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산맥에 둘러싸인 작은 도시에서
이른 오전이었음에도 뮌헨의 가장 큰 터미널은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나는 뮌헨 여행을 할 때 매일같이 프레첼을 먹었는데, 마지막 날도 간단한 아침식사를 위해 어김없이 뮌헨의 터미널에서 소금과 후추가 잔뜩 올라간 프레첼을 포장했다. 분주한 매장 속에서 프레첼을 들고 직원에게 조심스레 입을 뗐다. 아이스 블랙커피 두 잔 가능하냐는 나의 영어에 동양인 아르바이트생은 '그런 걸 유럽에서 왜 찾고 있냐'는 식의 눈빛과 함께 없다고 대답했고, 내 뒤로 길어지는 줄이 무안하여 그럼 뜨거운 블랙커피라도 달라며 무마했다. 그 전날 같은 터미널 바로 옆 매장이었던 스타벅스의 직원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는 나에게 '도대체 한국인들은 왜 이렇게 아이스커피를 좋아하는 건가요?'라고 물어봤던 것이 문득 떠올랐다. 얼죽아인 나는 죽어도 유럽에서 살아남지 못하리라,라고 다시금 곱씹었다. (이래놓고 유럽 여행 마지막 날까지 꿋꿋이 아이스커피를 고집했다.)
인스부르크는 오스트리아의 작은 도시로, 독일 뮌헨의 다음 목적지였다. 뮌헨에서 인스부르크의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았다. 유럽을 여행할 때면 오고 가는 큼직한 2층 버스를 종종 마주칠 수 있었는데, 버스 전체가 형광 연두색으로 칠해져 있고 FLIX라고 적혀있는 폰트가 둥글둥글한 게 늘 귀엽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FLIX 버스를 타고 인스부르크로 이동했다. ISIC 국제학생증이 있었기 때문에 유럽 여행을 다닐 때면 이런 대중교통에서 교환학생의 신분으로 소소한 할인 혜택을 지속하여 받을 수 있었다. 2층 좌석에 몸을 낑겨넣고 배고픔을 이기지 못한 채 입 안에 프레첼을 황급히 쑤셔 넣었다. 딱히 유명한 집의 프레첼이라 찾아간 것도 아니었고, 식어서 딱딱해져 있었던 것 같은데 위에 잔뜩 올라간 소금과 후추 탓에 혓바닥이 자극에 진하게 반응했다. 굳어버린 프레첼은 뜨거운 블랙커피 한 두 모금으로 녹여주었다. 단언컨대 살면서 먹었던 프레첼 중에 제일 맛있었다. 흥미로웠던 지점은 버스가 출발하는 데도 좌석 티켓을 확인하지 않았으며, 오스트리아 국경선을 넘어갈 때도, 도착하고 나서 짐을 뺄 때까지도 여권을 단 한 번 확인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큼지막한 프레첼 한 조각을 떼어내 질겅거리며 머릿속으로 유럽의 방임형 교통 시스템에 대해서도 곱씹었다. 아무리 불시검문을 한다지만 고속버스든 시내버스든, 지하철이든 단 한 개도 체크하지 않는 이곳은 도대체 얼만큼 시민의식을 믿고 있는 것인가...
각설하고, 이 작고 소중한 도시인 인스부르크를 찾은 이유는 단 하나, 알프스 산맥을 보기 위함이었다. 절대 가성비 스위스를 생각하고 가지 않았다는 말을 한다면 거짓말이다. 인스부르크와의 인연은 중학교 미술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풍경 사진을 하나 뽑아와서 투명지 위에 마카를 대고 그린 다음, 뒤에 아크릴 물감을 색칠해서 깔끔한 스타일의 모방작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두 번째 미술시간 전 날 나는 인터넷에서 유럽 풍경을 검색했고, 알록달록한 유럽풍 건물들 사이로 펼쳐져 있는 알프스 산맥이 예뻐 보여 그걸 본뜨기로 했다. 당시 중학교 미술 선생님은 내 모방작을 보고 미술을 권유하기도 했었고, 엄마 역시 내 그림을 오랫동안 카톡 배경화면으로 지정해 두었었기 때문에 조금 의미가 남달랐다. 사실 그 사진들을 보고 '유럽엔 이렇게 근사한 곳이 있구나' 정도의 감상에서만 머물렀지 여기가 어느 나라인지, 어느 도시인지는 아예 몰랐다. 그러니까 인스부르크는 사실 이번 여행을 계획하다가 명확히 알게 된 도시였던 셈이다.
어떻게든 의미 부여를 해낸 인스부르크에 부푼 꿈을 안고 도착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DSLR 카메라를 손에 쥐고. 이맘때쯤 나는 곳곳의 사진을 찍어두는 행위에 대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순간순간을 사진 말고 눈으로 가득 담아두라는 말도 있지만, 글로 기록을 남겨두는 것처럼 나만의 시선이 묻어나는 사진들 역시 중요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찍어둔 사진 하나하나를 넘기고 있다 보면 그때의 분위기 냄새 소리 등등이 새록이 떠오른다. 이제는 단종되었다는, 아빠가 넘겨주신 13년이 된 DSLR 카메라는 교환 생활 중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소중한 무언가였다. 고물 카메라였던 만큼 셔터를 누르면 철커덕, 소리가 나는 것도 기분이 좋았고 보정을 하지 않아도 나타나는 사진 속 특유의 빈티지 색감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1박 2일 인스부르크 여행 첫날엔 사진으로 곳곳의 시선을 담아내지 못했다. 카메라 SD 카드를 또 이상한 방식으로 포맷해 버려 작동이 아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중한 무언가를 여행 도중에 잃는다는 기분은 꽤나 좋지 못했다. 메모리카드를 포맷하는 방법은 당일 저녁 호텔에서 정확히 알아내서 다행이었지만, 덕분에 오후 내내 인스부르크를 어딘가 나사 하나 풀린 채 돌아다닌 꼴이 됐다.
