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가 차린 향수 공방에 갔다. 말은 향수 만들기 체험이었지만 30년 만의 수다를 위해서가 더 큰 이유였다.
우리가 처음 만난 때는 꽃다운 20대 초반이었다. 하얀 얼굴에 긴 생머리, 상큼한 미소가 지금껏 기억하는 후배의 첫인상이었다. 예쁜데 의대생이라고도 했다. 그랬던 후배는 지금 소아과 의사였고, 아이들을 보는 건 즐겁지만 일주일 내내 병원에 있는 건 싫다며 어느 날 향수 공방을 냈다고 했다. 정확히 말하면 친구가 차린 가방 가게에 세든 셈이었다. 병원은 주 2회 출근, 공방은 예약이 있을 때 나온다고 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후배가 최근에 수백만 원어치의 냄비 세트를 구입했다고 했다. 그 브랜드는 티타늄으로 만들었다며 요즘 입소문으로 핫한 제품이었다. 의사이긴 하나 검소하고 그런 쪽으로 그다지 관심 없어하는 후배였기에 몹시 의아했다.
“네가? 아니 왜?”
어쩌면 내 말투에 실망이 담겨 있었던 것도 같다.
“언니, 제가 아파 봤잖아요. 아프고 나니까 몸에 좋다는 말에 귀가 혹하지 뭐예요!”
그렇구나! 그 대답에 단번에 이해가 됐다. 후배는 6년 전에 유방암 수술을 했더랬다. 임신성 당뇨로 지금껏 약과 식단으로 관리하는 중이기도 했다.
지난주에 나보다 어린 지인이 세상을 떴다. 시작은 역시 유방암이었는데 그게 골반과 간, 폐로 전이돼 갑작스럽게 갔다. 친밀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오가며 인사도 하고 3주 전에도 마주친 지라 충격이 컸다. 그때만 해도 잘 치료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들어 보니, 골반으로 전이돼 항암 치료를 받던 중에 다단계 건강보조식품을 소개받고 항암 치료를 그만두었다고 했다. 항암제를 먹으면 몹시 힘든데 그걸 끊고 건강보조식품을 먹으니 몸이 좋아졌다고 여긴 것 같다고 했다. ‘21세기에 어떻게 그런?’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곧 후배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그랬는지도 알 것 같았다. 항암 치료를 포기했던 엄마도 마지막에는 사이비 한의사에게 의지하지 않았던가! 결국 엄마는 그 한의원에 몇 번 가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그때 난 20대 중반이었다.
그때의 내 또래 딸 둘이 아버지와 문상객을 담담히 맞고 있었다. 예전의 나보다 훨씬 의젓해 보였다. 하지만 그 속은 오죽할까! 하루하루 고통스럽게 꺼져 가는 엄마를 보며 ’차라리 엄마를 빨리 데려가 주세요‘라고 기도했던 내가 생각났다. 막상 돌아가시자 서럽게 울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 ’이젠 끝났구나‘ 하며 안도하던 나도 생각났다. 그래도 난 엄마를 떠나보내는 준비 기간이 길었지만 이 딸들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세상을 뜨기 1주일 전에야 심각성을 알렸다고 했다. 부모로서 짐을 덜어 주려 그랬겠지만 딸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