 구하기 어려운 튀르키예를 떠나 헝가리에서 먹은 돼지고기




나의 시선으로 담아낸 두 번째 이스탄불




세상은 어찌할 수 없는 것 투성이

살면서 늘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온다. 그 선택으로 인해 소중한 경험을 얻게 될 때도 있지만 어떤 것들을 놓아주어야 하는 순간 역시 찾아온다. 나에게는 종종 이런 순간들이 찾아오곤 하는데 - 이번에는 가장 하고 싶었던, 그 유명하다는 외교부 대외활동이 그랬다. 한국 카페 구석에서 열심히 글을 끄적이던 나날에 넣었던 서류에 합격했다는 연락을 뒤늦게 확인했다가 이번 일정과 완벽하게 겹치는 바람에 면접을 놓치게 되었다. 해외통신원으로서 비대면 면접이니 가능할 줄 알았으나 하필 면접을 보던 와중에 터널을 지나갔고 이번 국가적인 상황에 관심이 많았던 외교부 관계자들의 질문들을 듣지도, 대답하지도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내가 처음 제대로 관심을 가져본 대외 활동이라 솔직히 허무하게 끝나버리는 바람에 자책도 많이 했다. (앞으로는 메일을 꼼꼼히 읽고 메모를 습관화하자) 그러나 제일 아쉬웠던 지점은 이 국가적인 재난 상황에 많은 국민들이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이끄는 데에 나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분명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현지 기사를 번역하고.. 글이나 열심히 써야지.


또 다른 발견 : 새로운 사람들과의 대화를 애정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스탄불의 한인 민박집에서 만난 어른들과 한참 그날의 이야기에 대해 나눴다. S님은 어떠한 기회가 찾아와서 두 가지 갈림길에 서게 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다. 하고자 하는 일들이 뚜렷하니, 앞으로도 숱한 기회들이 찾아올 것이라고. 튀르키예 앙카라에 정착하느라 정신없이 눈앞에 급급한 것들을 처리하느라 바쁜 3주를 보냈다. 이스탄불 보스포러스 해협을 바라보며 나눈 대화 속에서 그동안 까먹고 지낸 것들이 있음을 문득 깨달았다. (1) 모든 순간들에 감사하며 살아갈 것, (2)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그 모든 것들이 나의 삶의 자양분이 된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 새로 알게 된 (3)은 바로 어떠한 선택에는 나의 의지뿐만이 아니라 상황과 타이밍이 따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굳이 목적을 향해 내가 지닌 모든 것들을 꾸역꾸역 맞춰보고자 하지 않더라도 그간의 경험했던 모든 것들은 어떻게든 연결이 될 것이고, 오히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겠구나 싶었다.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 나의 카메라 캡이 어부의 요새 낭떠러지 끝자락에 떨어져서 그리스 여행자 분들이 도와주시는 장면. ㅜㅜ


나의 여행 스타일도 이젠 알겠다. 이전에 말했듯 부다페스트의 모든 것이 완벽했다. 화창했던 날씨와 어떤 거리를 걸어도 끊임없이 나오던 고풍스러운 건물들, 그리고 유창한 영어와 함께 나를 맞이해 주던 모든 점원들로 대접받는 기분이 좋았다. 충만하게 즐겨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헝가리는 사실 이 정도 여행에서 마무리 지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사실 난 길거리에서 담배 쩐내가 나는 튀르키예가 가장 그리웠다. (그리워하는 내 자신이 신기할 따름!) 선한 오지랖이 가득한 그곳에선 현지인들로부터 숱한 도움을 받고 정겨운 스몰토크를 할 수 있다. 구석구석 자유로이 골목을 돌아다니며 만나는 작고 소중한 고양이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함박미소로 바라보고 있는 현지인들과 안부를 주고받을 수도 있다. 여행은 눈을 통해 직접 보는 그대로의 재미를 느끼게 하는 것은 물론 내가 몰랐던 나에 대해 잘 알게 해준다는 점이 정말 신기하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더 구체적으로 파고들 수 있는 것 같아 앞으로도 여행을 많이 다녀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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