내게 결코 사소한 것은 아니었지만, 사소한 것에 매몰되지 말자는 당찬 자기 위안과 함께 오후에 호텔에서 나왔다. 값비싼 인스부르크 교통패스와 알프스 산맥으로 향하는 푸니쿨라를 타러 가는 길은 마치 개장 전 에버랜드를 거닐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만들어주었다. 여행 당시 5월 말로 따뜻한 봄이어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성수기도 아니었고, 월요일임에도 공휴일이었는데 사람이 없어 적적했고 하얀 유럽풍의 건물들만이 쨍쨍한 햇빛에 반사되어 선글라스는 필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겉옷이 필요 없을 줄 알아 챙겨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내 손에 있었던 것은 투박하고 검은, 고장 난 커다란 카메라였다. 내 미련이 아주 그냥 뚝뚝 묻어있는.
얇은 반팔 차림의 나는 그렇게 알프스 산맥으로 가는 푸니쿨라를 탔다. 푸니쿨라 승강장엔 사람들이 제법 모여있었다.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나온 듯한 개도 보였다. 승강을 할 때 어떤 인도인들은 눈을 감고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히스패닉 아기들은 동양인인 내가 신기했는지 연신 장난을 쳤고 나도 맞받아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승강하여 정상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주섬주섬 챙겨 온 겉옷을 꺼내기 시작했다. 찬바람을 맞으며 오들오들 떨고 있는 건 나 혼자뿐이었다. 남은 일정이 제법인데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여행 전 주에 장염에 호되게 걸리고 나았었으니 나에겐 면역력이 생기 않았을까 와 같은 오만가지 잡념이 들었다. 다행히 나 같은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당연히 생각했던 것마냥 푸니쿨라 정상엔 담요도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담요를 꽁꽁 두르고 산맥 위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나 그리고 동행했던 고등학교 후배는 슈니첼이 먹고 싶었다. 슈니첼은 돼지고기에 빵가루를 입혀낸 튀김 요리인데, 흔히 돈가스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국에 있을 때엔 쳐다도 보지 않던 돈가스가 이슬람 국가에서 몇 개월 생활한 뒤로 어찌나 그립던지. 후배와 함께 거침없이 슈니첼을 주문했지만 나온 것은 아래 사진과 같은 어묵탕이었다.
웬일로 슈니첼이 싼가 했다. 우리가 잘못 시킨 모양이었다. 담요에 둘러싸인 나는 연신 눈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소복이 쌓인 알프스 산맥을 바라보며 코를 훌쩍였고, 후배는 다시금 메뉴판을 연신 뒤적였다. 베이컨을 곁들인 슈니첼을 시킨 줄 알았던 후배의 요리에는 베이컨이 들어간 어묵이 나왔고, 버섯 요리를 곁들인 슈니첼을 시킨 줄 착각했던 내 요리에는 버섯이 버젓이 들어간 어묵이 나왔다. 우리는 헛웃음을 지으며 누구 코에는 붙일 수 있겠는가 하는 어묵을 잘게 잘게 잘라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입, 두 입. 한 입엔 뜨뜻하니 추위를 이겨내는 맛이 났고 두 입에는 학교 앞 떡볶이 집에서 먹었던 그런 고향의 맛이 나기 시작했다. 웃기겠지만 오스트리아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음식이 무엇이었냐고 물어본다면 바로 이 어묵탕일 것이다. 예상외로 흘러가는 일이 하나도 없었지만 그 속에서 찾는 행복은 배가 되었던 셈이다. 이 음식의 이름은 여전히 모른다. (아직도 이 음식의 이름을 찾고 있다!)
나의 하루는 이 날 푸니쿨라 하강 뒤 인스부르크에 있는 스와로브스키 박물관을 다녀오면서 마무리된다. 아침의 프레첼과 블랙커피부터, 고장 난 카메라와 겉옷 그리고 어묵탕과 박물관까지. 하루가 이렇게 길 수가 없었다. 다음 날엔 고친 카메라를 들고 아침에 홀로 인스부르크 한 바퀴를 산책했다. 알프스 산맥에 둘러싸인 이 디즈니 마을 같은 작은 도시에도 정장 입은 사람들은 출근을 위해 분주히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자전거를 탄 인스부르크 사람들은 횡단보도를 지나가려는 나에게 손짓과 웃음으로 먼저 가라는 안내를 해주었고, 무단횡단과 거침없는 주행의 나라 속에서 생활하다 온 나는 거듭하여 당케를 외쳤다. 얼렁뚱땅으로만 기억될 도시 사이사이로 교양과 친절이 끼워지며 도시에 대한 이미지도 입체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철컥, 철커덕. 카메라 셔터를 누를 때마다 대자연과 소도시의 조화로 만들어진 이 아름다운 도시에 애정이 담뿍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